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시대] 95. ‘2030 미리 가 본 한국사회’ 토론회
“앞으로 제품을 만드는 전 과정에서 배출된 탄소발자국을 기준으로 보조금을 받거나 규제를 받게 될 겁니다. 재생가능에너지를 얼마나 이용하는가, 그리고 전기를 만들 때 탄소 배출량을 얼마나 낮추는가가 산업의 경쟁력과 연결된다는 겁니다.”
지난 17일 오후 7시 서울 종로구 원서동 노무현시민센터 다목적홀에서 열린 ‘2030 미리 가 본 한국사회’ 토론회에서 이유진 녹색전환연구소장이 이렇게 말했다. 이 소장은 ‘탈탄소’가 새로운 무역규제 기준이 되는 흐름에 맞춰 한국의 산업구조와 에너지 계획을 개편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날 토론회는 노무현재단, 노회찬재단 등 5개 단체가 공동 주최한 ‘2023 민주주의랩 컨퍼런스’의 하나로 열렸다. 현장 청중 30여 명과 유튜브 청중 200여 명이 함께했다.
에너지전환 속도 높이고 녹색일자리 만들어야
이 소장은 지난 9월 프랑스 정부가 발표한 전기차 보조금 개편안을 예로 들었다. 내년 1월부터 시행되는 이 제도는 수입 전기차의 생산 과정에서 배출된 탄소가 일정 수준을 넘을 때, 해당 전기차를 보조금 대상에서 제외한다는 내용이다. 국가별 탄소배출계수를 보면 철강과 가공 조립 에너지 부문에서 독일이 각각 1.4, 0.83, 미국은 1.1, 1.05인데 반해 한국은 1.7, 1.43으로 높아 불이익을 받을 가능성이 있다. 지난달부터 발효된 유럽연합(EU)의 탄소국경조정제도(CBAM)도 화석연료 사용 비중이 높은 한국 기업에 2026년부터 사실상의 관세 부담을 높일 요소다.
이 소장은 EU가 2030년의 신재생에너지 발전량 목표를 원전 1100기에 해당하는 1100기가와트(GW)로 정했고, 중국은 2023년 한해 태양광 발전량이 155GW에 이를 정도로 재생에너지 확장 속도가 빠르다고 소개했다. 반면 한국의 지난해 태양광 발전량은 3GW였고, 올해는 2.5GW로 더 줄었다. 이 소장은 특히 한국전력 산하 6개 발전 공기업이 재정 건전화를 이유로 올해부터 2026년까지 약 2조 원에 달하는 신재생에너지 사업 투자비를 감축할 계획이라며, 거꾸로 가는 한국의 재생에너지 흐름을 걱정했다.
이 소장은 태양광·풍력 등을 중심으로 에너지전환을 이루는 과정, 그린리모델링 등 건물의 에너지 효율을 높이는 과정, 공공버스·자전거 등 대중교통수단을 확충하는 과정 등에서 기후위기 완화와 함께 ‘녹색일자리’가 창출되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녹색전환연구소가 각 지방자치단체의 신재생에너지 보급 목표 등을 분석한 결과, 공약이 제대로 지켜진다면 상당히 많은 일자리가 생길 것으로 예측됐다는 것이다. 이 소장은 2030년도에 광주 1만 5000개, 충남 7만 6000개, 전남 11만 4000개, 경기도 11만 2000개의 녹색일자리 창출이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스펀지 도시’ 등 기후위기 적응 대안도 필요
안병철 원광대 산림조경학과 교수는 ‘기후위기 적응의 쟁점과 방향’을 주제로 한 발표에서 가뭄, 폭염, 산불, 홍수 등 불가피해진 재난에 대비하는 노력도 중요함을 강조했다. 그는 대표적인 기후위기 적응 정책으로 영국의 홍수관리 대책인 ‘템스강 하구 2100 계획’과 독일·네덜란드 등의 ‘스펀지 도시 계획’을 소개했다. 템스강 하구 계획은 홍수를 예방하면서 지역사회에 문화적·상업적 혜택을 제공하고, 동시에 생물다양성을 증진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또 독일 베를린 등에서 볼 수 있는 스펀지 도시는 곳곳에 설치한 인공 연못, 건물 지붕과 벽면에 심은 식물 등이 스펀지처럼 빗물을 흡수·저장함으로써 홍수 등 재난을 막고 도시의 열섬 효과도 완화한다는 설명이다.
안 교수는 기후위기 적응뿐 아니라 탄소 감축에도 기여하는 사례로 경남 함양군에 있는 함양 상림을 소개했다. 낙동강의 지류인 위천 옆에 있는 이 숲은 통일 신라 말기에 함양 군수로 부임한 최치원이 조성했는데, 현재 100종이 넘는 식물이 빽빽이 자라면서 하천 범람을 막고 생물다양성을 지키는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그는 탄소 감축과 생물다양성 유지, 홍수 등 재난 예방에도 기여하는 숲을 전국 곳곳에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서복경 더가능연구소 대표는 ‘인구위기, 지역위기, 정치위기 시대의 대안 모색’을 주제로 한 발표에서 복합적인 위기에 대응할 미래세대 정치인을 당장 키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1대 국회(1948~1950)의 의원 평균연령 47.1세에서 21대(2020~2024)는 54.9세로 높아졌다며, 기후위기와 인구위기 등을 중요한 문제로 인식하는 젊은 세대의 진출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또 “현역의원들이 지역구 행사를 돌고, 지역구 예산을 챙기는 수준에 머물러 있다”며 “정치인이 다루는 의제의 다양성과 정치인의 전문성을 당장 높여야 한다”고 지적했다.
