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시대] 60 변화를 만드는 사람들: ‘꽃밥에피다’ 송정은 대표

지난 6일 오전 10시쯤 서울 가회동 북촌 박물관 옆의 식료품점 겸 식당(그로서란트) ‘꽃밥에피다’에서 송정은(53) 대표와 직원 4명이 손님 맞을 준비로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식재료를 파는 꽃밥마켓에서는 진열대에 유기농 채소와 과일 등을 정리하고, 레스토랑 주방에서는 비빔밥에 들어갈 나물 등을 준비하느라 분주했다. 가게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바로 보이는 벽면에는 20여 가지 식재료가 각각 어느 지역에서 어떤 농법으로 생산됐는지 표시한 지도가 붙어 있었다. 경기도 여주시에서 온 무항생제 자유방목 유정란, 전남 장성군에서 유기농 재배한 현미 등 모두 국내산이었다. 송 대표는 농축산물이 생산된 후 식탁에 오르기까지의 거리, 즉 ‘푸드 마일리지’를 줄이는 것이 소비자 건강과 기후위기 대응에 중요하다고 말했다. 

“우리 농부님들이 우리 땅에서 미네랄을 함유한 작물을 키우는 재배 방식 그 자체가 아름답습니다. 좋은 식재료가 있으면 화려한 요리기술이 없어도 재료 본연의 맛을 살려 맛있는 음식을 만들 수 있죠. 이것이 환경을 위하는 일이기도 하고요.”

딸의 아토피 치료법 찾다 정착한 채식 식단 

식료품점 겸 식당 ‘꽃밥에피다’의 송정은 대표가 매장에서 와 인터뷰하고 있다. 박정은 기자
식료품점 겸 식당 ‘꽃밥에피다’의 송정은 대표가 매장에서 <단비뉴스>와 인터뷰하고 있다. 박정은 기자

송 대표는 자신을 ‘페스코 베지테리언’(Pesco Vegetarian)이라고 소개했다. 소고기 등 육류는 먹지 않고 생선, 유제품, 달걀 등은 섭취하는 부분 채식주의자라는 뜻이다. 송 대표의 딸(28)은 어릴 때 면역력이 약해 아토피가 심했고 유행하는 병은 가장 먼저 걸렸다고 한다. 그는 딸을 건강하게 키우기 위해 관련 정보를 찾은 끝에 정제된 식재료와 공장식 축산으로 길러진 육류 등을 완전히 끊고 유기농 식재료와 자연 채식으로만 먹이게 됐다고 말했다. 그 결과 면역력이 높아지고 아토피는 완치됐다고 한다. 송 대표는 ”면역력이 약한 사람들은 농약을 친 작물 등에 남아있는 중금속을 배출하는 능력이 현저히 저하되어있어, 몸에서 빠르게 해독하려고 하다 보니 발진 증상이 나타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또 “공장식 축산업이 기후에 미치는 영향을 알고 나니 딸이 건강해진 뒤에도 고기를 먹을 수가 없어 지금까지 채식을 유지하고 있다”고 말했다. 공장식 축산은 짧은 시간 안에 적은 비용으로 많은 고기를 생산하기 위해 좁은 축사에 동물을 가둬 놓고 사육하는 방식으로, 대량의 탄소 배출과 전염병 확산 등의 문제를 안고 있다. 유엔 식량농업기구(FAO)는 2006년 발표한 ‘축산업의 긴 그림자’ 보고서에서 축산업이 배출하는 온실가스양이 전 산업 탄소 배출량의 18%를 차지한다고 추산했다. 이는 운송업(14%)보다 높은 비중이다. 

송 대표는 2015년 식당을 처음 냈을 때 비건(완전 채식)으로 메뉴를 구성했는데, 수익을 내기 힘들었다고 회고했다. 그래서 기본식단은 채식으로 하고, 손님의 요청에 따라 고기를 추가해 먹을 수 있도록 바꿨다고 한다. 대신 고기는 친환경 전문 축산기업인 씨알살림축산과 네이처오다에서 계약생산해 공급받고 있다. 씨알살림축산과 네이처오다는 공장식 축사가 아닌 자연 방목 환경에서 자란 돼지, 소 등을 공급한다. 특히 유전자변형식품(GMO)을 사료로 쓰지 않는 등 건강 영향을 중시한다고 한다. 송 대표는 “고기를 끊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해 최선의 대안을 찾는 것도 외식업계의 역할”이라고 말했다.

