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시대] ㊿ 지구온난화 실감하는 약초꾼

지난달 29일 오전 11시 무렵 충북 단양군 대강면의 황정산 수리봉. 배낭을 메고 비탈길을 10분 정도 올라간 강성열(53) 씨가 더덕을 발견하고 캐내느라 잠시 멈췄다. 약초꾼이자 심마니(산삼 캐는 이)인 강 씨는 “산약초는 요즘 이렇게 낮은 곳에선 잘 나지 않는다”며 상황버섯 등을 찾기 위해 비탈을 더 올라갔다. 약초꾼들이 ‘발로 차 버섯’이라 부를 만큼 가치 없는 덕다리버섯밖에 찾지 못한 그는 “버섯이 많이 보일 시기인데 예전만큼 보이지 않는다”며 아쉬워했다. 강 씨는 1시간여 동안 더덕 몇 뿌리만 챙긴 채 산을 내려왔다.

산속에서 목격하는 기후변화

“도라지, 더덕, 하수오, 지치 같은 뿌리 식물과 버섯 채취량이 날이 갈수록 줄어요. 1년에 100킬로그램(kg) 이상 캐던 시절도 있었는데 지금은 50kg도 못 캡니다.”

자신이 운영하는 대강면의 가게 ‘약초꾼’에서 강 씨는 한숨을 쉬며 이렇게 말했다. 그는 20년 전 서울 생활을 청산하고 단양에 정착했다. 처음엔 취미 삼아 산에서 약초를 캐 가까운 이들에게 나눠 주었는데, 15년 전부터는 이를 생업으로 삼고 있다. 그런데 기후변화가 본격화하면서 갈수록 약초·산삼 채취량이 줄고 낙석 등 위험 요소는 늘어나 어려움이 크다고 한다.

​충북 단양군 대강면의 가게 ‘약초꾼’ 앞에서 변화하는 기후환경에 관해 이야기하는 강성열 씨. 박정은 기자
​충북 단양군 대강면의 가게 ‘약초꾼’ 앞에서 변화하는 기후환경에 관해 이야기하는 강성열 씨. 박정은 기자

“악산(바위산)을 오르다 보면 큰 돌이 굴러오는 게 보여요. 비가 한 번에 많은 양이 내려버리니 (침하가 일어나) 돌이 예전과 다르게 안전하게 박혀 있다고 느껴지지가 않아요. 그래서 로프나 곡괭이 같은 장비도 더 많이 챙겨가죠. 곡괭이로 두들겨 보고 안전한 걸 확인한 후 오르는 거죠.”

그는 단양의 도락산과 소백산을 자주 오르는데, 최근 들어 굴러떨어지는 돌에 생명의 위협을 느낄 때가 있다고 말했다. 낙석의 원인 중 하나는 집중호우로 인한 용식작용이다. 빗물이나 지하수에 의해 암석이 녹아 지표가 깎이는 것을 말한다. 용식작용은 석회암 지역에 많이 나타나는데, 강 씨가 자주 다니는 소백산 북서부 단양 지역이 석회암 지대다.

한반도에서 발생하는 집중호우의 빈도와 강도는 1990년 중반 이후 증가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국립기상과학원이 발간한 <한반도 기후변화 전망보고서 2020>에 따르면 1995년~2014년 대비 2021년~2040년의 5일 최대 강수량은 9.6 밀리미터(mm)~10.4mm 증가한다. 특히 여름에 강우량이 집중되는 경향이 나타나고 있다.

충북 제천시의 2011년에서 2020년 사이 강수량과 1973년에서 1980년 사이 강수량을 비교한 계절별 그래프. 봄, 겨울의 강수량은 줄어든 반면 여름의 강수량은 증가했다. 출처: 기후정보포털
충북 제천시의 2011년에서 2020년 사이 강수량과 1973년에서 1980년 사이 강수량을 비교한 계절별 그래프. 봄, 겨울의 강수량은 줄어든 반면 여름의 강수량은 증가했다. 출처 기후정보포털

자연 채취 어려워 농장 매입하고 스프링클러 설치

강 씨는 결국 산에서 채취하는 것만으로는 생계유지가 어려워 3년 전 대강면 산지에 약 3만 평의 땅을 매입해 농장을 만들었다. 산양삼, 더덕, 도라지, 산나물, 하수오 등을 키우는데, 봄·가을 가뭄으로 잘 자라지 않아 스프링클러를 설치했다.

