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비 소리뉴스] 기후위기시대 ㊾ 기후재판 현황과 의미 (상)
2022년 10월 21일 이은호, 이상현, 문성웅, 김영준 씨 등 녹색당원 네 명이 서울 서초구 서초동 서울중앙지방법원 317호 법정에 섰습니다. 이들은 2021년 10월 6일 서울 강남구 삼성동 그랜드 인터컨티넨탈 파르나스에서 포스코와 산업통상자원부 주최로 열린 '제1회 수소환원제철 국제포럼' 행사의 단상에 무단으로 올라가 약 20초간 기후위기 대응을 촉구하는 연설문을 읽은 ‘죄’를 재판받고 있었습니다. 혐의는 공동주거침입과 업무방해입니다. 당초 약식명령으로 300만 원의 벌금이 부과됐으나 이들은 정식재판을 청구했고, 1심 선고에 앞서 최종공판이 이날 진행됐습니다.
이은호 녹색당 기후정의위원회 운영위원장은 최후진술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제가 (단상에 올라) 발언할 수 있도록 힘을 준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포스코에서 준비해 주신 기후위기 영상이었습니다. 행사장에서 먼저 상영된 영상에서는 웅장한 음악과 함께 우주 속에 있는 지구의 모습이 나왔습니다. 지구 평균 온도가 산업화 이전 대비 1.5도로 상승하기까지 막을 수 있는 시간이, 우리가 지금처럼 온실가스를 배출한다면 채 7년도 남지 않았다는 내용이 흘러나왔습니다.”
행사장에서 20초 연설하고 ‘업무방해’로 기소
이은호 위원장은 이렇게 덧붙였습니다.
“엄숙한 행사장 분위기 때문에 겁이 났지만, 주최 측이 튼 영상에서 ‘기후위기에 대응할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긴급함을 확인하고 단상에 오를 용기를 얻었습니다.”
그는 행동에 나선 배경을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더 이상 단기적인 기업의 이익, 산업계의 이익, 단기적인 시야의 국익이라는 이름 하에 우리가 밟고 설 땅과 우리의 생명과 국민의 안전을 파괴해서는 안 됩니다.”
같은 위원회의 문성웅 활동가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포스코와 산업부를 규탄하기 위해 단상에 올랐던 것은 기후위기를 심화시키고 기후를 파괴하는 행동 앞에 절망하기 싫어서 분노한 행동이었습니다. 절망을 넘어 사랑하고 행동하는 것이 녹색당에서 배운 것이자 녹색당을 하는 이유입니다.”
녹색당이 철강기업 포스코를 상대로 행동에 나선 것은 국내 탄소배출 1위 기업인 포스코가 친환경 경영을 내세우면서도 실제 탄소 감축 실적과 노력은 미흡하기 때문입니다. 포스코는 2021년 기준 국내 전체 온실가스 배출량의 11%, 2019년 기준 철강 부문 온실가스 배출량의 66.8%를 차지합니다. 이 회사는 2010년 ‘쇳물 1톤(t)을 만들 때 나오는 탄소 배출량을 2020년까지 9% 줄이겠다’고 밝혔으나 실제 감축량은 4%에 그쳤습니다. 같은 기간 온실가스 감축 총량은 1.9%에 그쳤습니다. 포스코는 ‘2050년 탄소중립’을 공언했으나 ‘수소환원제철’이라는 기술개발에 집중할 뿐, 당장의 탄소감축 노력은 매우 부족하다는 것이 활동가들의 지적이었습니다.
국내 탄소배출 1위 포스코, ‘먼 훗날 감축’으로 미뤄
포스코는 2020년 12월 이사회 의결을 거쳐 2050년 탄소중립을 목표로 한 ‘탄소감축 로드맵’을 발표했습니다. 사업장에서 2030년 10%, 2040년 50%를 감축하고 2050년에는 탄소중립을 달성하겠다는 계획입니다. ‘2021 기업시민보고서’를 보면 포스코는 탄소중립을 달성할 핵심 수단으로 수소환원제철 기술개발을 꼽았습니다. 이는 철광석을 녹여 산소를 제거하는 과정에서 석탄을 쓰는 대신 수소를 사용하는 공법입니다. 온실가스 대신 물이 배출되기 때문에 친환경적 공법으로 꼽힙니다. 포스코는 재생에너지에서 나오는 전력과 재생에너지를 활용해 만든 그린수소를 활용한 수소환원기술로 철강을 생산함으로써 2050 탄소중립을 달성하겠다고 발표했습니다.
