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시대] 78. 예술가의 기후행동 ② 제천 조형작가 전창환
충북 제천시 강저로 9안길. 지도 앱에서는 위치가 검색되지 않아, 도로명 표지판을 보고 어렵사리 찾아간 들판 한가운데 소형 트럭 크기의 달팽이 모양 조형물이 눈에 띄었다. 그 뒤로 철제 셔터가 달린 차고형 건물이 자리하고 있다. ‘꽃팽이’라는 이름의 조형물이 수문장처럼 지키는 건물이 ‘전창환 조형연구소’였다. 폐스티로폼으로 만든 조형 작품으로 기후위기를 경고하는 전창환(55) 작가를 지난달 4일 이곳에서 만났다.
제천 의림지 역사박물관에서 ‘1.5℃의 눈물’ 전시회
작업실 내부에는 4월 11일부터 6월 25일까지 제천시 모산동 의림지 역사박물관에서 ‘1.5℃의 눈물’이라는 제목으로 열리는 그의 작품 전시회 포스터가 붙어있었다. ‘1.5℃의 눈물’은 2008년 문화방송(MBC)에서 제작한 다큐멘터리 ‘북극의 눈물’에서 빌려 온 이름으로, 산업화 이전보다 지구 평균온도가 1.5도 이상 오르면 파국을 맞을 수 있다는 경고가 담겼다.
서른 평 남짓한 작업실에서 그가 움직일 수 있는 공간은 열 평이 채 되지 않았다. 각각 사람 한 명 크기 이상인 작품 수십 점이 자리를 차지해서다. 또 건축 자재와 스티로폼 등 작업 재료와 날카로운 톱, 공사용 본드 등이 곳곳에 놓여 있어 미술 작업실보다는 공사장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는 전시가 끝난 뒤에도 작품을 버리거나 처분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제 거의 포화상태죠. 불편하진 않은데 현실적으로 계속 다른 작품들을 못 만드는 게 문제네요. 얘들을 어디 두겠어요, 그냥 같이 지내야죠.”
이 작품들은 모두 현재 제천 역사박물관에서 관람객을 만나고 있다.
30여 년 전 처음 환경문제에 주목
홍익대학교 조소과 88학번인 그는 4학년 때 설치미술 수업을 듣다가 환경문제에 주목하게 됐다고 한다. 당시 수업의 주제가 환경이었는데, 환경을 주제로 설치미술 작품을 만드는 것이 과제였다. 그는 ‘치부를 드러내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작품에서 환경과 관련한 치부를 드러내야 인식이 분명해지고, 그래야 개선이 가능해진다고 믿었다. 그때 생각한 주제가 프레온가스였다.
“당시에 가장 이슈가 됐던 게 오존층 파괴였어요. 그 주범이 프레온가스였죠. (냉장고 등의) 냉매로 쓰이는 거요. 그때부터 고물상 냉장고를 눈여겨보기 시작했어요. 그리고 어떤 식으로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을까 계속 고민했죠.”
프레온 가스는 1997년 몬트리올 의정서(오존층 보존을 위한 국제협약)에서 지구 오존층 파괴 원인의 하나로 지목됐다. 이후 전 세계적인 규제 조처가 도입됐다. 그는 고물상에서 1만 원에 구한 냉장고의 문짝을 뜯고, 안에 형광등 하나를 달았다. 겉에는 유리판을 붙여 이슬이 맺히는 모습이 잘 보이게 만들었다. 냉장고 내,외부의 온도 차를 시각화하려는 의도였다. 동시에 냉기를 만들기 위해 뜨거워지는 냉장고 뒤 방열판을 함께 보여줬다. 단순해 보였지만 분명한 기후 메시지를 담고 있었다. 그의 첫 환경작품의 제목은 ‘따뜻한 방’이었다.
“여름에 시원해지려고 에어컨을 계속 틀잖아요. 그걸 위해서 전기를 생산하는 석탄을 계속 쓰고, 지구는 더 뜨거워지고. 좁은 방안은 시원해지는데 바깥은 자꾸만 더워져요. 저는 일찍부터 지구온난화가 결코 가벼운 문제가 아니라는 생각을 했어요.”
