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시대] 82. 송도에서 열린 글로벌그린즈 총회
“다핵종제거설비(ALPS·알프스)는 오염물질을 완전히 걸러내지 못합니다. 알프스에서 한 번 걸러진 물 샘플을 조사했을 때, 70%가 규제 기준 이상으로 방사성 물질에 오염돼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두 번 거르면 어떻게 될까요? 아무도 모릅니다. 일본 정부가 오염물질 양을 공개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그 물이 많은 다른 방사성 물질이나 유기물, 금속, 그리고 연료봉이 녹으며 의해 생성된 독소를 포함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지난 10일 오후, 인천시 연수구 송도컨벤시아에서 사흘째 열린 제5회 세계녹색당(글로벌그린즈) 총회 ‘후쿠시마와 태평양의 핵폐기물–핵은 답이 아니다’ 세션에서 일본 녹색당의 오가타 게이코(65) 공동대표가 주제발표를 통해 이렇게 말했다. 그는 “(알프스로 걸러지지 않는 방사성 물질인) 삼중수소는 살아있는 유기체 내부에서 유기화합물이 돼 유기체에 손상을 입힐 수 있다”며 “먹이사슬을 통해 삼중수소가 축적된다면 더 위험해진다”고 주장했다. 오가타 대표는 후쿠시마 원전 일대의 지도를 보여주며 “해안가에 큰 탱크를 만들 공간이 충분하다”고 강조했다. 오염수를 바다에 버리는 대신 대형 탱크를 지어 수십 년 더 담아두거나, 오염수를 시멘트와 섞고 콘크리트에 혼합해 땅에 묻는 등 ‘육상 저장’을 할 수 있다는 말이다.
세계녹색당은 11일 총회 폐막식에서 이와 관련해 ‘태평양의 핵폐기물 위협’(Nuclear Waste Threat in the Pacific)이라는 제목의 결의문을 채택하고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가 태평양으로 배출되도록 허용하려는 일본 정부의 계획을 규탄한다”고 밝혔다. 결의문은 ‘일본 등 태평양 연안 주민의 건강과 태평양의 환경 및 생물 다양성을 보호하기 위해 (방류) 계획을 즉각 중단할 것’과 ‘후쿠시마 원전 폐기물을 계속 육상에 저장할 것’을 일본 정부에 요구했다. 결의문은 또 ‘방사성 폐기물의 태평양 투기 금지를 위한 국제협약’ 제정을 제안했다. 지난 8일부터 나흘 동안 열린 이번 총회에는 80여 개국에서 국회의원 112명을 포함해 약 700명이 모였다.
일본 녹색당 대표 ‘원전 주변 땅 충분하다’며 육상 저장 주장
오가타 대표는 주제발표에서 후쿠시마 원전사고로 인한 건강 피해에 관해서도 설명했다. 그는 “사고 이후 38만 명의 후쿠시마 어린이들이 검사를 받았고 345명이 갑상샘암 진단을 받았다”며 “갑상샘암은 어린이들에게 드문 질병(보통 100만 명 중 1~2명 발병)이지만 일본 정부는 암과 사고의 인과관계를 완강히 부인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미 성인이 된 아이들 중 일부는 평생 육체적, 정신적 상처를 안고 살아야 한다”고 덧붙였다.
그는 주민 피해의 배경에 일본 정부의 잘못된 정책이 있다고 지적했다. 국제방사선방호위원회(ICRP)는 거주자의 방사선 노출량을 연간 1밀리시버트(mSv)로 제한하도록 권고했지만, 일본은 재난 직후 이를 20mSv로 완화했다. 이 제한은 12년 동안 유지돼, 여기 해당하지 않는 경우 퇴거 보조금도 지급하지 않았다. 오가타 대표는 “(방사선) 피해자 가족 가운데 우울증, 자살, 이혼, 아동학대를 경험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후쿠시마의 많은 지역이 여전히 심하게 오염돼 있지만 일본 정부는 피난 주민의 귀향을 종용하며 보조금 지급을 중단했다”고 비판했다.
오가타 대표는 “인간의 실수는 (구소련) 체르노빌 원전에서처럼 사고를 일으킬 수 있고, 자연재난(지진해일)은 후쿠시마 같은 사고를 일으킬 수 있으며, 전쟁이 나면 우크라이나(자포리자 원전)처럼 치명적인 목표물이 될 수도 있다”며 원전의 근본적 위험성을 강조했다.
