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시대] 76. 탄소발자국 줄이는 ‘배양육’ 어디까지 왔나

지난달 17일 경북 경산시 대동 영남대 세포배양연구소. 초저온 유지를 위한 액체질소(LN2)탱크와 겔(gel)분석프로그램기, 전자현미경 등이 곳곳에 놓인 연구실에서 연구원 10여 명이 업무에 집중하고 있었다. 연구원들은 스포이드(액체투입기)로 닭의 근육 줄기세포 등을 염색한 뒤 현미경으로 관찰했다. 세포배양연구소장인 최인호 교수의 안내로 현미경을 들여다보니, 보라색 국수 다발 같은 근육 줄기세포들이 4~5초 만에 한 번씩 꿈틀대는 모습이 생생하게 보였다. 최 교수는 “종(種)마다 세포가 다르게 생겼고, 끊임없이 움직인다”고 설명했다.

현미경으로 본 근육 줄기세포의 움직임

영남대 세포배양연구소에서 현미경으로 관찰한 닭의 근육 줄기세포. 보라색 국수 다발 모양의 줄기세포들이 계속 꿈틀거렸다. 우현지 기자
영남대 세포배양연구소에서 현미경으로 관찰한 닭의 근육 줄기세포. 보라색 국수 다발 모양의 줄기세포들이 계속 꿈틀거렸다. 우현지 기자

주 연구실을 나와 철문 2개를 열고 다른 방으로 들어가니, 냉장고에 들어선 듯 서늘했다. 성장 호르몬 등 세포배양에 필수적인 배양액의 재료가 보관되는 공간이었다. 최 교수는 “유기물의 특성상 최적의 온도와 습도를 유지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 재료들을 적절한 비율로 섞으면 배양액이 되고, 이 배양액에 근육 줄기세포를 넣어 스캐폴드(세포를 지지하는 뼈대)에서 배양하면 배양육이 된다”고 말했다.

액체질소(LN2)탱크 등 실험장비가 설치된 영남대 세포배양연구소 내부와 각종 세포 배양액이 저장된 창고, 줄기세포의 움직임에 관해 설명하는 최인호 교수의 모습. 우현지 기자
액체질소(LN2)탱크 등 실험장비가 설치된 영남대 세포배양연구소 내부와 각종 세포 배양액이 저장된 창고, 줄기세포의 움직임에 관해 설명하는 최인호 교수의 모습. 우현지 기자

배양육은 축산농가에서 소, 돼지, 닭 등을 기르는 전통적 방식이 아닌, 실험실에서 동물 세포를 배양해 만든 고기를 말한다. 공장식 축산 등 기존의 동물 사육 과정에서 발생하는 대량의 온실가스를 줄이고 환경 오염을 최소화하면서, 도살을 피해 동물권도 지키고 식량 부족에도 대비하는 방안으로 기대를 모은다. ‘콩고기’ 등으로 불리는 식물성 대체육과 달리 고기 본연의 맛을 살린다는 점에서 시장성이 높은 대안으로 꼽히기도 한다.

기후 위기가 본격화하면서 세계 배양육 시장 규모는 2025년 2억 1400만 달러(약 2800억 원)에서 2032년 5억 9290만 달러(약 7800억 원)로 연평균 15.7% 성장할 것이라고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은 전망했다. 국내에도 티센바이오팜, 씨위드, 심플플래닛 등 스타트업(창업초기) 기업들이 기술개발 및 상품화에 나서고 있다. 농촌경제연구원은 한국의 배양육 연구 수준이 최고기술 보유국인 미국의 60% 수준이며 기초연구기술 격차는 4년, 응용연구기술 격차는 5년 정도라고 평가했다. 영남대 세포배양연구소는 100% 식품용 원료로 구성된 신규 배양액 포뮬러(배합공식) 개발에 성공했다.

배양육이 상품으로 팔리는 곳은 아직 싱가포르가 유일한데, 2020년 12월부터 미국산인 ‘굿미트’(Good Meat)가 소량 판매되고 있다. 굿미트의 닭요리 한 접시는 23달러(약 3만 원) 정도다. 싱가포르에서 팔리는 기존 닭요리의 3배 수준이다. 블룸버그통신은 “겉보기엔 치킨보다 고무에 가까웠지만, 그 식감과 맛은 우리가 알고 있는 치킨 같았다”고 보도했다. 출시를 준비 중인 소고기, 돼지고기도 각각 도축된 고기와 비슷한 맛을 내는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에서는 현재 굿미트와 ‘업사이드푸드’(Upside Foods) 등 2개 업체가 식품의약국(FDA)의 안전성 평가를 통과하고 농무부(USDA)의 인허가 절차를 밟고 있다. 한국의 관련 기업들은 아직 제품 개발단계에 있다.

