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시대] ㊸ 이상기후가 낳는 농작물 피해와 대안

“배추가 꿀통이 찬 거예요. 속썩음병이라고 그러는데, 이게 있으면 팔아먹질 못해요. 이게 기후가 갑자기 더워져서, 날이 가물다가 갑자기 비 오고 이런 상태에서 썩은 거예요. (배추를) 잘라봤는데 이런 거는 전량 폐기처분돼요. 저기 (상자에 담아놓은) 배추가 다 처리될 것 같아요.”

지난달 14일 경기도 연천군 군남면 남계리의 한 저온 저장고. 무와 배추, 양상추 등을 친환경 농법으로 재배하는 윤광진(50) 씨는 잎이 누렇게 변한 배추를 들어 보였다. 폭염과 폭우 등 이상기온이 지속돼 정상적으로 영글지 못하고 속이 썩어버린 배추다. 윤 씨는 농사지은 배추를 전량 경기도 친환경 급식으로 납품해 왔다. 하지만 올해 출하한 2톤(t) 가량의 배추는 모두 반환당했다. 겉보기엔 멀쩡하지만 갈라보면 알 수 있는 ‘속썩음병’에 걸렸기 때문이다.

학교 급식 납품 배추 2톤 고스란히 ‘퇴짜’

경기도 연천군 농부 윤광진 씨가 속이 썩어 출하를 포기한 배추를 들어 보이고 있다. 김은송 기자
경기도 연천군 농부 윤광진 씨가 속이 썩어 출하를 포기한 배추를 들어 보이고 있다. 김은송 기자

1997년부터 연천에서 농사를 지어온 윤 씨는 최근 들어 급격해진 기후변화를 체감하고 있다고 말한다.

“최근에 거의 엄청 더워진 것 같고. 날씨가 추운 지방이거든요, 연천이 원래. 그 추위가 많이 없어졌어요. 겨울에도 덜 춥고 봄이 짧아지고. 확실하게 여긴 느끼죠. 계절적 영향이 굉장히 많아요.”

그는 무에 비하면 배추는 상황이 나은 편이라고 말했다. 폭염과 가뭄으로 농사를 망친 무는 수확도 하지 못한 채 전량 폐기됐다. 윤 씨는 “수확을 두 팩(약 1.5t) 정도 했는데 (소비자에게) 클레임 걸려서 팔지 못하고 폐기가 됐다”며 “인건비가 안 나오니까 밭에 방치된 상황”이라고 말했다. 1000평에 달하는 무밭에는 뜨거운 기온을 견디지 못하고 녹아버리거나 잎이 타들어 간 무들이 여기저기 널려있었다. 윤 씨는 올해 무와 배추 농사에서 각각 1000만 원, 1500만 원가량의 수입을 잃었다고 했다. 인근의 다른 채소 재배 농가들도 가뭄 피해를 많이 봤다고 그는 덧붙였다.

뜨거운 기온에 녹거나 갈라져 버린 무들이 수확되지 못한 채 밭에 버려져 있다. 김은송 기자
뜨거운 기온에 녹거나 갈라져 버린 무들이 수확되지 못한 채 밭에 버려져 있다. 김은송 기자

기상청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평균기온은 10년마다 약 0.3도씩 상승하고 있다. 농가 피해도 이에 따라 증가하는 추세다. 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장마, 태풍, 이상저온 등으로 재해를 입은 농작지 면적은 2016년 3만 7667헥타르(ha)에서 2020년 20만 3576ha로 5배 이상 늘었다. 이는 전체 경지면적 158만 1000ha의 약 13%에 달한다. 

농작물은 널뛰는 날씨에 직접 영향을 받는다. 농림부에 따르면 올해 1~5월 전국 누적 강수량은 160.7밀리미터(mm)로 평년의 52% 수준에 그쳤다. 이 때문에 채소 작황이 큰 타격을 받았다. 통계청이 지난달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올해 양파 생산량은 119만 5563t으로 전년대비 38만 1189t, 약 24% 감소했다. 마늘은 27만 2759t으로 3만 5773t(11.6%) 감소했다. 통계청은 마늘 재배면적이 전년보다 1.6% 증가했지만 알이 굵어지는 시기에 강수량이 부족했고, 과다한 일조량 등 기상 여건이 나빠져 생산이 부진했다고 분석했다.

기상재해로 인한 작황 부진은 밥상물가를 불안하게 만든다. 통계청이 발표한 지난달 소비자물가동향을 보면 신선식품지수가 전월대비 6.9%, 전년동월대비 13% 상승했다. 특히 신선채소는 전월대비 17.3% 뛰었다. 품목별로는 전년동월대비 상승률이 배추 72.7%, 상추 63.1%, 시금치 70.6%, 오이 73%, 파 48.5% 등으로 대부분 채소류 값이 훌쩍 올랐다.

