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시대] ㉟ 연탄의 정의로운 전환 (중)

지난달 1일 오전 8시 경북 영주시 휴천동 강원연탄. 200평 남짓한 공장 안에서 연탄을 나르는 컨베이어 벨트가 요란한 소리를 내며 돌고, 시커먼 석탄 가루가 뿌옇게 흩날렸다. ‘시끄러운 음악 수준’인 84데시벨(dB) 이상의 소음이 내내 귀를 괴롭혔다. 출하 대기장에서는 연탄 소매업자 10명이 갓 나온 연탄들을 3.1톤(t) 트럭에 싣고 있었다. 1972년 문을 연 이 업체는 2018년까지만 해도 하루 최대 8만 장까지 연탄을 생산했지만, 현재는 2만~3만 장 정도로 생산량이 줄었다. 매출액은 연 40억 원 정도인데 재고 물량과 인건비 등을 감안하면 이익을 남기지 못하는 상황이라고 황영호(82) 사장은 밝혔다. 그는 “2000년대 초까지만 해도 30명 가까운 직원을 두었지만, 지금은 5명밖에 남지 않았다”고 말했다. 

연탄 제조업체 줄줄이 폐업, 협의체도 와해 

▲ 경북 영주시 강원연탄 공장에서 한창 생산과 출하가 이뤄지는 모습. ⓒ 안재훈, 양수호
▲ 경북 영주시 강원연탄 공장에서 한창 생산과 출하가 이뤄지는 모습. ⓒ 안재훈, 양수호

“정부와 대화할 수 있는 창구라도 있으면 좋겠습니다.”

오전 10시, 연탄 소매업자들의 발걸음이 뜸해졌을 때 황 사장이 입을 열었다. 2003년 설립된 한국연탄공업협회는 생산기업들의 협의체로서 대정부 창구 역할을 했지만, 연탄공장들이 줄줄이 폐업하면서 어느 시점엔가 와해됐다. 국내 광물자원산업 전반을 관리하는 한국광해광업공단에 따르면 연탄 제조업체는 2012년 48곳에서 10년 간 총 22곳(45%)이 문을 닫아 올해 4월 기준 26곳만 남았다. 석탄산업구조조정과 탈석탄 정책의 여파다. 정부는 지난해까지 연탄 제조업체를 대상으로 보조금을 지급했지만 ‘화석연료 판매업체에 보조금을 지원하는 것은 시대착오’라는 비판이 일자 중단했다. 지난해 말 산업통상자원부가 발표한 제6차 석탄산업 장기계획에는 연탄 제조업체와 종사자에 관한 대책은 들어있지 않다.

▲ 국내 연탄 제조업체 수는 지난 10여 년간 절반 수준으로 줄었다. ⓒ 이현이
▲ 국내 연탄 제조업체 수는 지난 10여 년간 절반 수준으로 줄었다. ⓒ 이현이

황 사장에 따르면 강원연탄과 벽 하나를 사이에 두고 운영하던 영주연탄은 지난해 폐업했다. 당시 정부가 고시한 연탄 한 장의 공장도 가격이 639원이었는데, 연탄업체 간 가격인하 경쟁을 견디지 못해 문을 닫았다고 한다. 폐업한 영주연탄 건물은 제대로 철거되지 않은 채 공장내부의 오폐수 등이 방치된 모습이었다. 취재팀이 만난 연탄업체 관계자들은 대부분 자본금이 거의 남아 있지 않거나, 자본금이 있어도 공장 폐업 시 발생하는 환경 정화와 철거 비용을 부담하지 못한다고 입을 모았다. 

▲ 지난해 폐업한 경북 영주연탄의 공장건물. 내부에는 오폐수가 방치되어 있다. ⓒ 양수호
▲ 지난해 폐업한 경북 영주연탄의 공장건물. 내부에는 오폐수가 방치되어 있다. ⓒ 양수호

저물어 가는 산업, 고령의 저임금 노동자들 

강원연탄의 작업환경도 열악했다. 소음 때문에 사람의 목소리가 잘 들리지 않았고, 방진마스크 틈으로 분진이 계속 들어와 숨쉬기가 힘들 정도였다. 이 공장에서 30년 넘게 근무했다는 연탄 윤전기 기능사 박태천(68) 씨는 공장 소음으로 인한 난청을 앓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해 대구의 한 연탄공장에서 장기 근속한 노동자가 폐에 분진이 들러붙어 생기는 진폐증으로 산업재해 판정을 받는 등 노동자와 인근 주민의 폐질환도 문제가 되고 있다. 

당장의 근무환경도 나쁘지만, 노동자들은 연탄공장들이 결국은 문을 닫게 될 것을 걱정하고 있었다. 강원연탄의 생산관리를 책임지고 있는 박병조(73) 씨는 “기계 소음 때문에 난청을 앓고 있다”며 “(공장이 문을 닫는다면) 나이가 있기 때문에 나는 여기서 끝나는 것”이라고 말했다. 공장 노동자들은 대부분 연금 등 노후 대비가 되어 있지 않고 당장의 생계가 어려워서 일을 해야만 하는 형편이라고 털어놓았다.