강성열 씨가 충북 단양군 대강면 산지 농장에 스프링클러를 설치해 놓은 모습. 박정은 기자
강성열 씨가 충북 단양군 대강면 산지 농장에 스프링클러를 설치해 놓은 모습. 박정은 기자
강성열 씨가 충북 단양군 대강면 산지 농장에 스프링클러를 설치해 놓은 모습. 박정은 기자
강성열 씨가 충북 단양군 대강면 산지 농장에 스프링클러를 설치해 놓은 모습. 박정은 기자

전남대학교 가뭄특이기상연구센터에 따르면 과거 250년 대비 2000년대 이후 폭염의 발생 빈도는 급증했고, 토양 수분도 낮은 수치로 관측되고 있다. 지구표면은 역사상 가장 뜨겁고 건조한 상태다. 기상청 소식지 2020년 12월호에 따르면 기후변화에 따라 폭염으로 인한 급성 가뭄과 여름철 산불 발생이 잦아지고 있다.

충북 단양군에 거주하는 약초꾼 이경수(56) 씨도 “가을과 겨울에 버섯이 항상 나던 곳에서 이제는 버섯이 나지 않아 가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사람들이 많이 가져가서 그런 줄 알았는데, 다른 곳에 있던 버섯도 말라 있더라”며 “환경이 변해서 그런 것 같다”고 말했다.

충북 제천시에 사는 정진호(55) 씨도 20년 이상 강원도 인제군 상남면 방태산 등에서 산양삼을 캤지만 몇 년 전 그만두고 제조업에 종사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한창때 비료 한 포대를 채울 정도로(50~60뿌리) 풍족하게 캤지만, 날이 갈수록 줄어 임산물 채취를 포기했다고 말했다.

경북 영주시 산림약용자원연구소에서 산양삼재배기술 개발연구를 담당하는 엄유리 연구사는 대기 중 이산화탄소 증가로 기온이 올라가면 (약초의) 생육이 저하되고 약용성분 함량이 줄어든다고 말했다.

600년 된 나무들 이상 고온으로 말라 죽어

약초꾼들은 산속 나무의 변화도 목격하고 있다. 단양군의 심마니 김영대(51) 씨는 “소백산 도솔봉을 주로 오르는데 해발 1000미터(m)고지에서 1500고지에 삼을 캐러 가면 보이던 주목이나 마가목이 이제는 보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600년 된 나무들이 고사한 것을 보고 기후위기를 피부로 느꼈다”고 말했다.

국립산림과학원이 공개한 한라산 구상나무림 2009년도 모습. 
국립산림과학원이 공개한 한라산 구상나무림 2009년도 모습. 
국립산림과학원이 공개한 한라산 구상나무림 2016년도 모습.
국립산림과학원이 공개한 한라산 구상나무림 2016년도 모습.

국립산림과학원이 2017년과 2018년 고산 침엽수종 실태를 조사한 결과 기후변화 등에 따른 서식 환경 악화로 개체수와 분포면적 감소 등 쇠퇴 현상이 지속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와 관련, 국립산림과학원은 전국의 고산지대 상록침엽수종 가운데 쇠퇴 현상이 지속되는 주목, 구상나무, 분비나무, 가문비나무, 눈향나무, 눈잣나무, 눈측백 등 7종에 관해 보전 및 복원 대책을 추진 중이다.

국립산림과학원 산림생태연구과 박고은 연구사는 “나무의 종류와 지역에 따라 고사 원인은 다양할 수 있지만 일반적으로 이상 고온 현상을 원인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늦은 겨울과 이른 봄 갑자기 기온이 상승하는 이상 고온 현상으로 인해 토양 온도와 대기 온도의 차이가 발생한다. 토양이 얼어있는 상태에서 뿌리가 물을 흡수할 수 없는데 대기 온도 상승으로 광합성 작용이 일어난다. 즉 광합성에 대한 요구는 있으나 토양에서 수분을 끌어올 환경 조건이 되지 않는 불균형으로 인해 집단 고사한다는 것이다.

‘사악사악’ 나뭇잎 갉아 먹는 매미나방

심마니와 약초꾼들은 매미나방 등 해충이 급증한 상황도 심각하게 보고 있다. 강 씨는 매미나방 유충이 나뭇잎을 갉아 먹어 다 없어질 정도라고 말했다.

“산에 가면 유충이 나뭇잎을 갉아먹는 소리가 들려요. 그리고 소리가 나는 곳에 가보면 전체가 초토화되어 있어요. 나뭇잎이 하나도 안 남아 있는 거죠. 가뜩이나 날씨가 더워지는데 산에서 쉴 그늘도 없어졌어요.”

국립산림과학원이 공개한 매미나방이 나뭇잎을 갉아 먹어 거뭇하게 변해버린 낙엽송 피해지역의 모습. 
국립산림과학원이 공개한 매미나방이 나뭇잎을 갉아 먹어 거뭇하게 변해버린 낙엽송 피해지역의 모습. 

매미나방은 겨울철 온도가 낮으면 월동 중 알이 폐사한다. 그러나 겨울철 온도가 높아지면서 알 치사율이 감소해 유충이 많아진 것이다. 강 씨는 “매미나방으로 인해 산의 내부 모습도 크게 변했다”며 “나무껍질이 벗겨져 있고 알을 까놓아서 나무가 고사한 것처럼 보인다”고 말했다.

