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시대] 96. 지구적 재난 헤쳐나갈 정치체제 모색

“한반도는 (2070년) 인간이 거주 불가능한 공간에서는 빠져있다고 해도 기후로 인한 재난 스트레스로 고통받을 것이고, 아시아 전체 지역 혹은 다른 지역에서 몰려오는 대규모 난민과 정치적 불안감, 사회적 동요에 시달리게 될 것입니다.”

지난달 16일 서울 용산구 이태원동 ‘지구와사람’ 연구소에서 열린 ‘2023 기후변화 콜로키움’에서 조엘 웨인라이트 미국 오하이오  주립대 교수가 이렇게 말했다. 그는 '기후 리바이어던: 지구적 기후 정치체제의 전망'을 주제로 한 발표에서 2070년을 내다보며 “한반도를 비롯한 북반구 국가들이 ‘살 수 있는 지역’으로 분류된다고 해도, 남반구에서 몰려올 대규모 난민으로 사회적 혼란과 갈등이 벌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웨인라이트 교수는 공저 ‘기후 리바이어던: 지구 미래에 관한 정치이론’ 등을 통해 기후위기 시대의 정치체제를 모색해 주목받았다. 이날 토론회는 경기연구원, 재단법인 지구와사람, 에너지전환포럼이 공동 주최했다. 현장과 줌 화상회의를 통해 50여 명이 참여했다.

2070년 모든 나라, 기후재난 따른 혼란과 갈등 불가피 

조엘 웨인라이트 교수가 ‘2023 기후변화 콜로키움’에서 2070년의 각국 기후 및 재난 상황을 전망하고 있다. 박정은 기자
조엘 웨인라이트 교수가 ‘2023 기후변화 콜로키움’에서 2070년의 각국 기후 및 재난 상황을 전망하고 있다. 박정은 기자

웨인라이트 교수는 지구 평균 온도가 산업화 이전보다 섭씨 2도에서 2.5도가량 높아졌을 때 인간이 생존할 수 있는 지역과 생존할 수 없는 지역을 표시한 지도를 보여주며 발표를 시작했다. 아프리카, 중남미, 아시아의 많은 나라가 ‘그동안의 인류 정착지를 벗어난 지역’이라고 빨갛게 표시돼 있었다. 그는 점선으로 둘러싸인 아시아를 가리키며 “현재 40억 인구가 사는 큰 부분인데, 이 지역 대부분이 인간 정주가 불가능한 환경으로 바뀌게 된다”고 말했다. 이어 “1.5도 미만으로 지구 온도 상승 폭을 제한하기 위해서는 지금부터 매년 12기가톤(Gton) 정도 탄소배출량을 줄여야 하는데, 이것은 불가능해 보일 정도로 어마어마한 양”이라고 말했다.

유엔(UN) 기후변화정부간협의체(IPCC)의 6차 보고서에 따르면 지금의 각국 국가온실가스감축목표(NDC)로는 지구 온도 상승 폭을 1.5도 아래로 억제할 수 없다. 현재 추세로 온실가스 배출이 이어질 경우, 지구 온도는 2100년까지 산업화 이전 대비 3.2도(최소 2.2도~최고 3.5도)가량 상승한다.

유엔(UN) 기후변화정부간협의체(IPCC) 보고서를 바탕으로 영국 경제주간지 이코노미스트(Economist)가 재가공한 그래픽. 지구 곳곳의 인간 정주 여건이 2070년 무렵 어떻게 변할 것인지 전망했다. 조엘 웨인라이트 제공
유엔(UN) 기후변화정부간협의체(IPCC) 보고서를 바탕으로 영국 경제주간지 이코노미스트(Economist)가 재가공한 그래픽. 지구 곳곳의 인간 정주 여건이 2070년 무렵 어떻게 변할 것인지 전망했다. 조엘 웨인라이트 제공

기후위기로 가장 고통받는 것은 대부분 저개발국의 가난한 사람들이지만, 탄소 배출 책임의 대부분은 선진국 부유층에게 있다. 웨인라이트 교수는 “가난한 사람보다 부유한 사람들의 탄소 배출량이 압도적으로 많은 것은 모든 부분에서 항상 동일하게 나타나는 현상”이라고 말했다. 서울에서 부유한 사람들이 부유하지 않은 사람들보다 탄소 배출을 더 많이 하는데, 이는 국가 단위로 봐도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영국 리즈대 앤드루 패닝 박사 등의 연구에 따르면 ‘지구 위험 한계선’을 초과해 배출된 온실가스의 91%는 북반구(선진국)에서 나왔다. 지구 위험 한계선이란 미래 지구를 위해 넘으면 안 되는 지구 환경의 한계선 지표를 말한다.

