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시대] ㊳ 2022 서울국제환경영화제 화제작 (상)

환경을 주제로 하는 영화제 가운데 아시아 최대로 꼽히는 서울국제환경영화제(SIEEF)가 지난 2일부터 8일까지 19회 행사를 열었다. ‘에코버스’(Ecoverse), 즉 '환경에 가치를 둔 세계'를 구호로 내건 이번 영화제에서는 각국에서 출품된 3578편 중 엄선된 73편이 서울 메가박스 성수점과 온라인 영화관에서 관객과 만났다. <단비뉴스>는 이 가운데 기후위기와 물 부족, 플라스틱 공해 등을 다룬 화제작을 2회에 걸쳐 소개한다. 영화제 상영작은 환경재단이 곧 개설하는 ‘그린아카이브’에서 다시 볼 수 있다. (편집자)


올해 서울국제환경영화제에서는 기후위기와 함께 점점 고갈돼 가는 물을 다룬 영화가 10편이나 상영됐다. 아이사 마이가 감독의 프랑스 영화 <물 위를 걷다>(Above water)와 나타샤 라토르 감독의 인도 영화 <강가>(Ganga)는 물 부족과 수질오염이 지역공동체의 생존, 교육환경, 생태계, 그리고 가정의 안녕까지 위협하는 현실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아빠는 풀을 찾아, 엄마는 물을 찾아 먼 길 떠나고

지난 2일부터 8일까지 열린 제19회 서울국제환경영화제의 포스터. ⓒ 서울국제환경영화제
지난 2일부터 8일까지 열린 제19회 서울국제환경영화제의 포스터. ⓒ 서울국제환경영화제

유엔(UN) 산하 기후변화에관한정부간협의체(IPCC)가 지난 2월 승인한 제6차 기후변화 평가보고서(제2 실무그룹)에 따르면 현재 전 세계 79억 인구 절반 이상이 1년에 한 달 이상 심각한 물 부족을 겪고 있다. 아프리카 니제르의 아자와크 지역에 있는 타티스트는 기후변화로 인해 물 부족이 극심해지고 있는 대표적 마을이다. <물 위를 걷다>는 타티스트 마을의 현실을 생생하게 담은 다큐멘터리다.

영화가 시작되면 덥수룩한 수염에 머리엔 터번을 두른 비글 불레세 촌장이 담담하면서도 슬픈 표정으로 등장한다. 50대인 불레세 촌장은 “덤불이 우거졌던 마을이 예전의 모습을 잃고, 개울도 얼마 남지 않았다”고 말한다. 마을의 12살 소녀 훌라이는 부모, 남동생들과 살지만 소를 기르는 아버지는 목초지를 찾아 오랫동안 집을 떠나 있다. 물이 말라 더 이상 마을에 풀이 자라지 않기 때문이다.

훌라이의 어머니를 포함한 타티스트 마을 여성들은 먹을 물을 긷기 위해 먼 곳까지 가야 한다. 국경을 넘어 나이지리아까지 갈 때도 있다. 양철 물그릇과 커다란 플라스틱 기름통 등을 들고 어머니들이 떠날 때, 훌라이는 너무 어려서 따라갈 수 없다. 몇 주간 부모의 빈자리를 채우며 동생들을 돌봐야 하는 훌라이의 눈은 슬픔을 한가득 담고 있다.

풀숲도, 동물도 사라진 마을

타티스트 마을 여성들이 물을 구하기 위해 먼 길을 나서고 있다. 아이들은 부모가 없는 동안 서로를 돌보며 지내야 한다. ⓒ 서울국제환경영화제
타티스트 마을 여성들이 물을 구하기 위해 먼 길을 나서고 있다. 아이들은 부모가 없는 동안 서로를 돌보며 지내야 한다. ⓒ 서울국제환경영화제

마실 물, 씻을 물이 부족한 마을에서 떠날 수 있는 사람은 영영 떠나기도 한다. 마을에 하나 있는 학교는 아이들이 줄어 계속 운영하기 힘든 지경이 됐다. 부모가 풀과 물을 찾아 떠난 마을에서 학교도 아이를 맡아주기 어려울 때, ‘돌봄 공백’은 더욱 커진다.