‘독일 재생에너지 탓 경제 어렵다’는 사실 호도
이어 제정임 세명대 저널리즘대학원장이 진행한 종합토론에서 염광희 독일 아고라에네르기벤데 선임연구원은 국내 일부 언론의 독일 재생에너지 관련 보도를 먼저 반박했다. 그는 “독일이 재생에너지 확대로 전기요금이 급등했고 국가 경제도 위기에 처했다는 보도가 있었는데, 전기요금 급등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천연가스 가격이 오른 탓”이라고 말했다. 그는 “독일 등 유럽 국가들은 이번 전쟁으로 에너지를 수입에 의존했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를 뼈저리게 경험했다”며 “전쟁이 끝나면 (자립이 가능한 재생에너지 중심의) 에너지전환에 더 집중하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는 또 “독일 등 에너지전환 선진국은 정치적 리더십을 바탕으로 중장기적 (탄소중립) 목표를 세우고 당근과 채찍, 즉 인센티브와 규제를 동시에 제시하고 있다”며 “탄소중립을 요구하는 유권자들의 압박이 그 배경에 있다”고 덧붙였다.
허승규 안동청년공감네트워크 대표는 “지방소멸을 막겠다는 정책이 거의 지구소멸 담론”이라며 “지방 정부 공약이 전부 개발·토건이고, 기후위기 대응과 거꾸로 가고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전국에서 수요도 불투명한 공항 건설 등을 추진하고, 확장형 개발 방식으로 아파트를 지어 지역 도심의 공동화를 낳고 있는 게 현실이다. 그는 또 지방 정치가 중앙에 예속돼 지방을 위해 필요한 정책이 추진되지 못한다고 지적했다. 2022년 6월 지방선거를 앞두고 ‘대선 기여도로 지방선거 공천을 준다’는 방침 때문에 두 거대 정당의 시장·군수 후보들이 자기 공약을 말하지 못했을 정도라고 그는 설명했다. 허 대표는 “지방에 필요한 것은 시민에게 효능감을 주는 정책”이라며 청소년·노인 등 교통 약자의 이동권을 위한 ‘버스 타기 좋은 안동’ 프로젝트를 소개했다.
환경 중시하는 정치인·전문가 네트워크 만들어야
김다은 시사인 기자는 반복적인 재난에도 대응과 피해보상 시스템이 제자리인 현실을 비판했다. 또 공무원, 기업 등이 마땅히 해야 할 대비를 소홀히 한 뒤 ‘예측할 수 없는 재난이었다’며 기후위기를 변명거리로 삼는 문제도 경계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 기자는 최근의 일회용품 규제 방침 철회와 관련해 “친환경 빨대를 만들기 위해 생분해 기술 등을 개발한 기업은 '더 이상 정책을 믿을 수 없다'고 한다”며 환경부를 비판했다. 그는 “지금과 같은 방식으로 정책이 계속해서 왔다 갔다 하면 정치 리더십으로 기후위기에 대응하는 것은 힘들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준경 한국강살리기네트워크 공동대표는 “유럽에서 시행하고 있는 그린딜 기본법이나 2030 EU 생물다양성 전략 등을 한국에도 도입한다면 기후재난을 극복하고 담대한 전환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린딜 계획은 EU 기업의 친환경 사업에 보조금과 세액공제 혜택을 강화하는 내용 등을 담았고, 생물다양성 전략은 2030년까지 유럽의 육지 및 해상의 최소 30%를 생물다양성 보호지역으로 전환한다는 등의 구체적인 로드맵을 제시했다.
서복경 더가능연구소 대표는 ‘기후정치연대의 조건’에 관한 질문에 “시민들이 위기감을 느끼면서 대안을 찾을 때 준비된 세력이 있는 것이 중요하다”고 답했다. 그는 “유럽의 경우도 갑자기 홍수가 나서 100명씩 죽고 이러면서 녹색정치가 떴는데, 녹색당이 준비돼 있었기 때문에 뜰 수 있었던 것”이라고 말했다. 2021년 7월 독일 서부에 대홍수가 발생해 180여 명이 숨진 후, 9월 총선에서 녹색당은 기존 의석보다 51석 많은 118석을 차지했다. 서 대표는 “한국은 응급 트랙으로 가야 하는 상황이라 일단 기후위기가 심각하다고 느끼는 시민들 사이에 연대를 구성해야 한다”며 “환경을 주요한 관심사로 가지고 있는 정치인들의 모임과 환경 분야에서 정책을 구체화할 수 있는 전문가 네트워크가 동시에 돌아가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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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비뉴스 환경부, 소셜전략팀 김지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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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비뉴스 환경부, 유튜쁘랜딩팀 조재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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