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시대] 89. 재생에너지 시대 열어가는 기후금융

“여기 이 상품의 수익률은 11%인데, 1년 단위뿐 아니라 3개월, 6개월, 10개월 이렇게 단기 수익 상품도 있어요....원금 상환도 조금 빨리 이루어지는 데다 수익률이 11%면 굉장히 높은 거거든요.”

지난달 11일 서울 성동구 성수동 헤이그라운드 서울숲점에서 만난 이우연(46) 프롬더바디 대표 겸 운동코치가 노트북 컴퓨터 화면을 보여주며 이렇게 말했다. 이 대표가 말한 금융상품은 온라인투자연계금융회사인 루트에너지가 운용하는 재생에너지 프로젝트 파이낸스(PF) 대출이다. 불특정 다수의 자금을 모아 태양광·풍력 등 재생에너지 발전시설을 짓는 사업 주체에게 빌려준 뒤, 기간에 따라 수익금을 분배하는 상품이다. 이 대표는 일반 금융상품에 비해 수익률이 훨씬 높다는 점, 소액 투자도 수익률을 차별하지 않는다는 점, 재생에너지 확대에 기여할 수 있다는 점을 이 상품의 장점으로 꼽았다.

태양광·풍력 확대 기여하고, 높은 수익도 챙기고

기후금융상품에 투자하고 있는 이우연 프롬더바디 대표가 온라인투자연계금융회사인 루트에너지를 통해 상환받은 투자상품의 수익률 등에 관해 설명하고 있다. 박정은 기자
기후금융상품에 투자하고 있는 이우연 프롬더바디 대표가 온라인투자연계금융회사인 루트에너지를 통해 상환받은 투자상품의 수익률 등에 관해 설명하고 있다. 박정은 기자

루트에너지는 수평적거래(P2P:Peer to Peer) 방식으로 다수 투자자의 자금을 모아 재생에너지 발전 사업자에게 대출하는 ‘크라우드 펀딩 플랫폼’이다. 현재 온라인투자연계금융업 중앙기록관리기관인 P2P센터에 등록된 50개 업체 가운데 재생에너지 전문 투자플랫폼은 루트에너지와 솔라브리지 두 곳이다.

이 대표는 2018년 8월 양천햇빛공유발전소에 500만 원을 투자해 1년 뒤 약 40만 원의 수익금을 받은 것을 시작으로 루트에너지를 통한 투자를 이어오고 있다고 설명했다. 첫 투자의 수익률 7.75%는 당시 시중은행의 평균 정기예금 금리 1.84%의 4배가량이다. 양천햇빛공유발전소는 연간 12만 2448킬로와트시(kWh)의 전력을 생산한다. 이는 스탠드형 에어컨 102대를 1년 동안 돌릴 수 있는 발전량이며, 연간 온실가스 55톤(t)을 감축하는 효과가 있다고 발전소 측은 밝히고 있다. 이 대표가 루트에너지를 통해 투자한 상품의 최고 수익률은 연 11.5%로, 충남 서천군 서면의 다원솔라발전소 2호에서 나왔다.

이 대표는 2003년부터 2015년까지 한국내쇼날인스트루먼트의 기술영업팀장으로 해외 재생에너지 기술을 조사하면서 국내 재생에너지 시장의 잠재력을 알게 됐다고 말했다. 과거 주식투자로 손해를 본 경험이 있던 그는 재생에너지 발전비용이 석탄발전소 보다 낮아지는 추세이기 때문에, 투자의 안정성이 높다는 것도 매력적이었다고 밝혔다.

이 대표는 전형적인 기후금융 개인투자자라고 할 수 있다. 유엔환경계획(UNEP)에 따르면 기후금융은 ‘기후변화 완화(온실가스 감축)와 기후변화 적응에 주력하는 금융’을 말한다. 또 유엔기후변화협약(UNFCCC) 금융상설위원회(SCF)는 ‘온실가스 배출을 줄이고, 온실가스 흡수를 늘리며, 기후변화의 부정적인 영향으로 인한 사회와 생태계의 취약성은 줄이면서 그 회복탄력성을 유지하고 증대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금융’이라고 정의한다. UNFCCC 금융상설위원회에 따르면 세계 기후금융은 2013년 3390억 달러(약 452조 원)에서 2020년 6400억 달러(약 854조 원)로 연평균 9.5%씩 성장했다.

