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시대] ㊵ 탄소중립을 위한 자동차 연료 혁신
지난 15일 부산 국제모터쇼가 열린 벡스코 제1전시장 한가운데 관람객 수십 명이 모여 휴대전화로 설문조사를 하는 부스(칸막이 공간)가 눈에 띄었다. 한국에선 볼 수 없는 모양의 자동차 주유기가 설치된 이 부스는 미국 워싱턴 디시(D.C.)에 본부가 있는 미국곡물협회의 홍보 공간이다. 옥수수로 생산하는 바이오에탄올 등을 세계 시장에 알리기 위해 부산 국제모터쇼를 찾아왔다.
부산 국제모터쇼에 미국곡물협회가 등장한 까닭은
바이오에탄올은 바이오디젤과 함께 자동차 기름의 대안으로 떠오른 바이오연료다. 바이오에탄올은 사탕수수나 옥수수 등 녹말 성분이 포함된 작물을 발효해 생산하고, 바이오디젤은 식물성 기름, 폐식용유 등을 메탄올과 반응시켜 생산한다. 바이오에탄올은 휘발유, 바이오디젤은 경유에 일정 비율을 혼합해 자동차 연료로 쓴다. 2021년 기준 전 세계 바이오연료 소비량은 1683억 리터(L)이며, 그중 바이오에탄올이 74%, 바이오디젤이 26%를 차지한다.
한국은 수송용 연료부문 신재생에너지 확대 정책으로 2015년부터 바이오연료 혼합 의무화 제도를 시행하고 있는데, 아직은 경유에 바이오디젤을 혼합하는 것만 허용한다. 2015년 시판되는 모든 경유에 바이오디젤을 2.5% 섞어 판매하기 시작했고, 현재 3.5%인 혼합 비율을 2030년 5%까지 높일 예정이다. 그러나 국내 내연기관 차량 가운데 절반인 휘발유 차량에 바이오에탄올 혼합을 의무화하는 정책은 미뤄지고 있다. 바이오디젤의 경우 폐식용유 등을 원료로 활용해 자급에 문제가 없으나, 바이오에탄올은 원료인 옥수수 등의 자급이 어려워서라고 한다.
반면 미국, 유럽연합(EU), 캐나다, 멕시코 등 57개 나라는 내연기관 차량의 탄소 배출을 줄이고 대기질을 개선하기 위해 휘발유에 바이오에탄올을 혼합하는 정책을 적극 도입하고 있다. 특히 브라질은 사탕수수에서 바이오에탄올을 만드는데, 휘발유에 혼합하는 비율이 평균 27.5%이고, 100% 바이오에탄올로 운행하는 차량이 판매되는 비중도 늘고 있다고 미국곡물협회 한국사무소 김학수(65) 대표는 말했다.
탄소 배출 감축 위해 57개국에서 바이오에탄올 혼합
김 대표는 미국을 포함해 바이오에탄올을 쓰는 국가에서 가장 보편적인 혼합 비율은 10% 정도라고 말했다. 바이오에탄올을 이 비율로 혼합하면 같은 양의 휘발유에 비해 탄소 배출량을 40% 이상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또 바이오에탄올 가격은 휘발유의 15% 정도에 불과하기 때문에, 이렇게 혼합해서 사용하면 연료비가 10% 정도 절감된다. 김 대표는 또 “에너지 시큐리티(안보)가 불안정한 나라에서는 에탄올을 혼합연료로 사용해서 불안한 에너지 안보를 강화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해 세계 식량난이 심화하는데, 곡물을 원료로 한 바이오에탄올을 쓰는 데 문제가 없겠느냐는 질문에 “에탄올 가격이 올라갔지만 비교할 부분은 유가”라며 유가 불안정이 더 심각하다는 점을 지적했다. 그는 “예전부터 곡물은 여러 분야에서 활용되어 왔다”며 “지금은 탄소 배출량 감소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김 대표는 바이오에탄올 혼합이 연비를 떨어뜨리지 않느냐는 질문에 “에탄올이 연비에 미치는 영향은 운전자의 운전 습관에 비하면 미미한 수준”이라고 답했다.
2021년 미국 아르곤 국립연구소 등이 진행한 연구에 따르면 바이오에탄올 생산단계부터 자동차에서 연소하는 단계까지 전 주기를 분석한 결과 휘발유에 비해 탄소 배출이 44~46% 줄어든다는 결과가 나왔다. 지난해 9월 환경일보가 서울에서 주최한 ‘기후위기 시대와 바이오연료 심포지엄’에서 미국 시카고 일리노이대 스테판 뮬러 교수는 “한국이 휘발유에 10%의 에탄올을 혼합하는 E10 연료를 사용하는 경우 연간 310만 톤(t)의 탄소 저감 효과를 거둘 수 있다”고 밝혔다. 이는 2019년 기준 국내 온실가스 총배출량인 6억 1150만t 기준 0.5%에 해당하는 양이다. 김학수 대표는 “에탄올 혼합 사용이 (휘발유에 비해) 대기 환경을 청정하게 하는 효과도 있다”고 말했다.
전기·수소차 시대 본격화에 앞서 일정한 역할 가능
자동차 전문가들은 ‘2050년 탄소중립’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근본 대책이 내연기관 차량 대신 전기차와 수소차로 바꾸는 전환이라고 지적한다. 그러나 바이오연료는 별도의 충전소 등 추가 인프라를 구축하거나 차량을 개조하지 않고 바로 적용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김 대표는 “그린 모빌리티로 가는 전환기에 바이오에탄올이 좋은 대안 중 하나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특히 아직까지 국내에서 생산되는 전기는 화석연료 비중이 크기 때문에 바이오연료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한편 미국곡물협회가 전시장 관람객 335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80.2%는 ‘휘발유 차량에도 탄소 절감을 위해 바이오 연료를 혼합해서 사용할 필요가 있다’고 답했다. 반면 응답자의 60%가량은 국내 시판되는 경유에 바이오디젤이 3.5% 혼합되고, 해외 여러 나라에서 휘발유에 바이오에탄올을 혼합 사용한다는 사실을 몰랐던 것으로 나타났다. 응답자의 94.6%는 ‘정부의 탄소중립 노력이 필요하다’는 의견에 동의했다.
15년 동안 디젤 자동차를 운전하고 있다는 김영만(45) 씨는 “바이오디젤 혼합 의무화 정책이 시행된 뒤에 금액이나 연비 차이를 크게 체감하진 못했다”며 “그래도 환경을 위해 연료 혼합 비율을 늘리는 데 찬성한다”고 말했다. 그는 바이오에탄올 혼합에 관해서도 “정말 환경에 도움을 주고 미국처럼 기름값이 떨어지는 효과를 준다면 국내에서도 빨리 사용하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휘발유·경유 생산자인 정유업계에서는 일정한 비율의 바이오연료를 섞으면 석유류 사용이 줄어 매출에 부담이 되지만 환경개선을 위해 정책에 협조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러면서 바이오연료가 국내 자급률 100%가 아니기 때문에 수입 원료 수급의 문제도 있다는 고충을 토로했다. 대한석유협회 관계자는 “바이오에탄올 국내 도입에 대해서는 실효성과 안정성에 대한 검증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기후위기시대]
단비뉴스 유튜쁘랜딩팀, 환경부 안재훈입니다.
부지런한 발로 뉴스를 만들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