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53~61%’ 확정에 산업계 반발, 기후단체는 ‘미흡’ 평가

2035년 국가온실가스감축목표(NDC)가 2018년 순배출량 대비 최저 53%, 최대 61%로 결정된 가운데 산업계는 ‘지나치게 높다’고 반발하고 기후환경단체들은 ‘미흡한 목표’라며 재논의를 촉구하고 나섰다. 기후환경 전문가들은 한국 경제가 저탄소 산업구조로 대전환해야 할 시점에 소극적인 목표로 대응한다면 더 큰 발전의 기회를 놓치게 될 것이라고 경고한다.

대통령 직속 2050탄소중립녹색성장위원회(탄녹위)와 국무회의는 지난 10일과 11일 한국의 2035년 NDC를 ‘53~61% 감축’으로 확정했다. 정부는 이 안을 브라질 벨렝에서 오는 21일까지 열리는 제30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30)에서 공식 발표한 뒤 연내 유엔에 제출할 방침이다.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은 2015년 체결된 파리협정에 따라 5년마다 더 높게 설정된 NDC를 제출해야 한다. 한국은 2021년에 2030년 온실가스 배출량을 2018년 대비 40% 감축하겠다는 2030 NDC를 냈다.

산업계는 ‘급격한 전환에 따른 충격’ 우려

지난 11일 이재명 대통령 주재로 열린 국무회의에서 2035년 국가온실가스감축목표(NDC)가 최종 심의·의결됐다. 대통령실 제공
지난 11일 이재명 대통령 주재로 열린 국무회의에서 2035년 국가온실가스감축목표(NDC)가 최종 심의·의결됐다. 대통령실 제공

이번 2035 NDC에 관해 산업계는 현실적인 감축 여력을 고려하지 않은 과도한 목표라고 우려했다. 자동차모빌리티산업연합회(KAIA)는 지난 11일 낸 입장문에서 “자동차업계는 그간 업계가 제기했던 문제점이 명확히 해소되지 않은 채 2035 NDC 목표가 설정돼 우려가 크다”고 밝혔다. 연합회는 “급격한 전환으로 인한 산업계 충격을 최소화할 수 있도록 규제 일변도가 아닌 과감한 수요 창출 정책을 정부가 마련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반면 기후환경단체인 기후위기비상행동은 11일 성명을 통해 “이번 NDC는 헌법재판소의 (2024년) 결정에 배치되는 위헌적인 것으로서, 시민의 안전한 삶을 담보할 수 없는 목표”라고 비판했다. 비상행동은 “국회가 입법과정을 통해 잘못된 목표를 바로잡아 시민의 권리를 지킬 국가의 책무를 다하라”고 촉구했다. 기후솔루션의 권오성 미디어팀장은 13일 <단비뉴스> 전화 인터뷰에서 “지구 평균 온도 상승폭을 1.5도씨로 제한하기 위한 기후변화정부간협의체(IPCC) 감축경로에 따르면 2035년에는 2019년 대비 온실가스를 60~65% 감축해야 하는데, 53%는 그에 부합하지 않는 수치”라며 “범위로 목표 설정을 하면 최소치 53%가 중요하게 작동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그는 “지금 필요한 것은 저탄소 산업구조로의 대전환을 촉진할 구체적 계획과 투자”라며 “전환을 늦춘다면 훨씬 더 큰 기회를 잃게 되므로, 산업계 탈탄소 전환을 위해 정부가 확실한 시그널(신호)을 주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산업계와 기후환경단체는 이에 앞서 지난 9월부터 6차례 열린 ‘2035년 NDC 대국민 공개 논의’ 토론회에서도 상반된 논리로 맞섰다. 기후에너지환경부는 2035년 NDC를 2018년 대비 48%·53%·61%·65%로 감축하자는 4개의 안을 지난 9월 제시했는데, 산업계는 ‘48%도 어려운 목표치’라고 비판했다. 이재윤 산업연구원 탄소중립산업전환연구실장은 지난 9월 19일 총괄토론회에서 “48%도 처음 만들 때는 굉장히 도전적인 수치였는데 여기(정부 4개 안)에서는 가장 쉬운 목표가 돼 버려 상당히 우려스럽다”고 말했다. 강성욱 한국철강협회 경영정책본부장은 지난 6일 공청회에서 “철강업계의 감축 여력을 초과한 목표가 설정될 경우, 인위적으로 철강 생산량을 줄이는 상황이 발생해 일자리 감소 및 지역경제 침체, 전후방 산업 전반의 위축과 제조업 경쟁력 저하로 이어질 수 있다”고 주장했다.