녹색당 변론을 맡은 이치선 변호사는 이렇게 지적했습니다.
“포스코가 현존하는 기술로 온실가스 감축을 하려고 하지 않고, 기술을 계속 연구하고 개발해서 30년 후에 적용하겠다고 접근하는 게 문제입니다.”
이미 수소제철기술을 개발한 해외 철강회사가 있고, 철 스크랩(고철)을 활용해 온실가스 배출을 현저히 줄이는 ‘전기로 생산방식’이 있는데도 ‘포스코형 수소환원제철기술’ 개발에만 매달리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 변호사는 이렇게 덧붙였습니다.
“긴급하게 온실가스를 감축해야 하는 2030년까지 수소환원기술은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포스코가 기술개발에만 집중하면서 2030년까지 포스코의 사업장 감축계획(공정상 직접배출) 목표는 10%밖에 안 되는 것이 문제라는 것입니다.
이에 관해 임서정 포스코 탄소중립전략그룹 리더는 2022년 11월 2일 경기도 고양시 킨텍스에서 열린 ‘2022 대한민국 에너지대전’에서 <단비뉴스> 인터뷰를 통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포스코가 수소환원제철기술에 주력하는 건 맞지만 기술개발만 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는 2026년에 전기로를 1기 도입할 예정이고, 제철소 안에서 나오는 원료의 재활용률도 85%에 달한다고 설명했습니다. 또 전기로는 20~30년 전에 생산된 고철을 사용하기 때문에 원료를 구하는 데 한계가 있고, 전기를 만들 때도 탄소는 나온다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궁극적으로 탄소중립을 하려면 수소환원기술이 필요합니다.”
회사 조형물에 스프레이 뿌렸다고 1840만 원 손배
대기업의 그린워싱을 고발했다가 재판에 넘겨진 또 다른 사례는 2021년 2월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두산중공업, 현 두산에너빌리티 사옥의 ‘DOOSAN’ 로고 조형물에 녹색 스프레이를 뿌린 청년기후긴급행동의 강은빈, 이은호 활동가입니다. 이들은 두산이 기후위기를 가속하는 석탄발전소를 건설하고 있는 것에 항의했습니다. 강 활동가 등은 재물손괴와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1심에서 500만 원의 벌금형을 선고받았습니다. 회사는 이들에게 1840만 원의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민사소송도 냈습니다. 조형물 교체 비용과 기업 이미지 손상, 회사 임직원들의 정신적 충격이 이유였습니다.
두산에너빌리티는 대표적인 석탄화력발전소 건설기업입니다. 현재 한국전력이 인도네시아에 총 2000메가와트(MW) 규모의 ‘자와 9, 10호기’와 베트남에 총 1200MW 용량의 ‘붕앙2’ 석탄발전소를 올해 완공 예정인데, 모두 시공사가 두산에너빌리티입니다.
이렇게 국내외에서 석탄발전소를 지으면서도 두산에너빌리티는 ‘친환경 기업’으로 자사를 홍보하고 있습니다. ‘2022 대한민국 에너지대전’에서 만난 두산에너빌리티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린에너지를 통해 회사뿐 아니라 지구의 지속가능성을 높여나가겠다는 의미로 사명을 변경했습니다.”
그는 이렇게 덧붙였습니다.
“석탄화력발전에서 풍력 같은 친환경에너지원으로 사업을 전환하는 과정에 있습니다.”
그러나 그는 두산에너빌리티의 구체적인 온실가스 감축 계획과 청년기후긴급행동 관련 재판에 관해서는 “엑스포에는 정확하게 답할 수 있는 사람이 없다”며 즉답을 피했습니다. 안내받은 메일주소로 나중에 질문지를 보냈으나 답하지 않았습니다.
전 세계 기후관련 재판 2000여 건 진행 중
영국 런던정경대(LSE) 그래덤 기후변화와환경연구소가 발표한 ‘기후소송 글로벌 트렌드 2022’ 보고서에 따르면 현재 각국에서 제기된 기후소송은 2000건을 넘어섰습니다. 연구소는 “과거에는 정부를 대상으로 기후변화 대응을 요구하는 형태의 소송이 많았으나, 최근에는 화석연료, 농식품, 운송, 금융 등 다양한 분야의 기업을 상대로 한 소송이 증가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아주대 법학전문대학원 오동석 교수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현실적으로 한국에서 기업을 대상으로 한 기후소송은 어렵습니다.”
