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시대] 110. 종이팩·멸균팩 재활용 실태
지난 4월 4일 서울 마포구의 마포태영 2차 아파트 내 재활용 쓰레기 분리수거장. 상자와 책 등 종이류가 수거함 안에 어른 허리 높이까지 쌓인 가운데, 1리터(L) 용량의 우유팩과 200밀리리터(ml) 짜리 두유팩 등이 종이 상자 사이에 섞여 있었다. 환경부가 고시한 ‘재활용 분리수거 방법’에 따르면 종이팩은 내부 코팅이 있어 일반 종이류와 따로 수거해야 한다. 하지만 같은 날 돌아본 마포구 마포자이 1차 아파트, 래미안용강 아파트 등 다른 분리수거장에서도 종이팩이 일반 종이류와 뒤섞여 배출되고 있었다.
갈수록 낮아지는 종이팩 재활용률
서울환경연합에 따르면 종이팩 재활용률은 10년 전과 비교해 3분의 1로 줄었다. 2022년 배출된 6만 7826톤(t)의 종이팩 가운데 재활용된 것의 비율은 13.7%로, 2013년 36%, 2019년 19%에서 계속 하락했다. 2022년 기준 종이류의 재활용률이 44.6%, 플라스틱(폐합성수지)은 57%인 것과 비교할 때 상당히 낮은 수준임을 알 수 있다.
홍수열 자원순환사회경제연구소장 등 전문가들에 따르면 종이팩 재활용률이 지속적으로 낮아지는 것은 멸균팩 증가와 관련이 있다. 주로 우유를 담는 종이팩은 폴리에틸렌(PE)이 코팅되어 있고, 주스와 두유 등을 상온에 보관하는 멸균팩은 폴리에틸렌(PE)과 알루미늄으로 덮여 있다. 멸균팩은 알루미늄 코팅을 한 겹 더 벗겨내는 공정을 거쳐야 하기 때문에 재활용률이 2% 미만인데, 종이팩·멸균팩 전체 중 멸균팩이 차지하는 비중이 2014년 25%에서 2022년 45%로 급증했다. 종이팩과 멸균팩이 뒤섞여 함께 버려지자, 둘 다 일반 쓰레기로 버려지는 사례가 늘었다는 분석이다.
제대로 분리수거된 종이팩은 물에 넣어 코팅과 인쇄염료 등을 벗기고 물에 푸는 해리 과정을 거쳐 펄프로 만든 뒤 화장지와 키친타올 등의 제품을 만든다. 멸균팩도 물에 넣어 알루미늄 코팅을 벗긴 뒤 해리 과정을 거쳐 펄프화하고 화장지 등으로 재활용한다.
종이팩 더 쉽게 분리배출할 수 있는 환경 필요
종이팩과 멸균팩의 재활용이 저조한 것을 안타까워하며 행동에 나선 개인들도 있다. 경남 창원시에 사는 강혜주(42세) 씨는 사회관계망서비스(SNS)인 인스타그램에서 종이팩을 수집하는 ‘팩사냥꾼’으로 활동한다. 그는 1700세대가 사는 아파트 내 분리수거장과 동네 카페 등에서 일주일에 약 50개의 종이팩과 멸균팩을 수거한 뒤, 씻고 말려 인근 행정복지센터와 제로웨이스트센터, 생활협동조합에 갖다준다. 행정복지센터는 종이팩을 받고 휴지를, 제로웨이스트센터와 생협은 물건을 살 수 있는 포인트를 준다. 강 씨는 이 포인트로 생리대를 구매한 뒤 소외계층에게 기부한다고 밝혔다.
그는 종이팩 재활용률을 높이기 위해 교육자료를 만들어 아파트 온라인 카페에 올리고, 입주민 대표에게 우유팩 수거함을 만들자고 건의하기도 했다. 강 씨는 지난 4월 10일 <단비뉴스> 전화 인터뷰에서 “아이를 키우는 주부로서 2020년 코로나 기간에 긴 장마를 겪고 환경에 관한 관심이 많이 생겼다”고 활동 배경을 설명했다. 그는 “종이팩을 더 편리하게 분리배출할 수 있게 만들어야 할 뿐만 아니라, 재활용 인센티브를 높여야 한다”고 말했다. 강 씨는 자원순환센터에서 소모임을 하며 종이팩 분리수거에 대한 열정을 키웠고, 현재 한살림 생활협동조합 환경위원회에서 활동하고 있다고 밝혔다.
