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시대] 86. 건물일체형 태양광발전시스템(BIPV) 현주소
지난 5월 30일 오후 충북 청주시 테크노파크의 세종인터내셔널 사무실. 검은색 태양광 패널과 건물 모형, 스리디(3D) 프린터가 곳곳에 놓인 공간에서 사원 6명이 업무에 집중하고 있었다. 조현수(31) 팀장은 책상 위 컴퓨터 화면에 서울 성동구 성수동 지식산업센터 외벽 도면을 띄워놓고 수정 작업에 한창이었다. 지식산업센터는 내년에 시공할 건물이다. 사무실 바닥에 놓인 직육각형 상자 모양의 3D 프린터에서는 흰색과 회색 필라멘트(실 모양의 자재)로 이뤄진 건물 외벽 자재 모형이 ‘슥슥’ 소리를 내며 출력되고 있었다. 이곳은 지붕재, 벽면, 창호 등 건축물의 외피를 태양광 모듈과 일체화한 제품을 개발, 설계, 시공하는 ‘건물일체형 태양광발전시스템’(BIPV) 전문회사다.
건물 외장재와 하나가 된 태양광으로 미관도 개선
BIPV(Building Integrated Photovoltaic)는 기존의 태양광발전시스템에 심미성, 안전성, 내구성 등 건물의 자재 기능을 보완한 제품이다. 일반적인 태양광 발전기는 건물과 분리된 검은색 구조물이어서 보기에 좋지 않고, 태풍이나 지진 등 기후 재난에 취약하다는 평가가 있다. 2018년 경기도 과천 서울대공원의 주차장 태양광 사업이 추진됐을 때, 지역주민들이 잘못된 정보를 바탕으로 ‘건강에 해롭다’고 주장하면서 동시에 ‘흉물스럽다’고 반대해 공사가 결국 무산되기도 했다. 반면 BIPV는 기존 건축 외장재를 대체할 수 있어 미관을 해치지 않고, 별도의 구조물이나 케이블 작업이 필요 없어 경제적으로도 유리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사람 얼굴에 해당하는 건물 외벽 자재는 아무리 성능이 우수해도 시장에서 외면받을 수 있습니다. 건축의 의미를 존중하고 건물과 조화롭게 융화될 방안을 모색하지 않는 한 기술적, 기능적 성공만을 통해서는 신재생에너지의 건축 응용 기술이 성공할 수 없음을 의미합니다.”
김철호(57) 세종인터내셔널 대표의 말이다. 그는 2016년 BIPV 사업을 시작했다. 지구온난화가 뚜렷해지면서 탄소 배출을 줄이는 건축의 필요성이 커질 것으로 판단했다고 한다. 국내에서 정부가 녹색건축물 조성 지원법 등 관련 제도를 손질하고 제로에너지건축물 의무화 로드맵을 발표한 것이 2019년 이후인데, 비교적 빨리 이 시장에 뛰어든 셈이다. 그는 젊은 시절 일본 도쿄에서 건축회사에 다녔던 경험을 살려 2014년 세종인터내셔널을 설립했고, 건축 내외장재 수출입을 하다가 제로에너지건축 사업으로 전환했다고 밝혔다.
콘크리트보다는 5배 비싸고 유리 외장재 비용과는 비슷
기존의 태양광 발전기가 대부분 비슷비슷한 구조와 외형인 반면, 세종인터내셔널의 BIPV는 지붕일체형, 벽면일체형 등으로 다양하다. 예를 들어 인천 남동구 장수동 상가건물에는 지붕일체형 태양광을 설치했고, 서울 강서구 염창동 청년주택에는 외벽일체형 태양광을 설치했다. 건물일체형으로 태양광 패널을 만들기 위해서는 컴퓨터지원설계(CAD)로 만든 도면에 따라 알루미늄으로 벽체나 지붕의 뼈대를 구성한 뒤, 그 안에 태양광 모듈을 접합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BIPV 설치 비용은 유리 외장재 시공비와 거의 비슷해, 평당 150만 원 정도가 든다. 아직 콘크리트 시공보다는 5배가량 비싼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기술발전으로 태양광 패널 비용이 4~5년 전보다 30%가량 낮아졌다고 김 대표는 설명했다. 세계 각국에서 태양광과 풍력 등 재생에너지전력 생산단가는 계속 낮아지고 있다. 국내 BIPV 건축물은 또 지붕형 최대 50%, 벽체형 최대 70% 등 정부 보조금 지원도 받을 수 있다. 세종인터내셔널의 매출은 2021년 약 10억 원에서 지난해 약 20억 원으로 2배가 됐다. 한국건물태양광협회에 따르면 현재 BIPV 모듈 제조사 및 전문 시공사는 각각 10곳 내외로, 대부분 중소기업이다.