국립산림과학원에 따르면 서울·경기, 강원, 충북, 경북 지역에서 모두 2010년, 2015년 대비 2020년 겨울 일평균 기온이 높게 나타났다.
국립산림과학원에 따르면 서울·경기, 강원, 충북, 경북 지역에서 모두 2010년, 2015년 대비 2020년 겨울 일평균 기온이 높게 나타났다.

국립산림과학원 산림병해충연구과는 겨울철 기온이 평년 수준으로 내려가지 않는 등 이상고온 현상이 계속되면 매미나방 등 해충이 대발생하는 현상이 계속 나타날 수 있다고 분석했다. 남영우 연구사에 따르면 1968년도부터 진행한 예찰 조사 결과 매미나방이 대발생했던 해에는 겨울철 기온이 높고 봄철 강수량이 적다는 특징이 있었다.

강 씨는 “기후변화로 인한 환경의 변화를 예상할 수 없어 불안하다”며 “지금도 눈에 보일 정도로 심각한데 후세에는 어떤 위협이 다가올지 걱정된다”고 말했다.

 

[기후위기시대]

① 온실가스 주범 석탄발전소 ‘더 짓는 중’

② '기후우울' 떨치고 '어벤져스'로 나서다

③ 탄소세 부과로 ‘신호’ 줘야 기업 바뀐다

④ 노동·지역경제 배려 ‘정의로운 전환’을

⑤ "석탄발전소 짓는 한국, 리더 아닌 꼰대"

⑥ ‘그린워싱 대신 행동을’ 거센 녹색 함성

⑦ "SMR 등 원전은 기후위기 대안 못 돼"

⑧ “상용화 먼 핵융합, 탄소중립 도움 안 돼”

⑨ “기후위기 극복 의무를 헌법에 넣자”

⑩ 소형모듈원전(SMR) 상용화 가망 없다

⑪ “파이로프로세싱은 과학 아닌 소설”

⑫ 기후재난으로 원전 위험성 더 커진다

⑬ ‘기후 일자리’ ‘탄소국민배당’ 추진을

⑭ 고기 즐기는 너, 기후변화 공범 아니니

⑮ 청소년은 ‘미래’ 아닌 기후재난 ‘당사자’

⑯ 기후 미술관, ‘제로 웨이스트’로 가다

⑰ 쓰레기 줍다 보니 삶이 바뀌더라

⑱ “한국 공적금융이 에너지 전환 걸림돌”

⑲ ‘ESG 경영’ 뒤로 ‘기후행동 봉쇄 소송’

⑳ ‘국민이 처한 위험’ 알리려 당근 쏟았다

㉑ 나는 오늘 옷을 샀다, 기후위기를 샀다

㉒ 시민이 일어나 정부·기업을 움직이자

㉓ 탄소 줄이는 갯벌 메워 공항을 짓다니

㉔ 공장식 축산 줄이고 채식 늘려야 생존

㉕ 경작과 에너지 생산을 ‘하이브리드’로

㉖ 이재명 ‘재생에너지’, 윤석열 ‘원전’ 강조

㉗ 이재명·윤석열도 ‘기후대선’ 동참해야

㉘ ‘할머니가 지킬게, 초록지구’ 119 출동

㉙ 기후변화만큼 핵발전도 위험하다

㉚ ‘주차장 태양광’ 시급한데 조례로 막아

㉛ 채식 급식 확대, 환경교육과 병행 필요

㉜ 지구는 우리가 지킨다, 연구의 힘으로

㉝ 낡은 단독주택이 제로에너지 건물로 깜짝 변신

㉞ 개발에 밀린 무허가 정착민의 ‘생존 연료’

㉟ 난청·진폐 앓아도 떠날 곳 없는 노동자들

㊱ 실종된 ‘기후정치’를 찾습니다

㊲ ‘막장’에서 땀 흘린 이들의 희망은 어디에

㊳ 물 부족은 아프리카에서 끝나지 않는다

㊴ 돌고 돌아 사람 몸속에 쌓이는 플라스틱

㊵ 바이오연료, 전기차로 가는 징검다리 될까

㊶ 왕우렁이가 돕는 쌀농사, 도시농부도 보람

㊷ 취약층 ‘쪄 죽는 사회’ 막으려면

㊸ 속 썩은 배추에 농부 마음도 썩어들어가고

㊹ 탄소흡수 ‘바다숲’ 228곳 조성 후 관리 미흡

㊺ 중·고교 5600여 곳에 환경담당 교사는 41명

㊻ ‘탈석탄법’으로 신규발전소 건설 중단 길 터야

㊼ 강력한 탈탄소 정책과 기후정의 함께 가야

‘기후재난, 이대로 살 수 없다’ 역대 최대 인파

㊾ BTS RM의 그 가방, 폐시트와 빗물로 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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