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시대] ㊼ ‘정의로운 전환’ 법제화 쟁점과 과제 토론회
기후위기를 막기 위해 ‘탈화석연료’ 등을 추진하면 석탄 등 퇴출되는 산업의 노동자와 사업자, 지역주민들은 피해를 보게 된다. 에너지전환 등의 과정에서 기존 이해관계자의 피해를 최소화하고 사회적으로 비용을 분담하자는 것이 ‘정의로운 전환’(Just Transition)의 취지다. 지난 20일 오전 서울 봉래동 한일빌딩 8층 홀에서는 녹색전환연구소 주최로 ‘2022 정의로운 전환 연속 포럼’이 열렸다. 한국과 독일의 전문가들이 정의로운 전환을 위한 법과 제도 개선방안을 논의했다.
독일의 성공적 전환 비결은 ‘모든 이해관계자의 참여’
독일의 기후에너지 연구기관인 아고라 에네르기벤데의 디미트리 페시아 프로그램책임자는 ‘독일 전환부문의 정의로운 전환’을 주제로 첫 발제에 나섰다. 그는 독일의 탈석탄 과정과 정의로운 전환을 위한 법제화 논의를 설명한 뒤 “성공적인 탈석탄의 관건은 석탄산업지역을 지원하기에 충분한 재원과 정치적 의지”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여러 이해관계자들의 타협을 통한 균형과 적절한 규제 및 보상의 제시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페시아 책임자는 독일 석탄산업 전환을 위한 석탄위원회에 각 분야 대표 31명이 참여한 사실을 소개한 뒤 “전환과정에 영향을 받는 모든 이해관계자들이 초기부터 참여해 합의를 도출해내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정필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연구기획위원은 ‘국가와 지방정부의 산업전환/노동전환 법제도 분석과 평가’를 주제로 한 발제에서 정의로운 전환은 강력한 기후위기 대응 정책과 병행되어야만 의미가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실제 정부 정책이 (온실가스)감축 등 기후위기 대응을 빠르고 강하게 하지 않으면 정의로운 전환은 할 필요성도 사라진다”며 “정부 정책에 따라서, 또 시민사회의 의식과 국민들의 지향점이 실제 여기에 맞닿아 있느냐에 따라서 정의로운 전환 자체가 흔들릴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그는 문재인 정부 때 제정한 탄소중립법에 정의로운 전환 관련 조항이 길게 들어가 있으나 새정부의 기후위기 대응 의지가 분명하지 않아 우려스럽다는 뜻을 밝혔다.
사회계층별·지역별 온난화 책임 차이 고려해야
이어진 토론에서 이준서 한국법제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정의로운 전환과 기후정의의 연계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 연구위원은 “탄소중립기본법 상 기후정의란 온실가스 배출에 대한 사회계층별 책임이 다름을 인정하고, 기후위기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모든 이해관계자들이 의사결정과정에 동등하게 참여하며 탄소중립 사회로 이행하는 부담과 녹색 성장의 이익을 공정하게 나누어 사회적, 경제적, 세대 간의 평등을 보장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특히 “온실가스 배출의 지역적 차이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며 “특정 지역에 집중돼 있는 인구와 인프라, 발전원과 같은 차이가 고려되지 않으면 사회계층별 책임의 차이를 인식하는 것만으로는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이정희 한국노동연구원 노사관계연구본부장은 “정의로운 전환을 다룰 때 노동문제를 후순위로 놓고 보는 경향이 있다”며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산업전환 과정에서 노동문제는 시작에서부터 마지막 실질적인 지원이 이루어지는 과정까지 함께 있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산업전환 후의 실직, 재취업, 생계나 주거지원 문제에 관해 적극적인 공적 서비스 지원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이 본부장은 “이 과정에서 견지되어야 할 관점이 일터 민주주의”라며 노동자들이 의사결정에 참여할 권리를 주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본부장은 올해 초부터 단계적으로 폐쇄되고 있는 석탄화력발전소의 사례를 들어 취약계층에게 위험이 집중되는 불평등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발전소가 단계적으로 폐쇄되는 과정에서 정규직은 전원 재배치가 된 반면 협력사나 자회사의 경우 10명 중 1명 가량이 일자리를 잃은 상태라는 것이다. 이 본부장은 2020년 말 직접 전남 여수시에서 조사한 결과를 설명하며 “공적 서비스를 통한 재취업보다 옆집, 삼촌, 형님 이런 방식의 알음알음 서비스가 작동되고 있는 상황이었다”고 말했다.
산업·노동·지역에서 유기적 전환 이뤄야
고재경 경기연구원 선임연구원은 “경기도의 경우 정의로운 전환이 정책적으로 이슈화되어 있지 않다”고 아쉬움을 토로했다. 그는 경기도처럼 석탄발전소가 없고 중소제조기업 비율이 높은 곳에서 정의로운 전환은 탄소중립 이행에 따라 고탄소 업종이 겪는 어려움을 해결하기 위해 기술, 재정, 행정적 지원을 제공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지현영 법무법인 지평 ESG센터 변호사는 기업이 정의로운 전환에 기여해야 하는 이유를 투자자 관점에서 설명했다. 유엔 책임투자원칙(PRI)에 따르면 기업이 노사갈등을 해결하고 양질의 일자리를 보장하면 리스크가 줄어 공급망 안정성을 확보할 수 있고 평판 추락의 위험이 줄어든다. 지 변호사는 또 불평등 심화 방지, 사회불안 해소, 자원의 재분배 측면에서 정의로운 전환을 위한 정부 차원의 정책과 규제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종합토론 좌장을 맡은 이유진 녹색전환연구소 부소장은 “한국은 산업 전환, 노동 전환, 지역 전환이 모두 분리되어 있다”고 걱정했다. 여러 이해관계자들이 함께 논의하는 게 아니라 산업전환 추진위원회와 노동전환 지원단 등 전환을 논의하는 체계가 분야별로 나뉘어 있다며 유기적 연결이 필요함을 강조했다.
[기후위기시대]
단비뉴스 환경부, 시사현안팀 박정은입니다.
보이지 않는 사실, 들리지 않는 목소리에 집중해 진실에 다가서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