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인구단: 다이아몬드의 소녀들] ② 첫 남녀 리틀야구 대회, 8강 진출

5회 말, 1아웃 주자 없는 상황. 4번 타자 이교빈(12)이 타석에 들어섰다. 볼카운트 원 스트라이크, 쓰리볼. 교빈의 방망이가 돌았다. ‘땅’ 소리와 함께 더그아웃에 있던 아이들도 환호했다. “와!” 

공은 3루 쪽을 스치듯 지나 외야로 굴렀다. 좌익수가 쫓았지만, 공은 담장을 향해 빠져나갔다. 천안 주니어 여자야구단(이하 천안주니어) 선수들이 더그아웃 밖으로 뛰쳐나왔다. 감독, 코치, 선수들까지 팔을 돌렸다. “돌아! 돌아!” 

이교빈은 1루를 지나 2루로, 다시 3루까지 내달렸다. 상대 수비의 송구는 이미 늦었다. 중계 과정에서 송구 방향도 홈 플레이트를 비껴갔다. 이를 악문 교빈이 홈으로 파고들었다. 심판의 두 팔이 크게 벌어졌다. 솔로 그라운드 홈런이었다.

이미 더그아웃 밖에 나와 있던 아이들은 교빈의 헬멧을 때리며 축하했다. “와! 이교빈 미쳤다!” 얼떨떨하다는 표정의 교빈의 얼굴에서 이내 미소가 피었다. 

9회까지 공수를 주고받는 성인 야구와 달리, 리틀야구 경기는 6회까지만 진행된다. 마지막 6회의 공격과 수비에서 어느 팀도 점수를 올리지 못했다. 교빈의 홈런은 역전 결승점이 됐다. 이날 승리로 천안주니어는 8강에 진출했다. 

경기가 끝난 뒤, 교빈은 기자에게 말했다. “초반에 (경기가 풀리지 않아) 진짜 너무 힘들었는데, 제가 (홈런)쳐서 팀이 이길 수 있어 영광인 것 같습니다.” 천안주니어의 4번 타자는 그제야 활짝 웃었다. “너무 신나서 (홈런 직후엔) 세레머니도 못 했어요!”

지난 15일, 제1회 교원투어배 순수주말반 전국리틀대회 3차전에서 그라운드 홈런을 만든 이교빈(12)이 홈을 밟고 있다. 이교빈의 득점으로 이날 천안 주니어 여자야구단은 2대1 역전승을 거뒀다. 전설 기자
지난 15일, 제1회 교원투어배 순수주말반 전국리틀대회 3차전에서 그라운드 홈런을 만든 이교빈(12)이 홈을 밟고 있다. 이교빈의 득점으로 이날 천안 주니어 여자야구단은 2대1 역전승을 거뒀다. 전설 기자
역전승을 거둔 천안 주니어 여자야구단 선수들이 경기를 끝낸 뒤 환호하고 있다. 전설 기자
역전승을 거둔 천안 주니어 여자야구단 선수들이 경기를 끝낸 뒤 환호하고 있다. 전설 기자

천안 주니어 첫 홈런 타자

지난달 12일, 천안 주니어는 경기도 화성시 화성드림파크경기장에서 열린 ‘제1회 교원투어배 순수주말반 전국리틀대회’에 참가하여 서울 강동구 리틀야구단을 상대로 1차전을 치렀다. 11대1 콜드게임으로 이겼다. 

전국 70여 개 팀이 참가한 이 대회에서 천안 주니어는 최초이자 유일한 ‘여자 단일팀’이었다. ‘리틀야구 역사상 첫 남녀 경기’에서 승리한 천안 주니어는 지난 2일 열린 2차전에서도 서울 서초구 리틀야구단을 접전 끝에 5대 4로 꺾었다. 

2차전과 3차전 모두 수훈갑은 이교빈이었다. 2차전에서 교빈은 5회 말 구원 투수로 마운드에 올라 비록 3점을 내줬지만, 마지막까지 1점 차 리드를 지켰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대단한데, 지난 15일 경기 오산시 리틀야구단과 맞선 3차전에서 결승 홈런까지 쳐낸 것이다. 

