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시대] 52 청년 협동조합 겸 친환경 카페 이공

지난 10월 22일 광주광역시 광산구 송정5일시장 부근의 카페 이공. 테이블 7개가 놓인 아담한 공간에서 손님 대여섯 명이 각자 텀블러에 든 음료를 마시며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개방형 주방에서 직원 2명이 음료 준비 등에 열중하는 동안 바로 옆 세미나실에서는 안유진(29) 이사가 다음 날 열릴 ‘지구농장터’ 행사에 쓸 현수막을 만들고 있었다. 카페 운영을 맡고 있는 안 이사는 기자에게 “이공은 기후위기시대에 대안적인 공간”이라고 말했다.

이공은 마을 청년들의 협동조합이자 기후위기에 대응하는 카페다. 한 달에 4~5번 시민·학생을 대상으로 기후위기 주제의 강좌를 열고, 하루 30명가량 찾아오는 고객들에게 ‘쓰레기를 만들지 않는’(제로웨이스트) 판매 서비스를 제공한다. 단순히 음료를 파는 곳을 넘어 ‘기후정의’라는 가치를 지향하는 공간이라고 카페 운영진은 자부한다.

기후위기 교육과 제로웨이스트 판매가 이뤄지는 공간

광주시 광산구 송정마을시장 인근에 있는 카페 이공의 외관. 조성우 기자
광주시 광산구 송정마을시장 인근에 있는 카페 이공의 외관. 조성우 기자

이공 사람들은 이곳을 ‘기후위기 실험실’이라고 생각한다. 친환경 카페를 지향하는 이공은 우선 모든 메뉴를 비건식(완전채식)으로 제공한다. 우유 대신 두유를 사용하고, 동물성 재료를 피하려 크림을 쓰지 않는다. 음료에 들어가는 시럽과 청도 식물성 재료를 써서 직접 만든다. 지금은 일손 부족으로 잠시 중단하고 있지만 지난 4월까지는 비건을 위한 식사도 제공했다.

이공에는 일회용품이 없다. 플라스틱 컵은 물론이고 종이 냅킨도 쓰지 않는다. 음료 포장을 원하는데 개인 용기를 갖고 오지 않은 손님에게는 ‘보틀클럽 도서관’ 프로그램을 이용하라고 안내한다. 가게 텀블러를 빌려주는 것이다. 카페 한쪽에 마련된 텀블러 장에서 마음에 드는 용기를 골라 대여 카드를 쓰고 음료를 담아가면 된다.

텀블러 보증금은 받지 않으며 대여와 반납을 10번 하면 아메리카노 커피 1잔을 무료로 준다. 텀블러는 기부를 받아 충당한다. 지난 9월에는 손님 33명이 총 59개의 텀블러를 대여한 것으로 집계됐다. 안 이사는 “일회용품 없는 카페라는 걸 모르고 오는 손님이 더 많지만, 이공이 지향하는 가치를 설명해드리면 흔쾌히 텀블러 대여 시스템을 이용한다”고 설명했다.

텀블러 장 아래에선 ‘리필스테이션’이 운영되고 있다. 고객이 개인 용기를 가져오면 세제·화장품·먹거리 등의 내용물을 판매한다. 플라스틱 용기 사용을 줄이려는 목적이다. 주방세제, 샴푸, 베이킹소다, 츄러스, 크래커, 찻잎 등 다양한 품목이 있다.

음료 포장을 원하는 고객에게 텀블러를 빌려주는 보틀클럽과 용기를 가져오면 내용물을 채워서 판매하는 리필스테이션. 조성우 기자
음료 포장을 원하는 고객에게 텀블러를 빌려주는 보틀클럽과 용기를 가져오면 내용물을 채워서 판매하는 리필스테이션. 조성우 기자

카페 바깥 화단에는 텃밭을 만들어 직접 작물을 키우는 ‘1인분의 텃밭’도 운영되고 있다. 흙을 밟을 일 없는 도시에서 작은 텃밭을 직접 운영해보자는 생각에서 시작됐다. 나무 상자를 모아 만든 화단에서 고사리나 토마토 등의 작물을 키운다. 이렇게 기른 작물은 카페에서 식음료의 재료로 쓰이기도 한다.