수거 거점 늘리고 보상 높여야
충남 당진에 사는 조상호(41세) 씨도 인스타그램에서 ‘조아빠’로 활동하며 종이팩 수거와 재활용에 힘을 쏟고 있다. 그는 아파트 12개 동을 돌아다니며 한 달에 우유팩 약 350개를 수거하고, 주변 사람들이 가져다주는 종이팩도 모아 행정복지센터에서 휴지로 교환해 온다. 지난 4월 10일 단비뉴스 전화 인터뷰에서 조 씨는 “아이를 키우며 환경에 대한 관심이 생겼다”고 활동 배경을 설명했다. 그는 “종이팩을 모아도 재활용 분리수거하는 환경이 귀찮고 복잡하게 되어 있다”며 “수거 거점이 많아져서 더 많은 사람이 종이팩을 제약 없이 쉽게 배출할 수 있게 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종이팩은 행정복지센터와 제로웨이스트샵에 갖다 주거나 스마트 수거함에 넣고 휴지나 포인트 등 보상을 받을 수 있다. 그러나 서울시 25개 구 중 행정복지센터에서 일반팩과 멸균팩을 모두 수거하는 곳은 56%에 그치는 등 거점 수거센터의 수가 많지 않다. 행정복지센터에서 주는 보상도 1L 종이팩 약 35개(1kg)에 화장지 1롤 혹은 종량제봉투 1개에 불과하다.
제로웨이스트샵은 샴푸 등 생활용품을 포장재 없이 내용물만 구입할 수 있는 가게인데, 종이팩을 수거한 뒤 재활용 가능한 곳에 보낸다. 서울에서 제로웨이스트샵이 가장 많은 곳은 송파구로 12곳이며, 강남구와 동작구 11곳, 강동구와 강서구, 은평구에 9곳이 있다. 구별로 평균 5.8곳에 불과해 접근성이 높지 않다.
페트병과 종이팩 보상하는 스마트 수거함
사용자 편의성 면에서 주목받는 것은 스마트 수거함이다. 스마트 수거함은 페트병과 종이팩을 넣으면 스마트폰 응용프로그램(앱) 내에서 즉각적인 보상을 주는 회수장치다. 종이팩을 하나 넣으면 10포인트가 적립된다. 포인트는 앱 내의 ‘오분쇼핑’에서 우유, 기프티콘, 세탁비누 등으로 교환하거나, 기부할 수 있다. 일정 포인트 이상 모으면 현금으로 출금할 수도 있다. 24시간 내내 이용이 가능하다는 장점이 있다.
그러나 스마트 수거함을 설치한 지자체는 많지 않다. 지난해 4월 기준 서울환경연합이 발표한 서울시내 스마트 수거함 현황을 보면 강동, 강북, 관악, 구로, 송파, 종로구 등 6개 구에 각 10~20대 정도가 배치됐다. 세종시 13대, 인천 서구 100대, 광주 서구 5대 등 지방에도 설치된 곳이 있지만 아직은 한정적이다.
종이팩 택배로 수거하고 보상하는 앱도 등장
최근에는 종이팩을 무료로 수거하고 보상(크레딧)을 주는 앱 ‘에코야 얼스’도 등장했다. 에코야 얼스는 종합환경기업인 에이치알엠(HRM)이 만든 앱으로, 지난 4월 16일 정식 출시됐다. 개인이 배출한 깨끗한 우유팩을 택배로 수거한 뒤 자원순환시설에서 고품질 재생원료로 재탄생시키는 구조다. 지난달 23일 경기도 고양시 HRM 본사에서 단비뉴스와 만난 에코야 얼스의 강경모(38) 팀장은 “1인당 택배비가 4800원이 들어 아직은 적자지만, 앞으로 종이팩을 사용하는 유업사와 운송사, 사회적 기업과 협력해 재활용품이 고품질 자원으로 재탄생할 수 있도록 하는 프로젝트 등을 시행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한편 유럽의 종이팩 재활용률은 65~80%로 한국의 5배가량이다. 부산경남생태도시연구소 김지원 등의 ‘해외사례 분석을 통한 국내 멸균팩 재활용 연구’에 따르면, 스웨덴의 종이팩 재활용률은 80%, 벨기에의 종이팩 재활용률은 99.4%에 이른다. 강원대 류정용(55) 교수는 “유럽은 개인이 쓰레기통에 음료나 우유팩을 버리면 정부가 모두 수거해 기계로 분리선별한다”고 말했다. 개인에게 책임을 전가하지 않고 정부가 적극적으로 분리수거하는 구조라는 설명이다. 그는 유럽과 체계가 다른 한국에서 종이팩을 사용하는 기업에게 무작정 높은 재활용률을 강조하면 플라스틱으로 대체할 가능성이 있다며, 정부가 종이팩 재활용에 더 많은 관심을 기울이고 재정적으로 지원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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