▲ 드론으로 촬영한 강원연탄 전경. 공장 외부에 석탄 가루가 쌓여있다. ⓒ 안재훈
▲ 드론으로 촬영한 강원연탄 전경. 공장 외부에 석탄 가루가 쌓여있다. ⓒ 안재훈

취재팀은 지난 3월 21일부터 4월 11일까지 전국 연탄 제조업체 26곳을 대상으로 업황과 노동조건에 관한 설문조사를 했다. 26곳 중 20곳이 응답했고, 항목별로 답을 누락한 곳도 있었다. 직원 수는 20곳 중 13곳(65%)이 10인 이하 사업체였고, 직원 평균 연령대를 묻는 설문에 답한 14곳 중 13곳(93%)이 ‘최소 60대에서 최대 70대 후반에 해당하는 직원이 근무한다’고 답했다. 평균 급여는 응답한 12곳 중 11곳(91%)이 200만~300만 원이었다. 2022년 법정 최저시급이 9160원이고, 연탄공장 노동자들의 평균 근속 연수가 20~30년인 것을 감안하면 턱없이 낮은 임금이라고 볼 수 있다. 

▲ 취재팀의 설문조사 결과 전국 연탄업체들은 모두 최근 5년간 매출 감소를 경험했으며 고령의 노동자들이 영세한 작업장에서 저임금을 받으며 일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 이현이
▲ 취재팀의 설문조사 결과 전국 연탄업체들은 모두 최근 5년간 매출 감소를 경험했으며 고령의 노동자들이 영세한 작업장에서 저임금을 받으며 일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 이현이

실직 노동자 지원과 생산전환 위해 정부 대책 절실 

시대적 과제인 ‘탈석탄’을 위해 연탄공장의 퇴장이 불가피하다면 연탄제조업체와 노동자들에겐 어떤 배려를 해야 정의로운 전환이 될 수 있을까. 이승협 대구대 사회학과 교수는 “연탄 생산업체 설비 구조와 인적 구조 특성상 업종 전환, 재취업 모두 현실성 없는 이야기”라며 “종사자 수가 적고 연탄 업계 자체가 힘들었던 건 사실이나, 국가 정책으로 인해 폐업이 앞당겨질 상황이니 국가와 기관이 나서 책임질 의무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연탄업체 노동자 실직과 관련 “대부분 고령 근로자라 제도권 안에서 보호받기가 쉽지 않으니 정부와 유관 기관 등이 기금을 마련해 실직자 중 희망자에 한해 사회적협동조합을 만들어주는 등의 대책을 세워주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 경북 영주시 강원연탄 공장에서 석탄을 연탄 윤전기로 나르는 노동자와 연탄을 트럭에 싣는 연탄 소매업자들의 모습. ⓒ 양수호
▲ 경북 영주시 강원연탄 공장에서 석탄을 연탄 윤전기로 나르는 노동자와 연탄을 트럭에 싣는 연탄 소매업자들의 모습. ⓒ 양수호

연탄공장은 석탄 저장 장치, 컨베이어 벨트, 윤전기 등 오직 연탄제조에 특화돼 있고 분진으로 공장 내부가 부식돼 업종전환이나 리모델링이 쉽지 않다. 업종을 전환하려면 공장 설비를 바꾸고, 내부 정화도 해야 하지만, 연탄업체들의 재정 형편상 실행하기 어렵고, 이에 관한 정책도 없다. 이와 관련, 이규철 건축공간연구원 건축문화자산센터장은 “근대 산업시설인 연탄공장은 폐업 시 환경 정화 기간이 오래 걸리고 많은 비용이 발생한다”며 “이상적인 해법은 소유주가 비용을 부담하지 못할 경우 방치할 것이 아니라 지자체에서 매입해 시민들을 위한 공간으로 재생시키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산업혁명이 이뤄졌던 영국 런던과 프랑스 파리에서는 폐공장이 미술관과 레지던스(숙소)로, 국내에서는 경기 부천시의 쓰레기 소각장이 미술관으로 공간 재생에 성공한 바 있다”고 소개했다. 

연탄공장 시설을 이용해 친환경 연탄을 만들자는 제안도 있다. 왕겨(숯), 팜유, 가축 분뇨, 슬러지 등을 연료로 한 친환경탄은 석탄 원료의 연탄과 생김새와 기능이 비슷한데, 탄소배출이 훨씬 적다는 장점이 있다. 마주현(42) 씨는 2015년부터 2019년까지 왕겨를 원료로 친환경탄을 개발해 실제 창업까지 했다가 사업을 접었다. 마 씨와 환경산업기술원 등은 친환경탄이 아직 개발단계이고 시장 진입까지 넘어야 할 산이 많다고 설명했다. 