지구를 살리는 농부들의 장터에서 실속 거래

지난 10월 23일 카페 이공은 장터가 됐다. 지구를 구하는 농부들의 장터라는 뜻으로 ‘지구농장터’가 열린 것이다. 광주와 전남 지역 소농들이 직접 재배한 농작물을 가져와 판매하는 ‘로컬푸드 마켓’이었다. 지구농장터는 송정마을오일장이 서는 날이 일요일일 때 함께 열리는데, 한 달에 1~2회꼴이다. 한 번에 보통 4~5개 농가가 참여한다.

이 행사를 기획한 농부 김영대(42) 씨는 “우리 같은 소농들은 생산량이 지속적이거나 일정하지 못해 식당이나 백화점에 유통하기 어렵다”며 “농작물을 팔 수 있는 작은 장터가 필요했다”고 말했다. 김 씨는 이날 직접 기른 홍로 사과와 대봉감, 햇볕에 말린 대추를 팔았다. 장터에서 파는 농산물은 갓 수확해 신선하고, 중간 유통을 거치지 않아 일반 상점보다 저렴하다.

이날 장터에는 총 11개의 부스(천막)가 설치됐다. 농작물뿐 아니라 음식, 친환경 도구 등 다양한 상품을 기획한 판매자들이 참여했다. 프리랜서 김진아(32) 씨가 팝업 레스토랑(일일식당) ‘내 식탁 위의 얼굴들’을 차려, 직접 수확했거나 농부로부터 직접 구매한 농산물로 만든 음식을 판매했다. 재료의 원산지와 작물을 기른 농부의 이름을 사전에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알렸기 때문에 손님은 생산자와 유통 과정을 알고 구매할 수 있다. 이날 메뉴는 모두 비건식으로, ‘얼굴있는밥상’과 ‘얼굴있는간식’이 제공됐다.

전남의 초중고에서 국악예술 강사로 일하는 엄애란(52) 씨는 부스 ‘달팽이텃밭’에서 수제 조청과 식혜를 판매했다. 엄 씨는 “(땅을) 1천 평 정도 임대해 농사를 시작한 지 2년 정도 됐다”며 “농사를 본업으로 바꿔보려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비료와 농약을 쓰지 않는 자연농을 한다. 엄 씨는 “지구에 탄소를 줄여야 하는 상황이라 (자연농으로) 동참하고 있다”며 “자연농은 탄소 배출을 줄이고 자연 본연의 맛을 살릴 수도 있지만, 기계를 쓰지 않아 손이 많이 간다”고 설명했다.

지구농장터에서 농산물을 사고파는 사람들과 로컬푸드로 만든 비건 식탁, 자연농 수확물로 만든 엄애란 씨의 판매품, 농부 김영대 씨의 대봉감. 조성우 기자
지구농장터에서 농산물을 사고파는 사람들과 로컬푸드로 만든 비건 식탁, 자연농 수확물로 만든 엄애란 씨의 판매품, 농부 김영대 씨의 대봉감. 조성우 기자

지구농장터의 기획자 김영대 씨는 광주 무등산 중턱에서 산지형 다랑논(계단식 논밭)을 경작한다. 이 논은 퇴비와 농약을 사용하지 않는 생태적 방식으로 경작한다고 한다. 비료를 쓰지 않고 땅을 재생시켜 토양의 탄소 포집력을 키우는 것이라고 김 씨는 설명했다. 그는 “소농들이 탄소 중립을 실천하면서 농사를 짓기 위해선 경제적 자급도 중요하다”며 “아직은 수익성이 부족하지만, 기후위기에 새로운 전환을 꿈꾸는 사람들이 (장터에서) 서로 만나는 의미도 크다”고 말했다.

전남 나주시에서 구매를 위해 온 회사원 유경미(53) 씨는 “어디서 생산됐는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무슨 마음으로 만들었는지를 알 수 있어서 좋았다”며 “직접 기르거나 만든 분들이 판매도 하니까 굉장히 믿음이 갔다”고 말했다. 그는 “지역 주민은 아니지만 지인 덕분에 (지구농장터를) 알게 됐다”며 “환경과 관련한 활동은 지속하기가 힘든데, 지역에 비슷한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있으면 서로 정보도 얻고 힘을 줄 수도 있을 것 같다”고 덧붙였다.

