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시대] 109. 장례식장 일회용품 실태와 대안
지난 4월 27일 오후 4시 30분쯤 충북 제천의 한 전문장례식장에 80대로 보이는 여성 1명과 중년 남성 3명이 짙은 회색 등의 정장 차림으로 들어섰다. 이들은 고인의 영정에 절한 뒤 60대로 보이는 남성 상주와 목례를 나누고 빈소 옆 접객실에 자리 잡았다. 비닐 식탁보가 깔린 4인용 식탁 20여 개 중 두 곳에는 먼저 온 문상객 4명이 식사를 하고 있었다. 여성 노인이 눈물을 흘리는 가운데, 앞치마를 두른 중년 여성 직원 3명이 일회용 그릇에 담긴 밥과 육개장, 김치, 과일 등을 식탁으로 날랐다. 중년 남성들은 작은 종이컵에 소주를 따라 마셨다.
비닐 식탁보 위, 일회용 그릇에 담긴 음식들
먼저 온 손님들이 떠나자 직원 2명이 음식물 쓰레기통을 가져와 남은 국과 반찬 등을 쏟고, 일회용 그릇과 컵, 나무젓가락 등을 한데 모아 비닐 식탁보로 돌돌 말았다. 직원은 이 식탁보 뭉치를 접객실 입구에 있던 대형 쓰레기봉투에 넣었다. 일회용품 자체는 대부분 재활용이 가능한 재질이었지만, 음식물 찌꺼기 등 오염물질이 남았기 때문에 일반 쓰레기로 배출한 것이다. 장례식장 설명에 따르면 문상객 한 사람마다 보통 종이 그릇 2개, 합성수지 접시 3개, 플라스틱 숟가락 1개, 나무젓가락 1벌, 종이컵 1개 등의 일회용품 쓰레기가 발생한다. 비닐 식탁보와 휴지 등은 별도다. 이 장례식장에서 10년 넘게 일했다는 조성자(61) 씨는 “많은 경우 한 상가에서 36시간 동안 75리터(L) 종량제 봉투가 5~6개까지도 나온다”고 말했다.
대다수 장례식장에서는 일회용품이 당연한 것처럼 사용된다. 이정선 을지대 장례지도학과 교수는 <단비뉴스> 인터뷰에서 “상주가 한 상 차림을 몇 가지 찬으로 고를 것이냐에 따라 조금 다르지만, 평균적으로 한상차림 받으면 (일회용품이) 10개는 기본으로 넘을 것”이라고 말했다. 2020년 환경부 보도자료에 따르면 2019년 한 해 전국 장례식장에서 발생한 일회용품 폐기물은 3억 7000만 개, 무게로는 약 2300톤(t)에 이른 것으로 추정됐다. 한국기후행동네크워크의 탄소발자국 계산기로 따져보면 2300t의 생활폐기물은 약 1280t의 온실가스를 배출한다. 장례식장 일회용품 폐기물 때문에 연간 발생하는 온실가스를 처리하려면 축구장 182개와 맞먹는 숲이 필요하다는 계산이 나온다.
기후위기 대응을 위해 일회용품을 줄여야 한다고 믿는 시민들은 장례식장에서 어쩔 수 없이 일회용 그릇 등을 써야 하는 상황에 불편함을 느낀다. 지난 11일 서울시 성북구에 있는 장례식장에 조문을 다녀왔다는 권도경(29) 씨는 “주는 대로 쓰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일회용품을) 쓸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는 평소 일회용품을 가급적 사용하지 않고 회사에서도 텀블러를 쓰지만, 장례식장에서는 선택지가 없었다고 말했다. 국내 장례식장에서는 왜 일회용품 사용이 ‘고정값’이 되었을까. 개선의 여지는 없을까.
상조회사 마케팅과 기업의 직원 복지가 고착시킨 관행
이정선 교수 등 전문가들에 따르면 국내 장례식장의 일회용품 홍수는 규제의 허점과 상조회사의 마케팅 등이 복합된 결과다. 1981년 ‘가정의례에 관한 법률’ 시행령 개정으로 도심에 병원 장례식장이 일반화하면서 1982년 부산상조를 시작으로 장례를 도와주는 서비스회사가 급증했다. 상조회사들은 조리와 세척 시설이 갖춰지지 않은 곳에서 음식을 대접해야 하는 상주에게 일회용품을 기본 상품으로 제공했다. 또 많은 기업은 상을 당한 직원에게 복지 서비스 차원에서 회사의 로고가 인쇄된 종이컵, 비닐 식탁보, 휴지 등 일회용품을 무상 지원했다. 조성자 씨는 “어지간한 회사에서는 다 (일회용품 지원이) 있다”며 “상주님들이 이걸 되게 중요하게 생각하는데, ‘내 자식이 여기 다닌다’는 생각 때문”이라고 말했다.
