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시대] 66. 후쿠시마 핵사고 12년, 탈핵행진 현장

일본 후쿠시마에서 원전 폭발사고가 일어난 지 12년이 된 11일 오후 2시, 부산 부전역 인근 송상현광장에서 ‘후쿠시마 핵사고 12년, 탈핵행진’이 열렸다. 환경운동연합, 한국 와이더블유시에이(YWCA), 대한불교조계종 사회노동위원회를 비롯한 250여 개 단체 회원 등 시민 700여 명(주최 측 추산)이 참여했다. 시민들은 일본 정부와 도쿄전력이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를 바다에 방류하기로 한 것과 관련, ‘원전 참사의 피해는 더욱 확대되고 있다’고 성토했다. 또 우리 정부가 부산 고리원전 2호기 등의 수명 연장을 추진하는 것에 반대한다고 외쳤다. 

방사성 오염수와 노후원전에 위협받는 국민 안전 

11일 오후 부산 송상현광장에 모인 시민들이 ‘고리2호기 폐쇄’ ‘오염수 방류 철회’ 등이 적힌 손팻말을 들고 집회에 참여하고 있다. 박정은 기자
11일 오후 부산 송상현광장에 모인 시민들이 ‘고리2호기 폐쇄’ ‘오염수 방류 철회’ 등이 적힌 손팻말을 들고 집회에 참여하고 있다. 박정은 기자

“도쿄전력이 2023년 6월까지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 설비를 완성하기로 되어 있습니다. 그 후 오염수 방류를 빠르게 진행한다는 것이 일본 정부 및 도쿄전력의 방침입니다. 이 일은 절대로 묵과할 수 없습니다.”

행사 시작 전 영상으로 격려사를 한 오시마 겐이치 일본 원자력시민위원회 회장은 “후쿠시마현을 중심으로 주변 지자체에 사는 주민과 어업관계자들이 오염수 방출에 반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어업의 부활을 위해 제일 고생하는 이들이 어업관계자들”이라며 “아무리 노력해도 방사능에 오염된 물고기가 잡혀버리면 지금까지 해온 일들이 전부 헛되게 된다”고 덧붙였다. 오시마 회장은 “도쿄전력이나 일본 정부가 어업의 부활을 방해하지 말라는 것이 어업관계자들의 공통된 의견”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또 “일본 정부가 계산한 핵발전소 사고의 경제적 손실은 23조 엔(약 228조 원)인데, 여기에는 방사성 폐기물의 처리비용이 아직 반영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어 “일본원자력학회 추산 결과 후쿠시마 제1발전소에서 발생하는 방사성 물질의 양은 발전소 1기를 (정상적으로) 폐로했을 때 나오는 방사성 물질의 1400배”라고 밝혔다. 오시마 회장은 “이 양은 너무나도 많기 때문에 일본 사회는 앞으로 100년 혹은 200년 동안 방사성 폐기물 처리에 시달려야 한다”며 “한 번 핵발전소 사고가 일어나면 그것은 이미 돌이킬 수 없다는 것이 명백하다”고 덧붙였다. 

이어 무대에 오른 진행자 권우현(29) 환경운동연합 에너지기후팀장은 “후쿠시마 사고 후 12년이 지났지만, 피해자 16만 명은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3만 명은 아직도 피난 생활을 하고 있다고 한다”며 “오시마 겐이치 회장의 목소리가 일본 국민과 원전 사고 피해자에게도 용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함께 진행을 맡은 이경아(46) 부산YWCA 회원정책국장은 “올해 4월 만료되는 부산 고리 2호기의 설계수명을 연장하려는 정부와 한국수력원자력이 부산 시민들의 의견 수렴 없이 영구 핵폐기장 건립을 결정했다”고 비판했다. 부산 지역 환경단체들은 한수원이 고리원전에 사용후핵연료 건식저장시설을 설치하려는 것을 ‘영구 핵폐기장 건립 기도’로 보고 반대운동을 하고 있다.

