[기후위기시대] 122. 제주항공 참사 후 새만금신공항 철회 요구 가열
지난해 12월 발생한 제주항공 참사의 원인 중 하나로 조류 충돌(버드 스트라이크)이 지목된 이후 시민·환경단체의 새만금신공항 건설 반대 활동이 가열되고 있다. 전북 군산시 옥서면 일대 새만금신공항 부지에 24만여 마리 철새가 서식하는 수라갯벌이 포함돼 있어, 생태계 파괴 우려는 물론 조류 충돌에 따른 항공기 사고 위험성이 큰 것으로 드러났기 때문이다.
새만금신공항백지화공동행동(이하 공동행동)의 활동가 등 30여 명은 24일 전북 전주시 완산구 중동 전북지방환경청 앞에서 ‘새만금신공항 부동의 촉구 천막농성’을 벌였다. 이들은 ‘새만금 신공항 조류충돌 위험도 무안공항 610배’ ‘새만금신공항은 전북의 희망이 아니라 전북의 재앙이다’ ‘수라갯벌 살아있다, 새만금 신공항 부동의하라’ 등의 손팻말을 들고 시위에 나섰다. 이들은 국토교통부 서울지방항공청이 제출한 새만금신공항 환경영향평가서에 전북지방환경청이 부동의해, 공항 건설 계획을 철회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환경영향평가 부동의하라’ 전북지방환경청 앞 천막농성
천막농성은 국토부가 새만금신공항 전략환경영향평가 보완서류를 환경부에 제출한 직후인 2022년 2월부터 약 3년 동안 세종시 국토부 청사 앞에서 진행됐는데, 지난 2월 전북지방환경청에 서류가 접수됨에 따라 지난달 10일부터는 현재의 위치에서 이어가고 있다. 김나희(47) 새만금신공항백지화공동행동 홍보국장은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로 드러난 조류 충돌 위험성 때문에 (신공항을 향한) 사회 분위기가 조금씩 바뀌고 있다”며 “신공항 계획을 해서는 안 된다는 점을 정치인과 주민들에게 설득하고 있다”고 말했다.
공동행동은 이에 앞서 지난 1월 21일 국토부 청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새만금신공항의 예상 조류 충돌 횟수가 무안공항의 약 610배나 된다는 내용의 ‘새만금신공항 건설사업 전략환경영향평가’ 결과를 공개했다. 2021년 국토교통부가 시행한 이 평가에 따르면 새만금신공항 계획지구의 연간 예상 조류충돌횟수(TPDS)는 5킬로미터(km) 기준 최소 9회에서 최대 43회로, 무안공항의 0.07회에 비해 최소 134배, 최대 610배 높다는 내용이다.
이 평가를 보면 새만금신공항에서 치명적인 사고가 발생할 예상 주기도 ‘최소 21년에서 최대 93년에 한 번’으로 무안공항의 ‘1만 2221년에 한 번’에 비해 매우 짧았다. 김지은(48) 공동행동 위원장은 “이 수치는 공항을 지으면 안 되는 것”이라며 “이런 곳에 공항을 짓겠다는 것은 조류 충돌 참사를 예고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이 수치는 공항이 건설되기 전인 자연 상태에서 측정한 것이라, 실제 공항이 들어서고 조류 저감 방안이 적용된 후에는 크게 달라질 수 있다고 국토부는 설명했다.
람사르 사무국 서한 발송 등 국제적 호소도
공동행동은 또 지난 23일 국제 습지보호 협약인 람사르협약을 관리하는 스위스 글랑의 사무국에 ‘서천갯벌 및 그 완충지대의 생태적 특성 변화 가능성’에 관한 서한을 발송해 새만금신공항 건설의 문제점을 알렸다고 밝혔다. 람사르협약 제3조 2항은 등록 습지 생태의 변화가 예상될 때 해당 국가가 사무국에 즉시 알리도록 하고 있다. 서천갯벌은 람사르 등록 습지 제1925호로, 인근 수라갯벌에 새만금신공항이 건설되면 생태계에 악영향을 받을 수 있다. 공동행동은 한국 정부가 이를 사무국에 알리지 않아 대신 통보했다고 밝혔다.
공동행동은 이밖에 서울 서초구 양재동 서울행정법원 앞에서 신공항 기본계획 취소소송의 인용을 촉구하는 1인 시위를 벌이고 있다. 공동행동을 포함한 국민소송인단 1308명은 2022년 9월 국토부장관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이들은 수라갯벌의 사진엽서를 전북환경청에 보내는 ‘엽서 행동’도 병행하고 있다. 지난 2월에는 국제 학술지 ‘사이언스’에 새만금신공항 건설로 수라갯벌이 위험해진다는 내용의 서한도 게재했다. 신공항 기본계획 취소를 탄원하는 서명운동도 지난 1월 23일부터 2월 24일까지 벌여 5500여 명의 서명을 받았다.
