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시대] 75. 세종시 일회용 컵 보증금제 현장
“다른 카페는 안 받던데, 왜 여기만 300원을 더 받아요?”
지난달 3일 세종시 소담동 세종시청 앞의 한 프랜차이즈(영업권사업) 카페. 무선이어폰을 낀 채로 키오스크(무인주문대)에서 음료를 고르던 20대 남성이 계산대를 향해 물었다.
“우리 매장은 일회용 컵 보증금제를 시행하고 있어서요. 다 마신 컵을 가져오시면 보증금은 돌려드리고 있습니다.”
점주의 설명에 손님은 반환 방법 등 몇 가지를 더 묻더니 결국 주문을 하지 않고 나갔다. 이날 세종시청 부근 16곳의 각기 다른 프랜차이즈 매장을 돌아본 결과, 점주와 소비자 상당수가 일회용 컵 보증금제를 불편해하거나 형평성에 의문을 제기했다. 일부 매장은 ‘일괄적으로 시행되기 전까지는 동참하지 않겠다’며 보이콧(거부)을 선언하기도 해, 제도 정착이 순조롭지 않음을 보여주었다.
‘왜 우리만...’ 보이콧 선언하는 매장도
일회용 컵 보증금제는 재활용이 가능한 일회용 컵의 회수를 촉진하기 위해 지난해 12월부터 제주도와 세종시에 시범 도입된 제도다. 커피·음료·제과제빵·패스트푸드 업종에서 매장 수가 100개 이상인 프랜차이즈 사업자가 대상이다. 지난해 12월 기준 두 지역의 적용 대상 매장 수는 522개다. 보증금제는 2020년 6월 개정된 ‘자원의 절약과 재활용 촉진에 관한 법률’에 근거하고 있다. 시범 운영 매장에서 종이나 플라스틱 일회용 컵에 음료를 사서 나가는 고객은 컵 하나당 300원의 보증금을 내야 한다. 사용한 컵을 구입한 매장이나 동일 프랜차이즈 점포, 혹은 지방자치단체가 설치한 무인회수기에 반납하면 보증금을 돌려받을 수 있다. 일회용품 회수를 늘리는 효과와 함께 일회용품 사용 자체를 줄이겠다는 목적이 있다.
문제는 대형 프랜차이즈 매장만 적용되고 나머지 동종 점포는 제외되기 때문에 적용 매장에서 고객이 빠져나갈 수 있다는 점이다. 세종시청 인근 1킬로미터(km) 이내 커피·음료·제빵·패스트푸드 매장 60곳 가운데 보증금 적용 대상 매장은 16곳뿐이다. 세종시청 앞에서 2층짜리 프랜차이즈 카페를 운영하는 가맹점주는 “보증금 제도를 보이콧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300원 더 받는다고 하면 그냥 나가버린다”며 “안 오면 그만인 정책을 왜 시행하나 싶고, 바로 옆에 떡하니 안 하는 매장들을 보니까 그 필요성을 더욱 느끼지 못하겠다”고 말했다.
적용 대상 매장이 보증금 반환제에 참여하지 않는 경우 법에 따라 지자체의 과태료 처분을 받을 수 있다. 그러나 세종시 측은 계도기간임을 고려해 실제 처분은 하지 않는다고 밝혀, 현재 보이콧에 따른 불이익은 없다.
‘1500원 저가형 커피’ 점주 특히 불만
보증금 제도를 시행 중인 매장과 일반 매장을 카카오맵에서 확인해 보니 세종시청 앞 500미터(m) 이내의 커피·베이커리 매장 27곳 중 14곳은 일회용 컵 보증금제 대상 매장이 아니었다. 제도가 적용되는 매장과 안 되는 매장 사이 거리가 가장 짧은 곳은 약 28m였다. 소비자가 쉽게 다른 선택을 할 수 있다는 얘기다.