‘부산고리2호기수명연장·핵폐기장반대범시민운동본부’ 고문인 하선규(77) 부산YWCA 회장은 인사말을 통해 “현 정부는 원전 업계의 이익을 대변하고 국민의 생명과 안전은 무시하는 무모한 정책을 편다”며 “고리 1호기 폐쇄 때처럼 힘을 모아 고리 2호기 연장을 막아내자”고 말했다. 하 회장은 또 “일본의 오염수 방류도 우리가 막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미라(66) 천도교한울연대 상임대표는 기도문을 통해 “정부는 핵폐기물 처리장 건설과 수명을 다한 고리원전 2호기 연장을 멈추고, 3.16 한일 정상회담에서 후쿠시마 방사능 오염수 방출 금지를 요구해야 한다”고 말했다.

비용 줄이려는 일본, 떨고 있는 한국 해녀

탈핵 구호가 적힌 손팻말과 깃발을 들고 집회에 참여한 시민들. 어린이와 함께 온 가족단위 참가자도 있었다. 박정은 기자
탈핵 구호가 적힌 손팻말과 깃발을 들고 집회에 참여한 시민들. 어린이와 함께 온 가족단위 참가자도 있었다. 박정은 기자

“올해 10살, 12살 된 아이들과 함께 사는 저희 집(울산 중구) 안방에서는 반경 20킬로미터(km) 이내 위치한 경주 월성원전 6개의 핵발전소가 보입니다. 남쪽으로는 반경 24km 이내에 부산 고리, 울산 울주의 신고리 10개 발전소가 있습니다. 지구상에서 가장 많은 핵발전소에 포위된 채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지역별 발언 시간에 이향희(47) 탈핵울산시민공동행동 집행위원장은 ‘탈핵운동을 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설명했다. 그는 “핵발전소 자체도 위험한데 수명이 40년을 넘은 낡은 핵발전소는 더욱 위험하다”고 말했다. 이 위원장은 또 “정부 조사에 의하면 작년 1월 울산과 경주, 부산 지역에 6.9 이상 대규모 지진을 일으킬 수 있는 활성단층이 5개 이상 발견됐음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책임 있게 공개하고 대책 세우기를 거부한다”고 비판했다.  

오하라 츠나키 핵없는세상광주·전남행동 교육홍보팀장은 일본 정부의 원전 오염수 방류 계획을 집중적으로 성토했다. 그는 “어떤 방사성 물질이 어느 정도의 농도로 존재하는지 정확하게 파악조차 못 하면서 배출 기준 농도 이하로 하면 문제가 없다고 아주 뻔뻔하게 주장하고 있다”며 “독을 바다로 보내는데, 버리기 전에 바닷물로 충분히 희석할 테니 괜찮다, 정말 이런 개소리가 어디 있느냐”고 비난했다. 오하라 팀장은 “오염수는 탱크에 저장된 것이 전부가 아니고 원자로 건물 안에 여전히 처리되지 않은 고농도 오염수가 존재한다”며 “앞으로도 계속해서 오염수는 늘어나고 바다로 방출될 것이라는 뜻”이라고 말했다. 그는 “애초에 오염수 발생을 근본적으로 줄이고 사고 현장을 더 안전하게 수습하는 대안이 있었지만, 가장 손쉽고 가장 비용이 싼 해양 방류를 선택한 것”이라며 “안전하지 않은 것을 안전하다고 우기는 일본 정부와 도쿄전력은 정말 부끄러운 줄 알아야 한다”고 덧붙였다. 

영상을 통해 발언한 고송자 제주해녀협회 사무국장은 “우리 해녀가 바다에 들어가서 작업을 하다 보면 입으로 바닷물이 들어가는 일이 비일비재하다”며 “일본 원전 오염수가 제주 바다에 온다면 우리들 입을 통해서 몸속으로 들어갈 수 있어 겁난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 해녀만의 문제가 아니고 바다를 대상으로 생계를 이어 나가는 모든 수산업계 종사자에게도 큰 타격이 있을 것”이라며 “오염된 바다의 수산물을 과연 누가 먹으려고 하겠느냐”고 반문했다.