10년마다 약 0.3도씩 올라가고 있는 우리나라의 연평균기온. 그래픽 김은송
10년마다 약 0.3도씩 올라가고 있는 우리나라의 연평균기온. 그래픽 김은송

이상기후로 작황 부진, 전 세계 물가 상승 압박  

이상기온으로 인한 농작물 피해는 우리나라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지난달 28일 미국 <워싱턴포스트>는 가뭄으로 캘리포니아주 토마토 농사가 큰 피해를 입고 있다고 보도했다. 캘리포니아는 미국 캔토마토의 90% 이상, 전 세계 캔토마토의 삼분의 일을 생산하는 주요 재배지다. 하지만 올해는 지속된 가뭄으로 물 공급에 어려움을 겪자 많은 농부들이 토마토 등 한해살이 작물을 포기하고 영구 재배가 가능한 포도나 나무 재배 등에 물 공급을 집중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토마토 생산 차질에 따라 외식 물가도 연쇄적으로 오를 것이라고 전망했다.

지난 3일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올해 인도의 서벵골주와 우타르 프라데시주의 벼 재배면적이 가뭄으로 13% 줄었다. 인도는 방글라데시, 중국, 네팔 등과 함께 가장 쌀을 많이 공급하는 나라인데, 쌀 수확량 감소가 수출 규제를 촉발하는 경우 쌀을 주식으로 하는 수십억 명의 소비자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이 통신은 전망했다. 폭염에 시달리고 있는 인도는 이미 지난 5월 작황이 좋지 않은 밀에 관해 수출 금지령을 내렸다.

이상기후에 따른 농작물 작황 부진은 전 세계에 인플레이션 압력을 높이고 있다. 지난 6월 미국의 소비자물가지수는 9.1% 올라 1981년 11월 이후 가장 높은 상승폭을 기록했다. 유럽연합 통계기구인 유로스타트(Eurostat)에 따르면 유로존(유로화 사용 19개국)의 6월 소비자물가도 전년 동월 대비 8.6% 상승해 1997년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유엔(UN) 산하 기후변화에관한정부간협의체(IPCC)가 2019년 발간한 <기후변화와 토지에 관한 특별 보고서>는 기후변화가 식량 안보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경고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기후변화는 작물 재배량 자체를 변화시킬 뿐만 아니라 물의 양과 질 감소, 병해충 등의 간접적 영향을 통해서도 식량 생산에 타격을 준다. 보고서는 기후변화가 1981~2010년 전 세계의 옥수수와 밀, 콩 평균 산출량을 각각 4.1%, 1.8%, 4.5% 감소시켰다고 분석했다. 보고서는 앞으로 지구의 온도가 4도 상승하면 20도 이상의 기온에서 자라는 채소의 수확량이 31.5% 감소할 것으로 전망했다.

농작물 손실 보상 위한 안전장치 필요

농민들에게 예기치 못한 자연재해는 곧 한해 소득의 손실을 의미한다. 농사에 실패해 수확이 줄면 그 빚은 농민 개인이 고스란히 떠안게 된다. 농가의 손실을 최소화하고 안정적인 농업 활동을 지원하는 제도적 도움이 없다면 회생이 어려울 수 있다. IPCC의 <기후변화와 토지에 관한 특별보고서> 또한 농가의 기후변화 적응과 위험 관리를 돕기 위한 방안으로 재해보험, 재해대비기금 등이 필요하다고 권고했다.

현재 우리나라는 자연재해로 인한 농작물피해를 보상하고 농업인의 경영안정을 돕기 위해 농작물재해보험을 운영하고 있다. 농작물재해보험은 태풍, 우박, 지진, 조수해(야생동물 피해) 등에 따른 농작물 피해를 보상해 주는 정책 보험이다. 보험료의 50% 내외를 국비로 지원하며 지방자치단체가 30~50%를 지원한다. 2001년 사과와 배 두 가지 품목으로 시작한 농작물재해보험은 현재 가입 대상 품목이 67가지로 늘었고 2001년 8055호이던 가입 농가수도 2021년 49만 7884호로 늘었다.  

 연도별 농작물재해보험금 지급 현황. 출처 농림축산식품부
 연도별 농작물재해보험금 지급 현황. 출처 농림축산식품부

그러나 농작물재해보험 제도의 실효성은 아직 부족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보험가입률이 49.4%에 불과해 절반 이상의 농가가 보험 사각지대에 방치돼 있으며 가입 품목과 지역의 확대 또한 필요하다는 것이다. 김태후 한국농촌경제연구원 부연구위원은 <단비뉴스> 전화 인터뷰에서 보험 가입의 기준이 되는 작물 수확량에 대한 데이터 보강과 품질 손실에 대한 보장 방안 마련 등 개선 과제가 많다고 지적했다.

