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시대] 63 홍종호 ‘기후위기 부의 대전환’
“환경과 경제는 서로 상충하는 개념이 아닌가요?”
미국 환경‧자원경제학회(AERE) 회장을 지낸 톰 티텐버그 콜비대 경제학과 명예교수가 비행기 옆자리에서 직업을 묻는 승객에게 ‘환경경제학자’라고 답하자 들었던 말이라고 한다. <기후위기 부의 대전환>을 쓴 홍종호(60)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도 “환경‧자원 경제 분야를 공부하기 위해 대학원에 갈 생각이라고 하면 사람들이 만류하곤 했다”고 회상했다. ‘지구온난화’라는 용어조차 널리 쓰이지 않던 시절이었다. 홍 교수는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미시간주립대와 코넬대에서 환경경제학과 재정학을 공부했다. 1994년 박사학위를 받고 한국으로 돌아와 서울대 환경대학원장, 아시아환경‧자원경제학회 회장, 환경운동연합 공동대표 등으로 활동했다.
‘향후 10년의 최대 위협 10가지’ 중 넷이 기후 관련
그러나 세상이 바뀌었다. 글로벌 대기업들은 사업의 전 과정에서 재생에너지로 만든 전기만 쓰겠다는 '알이백'(RE100)을 선언하고, 환경·사회·지배구조를 중시하는 '이에스지'(ESG) 경영을 강조하고 있다. 지난 1월 세계경제포럼(WEF)이 발간한 <글로벌 위험 보고서>는 향후 10년 동안 전 지구적으로 가장 심각한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있는 위험 10개 중 1~4순위를 모두 기후‧환경 관련 위험으로 꼽았다. 그중 1위는 정부와 기업, 개인 등 모든 경제주체가 효과적인 기후변화 조처를 집행, 투자, 실천하지 못하는 ‘기후변화 완화 실패’였다.
저자는 “기후위기 문제의 본질을 보기 위해서는 경제학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탄소기반 경제로 인해 기후위기가 발생했고, 기후위기 대응 정책을 세우려면 효율적 자원배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저자는 경제학자들이 도덕적 관점이 아니라 세속적 관점에서 기후위기 문제에 접근한다고 설명한다. 인간을 자연의 일부로 보기 때문에 사람과 자연에 값을 매기는 걸 불의하다고 보는 생태주의와 달리, 경제학자들은 생태계의 가치를 파악하고 시장가격 기능을 활용해 기후위기를 해결하려 한다는 것이다. 즉 ‘탄소의 사회적 비용’(social cost of carbon)을 정확하게 측정해서, 적은 비용으로 최선의 결과를 가져오는 해법을 모색한다는 설명이다.
경제순환 모델로는 설명할 수 없는 현실
책에 따르면 석탄과 석유, 천연가스 등 화석연료는 인류에게 급격한 경제성장을 가져다줬다. 경제성장은 기술발전과 자본축적으로 이어졌고, 이는 또 다른 경제성장을 가능하게 했다. 그러나 부작용이 수반됐다. 지구의 온도를 높이는 온실가스인 이산화탄소가 지속적으로 배출됐다. 폭염이나 홍수 등 재난이 늘었다. 인명피해와 사회경제적 피해도 이어졌다. 기후변화는 ‘대형 재난이 일상화한 시대’를 만들었다. 과거엔 감당할 수준이었던 재난이 갈수록 예측하기 어려운 거대한 규모로, 더욱 빈번하게 닥치고 있다.
지금까지 경제를 설명하는 기본 모델은 ‘경제순환 모형’(Circular Flow Model)이었다고 저자는 설명한다. 경제순환 모형은 개인과 기업을 경제주체로 설정하고, 생산물과 생산요소가 거래되는 두 개의 시장을 상정한다. 개인이 생산요소 시장에서 노동력을 팔아 소득을 얻고, 생산물 시장에서 재화와 서비스를 구매하는 식이다. 반대로 기업은 물건을 생산물 시장에 팔고, 생산을 위해 필요한 노동력과 자본을 생산요소 시장에서 구입한다.
저자는 “경제순환 모델에는 자연이나 생태계가 들어설 자리가 없었다”고 지적한다. 현실에서는 산림과 광물, 동물 등 자연이 제공해준 것들을 인간이 채굴, 가공, 사육하는 방식으로 경제활동이 이루어짐에도 이를 설명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물리학자 로버트 에리스 교수와 경제학자 앨런 니스 박사는 이른 보완하기 위해 ‘물질균형 모델’(Materials Balance Model)을 만들었다. 생산자와 소비자로 이루어진 기존 모형에 ‘자연환경’이라는 제3의 주체를 포함한 것이다. 자연환경의 가장 큰 특징은 경제영역에 자원을 공급하는 만큼 폐기물을 발생시킨다는 점이다. 대표적인 폐기물이 이산화탄소다. 결국 경제활동에 사용하는 에너지 총량을 줄여야 기후위기도 막을 수 있다는 결론이 나온다.