지난 2월 10일에는 전국의 신공항 건설을 반대하는 7개 단체가 모여 전국신공항백지화연대(이하 백지화연대)를 발족했다. 백지화연대는 지난 2월 24일 서울시공익활동지원센터에서 ‘신공항 건설·운영과 항공기 조류 충돌의 위험성’을 주제로 토론회를 열었다. 기조 발제를 맡은 한국환경연구원(KEI) 이후승 연구위원은 “여러 가지 (조류 퇴치) 방법을 써도 새들을 우리가 어딘가로 내보내고 하는 것 자체가 어렵다”며 새가 많은 습지에 공항을 건설하는 계획의 위험성을 지적했다. 그는 “외국에서는 이미 레이더를 가지고 실시간으로 새를 예측하는 시스템이 되어 있지만, 사고가 많이 발생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와 관련해 지난 2월 19일 <단비뉴스>와 전자우편으로 인터뷰한 최창용 서울대 산림과학부 야생동물학 교수도 새만금신공항 건설에 부정적인 의견을 밝혔다. 최 교수는 “공항 주변 야생 조류의 이동을 완벽하게 예측하고 통제할 방법은 없다”며 “최선의 방법은 철새도래지에서 멀리 떨어진 대안 입지를 찾는 것”이라고 말했다.
시민단체는 ‘인근 군산공항도 수요 부족’ 지적
시민·환경단체들은 새만금신공항 부지에서 1.3km 거리에 있는 군산공항도 수요 부족으로 적자를 내고 있다며 새로운 공항이 필요하지 않다고 주장한다. 김지은 위원장은 “이미 있는 군산공항도 수요가 없어서 60억 원의 적자를 누적시키고 있다”며 “그런데 소중한 갯벌을 없애서 공항을 또 짓겠다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항공정보포털의 공항운영성과 통계를 보면 군산공항은 2023년 기준 매출 9억 원에 영업손실이 58억 원이었다.
이에 관해 국토교통부 공항건설팀 신동희 사무관은 “군산공항은 미군 소유라 민간 항공기를 운영하는 데 제약이 있기 때문에 국제선 운영이 어렵다”고 설명했다. 국토부는 새만금신공항을 올해 착공해 2029년부터 제주도 등을 오가는 국내선과 중국·베트남 등 아시아권을 연결하는 국제선을 운영할 계획이다. 사업비는 8077억 원이다. 국토부는 조류 충돌 우려와 관련해 조류 탐지 레이더 운영 등 대책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법정보호종 포함한 315종 새들의 안식처
새만금신공항 건설은 생태계 보호 차원에서도 재앙이 될 것이라고 환경단체와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서울지방항공청이 지난해 발표한 ‘새만금신공항 환경영향평가서 초안’을 보면 새만금신공항 계획지구 반경 13km와 주변에서 확인된 조류는 총 56과 315종, 약 24만 마리이며 이 가운데 법정보호종도 59종이나 된다. 지난 2월 15일 새만금상시해수유통운동본부가 주최한 ‘새만금 환경생태기행’에 참가한 시민 40여 명이 군산시 옥서면 남북2지하차도 인근에서 수라갯벌을 관찰했을 때, 약 300m 거리 갯벌 위에는 붉은부리갈매기, 도요새, 검은머리물떼새, 붉은어깨도요 등이 오가고 있었다.
망원경으로 자세히 보자, 흰 몸통에 갈색 날개를 접은 도요새 수천 마리가 갯벌을 뒤덮고 있었다. 새만금시민생태조사단 오동필(49) 단장은 “(렌즈에 잡히는 부분에만) 4000마리 이상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도요새는 호주나 뉴질랜드에서 겨울을 나고 1만km를 날아와 봄에 수라갯벌에서 잠시 머물다 다시 시베리아나 알래스카로 향한다. 매년 수천~수만 킬로미터를 이동하는 과정에서 수라갯벌과 같은 휴식처는 새들의 생존에 필수적인 공간이다. 오 단장은 “(철새들이) 새만금에 오면 몸이 반쪽이 돼 있다”며 “보통 30% 정도의 몸무게가 빠진다”고 말했다. 겨울의 수라갯벌은 민물가마우지, 기러기 등의 월동지이자 번식지가 된다.
최창용 교수는 “갯벌의 소실은 해당 지역에 의존하는 개체군에 큰 피해를 초래한다”며 “특히 장거리를 이동하는 도요물떼새의 피해가 발생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그는 “과거 새만금 물막이 공사 이후 도요물떼새류의 개체군 감소가 크게 확인된 바 있다”며 “잔존 서식지가 사라질 경우 도요물떼새는 서식지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고 도태될 가능성이 상당히 높다”고 우려했다.
이유진 녹색전환연구소장은 “갯벌은 탄소흡수 기능뿐만 아니라 생물다양성이나 그 자체로 소중하다”며 “새만금신공항 건설은 기후위기 시대에 고려해서는 안 되는 사업이라고 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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