지난 15일, 제1회 교원투어배 순수주말반 전국리틀대회 3차전에서 2대1로 역전승한 천안 주니어 선수단이 단체 사진을 찍었다. 앞줄 아래에 이교빈(12)이 가로 누웠다. 위에서 왼쪽 끝은 안영진 감독, 오른쪽 끝은 이현 코치다. 전설 기자
지난 15일, 제1회 교원투어배 순수주말반 전국리틀대회 3차전에서 2대1로 역전승한 천안 주니어 선수단이 단체 사진을 찍었다. 앞줄 아래에 이교빈(12)이 가로 누웠다. 위에서 왼쪽 끝은 안영진 감독, 오른쪽 끝은 이현 코치다. 전설 기자
지난 15일 경기가 끝나고 이교빈(12, 왼쪽)과 이서정(13, 오른쪽)이 포즈를 취하고 있다. 전설 기자
지난 15일 경기가 끝나고 이교빈(12, 왼쪽)과 이서정(13, 오른쪽)이 포즈를 취하고 있다. 전설 기자

교빈의 홈런은 처음이 아니다. 지난 9월 7일 ‘2025 계룡시장기 전국리틀야구대회’에서 외야 담장을 넘기는 홈런을 쳤다. 2023년 5월 창단한 천안 주니어의 모든 경기를 통틀어 팀의 첫 홈런이었다. 이후 다른 선수들이 간간이 그라운드 홈런을 친 적은 있지만, 담장을 넘긴 홈런을 친 선수는 지금까지도 교빈 뿐이다.

어떤 일도 우연히 성취되지 않는다. 홈런 타자의 뒤에는 연습과 훈련이 있었다. 교빈은 집에서도 배팅 훈련을 한다. 이를 지켜보는 아빠와 오빠가 조언한다. 둘 다 사회인야구단 소속의 아마추어 선수다. “배트를 ‘씽’ 돌릴 때마다 아빠랑 오빠한테 계속 자세가 어떤지 조언을 들었어요. (조언에 따라) 저도 공을 끝까지 보고 가볍게 치려고 노력하고요.”

야구가 엄마보다 좋아요 

올해 열두 살, 초등학교 6학년인 교빈은 아주 어릴 때부터 야구를 접했다. 인천에 사는 교빈의 부모는 아이를 데리고 자주 야구장에 갔다. 교빈이 10살이던 2년 전, 사회인야구단 경기에 참가한 아버지는 교빈을 데려가 야구공을 주고받는 ‘캐치볼’을 했다. 이를 지켜보던 사회인야구단 감독이 놀라며 칭찬했다. “공을 잘 던지는구나!” 감독은 어린 교빈에게 ‘리틀 야구단 입단 테스트’를 권했다. 

6살 이교빈이 인천 문학경기장에서 지역 연고 프로야구팀인 SSG 랜더스를 응원하고 있다(왼쪽). 야구를 구경하는 데 그치지 않고 직접 경기에 나선 ‘인천 계양구 리틀야구단’ 선수 시절, 교빈은 10살이 됐다(오른쪽). 이교빈 제공
6살 이교빈이 인천 문학경기장에서 지역 연고 프로야구팀인 SSG 랜더스를 응원하고 있다(왼쪽). 야구를 구경하는 데 그치지 않고 직접 경기에 나선 ‘인천 계양구 리틀야구단’ 선수 시절, 교빈은 10살이 됐다(오른쪽). 이교빈 제공

교빈은 집 근처에 있는 ‘인천 계양구 리틀야구단’에서 테스트를 받고, 입단했다. 눈으로만 봤던 야구를 직접 해보니, 야구가 너무 재밌었다. “저는 야구가 너무너무 좋아요. 엄마보다 더 좋아요.” 기본기를 더 익히려고 몇 달 뒤 ‘SSG 랜더스 야구교실’로 옮겼다. 2년 동안, 교빈은 랜더스 야구교실의 유일한 소녀였다. 

천안 주니어 여자야구단을 만나다

그러던 지난 5월, 경기 광주시에서 열린 ‘2025 여자야구 페스티벌’에 참석했다. 여자 야구 국가대표 선수들이 초등 또는 중고등 여학생들에게 야구의 기본기를 일일 코칭하는 자리였다. 그곳에서 천안 주니어 선수들과 감독님을 처음 만났다. 