호주·벨기에 대표도 ‘태평양을 오염시키지 말라’ 요구
같은 세션에서 한국 녹색당 반핵위원회 오현화(42) 공동위원장은 “지난달 한국환경운동연합에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 응답자의 85%가 오염수 방류에 반대했다”며 일본의 조처가 한국인을 불안하게 만들고 있는 현실을 짚었다. 그는 “이 방류로 저선량(방사선) 노출이 30년~50년 이어졌을 때 (인간의) 염색체 손상이 일어나지 않을지 확신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이 문제가 ‘세대 간 정의’와 관련이 있다며 “1980년대 태어난 사람이 2023년부터 30년간 저선량 노출되는 것과 2020년 태어난 사람이 2023년부터 30년 노출되는 것은 완전히 다를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책임질 수 없는 일을 하지 못하도록 막는 것이 우리 세대의 일”이라고 강조했다.
오 위원장은 또 “오염수 배출을 한 번 허용하면, 전체 원자력산업에 폐기물 버리는 것을 허용하는 것과 같다”며 “오염수 방류는 일본과 한국만의 문제가 아니라 전 세계의 문제”라고 주장했다. 그는 “한국 원전도 삼중수소를 배출하고 있다”며 “그래서 한국 정부는 일본 정부가 제공하는 데이터에 의존하며 국민을 안심시키려 노력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정부는 기후위기에 대처하기 위해 원자력발전을 촉진해야 한다고 말한다”며 “만일 원전이 계속되면 이 폐기물들은 계속해서 나올 것이기 때문에 궁극적으로 원자력발전을 중단해야 한다고 우리가 말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벨기에의 사무엘 코골라티(34) 국회의원은 “현실적으로 30만 년 동안 핵폐기물을 보관할 방법이 없다는 점을 고려하면 원자력은 전혀 깨끗하지 않은 에너지”라고 지적했다. 그는 또 원전의 사고위험 때문에 벨기에의 민간 보험사는 원전 관련 보험 가입을 거부한다고 말했다. 그래서 원자력산업은 최종 비용에 대한 책임의 0.3%만을 담보하는 민간 보험에 가입할 수 있고, 나머지는 정부가 책임져야 한다는 것이다. 또 수명이 다한 원전을 해체하는 비용도 원전업계가 충분히 비축하지 않고 있다며, 원전의 낮은 생산비에는 감춰진 비용이 많다는 점을 지적했다.
과거 핵실험이 진행된 호주 마라링가 지역 원주민이자 녹색당 시의원인 도미닉 카냑은 1950년대부터 호주와 영국 정부가 12차례 핵실험을 벌이는 동안 주민들이 실명 등 건강 피해를 봤다고 설명했다. 기록에 따르면 원주민 1200여 명이 당시 방사선에 노출돼 실명하거나 조기 사망했으며 호주와 영국 군인의 30%도 암으로 사망했다. 카냑 의원은 “(핵실험 당시) 사람들은 핵 오염이 점점 희석될 거라고 말했지만 그렇지 않았다”며 “우리의 문화이자 생계인 태평양 바다를 방사능으로 오염시키지 말라”고 요구했다.
반핵활동가인 미셸 시퍼는 “원전 건설과 핵폐기물 처리 등의 과정과 비용을 고려하면 핵발전은 기후위기를 막는 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며 “쉽게 핵무기로 탈바꿈할 수 있다는 것도 문제”라고 지적했다. 그는 후쿠시마 사고 당시 배출된 방사성 물질이 알래스카 등 멀리 떨어진 곳에서도 발견됐다며 (해양폐기물에 관한) 런던협약 등을 활용해 오염수 방류를 막아야 한다고 말했다.
환경 파괴는 생태학살, ‘에코사이드’를 멈춰라
이번 총회에서는 환경 파괴를 좀 더 강력한 법으로 제한할 방안도 논의됐다. 지난 9일 오후 ‘에코사이드: 지속가능한 세계를 위한 법적 프레임워크’ 세션에서 조조 메타(50) 국제생태학살협회(Stop Ecocide International) 의장은 “우리가 환경 파괴를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아서 환경 규제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며 각국에서 일어나는 환경 파괴 행위를 막을 수 있도록 강력한 국제법을 제정하자고 말했다. 한국생태학살연구회(End Ecocide Korea) 황준서 연구원(30)도 한국 정부가 주도한 새만금 개발로 생태파괴가 벌어졌고 2018년 한국 기업 에스케이(SK)가 라오스에 지은 댐이 붕괴하며 많은 난민이 발생했지만, 이 사건이 생태학살로 다뤄진 적은 없다고 지적했다.
