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시대] 81.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 앞둔 어민 표정
“빠르면 6월, 늦으면 8월쯤에 오염수를 방류한다고 하는데, 방류되고 나면 수산물 판매가 급감할 거예요. 사람들이 안전하지 않은 수산물이라고 먹지 않을 거예요. 그렇게 되면 이 도시는 (주민들이) 다 떠나서 유령의 도시에 가깝게 될 거예요.”
지난 4월 20일 오후 경남 통영시 용남면 화삼리 통영거제환경운동연합 사무실에서 만난 지욱철(58) 씨는 심각한 표정으로 이렇게 말했다. 화삼어촌계장을 맡은 어부이자 통영거제환경운동연합 이사장이기도 한 지 씨는 “마을 사람 대다수가 어업에 종사하고 있어, 수산물 소비가 줄면 다들 어촌을 떠날 것”이라고 말했다. ‘일본 후쿠시마 오염수가 방류되면 국내 수산물 소비가 줄 것’이라고 그가 믿는 데는 근거가 있다. 지난 4월 소비자시민모임이 일반인 525명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92.4%가 ‘방사능 오염수 해양 방출이 시작되면 수산물 소비를 줄일 것’이라고 답했다.
어민들은 해양쓰레기 청소하며 ‘깨끗한 바다’ 지키는데
윤석열 정부와 원자력 업계 등이 ‘탄소배출 없는 원전은 기후위기 대응에 필요한 에너지’라며 원전 확대를 추진하고 있지만, 원전의 가장 근본적 취약점인 ‘중대 사고’의 위험성과 후유증은 후쿠시마 오염수 문제를 통해 재확인되고 있다. 2011년 3월 노심용융(핵연료가 녹아내리는 것)과 수소폭발 사고가 일어난 후쿠시마 원전은 12년이 지난 지금도 사고 원자로를 처리할 방법을 찾지 못한 채, 매일 100톤(t) 넘게 생성되는 방사능 오염수를 대형 물탱크에 모아두고 있다. 일본 정부와 도쿄전력은 고농도 방사성 물질이 섞인 오염수를 다핵종제거설비(ALPS)로 거른 뒤 30년 이상 바다에 방류하겠다고 밝혔다. 환경 관련 전문가와 시민단체, 어민 등은 해양생태계와 국민건강, 수산업에 미칠 피해를 걱정하며 반발하고 있다.
“통영은 바다의 땅이에요. 어릴 때부터 바다에 둘러싸여 살다 보니 바다 생태 환경에 관심을 갖게 됐죠.”
지 씨는 고향인 통영을 1987년에 떠나 원양어선 선원 등으로 일하다 1998년에 돌아와 수산물 유통사업 등을 하며 바다를 지켜왔다. 2012년 통영화력발전소 건설 반대운동을 시작으로 환경운동에 뛰어들었고 2017년 발전소 건립 허가 취소를 끌어냈다. 2014년부터 잘피(바다에서 자라는 속씨식물) 보호 운동을 시작했고, 어촌계장이 된 후엔 주민들과 조를 짜서 해양쓰레기 청소를 하고 있다. 삶의 터전인 바다를 깨끗하게 지키려 노력해 온 주민들은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 소식에 두려움과 불안을 감추지 못했다.
화삼리 선촌마을의 쓰레기 배출장에서 분리수거를 하던 주민 이미자(65) 씨는 “(오염수가 방류되면) 물고기를 못 먹을 것”이라며 “설마 그렇게까지는 안 되겠지”라고 말했다. 일본이 오염수를 방류하지는 않을 거라고 믿는다는 얘기였다. 인근 공장에서 멍게를 닦고 굴 껍데기 까는 일을 하고 있다는 이 씨는 오염수 방류로 수산물 소비가 급감하면 생계수단을 잃을 수도 있는 처지라고 했다.
50년 뱃일 오염수 방류로 잃게 될까 근심
“이 일(뱃일)로 자식들 먹이고 입히고 학교 보내고 다 키웠는 기라. 다른 일 (생각해 본 적) 없다.”
선촌마을에서 물질하러 나가는 해녀를 태우는 광남호의 선장 김장진(71) 씨는 초등학교 졸업 후 50여 년 동안 배를 몰았다. 그는 “오염수가 방류되면 유일한 생계 수단을 잃게 될 것”이라고 걱정했다. 광남호에 탄 해녀 김순선(70) 씨는 스무 살 무렵 해녀로서 ‘물질’을 시작했다. 그는 “이것(물질)만 오로지 해서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살기 때문에, (오염수) 방류를 한다면 우리는 살길이 없다”며 “일본이 오염수 방류를 안 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해녀들에게는 수산물 소비 감소는 물론, 오염수에 섞인 방사성 물질을 바닷물과 함께 마시게 될 위험이 걱정거리다.
같은 배에 탄 남춘옥(68) 씨는 22살 때 제주도에서 통영으로 이주해 물질을 시작했다. 그는 “(물질 아니면) 먹고 살기가 힘들다”며 “다른 일을 배울 수도 없는 나이인데 오염수 방류로 생계수단을 잃을까 봐 걱정”이라고 말했다. 2020년 농림어업총조사 연령별 어가인구 통계에 따르면 통영시의 어가인구 중 30% 이상이 65세 이상 고령층이다.
펜션·낚싯배 영업도 타격 우려
고령층이 아닌 70%의 어민도 생계 걱정을 하는 것은 마찬가지다. 선촌마을의 낚싯배 선주이자 펜션(숙박업) 운영자인 황성현(43) 씨는 “(오염수가 방류되면) 소비자 쪽에서 먼저 (수산물을) 안 사 먹기 시작할 거고, 낚시꾼도 안 오기 시작할 거고, 배를 세울 것”이라며 “모든 생계 수단을 잃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배를 살 때 진 빚을 어떻게 갚아야 할지 걱정했다.