건물 부문이 국내 연간 탄소 배출량의 1/4 차지
유엔환경계획(UNEP)에 따르면 2019년 기준으로 건물 및 건설 부문에서 배출하는 이산화탄소량은 10기가이산화탄소톤(GtCO2)으로, 에너지 관련 이산화탄소 배출량 전체의 38%를 차지한다. 건물을 운용하는 데서 배출되는 양(약 28%)과 건설 과정에서 배출하는 양(10%)을 합한 숫자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난방과 취사 등을 위해 국내 건물에서 발생하는 탄소 배출량은 2018년 기준 약 1억8000만 톤(t)이다. 국내 연간 탄소 배출량의 24.7%에 달한다. 국내 탄소 배출량의 4분의 1은 건물 부문에서 발생한다는 뜻이다. 그래서 이명주 명지대 건축학과 교수 등 전문가들은 제로에너지건축물의 보급·확산을 통해 온실가스 고배출 사회에서 저배출 사회로 전환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제로에너지건축물은 단열재, 이중창 등을 적용해 외부로 손실되는 에너지양을 최소화하면서 태양열·지열·풍력 등을 냉·난방에 활용해 화석연료 사용량을 제로(0)에 근접하게 만드는 건물을 말한다.
정부도 2019년 ‘녹색건축물 조성 지원법’ 및 시행령 개정으로 제로에너지건축 인증 의무화를 위한 법적 근거를 마련했다. 국토교통부는 2021년 12월 ‘국토교통 2050 탄소중립 로드맵’을 발표하면서 제로에너지건축물 대상을 확대했다. 올해 1월 1일 이후 공공 건축물은 연면적 500㎡(약 150평) 이상, 공공 공동주택은 30세대 이상이면 제로에너지건축물 인증을 받아야 한다. 내년부터는 민간 공동주택 30세대 이상, 2025년부터는 민간 건축물 연면적 1000㎡(약 300평) 이상으로 인증 대상이 확대된다. 정부는 제로에너지건축 확대를 위해 건축규제 완화, 취득세 감면, 에너지절약 투자비 융자 등의 인센티브도 내걸고 있다.
앞서가는 유럽, 아직 갈 길 먼 한국
BIPV가 적용된 건축물이 처음 등장한 곳은 1991년 독일의 아헨이다. 이후 유럽 여러 나라와 미국 등에서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의 지원 정책과 함께 꾸준히 BIPV 건물이 늘고 있다. 국내에서는 2002년 한 건축자재 전시회에서 이건창호가 BIPV 제품을 소개했고, 2007년 12월 전남 구례의 섬진강어류생태관에 BIPV가 설치됐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세계 BIPV 시장 규모는 2021년 27억 달러(약 3조 5000억 원)에서 2026년 76억 달러(약 9조 8천억 원)로 3배 이상 커질 전망이다. 현재 BIPV 시장은 미국, 유럽을 중심으로 형성되고 있으며 중국, 인도, 호주 등에서 확장되는 추세다.
그러나 한국은 올해 신재생에너지 보급과 관련한 사업 예산이 지난해보다 약 20% 줄었다. 주택지원사업은 2022년 650억 원이 배정됐으나, 2023년은 489억 원만 배정됐다. 건물지원사업은 지난해 785억 4000만 원에서 올해는 611억 7400만 원으로 줄었다.
국내에서 BIPV는 초기 단계라 정부 보조금과 공공부문의 수주가 필요한데, 케이에스(KS)인증제도도 중소기업의 발목을 잡는다. KS인증은 특정 상품이 한국산업표준에 맞는다고 인정하는 제도로, BIPV의 경우 제품 성능평가 기준을 충족하는 것 외에 처음부터 태양광 모듈 생산설비를 갖춰야 받을 수 있다. 김철호 대표는 “중소기업은 처음부터 태양광 모듈 생산설비 일체를 구비하기 어렵다”며 “일정 성능평가(공공 인증기관 시험 결과)를 만족하는 제품은 보조금 지원 대상이 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김 대표 등 중소기업인들은 또 BIPV 공공부문 납품을 위한 조달청 등록 조건도 현실에 맞게 완화해야 한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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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비뉴스 환경부, 소셜전략팀 정대환입니다.
조금씩 천천히 독자에게 스며드는 기자가 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