싱가포르에서 세계 최초로 시판된 배양육 닭고기 굿미트. kbs 갈무리
싱가포르에서 세계 최초로 시판된 배양육 닭고기 굿미트. kbs 갈무리

전통 축산보다 온실가스 배출 90%가량 적어

티센바이오팜 등 국내 기업들은 친환경적 대안이라는 점에서 제품개발에 의의를 부여하고 있다. 티센바이오팜 라연주 최고전략총괄이사(CSO)는 <단비뉴스> 인터뷰에서 “배양육은 생산과정에서 배출되는 온실가스와 사용되는 토지의 비율이 기존 축산업 방식보다 각각 96%, 99% 낮아 환경에 주는 부담이 덜하다”고 말했다.

배양육은 도축육에 비해 에너지와 토지를 각각 45%, 99% 덜 사용하고 온실가스를 96% 덜 배출하는 것으로 분석됐다. 티센바이오팜 제공
배양육은 도축육에 비해 에너지와 토지를 각각 45%, 99% 덜 사용하고 온실가스를 96% 덜 배출하는 것으로 분석됐다. 티센바이오팜 제공

유엔식량농업기구(FAO)에 따르면 전 세계 가축이 배출하는 온실가스는 연간 약 71억 이산화탄소톤(tCO₂)으로, 지구 전체 온실가스 배출량의 14.5%를 차지한다. 실험실에서 생산하는 배양육이 도축육을 대체하면 그만큼 온실가스 배출량이 줄고, 탄소중립에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얘기다.

씨위드 이희재 대표는 <단비뉴스> 인터뷰에서 “전통 축산은 특정 지역에서 생산된 고기를 전 세계로 유통해야 하고, 그 과정에서도 탄소 배출이 일어난다”며 “배양육은 그 지역의 고기를 지역에서 생산해, 운송 과정에서 배출되는 온실가스가 줄어들 수 있다”고 말했다.

최인호 교수는 동물권 관점에서 배양육의 가치를 조명했다. 그는 “전에는 10킬로그램(kg)의 고기를 먹으려면 10kg만큼의 동물을 죽여야 했지만, 배양육 기술을 활용하면 그보다 적은 동물들에서 세포를 채취하면 된다”고 말했다. 이어 “세포를 채취하는 과정에서 윤리적 논란은 피할 수 없지만, 점차 기술이 발전하며 동물에게 덜 해가 되는 방식이 개발될 예정이고, 많은 동물을 고통으로부터 해방시켜 줄 수 있다”고 말했다.

실험실에서 만든 고기, ‘안전성’에 문제는 없을까

관련 기업인들은 ‘실험실에서 만드는 고기가 건강에 해롭지는 않을까’하는 의문에도 자신감을 보였다. 라연주 CSO는 “배양육은 조직 채취부터 세포 분리, 세포주 구축, 세포 증식 및 분화, 고기 생산, 제품화에 이르기까지 전 과정이 의약품 생산에 준하는 위생적이고 안전한 시설에서 이루어진다”고 말했다. 그는 “배양육 생산시설은 기본적으로 해썹(HACCP:한국 위생관리 시스템)이나 지엠피(GMP:미국 식품·의약품 안전성 보증)가 필수적”이라고 덧붙였다.

소의 근육 줄기세포를 배양해서 얻은 소고기. 티센바이오팜 제공
소의 근육 줄기세포를 배양해서 얻은 소고기. 티센바이오팜 제공

이희재 대표는 “(세포배양 과정에서) 항생제는 동물의 줄기세포를 동물 조직에서 가져오는 앞 단계에서만 사용된다”며 “이후 분리된 세포는 여러 안전성 검사를 거쳐 세포 은행에 저장한 후 사용하는데, 이 과정에서는 항생제를 사용하지 않기 때문에 초기에 사용한 항생제를 (소비자가) 섭취할 가능성은 0에 가깝다”고 설명했다.