성장 중심 자본주의 체제에서는 탄소중립 어려워

웨인라이트 교수는 각국이 자본주의 경제구조를 유지하면서 성장을 계속 추구하는 한은 탄소배출을 멈출 수 없다고 지적했다. 그는 “경제가 성장할수록 에너지와 소비 물자는 더 늘어나고, 결국 (탄소)배출량이 늘어난다”며 “이는 분명한 상관관계를 그리고 있다”고 말했다.

이런 주장은 영국의 경제인류학자 제이슨 히켈이 그레타 툰베리 등과 공동 집필한 <기후 책>에서 ‘탈성장’ 담론을 제시한 것과 일맥상통한다. 히켈은 “성장을 지속하면서 에너지와 자원의 사용을 줄여 탄소 배출량을 영(0)으로 만들 수는 없다”며 “모든 경제 부문이 성장해야 한다고 여기는 관점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주장했다. 히켈은 이어 “재생에너지, 대중교통, 의료와 같이 꼭 발전시켜야 할 부문에 집중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청년 기후활동가 등 패널과 토론하는 조엘 웨인라이트 교수. 그는 현재와 같이 성장을 추구하는 자본주의 체제에서는 탄소중립 실현이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박정은 기자
청년 기후활동가 등 패널과 토론하는 조엘 웨인라이트 교수. 그는 현재와 같이 성장을 추구하는 자본주의 체제에서는 탄소중립 실현이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박정은 기자

웨인라이트 교수는 “이산화탄소 배출을 막기 위해 반드시 해야 할 일은 화석에너지 사용을 멈추는 것”이라며 “화석연료를 태우는 주체가 누구인지 알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엑손모빌, 아람코 등 미국과 사우디아라비아의 석유기업을 예로 들었다. 미국의 기후책임연구소(CAI)가 1751년에서 2018년까지 누적된 온실가스 배출량을 기준으로 상위 10개 기업을 집계한 결과를 보면 사우디아라비아 국영 석유기업 사우디아람코와 미국 석유기업 엑손모빌, 셰브런 등이 상위권에 올랐다.

기후정의 구현 위해 글로벌 정치체제 개편해야

웨인라이트 교수는 탄소배출에 책임이 없는 약자가 기후위기의 피해를 집중적으로 당하는 ‘기후불평등’을 해소하고 ‘기후정의’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글로벌 정치체제의 변화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대안으로 ‘자본주의를 거부하고, 기후위기에 관한 정치적 우선권을 특정 권력에 부여하지 않는 체제’인 ‘기후 엑스(X)’를 제시했다. 웨인라이트 교수는 저서(기후 리바이어던)에서 자본주의를 기반으로 하는 ‘기후 리바이어던(괴수)’, 비자본주의 질서를 따르는 ‘기후 마오(마오쩌둥)’, 극우적 성향의 ‘기후 베헤못(괴물)’을 모두 거부하는 ‘이상적인 미지수’로서 ‘기후 X’를 상정했다고 밝혔다. 그는 기후 X가 글로벌 기후정의 운동과 같은 직접 행동과 마르크스주의 좌파와 연대를 구축함으로써 실현될 수 있다고 밝혔다.

웨인라이트 교수 등이 제시한 기후위기 시대의 네 가지 글로벌 정치체제. 저자들은 자본주의를 토대로 미국과 중국이 지구적 협력관계를 구축하는 기후 리바이어던이 가장 가능성이 크지만, 자본주의를 지양하고 뚜렷한 구심점도 없는 ‘기후 X’가 더 바람직한 대안이라고 설명했다. '기후 리바이어던: 지구 미래에 관한 정치 이론' 갈무리
웨인라이트 교수 등이 제시한 기후위기 시대의 네 가지 글로벌 정치체제. 저자들은 자본주의를 토대로 미국과 중국이 지구적 협력관계를 구축하는 기후 리바이어던이 가장 가능성이 크지만, 자본주의를 지양하고 뚜렷한 구심점도 없는 ‘기후 X’가 더 바람직한 대안이라고 설명했다. '기후 리바이어던: 지구 미래에 관한 정치 이론' 갈무리