기후재난에 취약한 원전, 갈수록 위험 커져 

유정길 불교환경연대 운영위원장은 선언문 낭독을 통해 일본 정부의 방사성 오염수 방류 계획을 언급하며 “12년 전 사고로 해당 핵발전소는 영구 폐쇄되었지만, 그 오염과 피해는 더 확대되고 있다”고 말했다. 

김민조 핵없는세상을위한대구시민행동 사무국장은 “정부는 태풍이나 호우 등 이상기후에 핵발전소가 얼마나 취약한지 똑똑히 보았음에도 후쿠시마 핵사고 교훈을 잊고 핵발전에 따른 이익만 취하려 한다”며 “핵발전은 온실가스 감축에도 효과적이지 않을뿐더러 오히려 더 비싼 대가를 치러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영경 에너지정의행동 사무국장은 "한국은 폐로 절차에 들어간 2기의 핵발전소를 제외하더라도 25기의 핵발전소를 운영하는, 핵발전 밀집도가 세계 최대인 국가"라며 "신규 핵발전소 건설, 노후 핵발전소 수명 연장, 임시 핵폐기장 건설이 더해지면 사고 위험에 따른 지역 희생을 더욱 강요하고 생태계를 위협하고 미래에 위험을 떠넘기는 셈"이라고 비판했다. 

참가자들의 공개 발언이 모두 끝난 오후 3시쯤 풍물패의 장단에 맞춰 행진이 시작됐다. 송상현광장에서 서면 금강제화 앞까지 1.3km 구간에서 중앙버스전용차로를 따라 진행된 행진은 1시간가량 후 마무리됐다.

'위험한 고리2호기 폐쇄' '신규핵발전소 건설재개 백지화' 등의 구호를 앞세워 진행된 탈핵 행진. 송상현광장에서 서면 금강제화 앞까지 1시간가량 이어졌다. 박정은 기자
'위험한 고리2호기 폐쇄' '신규핵발전소 건설재개 백지화' 등의 구호를 앞세워 진행된 탈핵 행진. 송상현광장에서 서면 금강제화 앞까지 1시간가량 이어졌다. 박정은 기자

수원에서 왔다는 대학생 김소민(25) 씨는 행진을 마친 후 “원전이 노후해 위험한 상태인데도 시민의 안전을 위해 폐쇄하기는커녕 이익집단을 대변해 계속 가동하겠다는 정부의 무책임한 태도에 화가 났다”고 말했다. 그는 “직접적인 피해를 보는 지역 시민들의 이야기를 듣고 내가 수원에 산다고 해서 나와 상관없는 문제가 아니구나, 한국 시민으로서 우리 모두의 문제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며 “앞으로 더 관심을 두고 적극적으로 행동할 것”이라고 밝혔다.

한편 이날 집회가 열린 송상현광장 인근 역사마당에서는 한국원자력국민연대 회원과 인근 주민 등 50여 명이 모여 탈핵 반대 시위를 했다. 시위를 주도한 원전 관련 기업 대경기술(주)의 관계자는 <단비뉴스> 인터뷰에서 “원전 수명 연장은 전 세계적으로 추진하고 있고 안전성이 검증됐는데 (탈핵) 시위를 하는 것은 말이 안 된다”고 주장했다.

 

[기후위기시대]

① 온실가스 주범 석탄발전소 ‘더 짓는 중’

② '기후우울' 떨치고 '어벤져스'로 나서다

③ 탄소세 부과로 ‘신호’ 줘야 기업 바뀐다

④ 노동·지역경제 배려 ‘정의로운 전환’을

⑤ "석탄발전소 짓는 한국, 리더 아닌 꼰대"

⑥ ‘그린워싱 대신 행동을’ 거센 녹색 함성

⑦ "SMR 등 원전은 기후위기 대안 못 돼"

⑧ “상용화 먼 핵융합, 탄소중립 도움 안 돼”

⑨ “기후위기 극복 의무를 헌법에 넣자”

⑩ 소형모듈원전(SMR) 상용화 가망 없다

⑪ “파이로프로세싱은 과학 아닌 소설”