동일 업종이 밀집한 상권에서 제도를 선별적으로 시행하다 보니, 특히 저가형 프랜차이즈 커피 매장의 불만이 컸다. ‘1500원 아메리카노’를 내세운 한 프랜차이즈 매장은 “똑같은 소상공인인데 맞은편에선 1500원에 팔고 우리는 1800원에 팔아야 한다”며 “마음이 아프지만 어쩌겠느냐”고 말했다. 그는 “본사가 관리하는 매장이 전국에 천 개쯤 되는데 여기(세종시)에는 해 봤자 서너 개가 전부”라며 “여기 가맹점주들끼리 (보이콧이 필요하다고) 의견을 모아도 본사는 눈 하나 깜짝 안 한다”고 덧붙였다.
점주들은 매장에서 컵에 일일이 붙이는 ‘라벨지’를 두고도 불만의 목소리가 컸다. 보증금 환급을 위해 바코드가 있는 라벨지를 붙여야 하는데, 한 롤(타래)에 30만 원인 라벨지를 구입하는 비용과 배송비, 인건비도 가맹점이 부담해야 한다. 세종시청 앞 T카페의 점주는 “한 롤에 30만 원인데, 배송이 지연될 걸 감안해 넉넉하게 구비하느라 60~90만 원은 일단 쓰고 시작해야 한다”고 말했다.
브랜드 사이 교차반환과 공공 반납처 늘려야
소비자들은 다른 브랜드 컵의 교차반환을 받아주지 않는 매장이 많고, 공공 반납처 수는 적다는 점을 불편사항으로 꼽았다. 공공 반납처는 시청, 정부청사, 주민센터 등 공공시설에 설치된 무인 회수기다. 세종시의 한 카페에서 만난 30대 여성은 “집이 별로 가깝지 않아서 회수를 위해 카페로 다시 나오긴 힘들 것 같다”며 “집 앞에도 회수처가 많이 생기면 편리할 것 같다”고 말했다.
관련법의 시행령 지침상 교차반환도 이뤄져야 하지만, 실제로는 위생문제 등을 들어 타 브랜드 일회용 컵은 회수하지 않는 곳이 대부분이었다. 자원재활용법에 따라 설립된 법인인 자원순환보증금센터의 관계자는 “현재 시행 중인 매장들의 일회용 컵 회수를 독려하기 위해 여러 인센티브제를 검토하고 있다”며 “교차반환을 적극적으로 받고, 회수율이 높은 매장을 대상으로 라벨지 무료배송 등의 혜택을 제공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지난달 기준 세종시의 공공 반납처는 65개소다. 이 중 25곳은 세종시 정부청사 내에 있고, 나머지는 동별로 1개 또는 2개가 있다. 세종시 내에서 인구 밀집도가 가장 높은 새롬동에는 약 4만 명 인구에 회수처가 주민센터 내 한 곳뿐이다. 세종시는 공공 반납처를 확대하기 위해 수요조사를 하고 있으며 자원순환보증센터와 협의 중이라고 밝혔다.
제주에서도 가맹점주 대거 보이콧 선언
올해 1월 기준 제주에서도 카페 3394곳 중 467곳이 일회용 컵 보증금제 대상이었으나 190여 곳이 형평성을 이유로 ‘보이콧’을 선언했다. 제주의 프랜차이즈 점주들은 일반 카페 등과 형평성 문제를 제기하면서 보증금제를 모든 카페로 전면 확대할 것과 공공 반납처를 늘려 줄 것 등을 요구해 왔다. 이에 따라 제주도는 일회용 컵 보증금제 대상 사업자를 확대하는 내용의 조례 제정을 추진하고 있다.
일회용 컵 보증금제를 전국으로 확대 시행하는 일정과 관련해 환경부 자원순환정책과 송관성 기술서기관은 “논의는 계속 있어왔지만, 세종과 제주의 시행성과를 1년 정도 지켜볼 예정”이라며 “개선방안들을 더 논의한 뒤에 전국 시행을 생각해 볼 수 있어서 아직은 구체적인 로드맵이나 전망을 발표하긴 어려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세종시 자원순환과 김민예 팀장은 “소상공인들이 경제적으로 어렵기 때문에 가맹점주들한테 너무 부담을 지우기보다 기업 본사들의 (라벨지 비용 부담 등) 책임분담이 필요하다”고 보완점을 제언했다.