‘꽃밥에피다’ 식당의 비건 메뉴인 ‘채소가득 비빔밥 한상’을 차린 모습. 박정은 기자
‘꽃밥에피다’ 식당의 비건 메뉴인 ‘채소가득 비빔밥 한상’을 차린 모습. 박정은 기자

공정무역 제품과 재활용 포장에도 열의

기후·환경을 중시하는 송 대표의 철학은 꽃밥마켓에서 파는 생활용품과 포장재에도 반영되고 있다. 플라스틱 대신 돌을 천으로 감싸 만든 공깃돌, 계면활성제가 들어가지 않은 세제, 천으로 만든 생리대 등 친환경 생활용품을 매장에서 함께 판다. 포장은 표백 처리하지 않은 크라프트 종이 등 재활용 가능한 재질로 한다. 매장에서 판매하는 커피의 원두는 공정무역 인증을 받은 제품이다. 공정무역 인증을 받기 위해서는 환경을 배려하는 방식으로 생산해야 한다. 

그런데 이렇게 재료와 포장 등에 남다르게 신경 쓰다 보면 수익을 내는 것이 어렵지 않을까. 송 대표는 “적자가 나고, 갈피를 잡기 어려운 시절이 있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버티다 보니 2018년 '미쉐린 빕구르망(합리적인 가격에 훌륭한 음식을 제공하는 레스토랑)'으로 인증받고 소문도 나면서 경영이 많이 나아졌다고 한다. 2021년 이후에는 연속 3년 ‘미쉐린 그린스타’ 인증을 받았다. 미쉐린 그린스타는 프랑스 타이어회사인 미쉐린이 매년 발간하는 외식 및 여행 평가서 ‘미쉐린 가이드’에 2021년 신설된 등급으로, 자연 자원을 보전하고 근거리 식재료를 사용하며 동물 복지 실현에 앞장서는 등 지속 가능한 미식을 실천하는 레스토랑에 부여된다. 

최대한 재활용될 수 있는 포장재로 우엉잡채 한 접시를 포장한 모습. 박정은 기자
최대한 재활용될 수 있는 포장재로 우엉잡채 한 접시를 포장한 모습. 박정은 기자

‘꽃밥에피다’에서 비빔밥, 우엉잡채, 꼬막무침 등 고기를 곁들이지 않은 단품의 가격은 모두 1만~1만 5천 원 정도로, 식재료의 원가를 생각하면 비싼 편이 아니다. 송 대표는 가게에서 판매하는 채소와 과일에 관해서도 자부심을 드러냈다. 그는 “우리 가게에서 판매하는 채소와 과일을 드시면 다른 데서는 못 먹는다”며 ”촉진제를 써서 키운 것이 아니라 크기가 제각각 다른데, 이게 자연스러운 것“이라고 말했다.

‘기후·환경 피해 줄이기, 사업적으로 해볼 만’ 증명할 터

‘꽃밥에피다’ 직원이 꽃밥마켓에서 들여온 우엉과 간장, 당면을 볶아 우엉잡채를 만들고 있다. 레스토랑 바로 옆 꽃밥마켓에서는 손님이 직접 식재료를 구입할 수 있다. 박정은 기자
‘꽃밥에피다’ 직원이 꽃밥마켓에서 들여온 우엉과 간장, 당면을 볶아 우엉잡채를 만들고 있다. 레스토랑 바로 옆 꽃밥마켓에서는 손님이 직접 식재료를 구입할 수 있다. 박정은 기자

송 대표는 사업뿐 아니라 일상에서도 친환경 생활을 실천하고 있다. 샴푸, 린스 등에 들어가는 합성계면활성제가 자연 분해되지 않아 토양과 수질을 오염시키는 것을 안 뒤 20년 넘게 계면활성제가 들어간 제품을 쓰지 않는다고 한다. 그는 “나라도 쓰지 말자는 생각으로 린스부터 끊고, 나중에 샴푸와 화장품까지 끊어서 현재는 물로만 씻고 천연오일을 바르는 생활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처음에 기름이 졌는데 우리 인체가 화학제품과 기름진 식생활에 적응되어 있기 때문”이라며 “초반에 약간의 불편함만 견디면 나중에는 인체가 화학제품 없이 생활하던 본래의 환경에 적응한다”고 말했다.

산업통상자원부의 2021년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온실가스 배출량 1위 업종은 철강산업이고 다음이 석유화학산업이다. 각종 세제에 들어가는 성분 등 화학제품의 소비를 줄이는 것이 석유의존도를 낮추고 온실가스 배출을 줄이는 데 도움이 된다. 송 대표는 친환경 실천을 표나게 내세우고 싶진 않지만, 더 많은 사람이 함께 하기를 희망한다고 말했다. 

“누군가에게 뭘 강요해서 되는 건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러고 싶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낙숫물이 바위를 뚫는다고 하죠. 나 먼저, 나만이라도, 일단은 그 물 한 방울의 역할을 하고 싶어요. ‘나 혼자 해서 되겠어?’라는 말을 하는 분들이 많은데, 낙숫물이 언젠가는 바위를 뚫기도 한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동식물과 기후 환경에 주는 피해를 최대한 줄일 수 있는 일이 사업적으로 해볼 만한 일이라는 것을 증명하고 싶습니다.”