⑫ 기후재난으로 원전 위험성 더 커진다

⑬ ‘기후 일자리’ ‘탄소국민배당’ 추진을

⑭ 고기 즐기는 너, 기후변화 공범 아니니

⑮ 청소년은 ‘미래’ 아닌 기후재난 ‘당사자’

⑯ 기후 미술관, ‘제로 웨이스트’로 가다

⑰ 쓰레기 줍다 보니 삶이 바뀌더라

⑱ “한국 공적금융이 에너지 전환 걸림돌”

⑲ ‘ESG 경영’ 뒤로 ‘기후행동 봉쇄 소송’

⑳ ‘국민이 처한 위험’ 알리려 당근 쏟았다

㉑ 나는 오늘 옷을 샀다, 기후위기를 샀다

㉒ 시민이 일어나 정부·기업을 움직이자

㉓ 탄소 줄이는 갯벌 메워 공항을 짓다니

㉔ 공장식 축산 줄이고 채식 늘려야 생존

㉕ 경작과 에너지 생산을 ‘하이브리드’로

㉖ 이재명 ‘재생에너지’, 윤석열 ‘원전’ 강조

㉗ 이재명·윤석열도 ‘기후대선’ 동참해야

㉘ ‘할머니가 지킬게, 초록지구’ 119 출동

㉙ 기후변화만큼 핵발전도 위험하다

㉚ ‘주차장 태양광’ 시급한데 조례로 막아

㉛ 채식 급식 확대, 환경교육과 병행 필요

㉜ 지구는 우리가 지킨다, 연구의 힘으로

㉝ 낡은 단독주택이 제로에너지 건물로 깜짝 변신

㉞ 개발에 밀린 무허가 정착민의 ‘생존 연료’

㉟ 난청·진폐 앓아도 떠날 곳 없는 노동자들

㊱ 실종된 ‘기후정치’를 찾습니다

㊲ ‘막장’에서 땀 흘린 이들의 희망은 어디에

㊳ 물 부족은 아프리카에서 끝나지 않는다

㊴ 돌고 돌아 사람 몸속에 쌓이는 플라스틱

㊵ 바이오연료, 전기차로 가는 징검다리 될까

㊶ 왕우렁이가 돕는 쌀농사, 도시농부도 보람

㊷ 취약층 ‘쪄 죽는 사회’ 막으려면

㊸ 속 썩은 배추에 농부 마음도 썩어들어가고

㊹ 탄소흡수 ‘바다숲’ 228곳 조성 후 관리 미흡

㊺ 중·고교 5600여 곳에 환경담당 교사는 41명

㊻ ‘탈석탄법’으로 신규발전소 건설 중단 길 터야

㊼ 강력한 탈탄소 정책과 기후정의 함께 가야

㊽ ‘기후재난, 이대로 살 수 없다’ 역대 최대 인파

㊾ BTS RM의 그 가방, 폐시트와 빗물로 제작

㊿ 채취량 반으로 줄고 낙석에 생명의 위협도

51 ‘그린워싱’ 고발하다 법정에 선 활동가들

52 보틀클럽과 리필스테이션이 있는 마을 실험실

53 ‘블루카본’ 갯벌을 신공항으로 덮으려는 정치

54 애타는 기후 시민, 정부를 법정에 세웠다

55 기후행동 ‘목적의 정당성’ 인정한 판결에 환호

56 ‘단 한 명이라도…’ 매주 간절하게 올리는 기도

57 과학자들, '엉터리 근거로 오염수 투기 강행' 비판

58 농지에서는 농사를, 유휴부지에는 태양광을

59 호수 위에 뜬 그 꽃잎이 태양광발전소라니

60 우리 땅 농산물과 천연재료를 고집하는 가게

61 과학을 부인한 그들, 세계를 위험에 빠트리다

62 아이들이 안전하게 살아갈 ‘봄’을 만드는 마음

63 환경을 살리는 선택이 일자리도 만드는 시대

64 소비 중독 벗고 ‘순환 경제’로 가야 살아남는다  

65 기업 ‘친환경 경영’ 속도 높일 단일법 추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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