정부는 일회용 컵 보증금 제도 정착을 위해 지난 1월부터 ‘탄소중립포인트제’를 시행 중이다. 일회용 컵을 반환하면 보증금 300원 외에 건당 200원의 포인트를 추가로 지급하는 방식이다. 그러나 환경단체들은 회수율 등 가시적 성과에 치중해 오히려 일회용 컵 사용을 부추길 수 있다는 우려를 제기하고 있다. 김나라 그린피스 플라스틱 캠페이너는 “일회용 컵 보증금 제도가 디딤돌 역할 이상의 환경오염 저감 효과를 크게 기대하기는 어렵다”며 “일회용 컵을 회수함으로써 재활용률을 높이는 것이 아니라 재사용의 기조로 가야 한다”고 말했다.
일회용품 ‘재활용’ 대신 다회용기 ‘재사용’으로 가야
그린피스 등에 따르면 재활용은 일회용으로 사용하고 버려진 것을 가공해서 다른 목적으로 쓰는 것이다. 플라스틱은 한 번 재활용할 때마다 품질이 떨어져 대부분 가치가 낮은 물질로 바뀐다. 반면 재사용은 사용 후 생산자에게 반환되어 원래 의도한 것과 동일한 목적으로 다시 쓰이는 것이다. 예를 들어 텀블러 등 내구성이 강한 제품을 여러 번 사용하는 것을 말한다.
그린피스와 충남대 연구팀이 올해 공동으로 발표한 ‘2023년 플라스틱 대한민국 2.0’ 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2021년 우리나라의 플라스틱 폐기물 재활용률은 약 73%로 유럽연합(EU)의 32.5%(2018년)에 비해 높다. 그러나 EU는 플라스틱의 물성을 변화시키지 않고 다시 플라스틱으로 재가공하는 것만 재활용으로 간주하는 반면 우리나라는 플라스틱의 물성 자체를 바꿔 보조 연료로 쓰는 것까지도 재활용 범주에 포함하고 있다. 이는 사실상 많은 양의 탄소 배출을 전제로 하기 때문에 환경오염 저감효과를 기대하기는 어렵다고 이 보고서는 지적했다. 일회용 컵 보증금제 등으로 플라스틱 컵을 많이 회수해도 국내 재활용 시스템에서는 탄소 절감 효과를 크게 기대하기 어렵다는 얘기다.
환경부에 따르면 프랜차이즈 커피·음료·제빵·패스트푸드 매장에서 2017년~2021년 사용된 일회용 컵은 약 43억 4600만 개다. 플라스틱 컵이 23억 8600만 개, 종이컵이 19억 6000만 개 사용됐다. 일회용 플라스틱 컵 1개를 만들고 폐기하는 데 23그램(g)의 이산화탄소가 배출된다. 종이컵은 11g이다. 5년동안 1회용컵 사용으로 배출된 탄소만 8만 6300톤(t)인 셈이다. 연간으로 환산해도 1만 7000t이 넘는 수치다.
환경부는 보증금제를 통해 회수된 일회용 컵의 재활용 처리 방식을 아직 정하지 못하고 있다. 송관성 서기관은 “시행 초기 단계라 아직 수거된 컵들이 처리 과정에 도달하지 못했다”며 “구체적으로 어떤 방식으로 재활용될지는 아직 논의단계”라고 말했다. 그는 “보증금제를 통해 수거된 컵들은 순도가 높기 때문에 최대한 물성을 바꾸지 않고 재활용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나라 캠페이너는 “우리는 이미 재활용이 플라스틱 오염의 해결책이 아니라는 것을 다양한 통계수치를 통해 알고 있다”며 플라스틱 생산을 더욱 강력하게 규제하고 일회용 플라스틱 사용을 단계적으로 금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런 대책이 도입된다면 ‘많이 쓰고 잘 버리는 것’이 아닌 ‘덜 쓸 수 있는’ 해결책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단비뉴스 환경부, 유튜쁘랜딩팀 강민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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