‘배출권 거래제’ 등 시장원리 살린 해법 지지
저자는 탄소세, 배출권 거래제, 탄소국경조정 등 다양한 제도 가운데 배출권 거래제를 가장 지지한다. ‘속세의 학문’인 경제학의 면모가 가장 잘 발현되기 때문이라고 한다. 환경오염을 유발한 주체에게 책임을 지우는 ‘피구세’ 등과 달리 배출권 거래제는 오염 당사자에게 ‘오염행위를 허용하는 법적 권리를 제공하는 것’에서 출발한다. 환경을 오염시킬 수 있는 허가권을 먼저 부여하는 것이다.
저자는 환경오염 자체를 악이라고 생각하면 불편할 수 있지만 배출권 거래제의 묘미는 ‘기존에 존재하지 않던 시장의 인위적 창출’에 있다고 말한다. 새로운 시장을 만들어서 배출권이라는 상품을 ‘거래’할 수 있도록 하자, 경제주체들은 가장 적은 비용으로 오염물질을 줄일 수 있는 합리적이고 유연한 방안을 강구하게 된다. 오염물질 배출량을 줄이는 동력을 도덕적 이유가 아니라 ‘생존과 발전을 위해 몸부림치는’ 경제주체의 세속적인 특성에서 찾는 것이다.
물론 배출권 거래제를 효과적으로 시행하는 데는 현실적인 어려움이 있다. 정부가 탄소 배출에 관한 모든 정보를 정확히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실제로 배출권 거래제가 시행된 2015년 이후 6년 동안 국내 산업부문 온실가스 배출량은 오히려 늘어났다는 보도도 있다. 그럼에도 저자는 “배출권 거래제가 탄소 배출량 감축 목표를 분명히 설정한다는 점에서 탄소 감축을 위한 효과적 방법”이라고 강조한다.
회색산업·회색일자리를 녹색산업·녹색일자리로
저자는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 행동경제학 창시자 대니얼 카너먼이 “(기후 문제에 관한) 심리적 각성이 높아져도 생활 수준의 하락을 꺼리는 마음을 극복하지는 못할 것”이라고 한 말을 인용했다. 기꺼이 비용을 치르려는 의지가 없는 한 기후위기에 대응하기가 어렵다는 의미다. 저자는 한국이 압축적 근대화를 이루는 과정에서 안전과 복지, 환경을 뒷순위로 미룬 결과, 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이 2021년 기준 8.6%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가장 낮은 수준이라고 지적했다. 덴마크나 오스트리아는 재생에너지 비중이 80%에 이르고, OECD 국가 평균도 30%를 넘는다.
저자는 재생에너지에 관한 오해도 조목조목 짚었다. ‘한국은 국토가 좁고 산지가 많아서 재생에너지에 적합하지 않다’ ‘한국 날씨는 재생에너지 발전에 불리하다’ ‘재생에너지는 비싸다’ 등의 인식이 모두 잘못됐다는 것이다.
저자에 따르면 2050년 탄소중립을 달성하기 위해 필요한 태양광 설치 규모는 국토 면적의 3.5~4%만 있으면 충분하다. 태양광의 효율이 높아지고 있고 건물과 공장, 주택 옥상 등 유휴 부지를 활용할 수 있다. 2050년까지 재생에너지 100% 달성을 목표로 하는 독일은 북위 48~55도에 있는데. 한국은 북위 33~38도로 독일보다 연간 일사량이 더 많다. IT 강국인 한국의 특성을 활용하면 전력 수급 정보를 실시간으로 공유하는 설비를 개발해 전력을 효율적으로 활용할 수 있다. 저자는 특히 한국자원경제학회의 2021년 보고서를 근거로 해외에서는 이미 킬로와트시(kWh) 당 태양광(53원), 육상풍력(55원)의 발전단가가 원자력(88원), 석탄(95원)보다 싸다고 지적했다.
책의 마지막 장 제목은 ‘기후위기를 새로운 경제성장의 기회로’다. 저자는 기후위기를 일자리 창출의 기회로 삼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국제노동기구(ILO)와 국제재생에너지기구(IRENA)가 함께 낸 일자리 보고서를 보면 2020년 현재 태양광, 바이오, 풍력, 수력 등 전 세계 재생에너지 분야 일자리는 1200만 개에 달한다. 설비 규모가 커서 대기업이 주도했던 화석연료 기반 발전 산업과 달리 분산형인 재생에너지 산업은 중소기업이 진입할 수 있는 틈도 넓다. 저자는 “회색산업과 회색일자리를 녹색산업과 녹색일자리로 바꿔야 한다”고 강조했다.
[기후위기시대]
단비뉴스 청년부, 시사현안팀 목은수입니다.
폐허가 된다 해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