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시대] 91. 지구환경을 위한 연대 ‘케이팝포플래닛’
박진희(24) 씨는 한국대중음악 팬으로 구성된 기후행동 플랫폼 ‘케이팝포플래닛’(Kpop4planet)의 캠페이너(활동가)다. 아이돌그룹 엔시티드림(NCT Dream)을 5년째 응원하는 열혈 팬이기도 하다. 2021년 결성된 케이팝포플래닛은 한국,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포르투갈 등 4개국 활동가 11명이 주축이 된 단체로, 콘서트나 실물 음반 판매과정에서 배출되는 쓰레기를 줄이는 활동 등 환경 캠페인에 나서고 있다. 케이팝 가수들을 광고모델로 쓰는 기업의 그린워싱(위장환경주의)을 고발하는 활동도 벌이고 있다.
“기후위기가 심각해지면 ‘덕질’을 못하게 된다는 걸 경험했거든요.”
지난 7월 18일 <단비뉴스> 화상 인터뷰에서 박 씨는 기후환경 캠페인에 나선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덕질은 좋아하는 것에 열정적으로 집중하는 행위를 말하는 속어다. 그는 “기후변화로 박쥐들의 서식지가 변하면서 코로나19가 발생했고, 그로 인해 (공연 취소 등) 덕질을 할 수 없는 상황이 생겼다고 생각한다”며 “그런 시기가 또다시 오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환경운동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코로나19를 계기로 플라스틱 사용을 줄이려 샴푸와 린스를 고형 제품으로 바꾸고 치약·칫솔도 고체 치약, 대나무 칫솔로 바꿨다고 한다. 육식으로 배출되는 탄소를 줄이기 위해 채식도 시작했다고 말했다. 그런데 좋아하는 가수를 위한 덕질에서는 환경을 위한 선택이 쉽지 않았다고 한다.
많이 사고 많이 버리게 만드는 업계의 상술
케이팝 팬들이 친환경적인 실천을 하기 힘든 것은 콤팩트디스크(CD)와 화보 등의 사은품으로 구성된 앨범을 여러 장 사게 만드는 상술 탓이 크다. 한국소비자원이 지난해 8월부터 12월까지 팬덤(특정 인물을 열정적으로 좋아하는 무리) 활동에 참여한 소비자 500명을 대상으로 음반 구매 목적을 조사한 결과, ‘이벤트 응모’가 25.4%(중복응답)로 나타났다. 이들은 팬 사인회나 영상통화 등 가수를 만날 수 있는 행사에 참여하기 위해 같은 음반을 평균 6.7장 구매한 것으로 나타났다.
좋아하는 가수의 음악방송 순위를 올리기 위해서 음반을 집중구매하는 경향도 뚜렷했다. 한국소비자원의 같은 조사에서 ‘차트 순위 상승을 위해 음반을 구매한 경험이 있다’는 응답이 38.6%(중복응답)였다. 연예인의 사진이 인쇄된 포토카드 등 굿즈(사은품)를 모으기 위해 같은 음반을 여러 장 사는 팬도 적지 않다. 한국소비자원 조사에서 응답자의 52.7%가 ‘굿즈 수집을 목적으로 음반을 구입해 봤다’고 답했다. 응답자들은 원하는 사은품을 얻기 위해 동일 음반을 평균 4.1개 구입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렇게 중복 구매된 앨범은 ‘앨범깡’을 거쳐 버려지기 일쑤다. 앨범깡이란 여러 장 구입한 앨범을 한자리에서 모두 뜯어보고 사은품만 챙기는 행위를 말한다.
같은 앨범을 70장까지 구입한 일이 있다는 취업준비생 김유민(23) 씨는 지난 8일 단비뉴스 전화인터뷰에서 “당시에 ‘미공포’가 나와 원하는 포토카드를 수집하다 보니 100만 원 상당의 앨범을 사게 됐다”고 말했다. 미공포란 미공개 포토카드의 줄임말로, 각 소속사가 일반에 공개하지 않은 사진으로 제작한 것이다. 김 씨는 “구입한 앨범을 종이, 플라스틱 등으로 분리해서 버렸고, CD는 분리배출이 안 돼 일반쓰레기로 버렸다”고 말했다.