웨인라이트 교수는 “미국이나 중국, 일부 자본주의 국가(소수 엘리트 그룹)는 기후변화를 이용해서 패권(행성적 주권)을 장악하려 하고 있다”며 “따라서 기후 리바이어던 개념이 결국에는 세계를 바꿀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동시에 미래에는 사회운동이나 시민운동이 계속 일어날 것이기 때문에 기후 X를 포함한 4가지 시나리오가 혼재되어 나타날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는 또 “기후 마오가 아시아에서 부상하는 동안, 극단적인 보수파를 대표하는 기후 베헤못이라는 그룹이 반대쪽에서 기후 리바이어던으로 가는 길을 막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은호 청년기후긴급행동 활동가가 조엘 웨인라이트 교수에게 질문하고 있다. 박정은 기자
이은호 청년기후긴급행동 활동가가 조엘 웨인라이트 교수에게 질문하고 있다. 박정은 기자

이어진 질의응답 시간에 이은호 청년기후긴급행동 활동가는 “기후 X의 개념을 정치와 환경운동 영역에서 적용할 방법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웨인라이트 교수는 “소비자들이 먼저 나서서 (화석연료 제품을) 보이콧(불매운동)하는 것과 근로자들이 시위를 통해 생산을 중단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대규모로 같은 목적을 위해 무언가를 거부하고 함께 참여하는 방식으로 활동하면 경제, 사회의 변화가 일어난다”며 스웨덴 환경운동가 그레타 툰베리의 행동을 예로 들었다.

[기후위기시대] 기사 더보기

① 온실가스 주범 석탄발전소 ‘더 짓는 중’

② '기후우울' 떨치고 '어벤져스'로 나서다

③ 탄소세 부과로 ‘신호’ 줘야 기업 바뀐다

④ 노동·지역경제 배려 ‘정의로운 전환’을

⑤ "석탄발전소 짓는 한국, 리더 아닌 꼰대"

⑥ ‘그린워싱 대신 행동을’ 거센 녹색 함성

⑦ "SMR 등 원전은 기후위기 대안 못 돼"

⑧ “상용화 먼 핵융합, 탄소중립 도움 안 돼”

⑨ “기후위기 극복 의무를 헌법에 넣자”

⑩ 소형모듈원전(SMR) 상용화 가망 없다

⑪ “파이로프로세싱은 과학 아닌 소설”

⑫ 기후재난으로 원전 위험성 더 커진다

⑬ ‘기후 일자리’ ‘탄소국민배당’ 추진을

⑭ 고기 즐기는 너, 기후변화 공범 아니니

⑮ 청소년은 ‘미래’ 아닌 기후재난 ‘당사자’

⑯ 기후 미술관, ‘제로 웨이스트’로 가다

⑰ 쓰레기 줍다 보니 삶이 바뀌더라

⑱ “한국 공적금융이 에너지 전환 걸림돌”

⑲ ‘ESG 경영’ 뒤로 ‘기후행동 봉쇄 소송’

⑳ ‘국민이 처한 위험’ 알리려 당근 쏟았다

㉑ 나는 오늘 옷을 샀다, 기후위기를 샀다

㉒ 시민이 일어나 정부·기업을 움직이자

㉓ 탄소 줄이는 갯벌 메워 공항을 짓다니

㉔ 공장식 축산 줄이고 채식 늘려야 생존

㉕ 경작과 에너지 생산을 ‘하이브리드’로

㉖ 이재명 ‘재생에너지’, 윤석열 ‘원전’ 강조

㉗ 이재명·윤석열도 ‘기후대선’ 동참해야

㉘ ‘할머니가 지킬게, 초록지구’ 119 출동

㉙ 기후변화만큼 핵발전도 위험하다

㉚ ‘주차장 태양광’ 시급한데 조례로 막아

㉛ 채식 급식 확대, 환경교육과 병행 필요

㉜ 지구는 우리가 지킨다, 연구의 힘으로

㉝ 낡은 단독주택이 제로에너지 건물로 깜짝 변신

㉞ 개발에 밀린 무허가 정착민의 ‘생존 연료’