산업계의 요구를 반영한 48%안은 ‘탄소중립 달성 목표 시기’인 2050년에 가까워질수록 감축 부담이 높아지고, 53%안은 매년 일정 수준 감축을 목표로 한다. 61%안은 전 지구적 감축 수준을 2019년 배출량 대비 60% 이상으로 하자는 IPCC 권고를 따라 만들어졌고, 65%안은 IPCC가 분석한 전 지구적 잔여탄소배출 허용총량을 바탕으로 한국의 배출 책임, 국내총생산(GDP), 인구 등을 고려해 기후정책단체인 플랜1.5가 제안한 안이다.

기후에너지환경부가 제시한 2035 NDC 4가지 감축경로. 2050년 탄소중립을 위한 2035년 온실가스감축목표를 2018년 배출량 대비 48%에서 65% 사이로 설정한 4개의 시나리오다. 출처 2035 NDC 대국민 공개 논의 총괄토론회 자료집
기후에너지환경부가 제시한 2035 NDC 4가지 감축경로. 2050년 탄소중립을 위한 2035년 온실가스감축목표를 2018년 배출량 대비 48%에서 65% 사이로 설정한 4개의 시나리오다. 출처 2035 NDC 대국민 공개 논의 총괄토론회 자료집

시민사회는 ‘61% 이상 목표 설정’ 요구

시민사회는 ‘61%보다 낮은 NDC는 헌법재판소의 기후헌법소원 결정을 위반한다’고 주장했다. 최창민 플랜1.5 정책활동가는 지난 9월 19일 총괄토론회 발제에서 “헌법재판소 결정이 제시한 세 가지 조건이 2035 NDC 수립의 최저선이 되어야 한다”며 ‘최소 61%’를 목표로 제시했다. 여기서 세 가지 조건은 과학적 사실과 국제 기준에 근거할 것, 전 지구적 감축 노력에 공정하게 기여할 것, 미래에 지나친 부담을 떠넘기지 않을 것 등이다. 헌재는 지난해 8월 탄소중립기본법 제8조 1항에 관해 “2031년부터 2049년까지의 온실가스 감축경로를 규정하고 있지 않아 국민의 기본권과 환경권을 침해한다”며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기후넥서스 이지언 대표는 지난 10월 21일 ‘2035 NDC 시민사회 긴급토론회’에서 산업계의 반응에 관해 “NDC 논의를 수차례 해오는 동안 ‘감축 여력이 없으니 다른 부문에서 감축하라’ ‘산업의 국제 경쟁력을 유지해야 한다’는 산업계의 주장이 어떤 기후 대응 원칙보다도 우선됐던 게 현실”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철강산업에서 (수소환원제철과 같은) 혁신 기술 외에도 향후 10년간 정부와 기업의 투자에 따라 상당한 수준의 탄소 감축이 가능하다”고 지적했다.

지난 6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2035 NDC 대국민 공개 논의 공청회에서 시민사회 분야 토론자들이 발언하고 있다. 천경난 기자
지난 6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2035 NDC 대국민 공개 논의 공청회에서 시민사회 분야 토론자들이 발언하고 있다. 천경난 기자

지난 6일 서울 여의도 국회 대회의실에서 열린 공청회는 ‘50~60%’ 또는 ‘53~60%’라는 정부안이 제출된 가운데 진행됐다. 오일영 기후부 기후에너지정책관은 “상한선 60%는 정부 지원의 대폭 확대와 혁신적 기술 개선 등을 전제로 한 도전적인 목표이며, 하한선인 50%와 53% 감축안은 실현 가능성에 무게를 둔 목표”라고 설명했다. 이날 시민사회 분야 토론자 4명은 발언 순서에 자리에서 일어나 정부 NDC안을 비판하는 공동 선언문을 낭독했다. 은승채 청년기후의회 활동가는 “상한선 60%는 전 지구적 감축 노력에 부합하는 61%에도, 미래세대의 요구인 65%에도 못 미치는 불충분한 목표이며 하한선인 50%는 기후위기 대응을 포기하겠다는 선언과 같다”고 비판했다.