온라인투자중계 통해 개인도 기후금융 참여 활발

국내 최초의 재생에너지 전문 투자플랫폼인 루트에너지는 아직 작은 규모지만 기후금융에 개인이 참여할 수 있는 통로를 넓히고 있다. 회사가 설립된 2014년부터 지난달까지 10여 년 동안 315건의 재생에너지 투자 프로젝트를 주도했으며 누적투자자는 2000명가량이다. 지난달 29일 기준 누적 대출액 약 530억 원을 달성한 이 회사의 투자상품 평균 수익률은 11% 수준이다. 한국은행 누리집에 따르면 시중은행 연평균 예·적금 금리는 2022년 기준 2.72%~2.73%다. 높은 수익률 덕에 루트에너지의 재투자율은 55%에 이른다. 투자자 2명 중 1명 이상이 다시 투자한다는 얘기다.

이 회사의 대표적인 프로젝트는 2022년 강원도 태백시 원동에 건설한 태백 가덕산 풍력발전소다. 이 발전소에서는 태백시 전체 가구의 84%가 쓸 수 있는 연간 4만 7523메가와트시(MWh)의 전기를 생산한다. 휘발유 자동차 4만 6384대가 연간 배출하는 이산화탄소를 감축하는 효과가 있다는 것이 회사 측 설명이다.

루트에너지가 자금 중개를 주도한 서울 양천구의 양천햇빛공유발전소, 강원도 태색시 태백 가덕산 2단계 풍력발전소, 충북 충주시 솔라발전소의 모습. 루트에너지 제공
루트에너지가 자금 중개를 주도한 서울 양천구의 양천햇빛공유발전소, 강원도 태백시 태백 가덕산 2단계 풍력발전소, 충북 충주시 솔라발전소의 모습. 루트에너지 제공

윤태환(40) 대표는 2011년부터 2013년까지 덴마크공과대학(DTU)에서 풍력에너지공학 석사과정 공부를 한 뒤 이듬해 루트에너지를 창업했다. 그는 덴마크의 재생에너지 확대 경험을 바탕으로 ‘지역 수용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환경적 정의, 절차적 정의, 재무적 정의가 지켜져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한다. 윤 대표는 “재생에너지 발전소가 들어와서 지역의 환경을 해치는 모순이 있어서는 안 되며(환경적 정의), 주민에게 정보가 투명하게 공개되어야 하고(절차적 정의), 주민 모두에게 사업 참여 기회가 형평성 있게 배분되어야 한다(재무적 정의)”고 말했다. 덴마크는 해상풍력발전소를 건설·운영하는 과정에서 채권·주식을 통해 지역 어민에게 이익을 할당하거나, 주민의 재생에너지 투자 수익에 관해 세액공제 등을 제공한다고 윤 대표는 설명했다.

윤태환 루트에너지 대표가 서울 성동구 성수동 헤이그라운드 내 루트에너지 사무실에서 재생에너지 투자 원칙 등에 관해 설명하고 있다. 박정은 기자
윤태환 루트에너지 대표가 서울 성동구 성수동 헤이그라운드 내 루트에너지 사무실에서 재생에너지 투자 원칙 등에 관해 설명하고 있다. 박정은 기자

기존 금융사도 기후펀드 내놓지만, 화석연료 투자 여전

국내 기존 금융회사들도 다양한 기후관련 투자 상품을 내놓고 있다. 한화자산운용이 2020년 출시한 그린히어로펀드가 대표적이다. 이 펀드는 일반인의 자금을 모아 재생에너지, 전기차, 수소 등 성장성이 높은 녹색 기업에 투자한다. 일반 펀드에 비해 수익률이 높은 편이다. 금융투자협회 전자 공시 서비스를 통해 ‘그린’ ‘녹색’ ‘ESG’ ‘지속가능’을 열쇳말로 한 펀드 상품을 검색한 결과, 2020년 이후 현재까지 자산운용사 26곳에서 총 66종류의 펀드 상품을 운용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화자산운용이 2020년 출시한 그린히어로펀드의 상품 설명. 출처 한화자산운용 누리집
한화자산운용이 2020년 출시한 그린히어로펀드의 상품 설명. 출처 한화자산운용 누리집

그러나 국내 금융회사들은 여전히 화석연료 기업에도 많은 투자를 하고 있어 기후금융의 취지에 역행한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국책금융기관인 한국수출입은행의 경우 2016년부터 2021년까지 재생에너지와 석탄 자산에 관한 누적 투자액이 각각 30조 2천억 원과 31조 1천억 원으로, 석탄 투자액이 더 컸다. 석탄을 포함한 화석연료 전체로 확대하면 차이가 더 클 것으로 추정된다.