법은 인과관계를 엄격히 따지는데, 책임이 기업에 있는 게 맞는지, 소송을 제기하는 사람이 자격이 있는지 등 법 논리에 빠지면 책임이 인정되기 어렵다는 것입니다. 이치선 변호사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국내에는 기업에 온실가스 배출책임을 물을 수 있는 법률조항이 없습니다.”
관련 입법 노력이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2020년 10월 정부가 ‘2050 탄소중립’을 선언한 후 구체적 절차와 정책을 담은 ‘탄소중립·녹색성장 기본법’이 제정돼 2022년 3월 25일부터 시행되고 있습니다. 제21대 국회 강은미 정의당 의원이 발의한 초안에는 “온실가스 배출 책임을 지닌 사업주는 기후위기에 따른 피해와 손실에 대해 보상해야 할 책임을 가진다”는 조항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법안이 통과되는 과정에서 기업에 온실가스 배출책임을 물을 수 있는 관련 조항은 모두 삭제됐습니다.
기소된 활동가들은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위반, 재물손괴, 업무방해, 주거침입 혐의를 다투고 있습니다. 활동가들도 무죄를 받기는 어렵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이들의 목표는 판결문에 사법부가 기후위기에 공감하는 내용을 담는 것입니다. 이은호 위원장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판결문에 기후위기의 심각성과 방향성에 대한 인정이 나오면 승리입니다.”
실정법을 어긴 행위인 것은 맞지만, 어느 정도 정당성을 인정받은 것으로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치선 변호사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형법 20조는 사회 상규에 어긋나지 아니하는 행위는 벌하지 않는다는 ‘정당행위’에 관한 규정입니다. 기후위기를 다루는 재판이 초창기인 만큼, 피고인들의 직접행동이 긴급하고 절박한 행동이었다는 걸 사법부가 공감하는 게 중요합니다.”
활동가들이 약식명령에 불복하고 정식재판을 청구한 것 역시 법적 다툼을 통해 기후위기의 심각성과 기업의 책임을 널리 알리자는 심산입니다.
활동가들의 목표는 ‘기후세력’을 만드는 것
두 개의 재판 모두 피고인으로 서는 이은호 위원장은 단비뉴스 인터뷰에서 ‘기후세력’을 만드는 것이 앞으로의 계획이라고 말했습니다. 시민들이 전문가나 활동가에게만 기후위기 대응을 맡기지 않고 자신이 속한 공동체에서부터 정치참여자로 행동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위원장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가 회사에서는 어떤 걸 좀 더 해볼 수 있지? 우리 아파트에서는 주민대표자 회의를 설득해서 무엇을 해볼 수 있지? 내가 속한 대학에서는 탄소중립을 위해 어떤 것을 할 수 있을까? 개인의 실천을 넘어서 구조적이고 조직적인 변화를 고민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시민이나 활동가, 전문가 모두가 정치 참여자이자 정치적인 시민으로 기후위기에 대응해야 하는 거죠.”
이 위원장은 기후위기라는 시대적 과제를 맞아 사회 전반이 바뀌는 것을 기대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웃으면서 이렇게 덧붙였습니다.
“기후위기를 우선순위에 두고 선택하는 시민들이 늘어나야 여론이 형성되고 정치인들도 압박을 받을 거예요. 내후년 총선 때까지 정당 상관없이 기후세력을 만들 것입니다.”
2023년 1월 11일 법원은 이은호 위원장에게 벌금 200만 원, 이상현 씨에게 150만 원, 문성웅, 김영준 씨에게는 각각 100만 원을 선고했습니다. 앞서 약식명령에서 내려진 1인당 300만 원의 벌금보다는 줄어든 액수입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유엔(UN) 산하 기후변화에관한정부간협의체(IPCC)의 보고서 등을 인용하며 기후변화 추세의 심각성을 인정했습니다. 또 정부와 기업에 실질적인 대응을 촉구한 피고인들의 행동에 관해 “목적의 정당성과 타당성이 없다고 볼 수 없다”고 밝혔습니다. 기후소송의 가장 기본적인 목표가 성취된 것입니다.
