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시대] 55 녹색당 활동가 1심 재판서 벌금 감액

포스코의 ‘그린워싱’(위장환경주의)과 산업통상자원부의 안이한 기후정책을 비판하며 국제행사장에서 시위를 벌였던 녹색당 활동가 4명이 약식명령에 불복해 제기한 재판에서 벌금 액수를 줄이는 선고를 받았다. 재판부는 기후위기의 심각성을 감안할 때 활동가들의 시위 목적은 정당하다는 취지로 판시해 ‘기후행동의 정당성을 인정한 첫 판결’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서울중앙지방법원 형사17단독재판부(재판장 허정인)는 지난 11일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 위반 등 혐의로 기소된 녹색당원 4명에게 각각 벌금 200만 원(이은호), 150만 원(이상현), 100만 원(문성웅·김영준)을 선고했다. 이들은 2021년 10월 6일 서울 삼성동 그랜드인터콘티넨탈호텔에서 열린 수소환원제철국제포럼에서 무단으로 단상에 올라 기후위기 대응을 촉구하며 유인물을 배포했다가 약식명령으로 1인당 300만 원의 벌금형을 받았다. 약식명령은 공판절차를 거치지 않고 서면심리만으로 벌금 등을 부과하는 판결이다. 활동가들은 이에 불복해 정식재판을 청구했고, 검사는 약식명령과 같은 액수의 벌금을 구형했다.

약식명령 1200만 원에서 550만 원으로 벌금 줄여

피고인 김영준·문성웅·이상현·이은호 녹색당 기후활동가들과 당원들이 지난 11일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방법원 앞에서 ‘첫 기후재판 승리’를 자축하며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녹색당 제공
피고인 김영준·문성웅·이상현·이은호 씨와 녹색당원들이 지난 11일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방법원 앞에서 ‘첫 기후재판 승리’를 자축하며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녹색당 제공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유엔(UN) 산하 기후변화에관한정부간협의체(IPCC)의 보고서 등을 인용하며 기후변화 추세의 심각성을 인정하고, “기후위기에 실질적으로 대비하자는 피고인들의 주장에 전혀 타당성이 없다고 할 수 없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특히 “기후위기가 티핑포인트(임계점)를 넘어서면 매우 회복하기 어려운 상황에 도달하게 된다는 점을 고려하면 산업계와 정부 차원에서 현재보다 더욱 높은 수준의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는 메시지를 보낸다는 측면에서 목적의 정당성 역시 없다고 볼 수 없다”고 지적했다.

다만 재판부는 녹색당 활동가들이 동원한 수단과 방법의 정당성은 인정하지 않았다. 판결문은 “다른 여러 가지 합법적인 수단들이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그와 같은 행위를 하였다는 점에서 정당행위에 해당한다고 볼 수 없다”고 밝혔다. 활동가들이 1인 시위나 사전등록을 통한 회의 참여 등 다른 수단이 있는데도 무단으로 행사장에 들어가 진행을 방해한 것은 수단과 방법의 상당성, 긴급성 등 위법성 조각의 요건을 갖추지 못했다는 것이다. 녹색당 활동가들은 그동안 재판에서 자신들과 미래세대의 생명권, 환경권, 자유권 등 기본권을 지키기 위해 시위를 했기 때문에 형법 제20조의 정당행위로서 위법성이 없다고 주장했다.

녹색당은 재판 직후 배포한 보도자료에서 벌금이 감액된 것을 강조하며 “이는 한국의 기후불복종 재판 역사상 첫 승리로서, 법정에서 기후위기의 심각성 및 그에 대한 기업의 책임, 그리고 기후위기 심화와 생태학살 책임을 고발하는 직접행동의 정당성이 인정되었다는 것에서 큰 의미가 있다”고 밝혔다. 녹색당을 대리한 이치선 법무법인 해우 변호사는 기자회견에서 “감형이라는 용단을 내려준 재판장님께 깊이 감사드리고 존경을 표한다”고 말했다. 그는 “과연 우리가 이 기후위기를 돌파할 수 있을까, 우리가 다시 안전한 지구에 살 수 있을까 자주 좌절을 느끼는데, 오늘 사법부가 기후위기 상황과 우리의 미래에 대해 깊은 공감을 표했다는 점에서 뜻깊고 역사적인 날이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다른 기후재판에도 긍정적 영향 기대

2021년 10월 6일 ㈜포스코 주최로 열린 수소환원제철국제포럼 행사장에서 이은호 녹색당 활동가가 단상에서 발언하다 행사 관계자들에게 끌려 내려가고 있다. 녹색당 제공
2021년 10월 6일 ㈜포스코 주최로 열린 수소환원제철국제포럼 행사장에서 이은호 녹색당 활동가가 단상에서 발언하다 행사 관계자들에게 끌려 내려가고 있다. 녹색당 제공

녹색당과 환경단체들은 이번 판결이 다른 기후 관련 재판에도 긍정적 영향을 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현재 국내에서는 멸종반란·멸종저항서울의 차랑 등 활동가 6명이 가덕도신공항특별법을 반대하며 더불어민주당의 당사를 점거한 혐의로 기소된 사건과 청년기후긴급행동의 강은빈 공동대표 등이 두산중공업의 그린워싱을 비판하며 사옥 로고에 스프레이를 뿌린 혐의로 기소된 사건의 재판이 진행되고 있다. 또 청소년기후행동·기후위기비상행동·아기기후소송단과 청소년 2명이 정부의 소극적 온실가스 감축 목표가 위헌이라며 제기한 헌법소원도 4건 진행되고 있다.