케이팝포플래닛은 지난해 4월 ‘죽은 지구에 케이팝은 없다’ 캠페인을 통해 업계의 상술에 항의하는 뜻으로 팬들로부터 모은 8000여 장의 앨범을 제이와이피(JYP), 하이브, 큐브엔터테인먼트 등에 돌려보냈다. 또 앨범 폐기를 줄일 수 있는 ‘그린옵션’ 도입을 해당 회사들에 요구했다. 박진희 씨는 “개인적으로 새 앨범을 사지 않기로 했다”며 “앨범을 많이 산 사람에게서 무료 나눔을 받거나 중고 거래를 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음악 재생 플랫폼에 ‘재생에너지 100%’ 요구도
케이팝포플래닛은 국내 음악 스트리밍(재생) 플랫폼에 ‘데이터센터에서 사용하는 전기의 100%를 재생에너지 전기로 쓰라’고 요구하기도 했다. 지난해 5월 ‘멜론은 탄소맛’ 캠페인을 통해 멜론, 지니, 플로, 바이브 등에 서신을 보냈다. 애플뮤직과 스포티파이 등 해외 스트리밍 업체는 이미 재생에너지 사용 100%를 달성하고 협력사로 흐름을 확대하고 있는데, 국내 업체는 화석연료로 생산되는 전력을 사용해 탄소를 배출하고 있어서다. 이와 관련해 멜론은 “재생에너지를 사용하는 친환경 데이터센터로의 이전을 작년 12월부터 진행하고 있다”고 서면으로 답했다.
케이팝포플래닛은 또 지난해 9월부터 ‘세이브 더 버터비치’(Save the butter beach) 캠페인과 삼척 석탄화력발전소 건설 반대 서명 운동을 벌였다. 2021년 발매된 방탄소년단(BTS)의 앨범 <버터>(Butter)의 재킷 사진이 촬영된 강원도 삼척시 맹방해변을 지키기 위해서다. 석탄화력발전소는 기후위기를 유발하는 주요 원인 중 하나로 꼽히며, 삼척화력발전소는 건설 과정에서 맹방해변을 침식시킨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지난 6월에는 방탄소년단(BTS)을 광고모델로 기용한 현대자동차의 그린워싱을 비판하는 캠페인에 나섰다. 이들은 ‘현대, 석탄멈춰!’ 캠페인을 통해 현대차가 석탄발전 전기를 이용해 알루미늄을 생산하는 아다로미네랄과 맺은 업무협약을 철회하라고 요구했다. 현대차는 지난해 11월 ‘저탄소 알루미늄’을 공급받기 위해 아다로미네랄과 업무협약을 맺었다고 발표했으나, 아다로미네랄이 2025년까지 신규 석탄발전소 2기를 지을 계획이며 수력발전이 추가되는 2029년까지는 석탄발전 전기로 알루미늄을 공급할 계획이라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그린워싱 논란을 빚었다.
케이팝포플래닛의 누를 사리파, 누하 이자투니사 캠페이너는 지난 5월 23일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의 대형쇼핑몰 스나얀파크몰에서 방탄소년단(BTS)의 커버댄스를 선보인 케이팝 댄서들과 현대차의 각성을 촉구했다. 또 업무협약 철회 요구를 담은 편지를 1만 1062명의 온라인 서명과 함께 현대차에 전달했다. 현대차 측은 “케이팝포플래닛의 우려에 깊이 공감하며, 아직 구체적인 협의가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앞으로 논의해 가겠다”는 답장을 보내왔다고 케이팝포플래닛이 밝혔다.
세계적 명품 업체에 ‘낙제점’ 주고 각성 촉구
케이팝 스타를 광고모델로 쓰는 명품 기업도 그린워싱 고발 대상이 됐다. 케이팝포플래닛은 지난달 9일 국제환경단체 ‘액션스픽스라우더’와 함께 블랙핑크 멤버들을 앰배서더로 기용한 샤넬·디올·셀린느·생로랑의 기후위기 대응 평가를 담은 ‘명품 언박싱: 그린워싱 에디션-명품에 숨겨진 불편한 진실’ 보고서를 발표했다. 이 보고서는 이들 4개 기업의 탄소감축 계획 및 목표치와 2021년 탄소배출량 감축 성과가 모두 낙제점이라고 평가했다.
케이팝포플래닛은 이런 평가를 바탕으로 ‘명품 브랜드 기업의 공급망에서 배출되는 탄소량을 투명하게 공개할 것’ ‘제품을 생산하는 데 쓰이는 에너지를 100% 재생에너지로 전환할 것’ 등을 요구하는 서명운동을 하고 있다. 지난 4일 기준 9243명이 참여했다.
케이팝포플래닛은 4명의 캠페이너와 정기적으로 모집하는 앰배서더가 주축이 되어 활동하지만, 전 세계 케이팝 팬들이 서명 등을 통해 동참하면서 물결이 퍼져나가고 있다. 지금까지 각국에서 5만 명 이상이 다양한 서명 캠페인에 참여했다고 케이팝포플래닛은 밝혔다. 박진희 씨는 “팬들이 함께 목소리를 내고 변화를 요구하는 게 정말 큰 효능감으로 다가온다”고 말했다. 박 씨는 “콘서트에 갈 때 대중교통을 이용하고, 콘서트장에서 응원봉을 밝힐 때 일회용이 아닌 충전식 배터리를 사용하는 등 일상에서도 최선의 실천을 하려 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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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비뉴스 환경부, 소셜전략팀 김지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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