이와 관련, 주선태 한국배양육연구회장은 지난달 28일 열린 ‘영양학적 관점에서 대체육과 배양육의 방향성 심포지엄’에서 배양육의 안전성을 검증할 기준이 마련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세포배양 과정에 항생제가 있는지를 들여다보는 것보다, 완성 제품에서 소비자가 항생제와 같은 화학 물질에 노출될 수 있는지를 검증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빠르면 2026년 한국에서도 시판할 듯

소의 근육줄기 세포를 배양해 얻은 소고기와 라연주 CSO. 티센바이오팜 제공
소의 근육줄기 세포를 배양해 얻은 소고기와 라연주 CSO. 티센바이오팜 제공

그렇다면 한국 시장에서 소비자가 배양육을 맛볼 수 있는 시점은 언제일까. 티센바이오팜 라연주 CSO는 “2026년에 소규모로 배양육 판매를 시작하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그는 “2024년까지 원천기술 연구개발을 마치고 2025년에 파일럿 생산시설 구축과 식품 인허가, 완제품 개발을 진행하고 2026년에 레스토랑을 중심으로 배양육을 공급하겠다”고 덧붙였다.

심플플래닛의 정일두 대표는 <단비뉴스> 인터뷰에서 “기후 위기와 친환경은 밀레니얼과 Z세대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이슈이고, 배양육이 기후위기의 대안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은 다양한 연구 결과를 통해 밝혀지고 있기 때문에, 검증된 기술력을 바탕으로 시장에 진입한다면 빠른 시간 내에 대중화될 수 있다”고 자신했다.

 실험실에서 만들어진 소고기 배양육과 시식을 위해 배양육을 조리하는 모습. 씨위드 제공
 실험실에서 만들어진 소고기 배양육과 시식을 위해 배양육을 조리하는 모습. 씨위드 제공

씨위드의 이희재 대표는 “생산량 증대에 유리한 해조류를 스캐폴드의 재료로 사용하고 있다”며 “저렴하고 쉽게 성장할 수 있는 해조류로 (생산)단가를 낮춰, 배양육의 상용화에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대표는 “충분한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 ‘kg당 1만 원 이하의 진짜 고기 같은 배양육’을 선보이는 것이 목표”라고 덧붙였다.

그러나 주선태 한국배양육연구회장과 최인호 교수는 “상용화가 언제쯤이라고 딱 잘라 말할 수 없을 것 같다”며 신중한 태도를 보였다.

한편 라연주 CSO는 “배양육이 ‘진짜 고기’로 인식되고 시장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해서는 마블링(육질을 연하게 하는 지방분포)이 살아있는 덩어리육을 만들어야 한다”며 “소비자가 직접 축종, 등급, 모양, 크기, 중량, 마블링 형태, 영양 등 다양한 요소를 선택할 수 있게 하고, 개인의 기호나 건강 상황에 맞는 배양육을 섭취할 수 있게 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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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온실가스 주범 석탄발전소 ‘더 짓는 중’

② '기후우울' 떨치고 '어벤져스'로 나서다

③ 탄소세 부과로 ‘신호’ 줘야 기업 바뀐다

④ 노동·지역경제 배려 ‘정의로운 전환’을

⑤ "석탄발전소 짓는 한국, 리더 아닌 꼰대"

⑥ ‘그린워싱 대신 행동을’ 거센 녹색 함성

⑦ "SMR 등 원전은 기후위기 대안 못 돼"

⑧ “상용화 먼 핵융합, 탄소중립 도움 안 돼”

⑨ “기후위기 극복 의무를 헌법에 넣자”

⑩ 소형모듈원전(SMR) 상용화 가망 없다

⑪ “파이로프로세싱은 과학 아닌 소설”

⑫ 기후재난으로 원전 위험성 더 커진다

⑬ ‘기후 일자리’ ‘탄소국민배당’ 추진을

⑭ 고기 즐기는 너, 기후변화 공범 아니니

⑮ 청소년은 ‘미래’ 아닌 기후재난 ‘당사자’

⑯ 기후 미술관, ‘제로 웨이스트’로 가다

⑰ 쓰레기 줍다 보니 삶이 바뀌더라

⑱ “한국 공적금융이 에너지 전환 걸림돌”