“저 같은 여자 선수들이 모여서 (하나의 팀에서) 야구를 같이한다는 게 너무 신기했어요. ‘아, 이 팀은 다 여자 선수니까, 더 편안하게 야구할 수 있겠다’라고 생각했지요.” 오래 고민하지 않고, 지난 8월 천안 주니어 여자야구단에 입단했고, 이후 중심타자로 자리 잡았다. 지난달 2일부터 열린 교원투어배에서 교빈은 매 경기에서 3번 또는 4번 타자로 나섰다.

지난 2일 이교빈(12)이 제1회 교원투어배 순수주말반 전국리틀대회 2차전 경기를 치르기 위해 화성드림파크 경기장에 들어서고 있다. 전설 기자
지난 2일 이교빈(12)이 제1회 교원투어배 순수주말반 전국리틀대회 2차전 경기를 치르기 위해 화성드림파크 경기장에 들어서고 있다. 전설 기자

팀에선 중심타자이지만, 평소에는 학생으로 지낸다. 아직 초등학교 6학년인 교빈은 평일엔 아침 8시에 일어나 8시 30분쯤 학교에 도착한다. 2시 30분까지 수업을 듣고 나면 바로 영어·수학·국어 학원으로 향한다. 오후 5시나 7시쯤 학원이 끝나면 집에 와서 쉰다. 

목요일엔 다르다. 스포츠 아카데미에서 레슨을 받는다. 어깨 힘을 기르고 투구 자세를 다듬는다. 학교, 학원, 그리고 레슨까지 마치면 목요일의 일과는 밤 10시에 끝난다. 그래도 교빈은 목요일을 기다린다. 덕분에 힘도 올라오고, 투구도 좋아졌다. 무엇이 더 좋은지는 아직 헷갈린다. “투수 올라가서 타자들 삼진 잡았을 때가 기뻐요! 아, 아니다. 홈런 쳤을 때가 제일 좋은 것 같아요!”

교빈은 주말도 기다린다. 매주 토요일과 일요일엔 천안 주니어의 훈련이 있다. 이틀에 걸쳐 오후 1시부터 5시까지 모두 함께 훈련한다. 인천에 사는 교빈은 엄마 혼자 운전하거나 엄마 곁에 아빠가 함께 올라탄 차를 타고, 오전 10시에 집을 나선다. 낮 12시, 훈련장이 있는 천안에 도착해 간단히 점심을 먹고 오후 5시까지 훈련한다. 다시 2시간을 이동해 집에 도착한 저녁 7시부터 밀린 숙제를 하고 잠깐 쉰다. 

잠깐 쉴 때도 교빈은 야구를 본다. SSG 랜더스 박성한 선수를 교빈은 좋아한다. 나쁜 공을 쳐 내며 끈질기게 승부하는 박성한 선수의 영상을 찾아 반복하여 본다. 그 일과를 설명하며, 어린 교빈은 아주 어른같이 말했다. “야구는 제 인생의 절반이에요.”  

엄청 오랫동안 야구하고 싶어요

분명한 꿈도 생겼다. “아주, 엄청, 오랫동안 야구를 하는 게 제 목표에요.” 야구 경력 3년 차인 교빈은 더 먼 곳을 보고 있다. “더 열심히 해서 미국 여자프로야구, 거기 무대를 밟아보고 싶어요.” 

내년 봄, 미국여자 프로야구리그(WPBL, Women’s Pro Baseball League)가 출범한다. 1943년부터 1954년까지 한시적으로 운영했던 전미 여자 프로야구 리그(AAGPBL, All-American Girls Professional Baseball League) 이후 70여 년 만에 야구 종주국인 미국에서 여성 프로야구 리그가 부활한 것이다. 일단 4개 팀으로 리그를 시작하지만, 점차 규모를 확대할 것으로 알려졌다. 

WPBL 출범을 앞두고 한국 여자야구 선수 4명도 ‘트라이아웃’(선수 선발을 위한 공개 테스트)을 통과하여, 팀 지명을 기다리고 있다. 이들이 정식으로 WPBL 팀과 계약한다면, 대한민국 최초의 ‘여자 프로 야구선수’가 된다. 국내엔 야구를 직업으로 삼는 여성이 없다. 여자 야구 국가대표팀은 있지만, 이들 모두 사회인 야구단에 소속돼 있다. 

