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시대] 112. 즉석밥 용기 재활용 현황
지난달 17일 충북 제천시 신월동 세명대 후문 부근의 한 원룸 건물 앞 쓰레기 분리배출함. 파란색 대형 플라스틱 수거통에 빈 음료병 등과 함께 하얀색 즉석밥 용기가 여러 개 버려져 있었다. 대부분 깨끗하게 처리된 그릇이었지만, 붉은색 반찬 찌꺼기가 남은 것도 있었다. 지나가던 세명대생 정모(21) 씨는 “즉석밥 용기를 씻어서 플라스틱으로 버리고 있는데, 재활용이 되고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고 말했다. 인근 큰길가에 놓인 50리터(L) 종량제봉투 안에도 즉석밥 용기 여러 개가 일반쓰레기와 함께 담겨 있는 것이 보였다. 전자레인지 등에 바로 데워 먹을 수 있는 즉석밥은 1인 가구 시대의 필수 식량으로 꼽히지만, 연간 수억 개나 팔리는 제품의 빈 용기 재활용이 제대로 되지 않아 탄소배출 감축에 걸림돌이 되고 있다.
복합재질인 즉석밥 용기, 플라스틱 재생원료 순도 낮춰
27일 식품업계에 따르면 씨제이(CJ)제일제당의 ‘햇반’과 ㈜오뚜기의 ‘오뚜기밥’ 등 즉석밥은 회사당 연간 2억~6억 개가량이 판매되고 있다. 폴리프로필렌(PP) 95%, 에틸렌비닐알코올(EVOH) 5%로 구성된 즉석밥 용기는 국내에서 배출되는 플라스틱 쓰레기의 상당량을 차지한다. 국제환경단체 그린피스가 지난 1월 발표한 ‘2023 플라스틱 배출 기업 조사보고서’에 따르면 일주일 동안 2084명이 사용한 일회용 플라스틱 중 생수 등 음료 포장재가 37.6%, 간식류 포장재가 15.3%, 즉석밥과 밀키트 등 가정간편식류 포장재가 14.3% 등이었다.
즉석밥 용기는 원래 5%의 EVOH 성분 때문에 ‘플라스틱 아더(OTHER)’로 분리해서 배출해야 한다. 일반 플라스틱과 섞이면 재생 과정에서 전체 플라스틱 원료의 순도가 낮아지는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실적으로는 철저한 분리가 어려워 다른 플라스틱과 섞어 배출하는 것을 용인하고 있다. 환경부 자원재활용과 강가형 주무관은 <단비뉴스> 전화 인터뷰에서 원칙적으로 ‘플라스틱 아더’끼리 분리 배출해야 하지만, 다른 플라스틱과 섞어 배출해도 재활용이 가능하다는 취지로 설명했다.
즉석밥 제조업체 중 빈 용기를 업사이클링(새활용) 하기 위해 직접 나선 곳도 있다. CJ제일제당은 2022년부터 즉석밥 용기를 별도로 수거·재활용하는 온·오프라인 캠페인을 펼치고 있다. 전국의 아파트 등 공동주택과 각급학교, 주민센터, 편의점 등 1300여 곳에 즉석밥 용기 수거함을 설치했고, 인터넷 CJ몰에서 햇반을 구매한 고객을 대상으로 빈 용기 무료 수거 서비스도 시작했다. 이 회사는 2022년 한 해 동안 약 30만 개의 빈 그릇을 수거해 지역자활센터 등에서 세척한 뒤 두부 운반용 트레이, 음악 공연 응원봉, 가습기 제작 키트 등을 만들었다고 밝혔다. CJ제일제당 이상준 대리는 직접 수거를 시작한 것과 관련해 “순도 높은 단일 물질로 제조한 플라스틱을 모아야 단가가 높아진다는 이유로 재활용 업체들이 선별장에서 즉석밥 용기를 (일반)쓰레기로 버리거나 소각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연간 즉석밥 생산 규모와 비교할 때, 업체가 수거하는 빈 그릇은 극히 일부에 그친다.