디지털 시대의 멀티미디어 실험에 앞장서는 <단비뉴스>가 ‘소리뉴스’ 2탄을 시작합니다. 2021년 4월 시작된 ‘기후위기시대’ 연재 기사를 단비뉴스 환경부 기자들이 목소리와 영상으로 전합니다. 이 연재 기사는 갈수록 심각해지는 기후위기의 현황과 대안, 그리고 기후정의를 위해 행동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소리뉴스 1탄 ‘마지막 비상구’와 마찬가지로, 시각장애인을 포함한 우리 사회 구성원 모두가 엄중한 기후위기 현실을 깨닫고 함께 대응하는 데 도움이 되기를 기대합니다. 소리뉴스는 단비뉴스 홈페이지와 유튜브, 팟빵 채널에 실립니다. (편집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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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위기시대 소리뉴스]
① '석탄 퇴장' 급한데 신규발전소 더 짓는 한국
② '나만 지구 지켜?’ 불안과 실망을 넘어서
③ 정부·기업의 기후 대응, 시민이 압박해야
④ 석탄발전소 ‘질서 있는 퇴장’을 서둘러야
⑤ 썩은 당근 쏟으며 ‘위험’ 호소한 청소년들
⑥ 탄소중립 외치며 석탄발전·공항 짓는 위선
⑦ 기후과학자가 소형원자로 개발에 반대하는 이유
⑧ 개발도 안 된 핵융합 대신 자연 태양광 투자를
⑨ 기후와 생물다양성 위기 극복을 국가의 의무로
⑩ 떠오르는 '소형모듈원전' 조목조목 따져보니
⑪ 안전하지도 경제적이지도 않은 파이로프로세싱
⑫ 더 큰 재난 막으려면 원전 아닌 자연에너지로
⑬ ‘탄소감축 과정에서 피해 떠안는 노동자 없도록
⑭ 소고기가 배출하는 온실가스, 두부의 20배
⑮ '각자도생' 대신 서로 돌봐야 재난 이긴다
⑯ 쓰레기 여러 트럭 나오는 전시회는 '이제 그만'
⑰ 지구가 깨끗해질 때까지 달리기로 했다
⑱ 화석연료에 여전히 돈 쏟아붓는 공적금융
⑲ 소송으로 입 막는 기업, 굴하지 않는 기후행동
⑳ '기후재난 당사자가 애타게 전하는 위험 신호
㉑ 유행 따라 사고 버리니 지구가 열받았네
㉒ ‘온난화 주범’ 대기업에 ‘기후정의’를 압박하다
㉓ ‘신공항’ 대신 ‘정의로운 전환’에 집중 투자를
㉔ 먹거리 전환이 에너지 전환만큼 중요하다
㉕ 주민협동조합 이익공유로 ‘무석탄·무원전’ 확대
㉖ 주요 정당 지도자들, 탄소중립 로드맵 제각각
㉗ 청년의 미래를 빼앗은 것에 용서를 구합니다
㉘ 원전으로 탄소중립이 가능하다는 착각
㉙ ‘태양광 괴담’ 가고 나니 ‘이격거리’가 남았다
㉚ 위기 해결의 열쇠 함께 찾는 인문·과학 연구자들
㉛ 지구 살리는 채식, 학교가 가르치고 선택권 줘야
㉜ 에너지 자급자족 건물, 이제 선택에서 의무로
㉝ 전국 8만여 가구가 아직은 버릴 수 없는 연료
㉞ 소음과 분진에도 생계형 노동 못 떠나는 노인들
㉟ 예정된 폐광, 대안 없는 노동자와 지역주민
㊱ 강이 위험에 처하면 인류 문명도 위험하다
㊲ "바다에 물고기보다 플라스틱이 많아질 수도"
㊳ 미국곡물협회가 부산 모터쇼를 찾은 까닭은
㊴ 무농약으로 ‘땅심’ 키우는 공유농업의 현장
㊵ 건설·택배 노동자 목숨 위협하는 폭염이 온다
㊶ 아열대로 가는 한국, 농민도 작물도 적응 난조
㊷ 바다숲과 갯벌은 기후위기 막는 천군만마
㊸ ‘기후 한계점’ 코앞인데 환경 수업은 ‘자습 시간’
㊹ 기후위기 대응 첫걸음은 '석탄발전소 안 짓기'
㊺ 퇴출 산업 노동자와 지역주민은 누가 챙기나
㊻ "탄소중독 기업과 국가, 기후위기 책임져야"
㊼ 페라리·벤틀리 가죽 시트도 가방으로 재탄생
㊽ 약초 대신 매미나방이 그득한 산에서 상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