[기후위기시대]

① 온실가스 주범 석탄발전소 ‘더 짓는 중’

② '기후우울' 떨치고 '어벤져스'로 나서다

③ 탄소세 부과로 ‘신호’ 줘야 기업 바뀐다

④ 노동·지역경제 배려 ‘정의로운 전환’을

⑤ "석탄발전소 짓는 한국, 리더 아닌 꼰대"

⑥ ‘그린워싱 대신 행동을’ 거센 녹색 함성

⑦ "SMR 등 원전은 기후위기 대안 못 돼"

⑧ “상용화 먼 핵융합, 탄소중립 도움 안 돼”

⑨ “기후위기 극복 의무를 헌법에 넣자”

⑩ 소형모듈원전(SMR) 상용화 가망 없다

⑪ “파이로프로세싱은 과학 아닌 소설”

⑫ 기후재난으로 원전 위험성 더 커진다

⑬ ‘기후 일자리’ ‘탄소국민배당’ 추진을

⑭ 고기 즐기는 너, 기후변화 공범 아니니

⑮ 청소년은 ‘미래’ 아닌 기후재난 ‘당사자’

⑯ 기후 미술관, ‘제로 웨이스트’로 가다

⑰ 쓰레기 줍다 보니 삶이 바뀌더라

⑱ “한국 공적금융이 에너지 전환 걸림돌”

⑲ ‘ESG 경영’ 뒤로 ‘기후행동 봉쇄 소송’

⑳ ‘국민이 처한 위험’ 알리려 당근 쏟았다

㉑ 나는 오늘 옷을 샀다, 기후위기를 샀다

㉒ 시민이 일어나 정부·기업을 움직이자

㉓ 탄소 줄이는 갯벌 메워 공항을 짓다니

㉔ 공장식 축산 줄이고 채식 늘려야 생존

㉕ 경작과 에너지 생산을 ‘하이브리드’로

㉖ 이재명 ‘재생에너지’, 윤석열 ‘원전’ 강조

㉗ 이재명·윤석열도 ‘기후대선’ 동참해야

㉘ ‘할머니가 지킬게, 초록지구’ 119 출동

㉙ 기후변화만큼 핵발전도 위험하다

㉚ ‘주차장 태양광’ 시급한데 조례로 막아

㉛ 채식 급식 확대, 환경교육과 병행 필요

㉜ 지구는 우리가 지킨다, 연구의 힘으로

㉝ 낡은 단독주택이 제로에너지 건물로 깜짝 변신

㉞ 개발에 밀린 무허가 정착민의 ‘생존 연료’

㉟ 난청·진폐 앓아도 떠날 곳 없는 노동자들

㊱ 실종된 ‘기후정치’를 찾습니다

㊲ ‘막장’에서 땀 흘린 이들의 희망은 어디에

㊳ 물 부족은 아프리카에서 끝나지 않는다

㊴ 돌고 돌아 사람 몸속에 쌓이는 플라스틱

㊵ 바이오연료, 전기차로 가는 징검다리 될까

㊶ 왕우렁이가 돕는 쌀농사, 도시농부도 보람

㊷ 취약층 ‘쪄 죽는 사회’ 막으려면

㊸ 속 썩은 배추에 농부 마음도 썩어들어가고

㊹ 탄소흡수 ‘바다숲’ 228곳 조성 후 관리 미흡

㊺ 중·고교 5600여 곳에 환경담당 교사는 41명

㊻ ‘탈석탄법’으로 신규발전소 건설 중단 길 터야

㊼ 강력한 탈탄소 정책과 기후정의 함께 가야

㊽ ‘기후재난, 이대로 살 수 없다’ 역대 최대 인파

㊾ BTS RM의 그 가방, 폐시트와 빗물로 제작

㊿ 채취량 반으로 줄고 낙석에 생명의 위협도

51 ‘그린워싱’ 고발하다 법정에 선 활동가들

52 보틀클럽과 리필스테이션이 있는 마을 실험실

53 ‘블루카본’ 갯벌을 신공항으로 덮으려는 정치

54 애타는 기후 시민, 정부를 법정에 세웠다

55 기후행동 ‘목적의 정당성’ 인정한 판결에 환호

56 ‘단 한 명이라도…’ 매주 간절하게 올리는 기도

57 과학자들, '엉터리 근거로 오염수 투기 강행' 비판

58 농지에서는 농사를, 유휴부지에는 태양광을

59 호수 위에 뜬 그 꽃잎이 태양광발전소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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