"우리가 사업을 하려면 거의 4억 가까이 대출을 받고 배를 사서 해야 되는데, 뱃값만 7억 정도 하거든요. 그러니까 그냥 죽는 거죠. 대출 이제 못 갚고, 이자 못 내고 하다 보면 경매 넘어가고 그리되는 거죠."
황 씨는 종종 잠수복을 입고 물에 들어가 바다 쓰레기를 처리하거나 배에 감긴 이물질을 제거한다. 이때 바닷물을 마실 수밖에 없는데, 오염수가 방류될 경우 인체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불안하다고 말했다. 그는 “(오염수가 방류되면) 아이들이 바다에 절대 못 들어가게 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다섯 살이 된 아들과 16개월 된 딸에게 나쁜 영향을 줄까 봐, 오염수가 방류되면 육지로 떠날 생각도 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오염수 피해 없다’고 강조하는 여당과 수협
이런 어민들의 걱정과 달리 통영 굴수하식수산업협동조합의 지홍태(77) 조합장은 지난 4월 20일 조합장실에서 진행한 <단비뉴스> 인터뷰에서 “방사능 피해가 없는데 정치적으로, 정쟁적으로 만든다”고 말했다. 그는 후쿠시마 사고 이후 지금까지 방사능 때문에 누가 피해를 보았다는 얘기가 없는데, 오염수 위험을 강조하면 수산물 소비 감소 등으로 어민만 피해를 본다고 지적했다.
여당인 국민의힘도 지난 3월과 4월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토론회 등을 통해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로 인한 국내 영향은 매우 미미하다’는 입장을 거듭 밝혔다. 한무경 국민의힘 의원이 주최한 ‘원전 오염수 방류 영향과 수산물 소비위축 대응방안’ 토론회에서 발제를 맡았던 허균영 경희대 원자력공학과 교수는 지난 2일 단비뉴스 전자우편 인터뷰에서 다핵종제거설비(ALPS)로 걸러지지 않는 방사성 물질과 관련, “삼중수소는 10년 정도의 반감기를 갖기 때문에 시간이 지나면 없어지고 환경영향평가에서 기준치를 하회하기 때문에 안전하다”고 말했다.
같은 토론회에서 ‘과도한 공포가 우리 수산업에 미치는 피해와 대책’을 발표한 강건욱 서울대병원 핵의학과 교수도 지난 2일 단비뉴스 전화 인터뷰에서 “삼중수소가 인체에 위협적이려면 적어도 1000억 베크렐(Bq)은 축적되어야 하는데, 핵무기 제조시설이 아닌 한 일상에서는 존재할 수 없는 수치”라며 방사능 오염수가 위험하지 않다고 밝혔다. 그는 “세슘과 삼중수소는 중금속이 아니기 때문에 체내에 축적되지 않고 배설된다”며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가 생태계와 사람에게 미치는 영향은 거의 없다”고 주장했다.
국내외 보건 전문가들 삼중수소·세슘 위험성 경고
그러나 다른 보건 전문가들은 이런 주장을 반박한다. 백도명(67) 전 서울대 보건대학원장은 지난 4일 단비뉴스 전화 인터뷰에서 “측정을 정확하게 하고 실험 규모를 늘리면 낮은 방사선량 수준에서도 건강 영향의 차이가 나타나는 연구결과가 나오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스위스 전역에서 자연 방사선의 차이가 아이들의 백혈병 발생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한 결과 이를 뒷받침하는 결과가 나왔다고 덧붙였다.
백 교수는 또 “삼중수소가 금속은 아니지만 우리 몸의 유기물과 결합하는 성질이 있다”며 “우리 몸에 필요한 유기물질을 구성하는 탄수화물을 만났을 때, 삼중수소가 체내 유기물과 결합해 축적된다”고 설명했다. 이 경우 인체 세포에 작용해 암, 백혈병이나 유전질환을 일으킬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방사성 물질인 세슘도 먹이사슬을 통해 축적되는 성질이 있기 때문에 인체에 악영향을 줄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지난달 31일 ‘일본 방사성 오염수 시찰단 결과에 대한 전문가 의견 발표 기자간담회’에서도 원자력 학계가 ‘후쿠시마 사고 후 한국 연안 바닷물에서 방사성 물질 농도가 높아지지 않았다’고 주장한 것과 관련, “방사성 물질의 생물학적 농축 문제를 단순히 해수 농도의 변화만으로 평가해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지난 5일 소병훈·이재정 더불어민주당 의원 주최로 열린 ‘후쿠시마 사고 원전 오염수 방류 관련 국제법적 쟁점과 대응 과제 긴급토론회’에서 어니 건더슨 페어윈즈 원자력 수석엔지니어는 “세슘, 스트론튬 등도 오염수에 포함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삼중수소보다 위험성이 큰 방사성 물질이 오염수에 섞여 방류될 가능성을 지적한 것이다. 그는 “다양한 핵종 물질 같은 경우 탱크 바닥에 깔려 있을 수 있는데, 오염수를 방출하게 되면 하단에 깔려 있던 핵물질들도 해상으로 방류된다”고 말했다. 건더슨 엔지니어는 또 “삼중수소가 탄소와 결합해 유기적 탄소라는 물질로 변환되면 수년간 체내에 남아 주변 세포를 손상시키게 된다”고 설명했다.
단비뉴스 환경부, 시사현안팀 박정은입니다.
보이지 않는 사실, 들리지 않는 목소리에 집중해 진실에 다가서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