지난 6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2035 NDC 대국민 공개 논의 공청회에서 시민들이 ‘정의로운 NDC 65%’ ‘기후위기 당사자의 목소리를 들으라’ ‘위헌적인 정부안 지금 당장 폐기하라’ 등이 적힌 손팻말을 들고 있다. 천경난 기자
지난 6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2035 NDC 대국민 공개 논의 공청회에서 시민들이 ‘정의로운 NDC 65%’ ‘기후위기 당사자의 목소리를 들으라’ ‘위헌적인 정부안 지금 당장 폐기하라’ 등이 적힌 손팻말을 들고 있다. 천경난 기자

2035년까지 재생에너지 전력 3~4배 확대

한편 정부가 확정한 2035년 NDC에서 재생에너지 발전 용량은 최대(61%안) 160기가와트(GW)로 설정됐다. 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의 2038년 재생에너지 발전 용량인 121.9GW보다 높은 수치다. 2024년 기준 재생에너지 누적 발전 용량은 약 34GW인데, 10년 안에 현재까지 발전 용량의 3~4배를 늘리는 수준이다. 1GW는 약 100만 가구가 동시에 사용할 수 있는 전력량으로, 일반적인 원전 1기와 맞먹는 설비 규모다. 정부는 재생에너지 확대를 위해 태양광 발전설비 이격거리 규제(주택 등에서 일정 거리 내 발전시설 금지) 개선, 에너지저장장치 등 유연성 자원 확대, 분산형 지능형 전력망 인프라 구축 등의 방안을 제시했다.

기후위기비상행동 등 시민단체 회원 100여 명이 지난 6일 서울 여의도 국회 본청 앞에서 ‘2035 NDC 목표를 65%로 수립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천경난 기자
기후위기비상행동 등 시민단체 회원 100여 명이 지난 6일 서울 여의도 국회 본청 앞에서 ‘2035 NDC 목표를 65%로 수립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천경난 기자

국내 온실가스 배출량 중 약 14%를 차지하는 수송 부문은 2035년까지 2018년 배출량 대비 55.2%에서 67%를 감축하는 것이 목표로 제시됐다. 감축 수단으로는 △무공해차(전기차·수소차) 보급 △내연기관차 수요관리 강화(운행 거리 감축) △비도로 운송 수단(철도, 해운, 항공, 농기계 등) 탈탄소화가 제시됐다. 2035년 무공해차 보급 목표 비중은 전체 등록된 자동차 가운데 최소 30%에서 35% 이상으로 제시됐다. 2035년 차량 누적 등록대수 전망치인 2800만 대 가운데 980만 대가 무공해차여야 한다는 뜻이다. 현재 무공해차 비중은 3.3%로, 10년 동안 10배 이상 늘린다는 내용이다.

국내 온실가스 배출 비중 중 약 40%를 차지하는 산업 부문의 2035년 온실가스 감축 목표율은 21~30%로 설정돼, 큰 배출 비중에 비해 감축목표가 낮은 편이다. 업종별로 △철강은 수소환원제철 기술 도입과 저탄소강 도입 확대 △시멘트는 혼합시멘트 및 포틀랜드 시멘트 혼합재 비율 확대 △석유화학은 무탄소 나프타 분해시설(NCC) 도입과 부생가스(철강 생산 과정에서 발생하는 부산물 가스) 고부가가치 전환 등이 제시됐다.

건축 부문의 2035년 온실가스 감축 목표율은 2018년 대비 46.7%에서 51.3% 사이로 설정됐다. 감축 수단으로는 제로에너지건축(에너지 소비를 최소화하고, 필요한 에너지는 재생에너지로 충당하는 건물)과 그린리모델링(노후 건축물의 에너지 효율을 향상하는 개보수)이 제시됐다. 건물 열 공급에 쓰이는 화석연료를 퇴출하고, 전기 히트펌프(주변 열을 흡수해 냉난방을 효율적으로 하는 장치) 보급을 확산하는 것도 주요 과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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