빈 용기 새활용 과정에서 일자리 창출 효과도
경남 창원시에 있는 사회적협동조합 마산희망지역자활센터는 CJ와 계약을 맺고 즉석밥 용기 수거 서비스를 하는 곳이다. 이 센터는 창원시 11곳과 부산시 1곳에 즉석밥 용기 수거함을 설치하고, 자활사업장인 ‘행복한 가게’에서 수거와 세척, 분쇄 작업을 하고 있다. 지난 5월 2일 창원시 마산합포구 남성동의 행복한 가게에는 즉석밥 용기를 분쇄한 가루가 담긴 10킬로그램(kg)짜리 포대 20여 개가 쌓여 있었다. 마산희망지역자활센터의 사회복지사 김갑숙 팀장은 “이 가루로 화분을 만드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김 팀장은 사업장에 와 있는 택배 상자 2개를 가리키며 “(즉석밥 용기가 담긴 택배가) 부산에서도 오고 충청북도 진천에서도 온다”고 설명했다. 행복한 가게에는 즉석밥 용기 파쇄기가 설치돼 있다. 여기서 용기 수거 담당 1명, 세척 담당 2명, 파쇄 및 포장 담당 1명이 함께 일하고 있다. 이들은 파쇄한 조각을 관련 업체에 판매해 수익을 낸다고 김 팀장은 덧붙였다. 아직은 미미하지만, 빈 용기 새활용 과정에서 일자리가 생길 수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라고 할 수 있다.
반면 오뚜기는 즉석밥 용기를 별도로 수거하고 있지 않다. 오뚜기 홍보팀 류채희 대리는 “현재 국내에서는 단일 및 다층플라스틱이 재활용 공정을 통해 이미 재사용이 되고 있기 때문에, 별도의 용기 수거 서비스나 수거함 제도를 운영하고 있지 않다”고 말했다. 그는 “다만 소비자의 선호 방법 및 편의성을 고려해 추후 (다른 방안을) 검토하도록 하겠다”고 덧붙였다.
환경단체는 ‘대체 재질 개발’ ‘탈플라스틱’ 요구
환경단체들은 즉석밥 용기의 재활용률을 높이기 위해 단일 재질의 플라스틱으로 만들 것과 생분해성이 높은 대체 재질을 개발할 것 등을 업계에 요구하고 있다. 녹색연합 허승은 녹색산업팀장은 단비뉴스 전화 인터뷰에서 “즉석밥 용기의 재활용률을 높이고 고급 재활용을 하려면 단일 재질이어야 한다”며 식품업체들이 대안을 찾을 것을 촉구했다. 허 팀장은 또 “궁극적으로는 환경에 해가 적은 대체 재질로 전환하는 것이 필요하다”며 “탈(脫)플라스틱, 레스(less)플라스틱을 고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정부가 탈플라스틱으로 전환하는 산업을 지원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이와 관련해 일본에서는 버려진 쌀로 생분해성이 높은 플라스틱인 ‘라이스 레진’을 만들어 즉석밥 용기에 활용하고 있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가 2022년 발간한 ‘일본 식품 패키지 조사보고서’에 따르면 일본 즉석밥 제조업체인 테이블마크는 정미 과정에서 부서져 버려지는 쌀을 배합한 바이오매스 플라스틱을 즉석밥 포장에 적용해 2022년 봄 출시했다.
그러나 오뚜기 홍보팀 박민수 직원은 “우리나라에서는 바이오매스 플라스틱을 기존 플라스틱 포장재에 혼합하는 경우 오히려 재활용성이 저하돼 일반쓰레기로 배출해야 한다”고 말했다. 같은 팀 류채희 대리는 “플라스틱 재활용과 관련해 용기 성형 중에 발생하는 자투리 플라스틱을 재사용하거나, 용기 두께를 감량해 플라스틱 사용 자체를 줄이는 방법 등을 모색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CJ제일제당도 2020년 햇반 용기와 뚜껑의 두께를 기존 제품보다 절반가량 줄인 데 이어, 2021년에는 햇반 용기 제조 과정에서 남은 플라스틱을 재사용하는 기술을 개발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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