이는 세계적으로 재생에너지 관련 투자가 급증하고 석탄 투자는 줄고 있는 흐름과 대조된다. 국제에너지기구(IEA)에 따르면 2016년부터 2021년까지 재생에너지와 석탄 자산 투자 누적 합계는 각각 2조 20억 달러와 7750억 달러로, 약 2.6배 차이가 났다. 특히 미국과 유럽의 주요 금융회사들은 석탄 등 좌초자산(경제환경 변화로 가치가 하락하거나 거래되지 않는 자산)에서 투자를 철회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독일 금융사인 알리안츠는 ‘석탄기업’의 기준을 단계적으로 강화해, 2040년까지는 모든 투자 포트폴리오에서 석탄 관련 투자를 종결하겠다고 발표했다.

세계적으로는 재생에너지 투자가 급증하고 석탄 투자가 줄고 있지만, 국내에서는 여전히 재생에너지와 석탄 투자가 비슷한 규모를 유지하고 있다. 출처 한국사회책임투자포럼
세계적으로는 재생에너지 투자가 급증하고 석탄 투자가 줄고 있지만, 국내에서는 여전히 재생에너지와 석탄 투자가 비슷한 규모를 유지하고 있다. 출처 한국사회책임투자포럼

윤세종(40) 플랜 1.5 변호사는 <단비뉴스> 전화 인터뷰에서 “기후변화에 대응하기 위한 투자 규모를 확대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기후위기를 악화시키는 산업의 투자 규모를 감축하려는 노력도 중요하다”며 “한국은 후자에 대한 논의가 매우 초기 단계에 머물러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외국, 특히 유럽을 중심으로 한 금융기관들이 이제 석탄뿐 아니라 석유나 천연가스에 대한 투자도 중단하거나 제한하는 정책들을 많이 도입했는데 그에 비하면 국내는 해당 투자에 대한 통제가 현저히 부족하다"고 말했다.

양춘승(67) 한국사회책임투자포럼(KoSIF) 상임이사는 <단비뉴스> 전화 인터뷰에서 “금융기관이 녹색금융 상품을 지금보다 많이 개발해서 출시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금융배출량을 산정해 관련 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금융배출량이란 간접적으로 발생하는 온실가스 배출량으로, 금융기관이 온실가스를 배출하는 기업에 대출 혹은 투자를 해서 유발된다. <기후금융 입문>의 공동 저자이자 에너지정책학 박사인 그는 “금융기관이 제공하는 정보를 통해 투자자들이 기업의 온실가스 감축 노력을 평가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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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온실가스 주범 석탄발전소 ‘더 짓는 중’

② '기후우울' 떨치고 '어벤져스'로 나서다

③ 탄소세 부과로 ‘신호’ 줘야 기업 바뀐다

④ 노동·지역경제 배려 ‘정의로운 전환’을

⑤ "석탄발전소 짓는 한국, 리더 아닌 꼰대"

⑥ ‘그린워싱 대신 행동을’ 거센 녹색 함성

⑦ "SMR 등 원전은 기후위기 대안 못 돼"

⑧ “상용화 먼 핵융합, 탄소중립 도움 안 돼”

⑨ “기후위기 극복 의무를 헌법에 넣자”

⑩ 소형모듈원전(SMR) 상용화 가망 없다

⑪ “파이로프로세싱은 과학 아닌 소설”

⑫ 기후재난으로 원전 위험성 더 커진다

⑬ ‘기후 일자리’ ‘탄소국민배당’ 추진을

⑭ 고기 즐기는 너, 기후변화 공범 아니니

⑮ 청소년은 ‘미래’ 아닌 기후재난 ‘당사자’

⑯ 기후 미술관, ‘제로 웨이스트’로 가다

⑰ 쓰레기 줍다 보니 삶이 바뀌더라

⑱ “한국 공적금융이 에너지 전환 걸림돌”

⑲ ‘ESG 경영’ 뒤로 ‘기후행동 봉쇄 소송’

⑳ ‘국민이 처한 위험’ 알리려 당근 쏟았다

㉑ 나는 오늘 옷을 샀다, 기후위기를 샀다

㉒ 시민이 일어나 정부·기업을 움직이자

㉓ 탄소 줄이는 갯벌 메워 공항을 짓다니

㉔ 공장식 축산 줄이고 채식 늘려야 생존

㉕ 경작과 에너지 생산을 ‘하이브리드’로

㉖ 이재명 ‘재생에너지’, 윤석열 ‘원전’ 강조

㉗ 이재명·윤석열도 ‘기후대선’ 동참해야

㉘ ‘할머니가 지킬게, 초록지구’ 119 출동

㉙ 기후변화만큼 핵발전도 위험하다

㉚ ‘주차장 태양광’ 시급한데 조례로 막아

㉛ 채식 급식 확대, 환경교육과 병행 필요

㉜ 지구는 우리가 지킨다, 연구의 힘으로

㉝ 낡은 단독주택이 제로에너지 건물로 깜짝 변신

㉞ 개발에 밀린 무허가 정착민의 ‘생존 연료’

