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시대] 93. 2023 서울 국제기후환경포럼
“지구 반대편에서 일어난다고 남 일처럼 여기면 될까요? 아닙니다. 우리는 운명 공동체고요, 이것을 방치한다면 전 인류에게 위협이 될 수 있습니다. 지구의 기온이 올라가면요, 식물이 자라날 수가 없게 되죠. 실제로 인도의 밀 수확량은 절반으로 줄어들었고요. 밀을 90% 수입하는 우리나라는 어떻게 될까요? 당연히 밀과 관련된 식품들의 가격이 오르면서 가계, 경제가 부담이 될 겁니다. 이제 대한민국을 포함한 선진국들은 책임을 져야 합니다.”
지난달 31일 오후 서울 중구 세종대로 서울시청 다목적홀에서 열린 ‘2023 서울 국제기후환경 포럼’에서 식전 공연에 나선 염동균 가상현실(VR)아티스트가 이렇게 말했다. VR기기를 활용한 ‘메타버스 드로잉 퍼포먼스’로 기후불평등 현실 등을 고발한 그는 한국도 선진국의 일원으로서 지구 곳곳의 기후재난을 외면하지 않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모두를 위한 여정, 기후동행’을 주제로 서울시가 주최한 이번 포럼은 도시기후리더십그룹(C40), 이클레이(ICLEI), 기후변화센터가 협력기관으로 함께했고, 청중 450여 명이 모였다. 행사는 유튜브로 생중계됐다.
인도의 밀 수확 감소가 한국 경제 압박
부산대 기후과학연구소 이준이 교수는 기조 강연에서 미국, 독일 등 23개 선진국에 과거(1850~2020) 세계 온실가스 배출 책임의 50%가 있다고 지적했다. 나머지 50%는 중국, 러시아를 포함한 150개 개발도상국의 책임이다. 두 그룹을 합쳐 가장 많이 배출한 4개국은 미국(24.6%), 중국(13.9%), 러시아(6.8%), 독일(5.5%)이었다. 한국은 1.1%의 책임이 있다고 이 교수는 밝혔다. 그는 “이것도 적지 않다”며 “1인당 온실가스 배출량을 살펴보면 우리나라가 왜 ‘기후악당’이라고 불리는지 알 수 있다”고 말했다. 세계 각국의 연간 1인당 온실가스 배출량은 평균 6~7톤(t)인데 한국은 13.6t으로 약 2배에 달하기 때문이다. 이 교수는 기후변화정부간협의체(IPCC)가 지난 3월 내놓은 6차 제1 실무그룹 보고서의 총괄 주저자이자 종합보고서 핵심 저자로 활동했다.
이 교수는 같은 국가 안에서도 ‘기후 부정의’가 존재한다고 지적했다. 한국을 포함한 동아시아를 보면 상위 10% 가구가 연간 40t 정도를 배출하고, 중간 가구의 배출량은 10.9t 정도라고 한다. 그는 “IPCC 보고서를 보면 국가 내에서 빈부격차가 커질수록 배출량의 격차가 더욱 커진다”며 “기후위기는 우리 사회의 공정성 및 형평성의 부재와 연결되어 있다는 걸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취약 지역에 사는 사람들은 재해로 사망할 확률이 최대 25%가 높다”고 덧붙였다.
이 교수는 한국의 기후위기 대응이 매우 부진하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한국은 최종 에너지 소비에서 재생에너지가 차지하는 비중이 2019년 기준 4.7%에 불과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최하위를 기록했다. OECD 평균은 23.42%였다. 국제 평가기관인 저먼워치와 기후연구단체 뉴클라이밋연구소가 발표한 ‘2023 기후변화대응지수(CCPI) 순위’에서 한국은 63개국 중 종합 60위로 최하위권이었다. 평가 기준별로 따지면 온실가스 감축 부문 56위, 재생에너지 51위, 에너지 소비 60위, 기후정책 50위다.
채식과 ‘그린 일자리’에 관심 많은 젊은 세대
이어진 기후담화 세션에서는 방송인이자 기후행동가인 줄리안 퀸타르트 씨가 좌장을 맡아 토론을 진행했다. 청년기후활동단체 유세이버스의 민경원(광운대 국제학부) 활동가는 “친환경, 그린 일자리에 대한 관심이 굉장히 증가하는데 서울시는 어떤 정책을 계획하고 시행하는가”라고 물었다. 이인근 서울시 기후환경본부장은 “일자리들이 많이 생길 수 있는 다양한 그린 산업에 대한 지원체계를 가져야겠다고 생각한다”며 오는 28일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에서 열리는 국제 기후테크 컨퍼런스를 소개했다.