탄소중립이 중요한 국가 정책 목표로 부상하면서 모든 장례식장을 일회용품 사용 규제 대상에 포함하는 방안이 추진되기도 했으나 성사되지 않았다. 현행 ‘자원의 절약과 재활용 촉진에 관한 법률’ 10조에 따르면 세척시설과 조리시설을 모두 갖추고, 사업자가 음식물을 제공하는 장례식장만 일회용품 규제 대상이다. 그런데 2019년 기준 전체 장례식장 1131개 가운데 조리시설과 세척시설을 모두 갖춘 장례식장은 140개소로 전체의 12%에 불과하다. 더구나 조문객에게 음식물을 제공하는 주체가 대부분 장례식장 사업자가 아닌 상주이기 때문에, 규제 조건에 부합하는 장례식장은 실제로 찾기 힘들다. 따라서 장례식장에서 일회용품 사용을 줄이려면 모든 장례식장을 조건 없이 일회용품 규제 대상에 포함하도록 자원재활용법을 개정해야 한다.
환경부는 2019년 ‘일회용품 함께 줄이기 계획’을 통해 장례식장을 일회용품 규제 대상에 포함하는 정책을 추진했다. 2021년까지 장례식장 내 일회용 식기와 컵의 사용을 금지하고, 2024년까지 모든 일회용품 금지로 확대하는 계획이었다. 2021년 4월에는 더불어민주당 강득구 의원이 자원재활용법 일부 법률 개정안을 발의했다. 세척시설을 갖춘 모든 장례식장에 일회용품 사용을 금지하는 내용이었다. 그러나 국민의힘 지성호 의원 등이 강력히 반대하면서 이런 내용의 법 개정은 무산됐다.
경남 김해시 ‘온새미로’의 실험이 주는 희망
국회 및 중앙정부의 실패와 대조적으로, 지방자치단체에서 변화의 싹이 돋아나고 있다. 경남 김해시가 대표적인 사례다. 김해시가 김해 지역자활센터에 위탁 운영하는 다회용기 세척 서비스 ‘온새미로’는 김해 시내 장례식장 11곳과 협약을 맺고 스테인리스 다회용기 대여와 세척 서비스를 제공한다. 2022년 3월 시작한 이후 365일 운영하고 있다. 김해시민장례식장, 조은금강장례식장, 예움장례식장 등 7개 업소가 현재 활발하게 이 시스템을 이용한다. 누리집 ‘플레이트 에코’를 통해 장례식장이 필요한 수량의 다회용기를 신청하면, 온새미로가 포장된 식기를 배달해 준다. 장례식장은 사용한 다회용기를 75L 플라스틱 통에 담아두고, 그 통은 온새미로가 수거한다. 수거한 식기는 불림, 초음파 세척, 고온고압 세척과 자외선 소독, 오염물질 검사 등을 거쳐 10개 단위로 다시 포장된다.
다회용기 대여료는 따로 없고, 세척비만 받는다. 밥그릇, 국그릇, 큰 접시, 작은 접시, 소스 그릇, 수저로 구성된 한 세트당 400원이다. 일회용품에 해당하는 비용으로 저렴하게 책정했다. 100인분 세트를 사용하면 4만 원을 내면 된다. 보통 빈소 당 기본 200인분 세트를 준비해 놓고 필요한 만큼 상주가 사용할 수 있도록 한다. 장례식장은 식기가 모자랄 경우를 대비해 여분의 식기를 창고에 보관해 둔다.