한편 녹색당 활동가들은 ㈜포스코가 주최한 수소환원제철국제포럼에서 시위를 벌인 이유를 ‘2020년 기준 국내 온실가스 배출량의 13%를 차지하는 포스코가 삼척석탄화력발전소를 건설하는 등 탄소중립 노력에 역행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들은 특히 포스코가 상용화하려면 30여 년이 걸리는 수소환원제철기술을 내세워 그린워싱을 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또 산자부는 기업의 입장을 대변해 정부의 탄소중립 정책이 소극적으로 수립되게 했다고 이들은 비판했다.

[기후위기시대]

① 온실가스 주범 석탄발전소 ‘더 짓는 중’

② '기후우울' 떨치고 '어벤져스'로 나서다

③ 탄소세 부과로 ‘신호’ 줘야 기업 바뀐다

④ 노동·지역경제 배려 ‘정의로운 전환’을

⑤ "석탄발전소 짓는 한국, 리더 아닌 꼰대"

⑥ ‘그린워싱 대신 행동을’ 거센 녹색 함성

⑦ "SMR 등 원전은 기후위기 대안 못 돼"

⑧ “상용화 먼 핵융합, 탄소중립 도움 안 돼”

⑨ “기후위기 극복 의무를 헌법에 넣자”

⑩ 소형모듈원전(SMR) 상용화 가망 없다

⑪ “파이로프로세싱은 과학 아닌 소설”

⑫ 기후재난으로 원전 위험성 더 커진다

⑬ ‘기후 일자리’ ‘탄소국민배당’ 추진을

⑭ 고기 즐기는 너, 기후변화 공범 아니니

⑮ 청소년은 ‘미래’ 아닌 기후재난 ‘당사자’

⑯ 기후 미술관, ‘제로 웨이스트’로 가다

⑰ 쓰레기 줍다 보니 삶이 바뀌더라

⑱ “한국 공적금융이 에너지 전환 걸림돌”

⑲ ‘ESG 경영’ 뒤로 ‘기후행동 봉쇄 소송’

⑳ ‘국민이 처한 위험’ 알리려 당근 쏟았다

㉑ 나는 오늘 옷을 샀다, 기후위기를 샀다

㉒ 시민이 일어나 정부·기업을 움직이자

㉓ 탄소 줄이는 갯벌 메워 공항을 짓다니

㉔ 공장식 축산 줄이고 채식 늘려야 생존

㉕ 경작과 에너지 생산을 ‘하이브리드’로

㉖ 이재명 ‘재생에너지’, 윤석열 ‘원전’ 강조

㉗ 이재명·윤석열도 ‘기후대선’ 동참해야

㉘ ‘할머니가 지킬게, 초록지구’ 119 출동

㉙ 기후변화만큼 핵발전도 위험하다

㉚ ‘주차장 태양광’ 시급한데 조례로 막아

㉛ 채식 급식 확대, 환경교육과 병행 필요

㉜ 지구는 우리가 지킨다, 연구의 힘으로

㉝ 낡은 단독주택이 제로에너지 건물로 깜짝 변신

㉞ 개발에 밀린 무허가 정착민의 ‘생존 연료’

㉟ 난청·진폐 앓아도 떠날 곳 없는 노동자들

㊱ 실종된 ‘기후정치’를 찾습니다

㊲ ‘막장’에서 땀 흘린 이들의 희망은 어디에

㊳ 물 부족은 아프리카에서 끝나지 않는다

㊴ 돌고 돌아 사람 몸속에 쌓이는 플라스틱

㊵ 바이오연료, 전기차로 가는 징검다리 될까

㊶ 왕우렁이가 돕는 쌀농사, 도시농부도 보람

㊷ 취약층 ‘쪄 죽는 사회’ 막으려면

㊸ 속 썩은 배추에 농부 마음도 썩어들어가고

㊹ 탄소흡수 ‘바다숲’ 228곳 조성 후 관리 미흡

㊺ 중·고교 5600여 곳에 환경담당 교사는 41명

㊻ ‘탈석탄법’으로 신규발전소 건설 중단 길 터야

㊼ 강력한 탈탄소 정책과 기후정의 함께 가야

㊽ ‘기후재난, 이대로 살 수 없다’ 역대 최대 인파

㊾ BTS RM의 그 가방, 폐시트와 빗물로 제작

㊿ 채취량 반으로 줄고 낙석에 생명의 위협도

51 ‘그린워싱’ 고발하다 법정에 선 활동가들

52 보틀클럽과 리필스테이션이 있는 마을 실험실

53 ‘블루카본’ 갯벌을 신공항으로 덮으려는 정치

54 애타는 기후 시민, 정부를 법정에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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