▲ 마주현 씨가 개발한 왕겨 연료의 친환경탄. 연탄과 생김새와 기능이 비슷하지만 아직 상용화하지 못했다. ⓒ 마주현
▲ 마주현 씨가 개발한 왕겨 연료의 친환경탄. 연탄과 생김새와 기능이 비슷하지만 아직 상용화하지 못했다. ⓒ 마주현

한편 대한석탄공사는 ‘탈석탄 과정에서 연탄제조업체 폐업과 관련한 대책’을 묻는 <단비뉴스>의 정보공개청구에 “연탄 제조업체의 사업 위기는 에너지 시장에서 연탄소비가 감소한 것이 주요 원인”이라며 “(공사는) 석탄 생산 및 공급을 담당하는 기관이기 때문에 연탄 제조업체와 관련한 정책 의견은 없다”고 답했다. 한국광해광업공단은 “(연탄업계) 종사자들에 관한 특별지원은 없으며, 고용노동부 등 타정부기관을 통해 실업급여, 취업교육 등을 받는 방법이 있다”고 밝혔다. 

김현우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연구기획위원은 “정의로운 전환은 근로자들의 일자리 보장, 환경 복구 등 다양한 문제가 고려돼야 한다”며 “연탄업계의 경우 비중 있게 논의되기는 어렵지만 에너지원과 산업 전환 관점에서 상징적인 모델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예산만 던져주는 하향식 정의로운 전환이 아닌, 연탄공장이 있는 지역 및 연탄업계 종사자들의 요구와 특성에 기반한 대책이 나와야 한다”고 덧붙였다.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에너지전환이 시대적 과제가 된 가운데 화석연료산업의 노동자, 지역주민, 소비자 등이 부당한 피해를 보지 않게 배려하는 ‘정의로운 전환’(Just Transition)도 중대한 숙제로 떠올랐다. 국내에서 가장 값싼 연료인 연탄은 전국의 8만여 빈곤 가구가 ‘생존 연료’로 쓰고, 26곳의 공장에서 고령의 저임금노동자가 생산하며, 그 원료인 석탄은 광업소 4곳에서 ‘골격계나 진폐 환자가 되어가는’ 탄광노동자가 캐고 있다. <단비뉴스>는 정부의 탈석탄 정책이 이들 연탄 소비자, 노동자, 지역주민 등에게도 정의로운 전환이 되는 방향으로 진행되고 있는지 점검하고 필요한 대안을 모색한다. (편집자) 

 

[기후위기시대]

① 온실가스 주범 석탄발전소 ‘더 짓는 중’

② '기후우울' 떨치고 '어벤져스'로 나서다

③ 탄소세 부과로 ‘신호’ 줘야 기업 바뀐다

④ 노동·지역경제 배려 ‘정의로운 전환’을

⑤ "석탄발전소 짓는 한국, 리더 아닌 꼰대"

⑥ ‘그린워싱 대신 행동을’ 거센 녹색 함성

⑦ "SMR 등 원전은 기후위기 대안 못 돼"

⑧ “상용화 먼 핵융합, 탄소중립 도움 안 돼”

⑨ “기후위기 극복 의무를 헌법에 넣자”

⑩ 소형모듈원전(SMR) 상용화 가망 없다

⑪ “파이로프로세싱은 과학 아닌 소설”

⑫ 기후재난으로 원전 위험성 더 커진다

⑬ ‘기후 일자리’ ‘탄소국민배당’ 추진을

⑭ 고기 즐기는 너, 기후변화 공범 아니니

⑮ 청소년은 ‘미래’ 아닌 기후재난 ‘당사자’

⑯ 기후 미술관, ‘제로 웨이스트’로 가다

⑰ 쓰레기 줍다 보니 삶이 바뀌더라

⑱ “한국 공적금융이 에너지 전환 걸림돌”

⑲ ‘ESG 경영’ 뒤로 ‘기후행동 봉쇄 소송’

⑳ ‘국민이 처한 위험’ 알리려 당근 쏟았다

㉑ 나는 오늘 옷을 샀다, 기후위기를 샀다

㉒ 시민이 일어나 정부·기업을 움직이자

㉓ 탄소 줄이는 갯벌 메워 공항을 짓다니

㉔ 공장식 축산 줄이고 채식 늘려야 생존

㉕ 경작과 에너지 생산을 ‘하이브리드’로

㉖ 이재명 ‘재생에너지’, 윤석열 ‘원전’ 강조

㉗ 이재명·윤석열도 ‘기후대선’ 동참해야

㉘ ‘할머니가 지킬게, 초록지구’ 119 출동

㉙ 기후변화만큼 핵발전도 위험하다

㉚ ‘주차장 태양광’ 시급한데 조례로 막아

㉛ 채식 급식 확대, 환경교육과 병행 필요

㉜ 지구는 우리가 지킨다, 연구의 힘으로

㉝ 낡은 단독주택이 제로에너지 건물로 깜짝 변신

㉞ 개발에 밀린 무허가 정착민의 ‘생존 연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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