온새미로의 서비스에 관한 고객의 만족도는 높다. 김해시 풍유동 김해시민장례식장의 강종현(39) 팀장은 단비뉴스 전화 인터뷰에서 “쓰레기 많이 안 나오고, 손님들 상에 (음식을) 차렸을 때 보기가 고급스럽다”며 “상주들도 일회용품을 줄이는 것에 대해 긍정적으로 생각하신다”고 말했다. 그는 “(조문객들이) 이렇게 하는 건 처음 보는데, 해놓고 보니깐 보기 좋다고 말씀하시는 걸 직접 들었다”고 덧붙였다.
온새미로는 자활센터에서 운영하는 업체로, 차상위계층과 기초수급자에게 일자리를 제공한다. 현재 19명이 돌아가며 하루 8시간씩 근무하고 있으며, 월급은 150~160만 원 정도다. 보건복지부가 운영하는 자활근로사업이기 때문에 직원 월급은 국비 지원으로 나가고, 매출액 일부는 직원들에게 인센티브로 주어질 수 있다. 온새미로의 현재 월 매출은 500만 원 정도다. 온새미로를 관리하는 이동하 김해지역자활센터 팀장은 “매출이 어느 정도 발생을 해야 일부를 선생님(직원)들이 (인센티브로) 가져갈 수 있는데 가져가는 파이가 너무 작다”고 말했다. 나해란 자원순환사회연대 연구원은 단비뉴스 이메일 인터뷰에서 “다회용기 사용이 확대되면 이를 통한 일자리, 사회적 활성화를 통해 지역경제가 활성화될 수 있다”고 말했다.
춘천·대구 등 다른 지자체로 다회용기 서비스 확산
김해시의 실험은 다른 지방자치단체로 확산하고 있다. 강원도 춘천시는 지난해 12월 세척업체 ‘깨끗’과 관내 장례식장 4곳, 춘천환경운동연합과 함께 ‘장례식장 다회용기 사용 활성화에 대한 업무협약’을 체결했다. 깨끗이 온새미로처럼 장례식장에 다회용기를 배달, 수거, 세척하는 서비스를 제공하는 내용이다. 춘천시가 2억 9000만 원을 들여 다회용기 구입과 운영 비품을 지원했다.
대구시도 지난해 대구달성지역자활센터가 운영하는 세척업소 ‘에코워싱사업단’을 장례식장 다회용기 세척·배달 서비스 사업자로 지정해 보조금을 지급하기로 했다. ‘플라스틱 프리 서울’을 추진하고 있는 서울시는 지난해 7월 서울의료원 장례식장을 ‘1회용품 없는 장례식장’으로 지정했다. 또 삼성서울병원 장례식장은 오는 7월부터 6개월 동안 다회용기 사용 시범사업을 추진하기로 했다. 세종시는 2022년 다회용기 사용을 장려하기 위해 관내 장례식장 6곳에 식기세척기 17대, 다회용 컵 2500개를 지원하기도 했다. 사단법인 한국재사용순환경제협회에 따르면 2023년 7월 기준 운영되고 있는 다회용기 세척 자활사업단은 전국에 56개, 같은 해 10월 기준 다회용기를 공급·회수하는 민간 세척업체는 16곳이 있다.
지난달에는 대구시 수성구 의회에서 ‘대구시 수성구 1회용품 제한 조례’가 개정됐다. 해당 조례는 공공기관에서 사용하는 일회용품만 제한했는데, 장례식장 등 일회용품을 다수 배출하는 민간 업소가 일회용품을 줄이고 다회용기를 사용하도록 구청장이 사업을 추진할 수 있게 하는 내용이 추가됐다. 개정안을 발의한 정경은 대구 수성구의회 의원은 단비뉴스 전화 인터뷰에서 “장례식장 등 일회용품을 많이 사용하는 업소에 일단 다회용기 사용을 권장할 수 있게끔 법적 근거를 마련한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상조회사들도 일회용품 제공을 줄이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상조회사 예다함은 지난 4월 신상품 ‘윤슬 4호’를 430만 원에 출시했는데, 서비스 구성에서 일회용품을 제외했다. 예다함 측은 단비뉴스 이메일 인터뷰에서 “일회용품 사용 근절 문화에 일조하고, 고객 선택권을 높이기 위해서”라고 밝혔다. 보람상조도 일회용품을 제공하지 않는 ‘마이스터 35’와 ‘마이스터 40’ 상품을 운영하고 있다. 나해란 연구원은 “상조회 등이 일회용품 지원 비용을 다른 인센티브로 바꿀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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