⑲ ‘ESG 경영’ 뒤로 ‘기후행동 봉쇄 소송’

⑳ ‘국민이 처한 위험’ 알리려 당근 쏟았다

㉑ 나는 오늘 옷을 샀다, 기후위기를 샀다

㉒ 시민이 일어나 정부·기업을 움직이자

㉓ 탄소 줄이는 갯벌 메워 공항을 짓다니

㉔ 공장식 축산 줄이고 채식 늘려야 생존

㉕ 경작과 에너지 생산을 ‘하이브리드’로

㉖ 이재명 ‘재생에너지’, 윤석열 ‘원전’ 강조

㉗ 이재명·윤석열도 ‘기후대선’ 동참해야

㉘ ‘할머니가 지킬게, 초록지구’ 119 출동

㉙ 기후변화만큼 핵발전도 위험하다

㉚ ‘주차장 태양광’ 시급한데 조례로 막아

㉛ 채식 급식 확대, 환경교육과 병행 필요

㉜ 지구는 우리가 지킨다, 연구의 힘으로

㉝ 낡은 단독주택이 제로에너지 건물로 깜짝 변신

㉞ 개발에 밀린 무허가 정착민의 ‘생존 연료’

㉟ 난청·진폐 앓아도 떠날 곳 없는 노동자들

㊱ 실종된 ‘기후정치’를 찾습니다

㊲ ‘막장’에서 땀 흘린 이들의 희망은 어디에

㊳ 물 부족은 아프리카에서 끝나지 않는다

㊴ 돌고 돌아 사람 몸속에 쌓이는 플라스틱

㊵ 바이오연료, 전기차로 가는 징검다리 될까

㊶ 왕우렁이가 돕는 쌀농사, 도시농부도 보람

㊷ 취약층 ‘쪄 죽는 사회’ 막으려면

㊸ 속 썩은 배추에 농부 마음도 썩어들어가고

㊹ 탄소흡수 ‘바다숲’ 228곳 조성 후 관리 미흡

㊺ 중·고교 5600여 곳에 환경담당 교사는 41명

㊻ ‘탈석탄법’으로 신규발전소 건설 중단 길 터야

㊼ 강력한 탈탄소 정책과 기후정의 함께 가야

㊽ ‘기후재난, 이대로 살 수 없다’ 역대 최대 인파

㊾ BTS RM의 그 가방, 폐시트와 빗물로 제작

㊿ 채취량 반으로 줄고 낙석에 생명의 위협도

51. ‘그린워싱’ 고발하다 법정에 선 활동가들

52. 보틀클럽과 리필스테이션이 있는 마을 실험실

53. ‘블루카본’ 갯벌을 신공항으로 덮으려는 정치

54. 애타는 기후 시민, 정부를 법정에 세웠다

55. 기후행동 ‘목적의 정당성’ 인정한 판결에 환호

56. ‘단 한 명이라도…’ 매주 간절하게 올리는 기도

57. 과학자들, '엉터리 근거로 오염수 투기 강행' 비판

58. 농지에서는 농사를, 유휴부지에는 태양광을

59. 호수 위에 뜬 그 꽃잎이 태양광발전소라니

60. 우리 땅 농산물과 천연재료를 고집하는 가게

61. 과학을 부인한 그들, 세계를 위험에 빠트리다

62. 아이들이 안전하게 살아갈 ‘봄’을 만드는 마음

63. 환경을 살리는 선택이 일자리도 만드는 시대

64. 소비 중독 벗고 ‘순환 경제’로 가야 살아남는다  

65. 기업 ‘친환경 경영’ 속도 높일 단일법 추진

66. 오염수 방류 임박, 후쿠시마 참사는 ‘진행 중’

67. 쓰레기 안 만드는 생산·유통·소비에 도전하다

68. ‘소·돼지·닭의 복지’도 인간에게 중요하다

69. 늘어나는 대형 산불 '불막이 숲' 등 대책 시급

70. "온실가스 감축 부담을 미래세대에 전가 말라"

71. 한국 온난화 속도는 지구 평균의 2~3배

72. ‘자본 아닌 인간 편에서 탄소중립을’ 거센 함성

73. 커피 찌꺼기도 ‘기후테크’로 저탄소 자원 변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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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5. 소비자는 ‘불편’ 점주는 ‘고객 이탈’ 불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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