협동조합 이공(異空)에서 카페 이공(利空)까지

송정마을카페이공은 기후위기대응 공간이자 주민참여플랫폼을 지향한다. 조성우 기자
송정마을카페이공은 기후위기대응 공간이자 주민참여플랫폼을 지향한다. 조성우 기자

카페 이공의 이세형(43) 대표는 지난 10월 <단비뉴스> 전자우편 인터뷰에서 “이공은 한 명의 시민이 기후위기시대에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는지 도움을 주는 곳”이라고 말했다. 광주 출신인 그는 타지 생활을 하다 12년 만인 2013년 고향에 돌아왔고, 2014년 광산구 공익활동지원센터에서 마을공동체팀장으로 일했다. 그러다 2016년 청년주거독립을 추진하는 협동조합 이공을 설립했고 쉐어하우스도 2호점까지 운영했다. 그는 대학 졸업 후 서울의 한 출판사에서 일하며 큰 외로움을 느꼈는데, 29살 무렵 법륜스님이 이끄는 수행공동체 정토회에서 5년간 지내며 공동체 생활의 즐거움을 알게 됐다고 한다. 그래서 광주로 돌아왔을 때 청년과 마을에 도움이 될 수 있는 협동조합을 만들었다.

그는 2017년 마을 청년들이 주축이 된 청년 플랫폼으로 카페 이공을 만들었다. 초기엔 전시를 하거나 광주 지역 독립영화를 상영하는 등 주로 문화와 교육에 관한 행사를 기획했다. 그러다 2019년 이 대표가 제로웨이스트 개념을 접한 후 본격적으로 기후위기에 대응하는 활동에 초점을 맞추게 됐다. 2020년 제로웨이스트 팝업스토어(임시매장)를 2달 동안 진행했고, 이듬해인 2021년 1월에는 정식으로 제로웨이스트샵을 열었다.

“2016년 이공(異空)은 ‘이상한 공간’의 줄임말로 서로 다른 꿈들을 공유하는 공간이라는 의미였어요. 청년들의 일터와 삶터, 놀이터와 배움터를 만들고 그들의 꿈을 지지하고 응원하는 공동체를 지향했어요. 2021년에는 이공의 시즌 2인 지구와 나에게 이로운 공간, 이공(利空) 시대를 열었습니다. 이공은 기후위기 시대 ‘뭐라도 하고자 하는’ 분들에게 안내자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기후위기에 대응하는 공동체 늘어나는 추세

은평전환마을의 퍼머컬처 텃밭. 은평전환마을 페이스북
은평전환마을의 퍼머컬처 텃밭. 은평전환마을 페이스북

카페 이공처럼 기후위기에 대응하는 지역공동체들이 속속 늘어나고 있다. 서울 은평구에서는 2014년 여러 시민단체와 환경모임들이 모여 ‘전환마을은평’ 프로젝트가 시작됐다. 전환마을은평은 퍼머컬처(지속가능한 농업)를 적용한 농법으로 직접 농산물을 생산한다. 또 로컬푸드 식당인 밥풀꽃을 운영하고 있다. 가지와 참외, 토마토 등 직접 기른 작물은 마을 안에서 생산과 소비가 이뤄져 탄소배출 감축과 지역 경제 활성화에 기여하고 있다.

에너지전환으로 초점을 돌리면 기후위기에 대응하는 지역공동체는 훨씬 더 많다. 기후위기대응을 목표로 2014년 출범한 전국시민발전협동조합연합회는 시민참여 에너지협동조합의 모임이다. 2012년 안산시민햇빛발전협동조합의 1호 발전소 설립을 시작으로 생겨난 77개의 협동조합은 시민참여형 재생에너지 발전소를 계속 늘려가고 있다. 또 탈석탄·탈원전의 필요성을 알리는 등 재생에너지 확대를 위한 정책 제안과 교육홍보 활동도 함께하고 있다.

한서대 동양고전연구소 이나미 연구위원의 논문 ‘기후변화로 인한 사회적 위기와 공동체의 대응’(2015)에 따르면 지역 공동체는 기후위기 대응에 중요한 단위가 될 수 있다. 논문에 따르면 위기를 맞이한 사회에는 개인화와 무력감 증가, 불평등 심화, 갈등 증대가 나타날 수 있다. 이런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국가의 노력도 필요하지만, 사람들 간의 신뢰 및 공동체 회복과 민주주의가 중요하다. 공동체 형성이 기후위기에 맞설 효과적 방법의 하나라는 것이다.

이공은 다양한 시도로 지역 공동체의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지만, 수익성을 확보하는 데는 아직 어려움을 겪고 있다. 매출은 꾸준하지만 다양한 프로그램을 시도하면서 직원 4명의 인건비 등 고정비가 늘어나는 상황이다. 광산구 소유의 건물을 임대해 사용하기 때문에 연간 1천만 원에 이르는 임대료를 내는 것도 부담스럽다고 한다.