2017년 설립된 국제생태학살협회는 네덜란드 헤이그 국제형사재판소(ICC)가 대량학살, 반인도주의 범죄, 전쟁범죄, 침략범죄와 함께 생태학살을 국제범죄로 인정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ICC에서 생태학살이 국제범죄로 인정되면 환경을 파괴한 기업은 132개 ICC 가입국에 머물 수 없게 된다. 협회에 따르면 생태학살은 ‘환경에 심각한 피해가 넓은 범위에서 발생하거나 오랫동안 발생할 가능성이 있음을 알면서 저지른 불법적이고 무자비한 행위’로 정의된다. 현재 브라질, 유럽연합(EU), 인도네시아 등에서 관련 입법 움직임이 있다.
황준서 연구원은 지난 15일 <단비뉴스> 전화 인터뷰에서 “생태학살을 범죄로 정의하면 환경 파괴 행동을 법적으로 처벌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사람들의 사회적 인식도 바꿀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사람을 죽이면 처벌하는 강력한 법이 있으면 사람을 직접적으로 찌르는 행동이 아니더라도 죽음에 도달할 가능성이 있는 많은 행동들을 자제하게 되지 않느냐”며 “가장 심각한 환경 파괴 행동을 강력하게 처벌하는 법이 생기면 사람들은 심각한 결과를 가져올 가능성이 있는 행동 전반을 조심하게 된다”고 입법 필요성을 설명했다.
황 연구원은 “후쿠시마 원전사고도 에코사이드로 비춰질 수 있다”고 말했다. 사고 가능성과 위험성을 충분히 알고 있었던 일본 정부가 직무 유기 등 불법을 저질러 일어난 일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법적으로는 생태학살이 범죄화하기 전에 일어난 사고라 처벌이 불가능하다. 반면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는 이론적으로 지금이라도 법을 마련한다면 처벌할 수 있다. 황 연구원은 “바다에 생계가 달린 태평양 섬나라가 입을 피해까지 고려하면 오염수 방류는 에코사이드이자 제노사이드(대량학살)”라고 말했다.
녹색정치를 위해 더 많은 비례대표 의원 필요
총회에 모인 녹색 정치인들은 기후위기에 대응하기 위해 어떻게 목소리를 키울 것인지도 고민했다. 한국 녹색당은 지난 9일 영국 녹색당과 간담회를 열고 소선거구제라는 제도적 한계 속에서 어떻게 의회 진출을 확대할 수 있는지 영국 측의 조언을 들었다. 영국은 한국처럼 소선구제 중심 선거제도를 운용하고 있어 소수 정당이 의석을 확보하기 어려운 국가다. 현재 영국 녹색당 소속 하원의원은 한 사람뿐이다. 영국 녹색당은 전략을 바꿔 지방 정부를 공략했다. 그 결과 지난달 잉글랜드 지방의회 선거에서 녹색당 소속이 직전 선거보다 241명이 늘어난 481명 당선됐다. 전체 8079개 지방 의석 가운데 녹색당이 약 6%를 차지했다.
호주 녹색당 대표를 지낸 크리스틴 밀느(70) 전 상원의원은 지난 10일 글로벌그린즈 행사장에서 <단비뉴스>와 만나 “이제 (영국의) 지역에서 인정받은 녹색당 정치인이 많아졌으니 다음은 총선에서 시장 등으로 선출되고, 이후 국가 수준으로 확대될 것”이라며 “세계 어디서든 비례대표를 늘리는 캠페인을 해야 더 많은 의원이 민주적으로 선출될 수 있다”고 말했다.
밀느 전 의원은 EU 각국에서 녹색당이 선전한 비결도 독일의 연동형 비례대표제, 네덜란드의 완전 비례대표제 등 선거제도에 있다고 지적했다. 녹색당은 2010년대 말부터 최근까지 독일, 스위스 등 유럽 국가에서 의석수를 두 배 가까이 늘렸다. 밀느 전 의원은 “이런 비례대표제 덕분에 호주 상원에도 녹색당이 자리 잡은 것”이라고 소개했다. 현재 호주 상원의원 76명 가운데 녹색당 소속이 11명이다. 반면 2012년 창당한 한국 녹색당은 지난해 지방선거에서 0.23%를 득표했으며 국회와 지방의회에 단 한 명도 진출하지 못했다.
단비뉴스 청년부, 편집기획팀 박동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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