㉟ 난청·진폐 앓아도 떠날 곳 없는 노동자들

㊱ 실종된 ‘기후정치’를 찾습니다

㊲ ‘막장’에서 땀 흘린 이들의 희망은 어디에

㊳ 물 부족은 아프리카에서 끝나지 않는다

㊴ 돌고 돌아 사람 몸속에 쌓이는 플라스틱

㊵ 바이오연료, 전기차로 가는 징검다리 될까

㊶ 왕우렁이가 돕는 쌀농사, 도시농부도 보람

㊷ 취약층 ‘쪄 죽는 사회’ 막으려면

㊸ 속 썩은 배추에 농부 마음도 썩어들어가고

㊹ 탄소흡수 ‘바다숲’ 228곳 조성 후 관리 미흡

㊺ 중·고교 5600여 곳에 환경담당 교사는 41명

㊻ ‘탈석탄법’으로 신규발전소 건설 중단 길 터야

㊼ 강력한 탈탄소 정책과 기후정의 함께 가야

㊽ ‘기후재난, 이대로 살 수 없다’ 역대 최대 인파

㊾ BTS RM의 그 가방, 폐시트와 빗물로 제작a

㊿ 채취량 반으로 줄고 낙석에 생명의 위협도

51. ‘그린워싱’ 고발하다 법정에 선 활동가들

52. 보틀클럽과 리필스테이션이 있는 마을 실험실

53. ‘블루카본’ 갯벌을 신공항으로 덮으려는 정치

54. 애타는 기후 시민, 정부를 법정에 세웠다

55. 기후행동 ‘목적의 정당성’ 인정한 판결에 환호

56. ‘단 한 명이라도…’ 매주 간절하게 올리는 기도

57. 과학자들, '엉터리 근거로 오염수 투기 강행' 비판

58. 농지에서는 농사를, 유휴부지에는 태양광을

59. 호수 위에 뜬 그 꽃잎이 태양광발전소라니

60. 우리 땅 농산물과 천연재료를 고집하는 가게

61. 과학을 부인한 그들, 세계를 위험에 빠트리다

62. 아이들이 안전하게 살아갈 ‘봄’을 만드는 마음

63. 환경을 살리는 선택이 일자리도 만드는 시대

64. 소비 중독 벗고 ‘순환 경제’로 가야 살아남는다  

65. 기업 ‘친환경 경영’ 속도 높일 단일법 추진

66. 오염수 방류 임박, 후쿠시마 참사는 ‘진행 중’

67. 쓰레기 안 만드는 생산·유통·소비에 도전하다

68. ‘소·돼지·닭의 복지’도 인간에게 중요하다

69. 늘어나는 대형 산불 '불막이 숲' 등 대책 시급

70. "온실가스 감축 부담을 미래세대에 전가 말라"

71. 한국 온난화 속도는 지구 평균의 2~3배

72. ‘자본 아닌 인간 편에서 탄소중립을’ 거센 함성

73. 커피 찌꺼기도 ‘기후테크’로 저탄소 자원 변신

74. "원전 진흥 기구 IAEA, 결론 정해놓고 조사"

75. 소비자는 ‘불편’ 점주는 ‘고객 이탈’ 불만

76. 공장식 축산 줄이고 동물권도 지키는 대안 

77. '생키호테'와 '계르반테스'는 무엇을 보았나

78. 폐스티로폼으로 지구의 위기를 말하다

79. '녹아내리는 빙하' 춤으로 알리는 사람들

80. ‘그린수소’ ‘멀티콥터 드론’ 아직은 기술개발 중

81. 수산물 타격에 주민 떠나 ‘유령마을’ 될까 걱정

82. 세계녹색당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 반대’ 결의

83. 지구 지키는 농사꾼, 친환경 소비자를 만나다

84. “핵 오염수 해양 투기 말고 육상 저장” 한목소리

85. '입을 옷이 없다'는 그대여

86. ‘보기도 좋은 태양광 건물’ 한국은 아직 걸음마

87. ‘탄소중립’ 질문하는 소비자, 도전하는 농업

88. ‘‘이런 대안 있어요’ 알리려 백 통 넘는 편지를 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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