버려지고 부서진 스티로폼을 본드로 이어 붙인 작품
‘따뜻한 방’으로 환경에 관한 문제의식을 표현했지만, 그가 본격적인 작품활동을 시작한 것은 6~7년 전이다. 대학을 졸업한 뒤 생계를 위해 홍익대 앞에서 입시 미술을 가르치고, 예술고등학교에서 강사로 일하기도 했다. 그러다 미뤄두었던 작가의 꿈을 좇기 위해 서울 생활을 정리하고 제천에 정착했다. 충북 단양에서 태어난 그는 제천에서 고등학교 시절을 보냈다. 제천은 작업실을 구하고 운영하는 경비가 서울과 비교할 수 없이 적다는 게 중요한 이유 중 하나였다. 본격적으로 작품활동에 집중하면서, 2021년 대한민국환경생태미술대전에서 대상(환경부장관상)을 받았고, 지난해에는 홍익조각동문회가 주는 창작지원작가상에 선정되기도 했다.
그의 작품은 ‘재활용’과 ‘탄소중립’을 철저히 지향한다. 환경보호, 탄소중립을 말하는 전시를 하면서 쓰레기를 많이 만들어 낼 수 없다는 게 그의 철학이다. 실제 우리나라 국공립 미술관에서 전시를 하면 1회당 평균 20톤(t) 분량의 폐기물이 나온다고 한다. 전시장의 가벽으로 쓴 석고보드나 합판, 전시 설명란을 만들 때 쓰는 플라스틱 등이 버려지기 때문이다.
“전공이 이쪽이다 보니 주변에 조각이나 조형을 하는 사람들을 많이 봐왔어요. 전시 같은 걸 하고 나면 쓰레기가 정말 많이 나옵니다. 나는 기본적으로 그런 것들을 경계하는 건데, 오히려 쓰레기를 만들어 내는 전시를 하고 싶지는 않아요.”
전 작가의 작품에는 모두 갈색, 초록색의 선들이 보인다. 서로 다른 크기의 스티로폼을 이어 붙인 본드 자국이다. 그가 쓰는 스티로폼은 모두 버려졌던 것이라, 크기와 재질도 다르고 부서지고 깨진 것들이어서, 본드로 일일이 이어 붙여 하나의 작품을 완성하게 된다.
‘아이의 미래를 생각하는 아빠의 마음’으로
전 작가의 작업실 벽면에는 해맑게 웃고 있는 어린아이들 사진이 걸려있다. 이제는 대학생과 고등학생이 된 그의 세 아이다. 교육 때문에 가족은 서울에 남고, 제천에 혼자 와 있다는 그는 아이를 키우는 아빠의 마음으로 아이들의 미래를 위해 환경작품을 만든다고 말했다.
전 작가는 낮에 일용직 노동자로 일한다. 작품활동을 위해서는 우선 먹고 사는 문제를 해결해야 하기 때문이다. 인력 사무소도 나가고 공장에서 짧게 일하기도 한다. 가장 많이 일한 곳은 인테리어 공사 현장인데, 작품 재료로서 폐스티로폼의 가능성을 발견한 것도 그런 현장이었다고 한다.
지난달 22일 전 작가를 역사박물관 전시 현장에서 다시 만났을 때, 그는 요즘 산에서 묘지를 이장하거나 묘소를 만들어 주는 일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날도 낮에는 묘지 관련 일을 하고, 오후에 전시장에 나온 것이었다. 그는 60대 중후반 단체 관람객을 대상으로 작품 하나하나에 관해 의미를 설명하고 작업 과정도 소개했다. 전 작가가 탄소중립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구체적인 실천 방안도 설명하자 관람객들은 호기심 어린 표정으로 경청했다.
“평범한 우리도 기후 문제에 관심을 가져야 해요. 어머님들, 우리 아이들이 계속 살아가야 하잖아요. 우리는 모두 기후환경에서 자유로울 수 없어요. 더 늦기 전에 탄소중립 실천해야 합니다. 기후환경을 개선하기 위해 꼭 필요합니다. 작품들이 이해가 잘 안돼도, 이런 얘기들은 꼭 기억하고 돌아가 주세요.”
전 작가는 작품을 사고 싶다는 사람이 있어도 스티로폼으로 만든 조형물의 관리가 어렵기 때문에 판매는 하지 않고 있다고 설명했다. 대신 한 명이라도 더 관람할 수 있도록 공공건물이나 카페 등에 대여할 생각은 있다고 덧붙였다. 그는 제천시가 ‘환경예술의 메카’가 되면 좋겠다는 바람도 밝혔다. 기후위기를 주제로 작품을 만드는 예술가가 많지 않은 만큼, 자신이 환경작가의 정체성을 잘 구축해서 지역에도 좋은 영향을 주고 싶다고 말했다.
단비뉴스 환경부, 유튜쁘랜딩팀 강민정입니다.
겁 없는 취재와 사려 깊은 보도에 두루 능통한 기자가 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