이화여대 석사과정 대학원생인 팜 카잉 린 씨는 “가축 사육으로 발생하는 이산화탄소를 줄이기 위해 채식이나 비건(완전 채식)을 선택하는 사람이 많은데, 교내 식당에서는 비건 옵션에 제한이 있다”며 서울시의 정책 대응을 건의했다. 이 본부장은 “각종 비건 식단에 대한 가이드라인은 앞으로 다듬어 가고 정교하게 해야 할 정책 중 하나”라고 답했다. “비건 3년 차”라고 밝힌 퀸타르트 좌장은 “한국에서 식물성 대체식품 활성화 방안 관련 법안을 12월 즈음에 하나 발표한다고 한다”며 “전 세계적으로 두 번째”라고 소개했다.
곽재식 숭실사이버대학교 환경안전공학과 교수는 ‘더 가깝게 생각해 볼 기후변화’를 주제로 한 강연에서 “기후변화를 ‘지구가 종말을 맞고 인류가 멸망할 수 있다’는 종말론 대신 ‘내 삶에 영향을 미치는 세부적 측면’에 집중해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2021년 8월에 발간된 IPCC 보고서에 따르면 평균 기온이 산업화 이전에 비해 1.5℃ 상승하면 가뭄이 2.4배, 홍수가 1.5배, 태풍이 10% 늘어날 수 있다. 곽 교수는 “농사짓는 사람들은 가뭄이 들어서 비가 오지 않으면 그해 농사를 다 망치게 되는데, 이는 일자리가 없어지고 생계가 막막해지는 일”이라며 기후변화를 각자 삶의 문제로 생각해 볼 것을 제언했다.
곽 교수는 이어 “저지대나 산비탈 등 비가 많이 내렸을 때 산사태 위험이 있는 곳에 사는 사람들은 생명에 위협을 받을 수 있다”며 “좋은 집에서 사는 사람보다 이산화탄소 배출을 덜 했는데 피해는 이 사람들이 입게 된다는 게 기후변화 문제의 핵심”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기후변화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불균형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에 대해 같이 고민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기후 약자 고려하는 도시 정책 절실
세계 온실가스의 80%를 배출하는 대도시들이 기후변화에 공동 대응하기 위해 발족한 협의체인 C40가 주관한 세션에서는 기후재난에 시달리는 각국의 참가자들이 경험담을 나눴다. 음토비시 은지만데 남아프리카공화국 국립생물성다양성연구소 부연구소장은 “남아프리카공화국은 서쪽에서 가뭄을 겪고, 반대편은 홍수를 겪고 있다”며 “재난을 완화할 수 있는 생태계 보전 이니셔티브를 마련해 도시 내 녹색 공간을 더 많이 만들고 있다”고 밝혔다.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는 지난 5~6년 동안 매년 홍수가 일어나 많은 사람이 목숨을 잃었다.
모하마드 타우르 라만 방글라데시 환경산림기후변화부 부사무관은 “태풍이나 가뭄으로 인해 피해를 본 인구가 기후 난민이 되어 대도시의 비공식 거주지에 정착하게 되면 위생 문제가 발생한다”며 정부가 기후신탁을 조성해 난민 이주를 지원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방글라데시는 온난화 영향으로 히말라야산맥 빙하가 녹으면서 저지대의 침수 피해 등이 커지고 있다.
마리아 비앙카 도마네즈 페레즈 필리핀 퀘손시 재난위험경감 및 관리사무소(QCDRRMO) 책임자는 퀘손시가 데이터 수집을 바탕으로 재난 관련 의사 결정을 도와주는 프로그램을 도입했다고 소개했다. 해수면 온도 상승 등으로 태풍이 더 잦아지고 강해지면서, 태풍 영향권에 놓인 필리핀 각 지역에서는 매년 큰 인명피해가 이어지고 있다.
한편 이번 포럼에서는 행사 과정에서 발생한 온실가스를 ‘탄소 크레딧’으로 상쇄하는 ‘넷제로’(Net Zero) 행사도 함께 열렸다. 기후변화센터에 따르면 포럼 참가자들이 행사장으로 이동하는 과정에서 1335.2킬로그램(kg), 행사장의 전력과 가스로 인해 1492.3kg 등 포럼에서 총 2830kg의 탄소가 배출됐다. 주최 측은 캄보디아 클린스토브 설치 사업을 통해 확보한 탄소 크레딧으로 이를 상쇄할 것이라고 밝혔다. 클린스토브 사업은 가축 분뇨를 이용해 바이오가스를 만들고 농가에 보급하는 사업으로, 기후변화센터와 캄보디아 정부가 2016년부터 추진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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