다행히 주민들이 니제르 수도위생국에 ‘우물을 파 달라’고 낸 신청이 환경단체 등의 도움으로 뒤늦게나마 받아들여졌다. 정부가 타티스트 마을 등 여러 촌락에서 지하수 시추 공사에 나선다. 영화는 지하수를 끌어온 우물에서 물이 터져 나오자 마을 주민과 아이들이 박수를 치며 환호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아이들은 깨끗한 물에 몸을 적시며 즐거워했다. 몇 주간 집을 비웠던 훌라이의 어머니도 돌아오고, 아이들은 이제 꼬박꼬박 학교에 가는 ‘해피엔딩’이 그려졌다. 그러나 근본적인 문제는 남아있다. 불레세 촌장은 기후변화와 물 부족으로 척박해진 마을의 미래를 걱정했다.

“땅이 변해가고 있어요. 예전엔 애들이 마을을 벗어났다가 덤불 속에서 길을 잃을 정도였죠. 동물들도 풀숲에 숨곤 했는데 그런 풀숲이 없어졌어요. 결국 남은 거라곤 맨땅뿐이죠.”

‘생명의 근원’에서 ‘오염 전달자’가 된 강물

강가(Ganga)는 갠지스강의 인도식 발음이다. 갠지스강은 인도 사람의 영혼과 종교, 삶을 상징한다. 힌두교도는 갠지스강에서 몸을 씻고, 사람이 죽으면 시신을 화장해 갠지스강에 뿌린다. 영화는 바다로 방출되는 수량을 기준으로 세계에서 세 번째로 큰 갠지스강이 처한 오염과 위험을 이야기한다. 전 인도 수자원부 장관인 업 싱은 “강 주변에서 문명이 시작했고, 강 주변에서 번성했다”며 “강이 위험하다면 문명도 위험한 것”이라고 말했다.

“지구에서 다수의 생물이 사라진다는 얘기는 우리도 멸종될 수 있다는 뜻이에요.”

갠지스강 근처에서 승려들이 종교 의식을 하고 있다. 강 근처의 주민과 상인들은 갠지스강에 종교적·일상적으로 의존하지만, 강이 처한 위험에 관해서는 잘 모르고 있다. ⓒ 서울국제환경영화제
갠지스강 근처에서 승려들이 종교 의식을 하고 있다. 강 근처의 주민과 상인들은 갠지스강에 종교적·일상적으로 의존하지만, 강이 처한 위험에 관해서는 잘 모르고 있다. ⓒ 서울국제환경영화제

갠지스강은 지난 2019년 해양오염 발원지로 지목됐다. 네덜란드 해양생물협회가 낸 보고서에 따르면 바다로 흘러 들어가는 플라스틱 폐기물의 90%가 양쯔강, 인더스강, 갠지스강 등 세계 10개 강에서 비롯된다.

갠지스강에는 악어, 돌고래, 상어도 서식하는데, 강물 오염으로 개체 수가 크게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강 주변에서 살아가는 주민과 상인들은 갠지스강의 오염에 관해 잘 모르고 있다. 이런 무관심과 무지는 오염을 방치하는 배경이 된다.

아프리카·인도를 넘어 확산하는 수자원 고갈

▲ 타티스트 마을의 저녁 풍경. 소를 먹이던 목초지는 찾아보기 어렵고, 황량한 흙 벌판이 펼쳐져 있다. ⓒ 서울국제환경영화제
타티스트 마을의 저녁 풍경. 소를 먹이던 목초지는 찾아보기 어렵고, 황량한 흙 벌판이 펼쳐져 있다. ⓒ 서울국제환경영화제

기후위기와 수자원 고갈은 아프리카와 인도만 겪는 일이 아니다. 유네스코 환경엔지니어인 블랑카 히메네스 시스네로스 박사는 2014년에 낸 보고서에서 “지구온난화로 기온이 1°C 상승할 때마다 재생 가능한 수자원은 20% 감소하고, 전 세계 인구의 7%가 그 영향을 받을 것”이라고 예측했다.