먼 나라에서 들려온 여성프로야구 뉴스를 교빈은 일부러 찾아본다. “이제 열심히 해서, 국가대표가 되고, 거기서 더 열심히 해서 미국에 가는 거죠. 제 꿈이에요.”

관중석엔 여성, 경기장엔 남성

국내에는 야구를 좋아하는 여성이 매우 많다. 야구 티켓 예매 플랫폼인 ‘티켓링크’의 통계를 보면, 지난 8월 기준 2025 프로야구 온라인 예매자의 성별 비율은 남성 42.5%, 여성 57.5%였다. 여성 팬이 남성 팬보다 많지만, 직접 야구하는 사람의 성별을 보면 극단적으로 치우쳐 있다. 대한야구소프트볼협회에 따르면, 2025년 기준 야구 동호회에 선수로 등록한 남성은 1만 6102명이지만, 여성은 1080명이다. 

프로야구 입장권 예매자 가운데는 여성이 많지만, 야구 동호회 선수로 등록한 이들 가운데는 남성이 압도적으로 많다. 그래픽 전설
프로야구 입장권 예매자 가운데는 여성이 많지만, 야구 동호회 선수로 등록한 이들 가운데는 남성이 압도적으로 많다. 그래픽 전설

관중석에 머물지 않고, 경기장으로 내려와 치고 달리고 던지는 교빈의 모습은 그래서 낯설다. 또한, 자연스럽다. 이렇게 좋아하는 야구를 여자라고 못할 이유가 없다. 그런 생각을 교빈만 하는 게 아니다. 천안 주니어의 소녀들 모두 같은 꿈을 꾼다. 

지난 2일 이교빈(12)이 제1회 교원투어배 순수주말반 전국리틀대회 2차전 경기에서 안타를 치고 있다. 전설 기자
지난 2일 이교빈(12)이 제1회 교원투어배 순수주말반 전국리틀대회 2차전 경기에서 안타를 치고 있다. 전설 기자
지난달 12일, 이교빈이 경기 시작 전 천안 주니어 여자야구단 선수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전설 기자
지난달 12일, 이교빈이 경기 시작 전 천안 주니어 여자야구단 선수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전설 기자

소녀들이 천안 주니어에서 뭉친 이유도 닮았다. 프로야구 선수가 되려면, 그 전에 국가대표가 되려면, 중학교와 고등학교에서도 야구를 계속해야 한다. 그런데 여자야구부가 있는 중학교는 전국에 단 한 곳도 없다. 

지금 교빈이 야구를 이어갈 수 있는 유일한 둥지는 천안 주니어 여자야구단이다. 이 둥지를 지키려면 아직 승리가 더 필요하다. 토너먼트에서 3연승을 거둔 천안 주니어는 지난 16일, 8강전을 치렀다. 천안 주니어 소녀들의 경기 결과는 다음 편에 보도한다. 

프로야구 한국 시리즈가 LG의 우승으로 막을 내렸다. 올해 들어 국내 프로야구는 누적 관중 1200만 시대를 열며 역대 최고 흥행을 기록했다. 그 열기 속에서 설 자리를 찾지 못한 이들이 있다. 여성 야구 선수들이다. 국내에는 여성 야구 프로팀도, 실업팀도 없다. 중고등학교 여성 야구팀도 없다. 

변두리에서 여성 야구의 봄을 기다리는 소녀들이 있다. ‘천안 주니어 여자야구단’ 선수들이다. 2023년 창단된 이 팀은 전국에서 유일한 주니어 여자야구단이다. 그들은 1983년 발표된 만화 <공포의 외인구단> 속 주인공을 닮았다. 만화의 외인구단에는 소외된 선수들이 모여 희망과 집념으로 기적을 이룬다. 그들처럼 다이아몬드의 소녀들은 오늘도 공을 던지고, 치고, 달리며 웃는다. <단비뉴스>는 지난 10월부터 천안 주니어 여자야구단의 훈련과 경기를 함께 했다. 느리지만 멈추지 않는 여자야구의 오늘과 내일을 전한다. (편집자 주)

<기사 순서>
① 국내 유일 주니어 여자야구단, 남자팀과 맞붙다
② 천안 주니어 홈런 타자의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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