그래도 이 대표는 지역의 ‘기후시민’을 양성해 작은 변화를 만들어가는 목표를 계속 추구하겠다고 말했다. 그는 “기후시민은 기후위기 문제의 심각성을 잘 알고 생활에서 실천하는 사람을 일컫는데, 카페 이공은 지역의 공동체로서 기후시민에게 꾸준히 방향을 제시해주는 곳”이라고 말했다. 그는 내년부터 기후시민을 위한 프로그램을 더 다양하게 기획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기후위기시대]

① 온실가스 주범 석탄발전소 ‘더 짓는 중’

② '기후우울' 떨치고 '어벤져스'로 나서다

③ 탄소세 부과로 ‘신호’ 줘야 기업 바뀐다

④ 노동·지역경제 배려 ‘정의로운 전환’을

⑤ "석탄발전소 짓는 한국, 리더 아닌 꼰대"

⑥ ‘그린워싱 대신 행동을’ 거센 녹색 함성

⑦ "SMR 등 원전은 기후위기 대안 못 돼"

⑧ “상용화 먼 핵융합, 탄소중립 도움 안 돼”

⑨ “기후위기 극복 의무를 헌법에 넣자”

⑩ 소형모듈원전(SMR) 상용화 가망 없다

⑪ “파이로프로세싱은 과학 아닌 소설”

⑫ 기후재난으로 원전 위험성 더 커진다

⑬ ‘기후 일자리’ ‘탄소국민배당’ 추진을

⑭ 고기 즐기는 너, 기후변화 공범 아니니

⑮ 청소년은 ‘미래’ 아닌 기후재난 ‘당사자’

⑯ 기후 미술관, ‘제로 웨이스트’로 가다

⑰ 쓰레기 줍다 보니 삶이 바뀌더라

⑱ “한국 공적금융이 에너지 전환 걸림돌”

⑲ ‘ESG 경영’ 뒤로 ‘기후행동 봉쇄 소송’

⑳ ‘국민이 처한 위험’ 알리려 당근 쏟았다

㉑ 나는 오늘 옷을 샀다, 기후위기를 샀다

㉒ 시민이 일어나 정부·기업을 움직이자

㉓ 탄소 줄이는 갯벌 메워 공항을 짓다니

㉔ 공장식 축산 줄이고 채식 늘려야 생존

㉕ 경작과 에너지 생산을 ‘하이브리드’로

㉖ 이재명 ‘재생에너지’, 윤석열 ‘원전’ 강조

㉗ 이재명·윤석열도 ‘기후대선’ 동참해야

㉘ ‘할머니가 지킬게, 초록지구’ 119 출동

㉙ 기후변화만큼 핵발전도 위험하다

㉚ ‘주차장 태양광’ 시급한데 조례로 막아

㉛ 채식 급식 확대, 환경교육과 병행 필요

㉜ 지구는 우리가 지킨다, 연구의 힘으로

㉝ 낡은 단독주택이 제로에너지 건물로 깜짝 변신

㉞ 개발에 밀린 무허가 정착민의 ‘생존 연료’

㉟ 난청·진폐 앓아도 떠날 곳 없는 노동자들

㊱ 실종된 ‘기후정치’를 찾습니다

㊲ ‘막장’에서 땀 흘린 이들의 희망은 어디에

㊳ 물 부족은 아프리카에서 끝나지 않는다

㊴ 돌고 돌아 사람 몸속에 쌓이는 플라스틱

㊵ 바이오연료, 전기차로 가는 징검다리 될까

㊶ 왕우렁이가 돕는 쌀농사, 도시농부도 보람

㊷ 취약층 ‘쪄 죽는 사회’ 막으려면

㊸ 속 썩은 배추에 농부 마음도 썩어들어가고

㊹ 탄소흡수 ‘바다숲’ 228곳 조성 후 관리 미흡

㊺ 중·고교 5600여 곳에 환경담당 교사는 41명

㊻ ‘탈석탄법’으로 신규발전소 건설 중단 길 터야

㊼ 강력한 탈탄소 정책과 기후정의 함께 가야

‘기후재난, 이대로 살 수 없다’ 역대 최대 인파

㊾ BTS RM의 그 가방, 폐시트와 빗물로 제작

㊿ 채취량 반으로 줄고 낙석에 생명의 위협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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