유엔 유럽경제위원회(UNECE)와 세계보건기구(WHO)는 지난달 19일과 20일 이틀 동안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린 제13차 물과 건강에 관한 워킹그룹 회의에서 앞으로 식수 부족과 하수 오염 문제가 유럽에도 큰 위협을 가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특히 UNECE는 2070년대까지 유럽연합 지역의 약 35%가 심각한 물 부족에 처할 것으로 추정했다.

우리나라도 물 부족 국가로 분류된다. 민간 연구기관인 국제인구행동연구소(PAI)는 연간 1인당 사용 가능한 수자원량을 기준으로 전 세계 국가를 ‘물 기근’(water scarcity), ‘물 부족’(water stressed), ‘물 풍요’(elative sufficiency) 국가로 나누고 있다. 우리나라는 국토면적에 비해 인구밀도가 높아 1인당 가용 수자원이 1000m³에서 1700m³ 미만인 물 부족 국가에 해당한다. 빗물을 재활용하거나 불필요한 물 소비를 줄이는 등 각별한 노력이 필요한 상황이다. 환경운동가이자 배우인 부미 페드네카르는 <강가>에서 이렇게 말한다.

“지구는 우리만의 것이 아니에요. 지구의 자원은 무한하지 않아요. 우리가 하는 모든 건 매우 지속 불가능한 삶의 방식으로 이끌죠... 많은 사람들이 인류에게 가장 무서운 위협이 기후변화라는 걸 아직 모르고 있습니다.”

[기후위기시대]

① 온실가스 주범 석탄발전소 ‘더 짓는 중’

② '기후우울' 떨치고 '어벤져스'로 나서다

③ 탄소세 부과로 ‘신호’ 줘야 기업 바뀐다

④ 노동·지역경제 배려 ‘정의로운 전환’을

⑤ "석탄발전소 짓는 한국, 리더 아닌 꼰대"

⑥ ‘그린워싱 대신 행동을’ 거센 녹색 함성

⑦ "SMR 등 원전은 기후위기 대안 못 돼"

⑧ “상용화 먼 핵융합, 탄소중립 도움 안 돼”

⑨ “기후위기 극복 의무를 헌법에 넣자”

⑩ 소형모듈원전(SMR) 상용화 가망 없다

⑪ “파이로프로세싱은 과학 아닌 소설”

⑫ 기후재난으로 원전 위험성 더 커진다

⑬ ‘기후 일자리’ ‘탄소국민배당’ 추진을

⑭ 고기 즐기는 너, 기후변화 공범 아니니

⑮ 청소년은 ‘미래’ 아닌 기후재난 ‘당사자’

⑯ 기후 미술관, ‘제로 웨이스트’로 가다

⑰ 쓰레기 줍다 보니 삶이 바뀌더라

⑱ “한국 공적금융이 에너지 전환 걸림돌”

⑲ ‘ESG 경영’ 뒤로 ‘기후행동 봉쇄 소송’

⑳ ‘국민이 처한 위험’ 알리려 당근 쏟았다

㉑ 나는 오늘 옷을 샀다, 기후위기를 샀다

㉒ 시민이 일어나 정부·기업을 움직이자

㉓ 탄소 줄이는 갯벌 메워 공항을 짓다니

㉔ 공장식 축산 줄이고 채식 늘려야 생존

㉕ 경작과 에너지 생산을 ‘하이브리드’로

㉖ 이재명 ‘재생에너지’, 윤석열 ‘원전’ 강조

㉗ 이재명·윤석열도 ‘기후대선’ 동참해야

㉘ ‘할머니가 지킬게, 초록지구’ 119 출동

㉙ 기후변화만큼 핵발전도 위험하다

㉚ ‘주차장 태양광’ 시급한데 조례로 막아

㉛ 채식 급식 확대, 환경교육과 병행 필요

㉜ 지구는 우리가 지킨다, 연구의 힘으로

㉝ 낡은 단독주택이 제로에너지 건물로 깜짝 변신

㉞ 개발에 밀린 무허가 정착민의 ‘생존 연료’

㉟ 난청·진폐 앓아도 떠날 곳 없는 노동자들

㊱ 실종된 ‘기후정치’를 찾습니다

㊲ ‘막장’에서 땀 흘린 이들의 희망은 어디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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