㉟ 난청·진폐 앓아도 떠날 곳 없는 노동자들

㊱ 실종된 ‘기후정치’를 찾습니다

㊲ ‘막장’에서 땀 흘린 이들의 희망은 어디에

㊳ 물 부족은 아프리카에서 끝나지 않는다

㊴ 돌고 돌아 사람 몸속에 쌓이는 플라스틱

㊵ 바이오연료, 전기차로 가는 징검다리 될까

㊶ 왕우렁이가 돕는 쌀농사, 도시농부도 보람

㊷ 취약층 ‘쪄 죽는 사회’ 막으려면

㊸ 속 썩은 배추에 농부 마음도 썩어들어가고

㊹ 탄소흡수 ‘바다숲’ 228곳 조성 후 관리 미흡

㊺ 중·고교 5600여 곳에 환경담당 교사는 41명

㊻ ‘탈석탄법’으로 신규발전소 건설 중단 길 터야

㊼ 강력한 탈탄소 정책과 기후정의 함께 가야

㊽ ‘기후재난, 이대로 살 수 없다’ 역대 최대 인파

㊾ BTS RM의 그 가방, 폐시트와 빗물로 제작a

㊿ 채취량 반으로 줄고 낙석에 생명의 위협도

51. ‘그린워싱’ 고발하다 법정에 선 활동가들

52. 보틀클럽과 리필스테이션이 있는 마을 실험실

53. ‘블루카본’ 갯벌을 신공항으로 덮으려는 정치

54. 애타는 기후 시민, 정부를 법정에 세웠다

55. 기후행동 ‘목적의 정당성’ 인정한 판결에 환호

56. ‘단 한 명이라도…’ 매주 간절하게 올리는 기도

57. 과학자들, '엉터리 근거로 오염수 투기 강행' 비판

58. 농지에서는 농사를, 유휴부지에는 태양광을

59. 호수 위에 뜬 그 꽃잎이 태양광발전소라니

60. 우리 땅 농산물과 천연재료를 고집하는 가게

61. 과학을 부인한 그들, 세계를 위험에 빠트리다

62. 아이들이 안전하게 살아갈 ‘봄’을 만드는 마음

63. 환경을 살리는 선택이 일자리도 만드는 시대

64. 소비 중독 벗고 ‘순환 경제’로 가야 살아남는다

65. 기업 ‘친환경 경영’ 속도 높일 단일법 추진

66. 오염수 방류 임박, 후쿠시마 참사는 ‘진행 중’

67. 쓰레기 안 만드는 생산·유통·소비에 도전하다

68. ‘소·돼지·닭의 복지’도 인간에게 중요하다

69. 늘어나는 대형 산불 '불막이 숲' 등 대책 시급

70. "온실가스 감축 부담을 미래세대에 전가 말라"

71. 한국 온난화 속도는 지구 평균의 2~3배

72. ‘자본 아닌 인간 편에서 탄소중립을’ 거센 함성

73. 커피 찌꺼기도 ‘기후테크’로 저탄소 자원 변신

74. "원전 진흥 기구 IAEA, 결론 정해놓고 조사"

75. 소비자는 ‘불편’ 점주는 ‘고객 이탈’ 불만

76. 공장식 축산 줄이고 동물권도 지키는 대안 

77. '생키호테'와 '계르반테스'는 무엇을 보았나

78. 폐스티로폼으로 지구의 위기를 말하다

79. '녹아내리는 빙하' 춤으로 알리는 사람들

80. ‘그린수소’ ‘멀티콥터 드론’ 아직은 기술개발 중

81. 수산물 타격에 주민 떠나 ‘유령마을’ 될까 걱정

82. 세계녹색당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 반대’ 결의

83. 지구 지키는 농사꾼, 친환경 소비자를 만나다

84. “핵 오염수 해양 투기 말고 육상 저장” 한목소리

85. '입을 옷이 없다'는 그대여

86. ‘보기도 좋은 태양광 건물’ 한국은 아직 걸음마

87. ‘탄소중립’ 질문하는 소비자, 도전하는 농업

88. ‘‘이런 대안 있어요’ 알리려 백 통 넘는 편지를 쓰다

89. 재생에너지 시대 열어가는 기후금융

90. 위성데이터와 인공지능으로 기후재난 대응 

91. 음반 쓰레기 줄이고 그린워싱 잡는 '덕질'

92. 생분해·재생 플라스틱으로 순환경제 열어요

93. 재난 불러온 강자가 약자의 고통 책임져야

94. "알프스 처리 안 한 방사능 오염수가 새고 있다"

95.“지방소멸 대응 정책이 거의 지구소멸 담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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