‘대구 사과’는 옛말, 해발 800m로 올라간 과수원

변화하는 기후는 농산물 경작 지도를 바꾸고 있다. 해발 800m에 자리한 강원도 태백시의 사과 농장이 그중 한 곳이다. 지난 14일 찾은 태백시 문곡동의 한 사과 농장에는 알이 굵은 사과들이 붉게 익어가고 있었다. 5000평가량 펼쳐진 사과밭 뒤편으로는 강원 지역의 주 재배 작물인 고랭지 배추밭이 보였다.

이 지역에서 2009년 태백시 최초의 사과 농사를 시작한 염동일(69) 씨는 “지난 십여 년간 태백의 기후가 변화하며 농사의 양상도 달라졌다”고 말했다.

“처음 사과 농사를 시작했을 때는 애를 먹었어요. (태백의 해발이) 높다 보니까 눈도 많이 오고, 얼음이 얼어 작황이 안 좋았죠. 그런데 약 5, 6년 전부터 기후가 온난화돼서 이제는 사과 농사짓기 아주 적절해졌습니다.”

염 씨에 따르면 강설량이 많아 눈꽃축제가 열리기도 하던 ‘설국 태백’은 이제 옛말이 됐다. 5~6년 전만 해도 한 번 눈이 오면 허리까지 쌓였지만 요즘은 금방 녹아버릴 정도만 내린다고.

실제 태백의 평균기온은 1991~2000년 8.6도, 2001~2010년도 9도, 2011~2020년 9.3도로 꾸준히 따뜻해지고 있다.

염 씨의 아버지는 1970년대 대구에서 사과 농사를 지었다. 대구와 경북 지역은 1990년대까지만 해도 사과 주산지였지만 요즘은 사과 농가가 별로 없다. 대신 태백에 500평, 1000평씩 작게 사과 농사를 짓는 농가들이 꽤 많다고 그는 설명했다.

해발 800m에 달하는 강원도 태백시의 농장에서 사과나무가 잘 자라고 있다. 김은송 기자
해발 800m에 달하는 강원도 태백시의 농장에서 사과나무가 잘 자라고 있다. 김은송 기자

농작물 재배지도 변화에 맞춰 농업기술 지원 추진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주요 농작물의 주산지가 남부 지방에서 충북, 강원 지역 등으로 많이 북상했다. 인삼은 충남 금산에서 경기·강원 지역으로, 포도는 경북 김천에서 충북·강원 등으로 이동했다.  

월평균기온 10도 이상이 8개월 이상 지속되면 아열대 기후라고 하는데, 현재 국내 경지면적의 10.1%가 아열대 기후권에 속한다. 전문가들은 2080년이 되면 아열대 경지면적이 62.3%로 증가할 것으로 보고 있다. 현재 추세대로 온실가스가 계속 배출된다고 가정하는 ‘RCP(대표농도경로·Representative Concentration Pathway) 8.5 시나리오’에 따르면 21세기 후반에는 강원도 산간을 제외한 남한 대부분의 지역이 아열대 기후로 변한다.

21세기 한반도 아열대 기후구 변화 전망 지도. 출처 통계청
21세기 한반도 아열대 기후구 변화 전망 지도. 출처 통계청

이런 국내 작물 생산지 변화에 대처하기 위해 농업계도 방안을 마련하고 있다. 농촌진흥청은 기후변화에 대응해 ‘신농업기후변화대응체계구축사업’을 운영하고 있다. 사업단 내부에 기후영향예측평가연구단, 기후적응기술연구단, 기상재해대응기술연구단, 저탄소농업기술연구단 등 4개 부서를 두고 관련 연구를 진행 중이다. 예를 들어 농업환경과 농업생태계 다양성이 기후변화에 따라 어떻게 취약해지는지 평가하고, 이에 대응하는 작물을 육성한다. 또 가뭄에 대처하기 위해 최적의 관개기술을 개발하는 연구도 추진 중이다.

[기후위기시대]

① 온실가스 주범 석탄발전소 ‘더 짓는 중’

② '기후우울' 떨치고 '어벤져스'로 나서다

③ 탄소세 부과로 ‘신호’ 줘야 기업 바뀐다

④ 노동·지역경제 배려 ‘정의로운 전환’을

⑤ "석탄발전소 짓는 한국, 리더 아닌 꼰대"

⑥ ‘그린워싱 대신 행동을’ 거센 녹색 함성

⑦ "SMR 등 원전은 기후위기 대안 못 돼"

⑧ “상용화 먼 핵융합, 탄소중립 도움 안 돼”

⑨ “기후위기 극복 의무를 헌법에 넣자”

⑩ 소형모듈원전(SMR) 상용화 가망 없다

⑪ “파이로프로세싱은 과학 아닌 소설”

⑫ 기후재난으로 원전 위험성 더 커진다

⑬ ‘기후 일자리’ ‘탄소국민배당’ 추진을

⑭ 고기 즐기는 너, 기후변화 공범 아니니

⑮ 청소년은 ‘미래’ 아닌 기후재난 ‘당사자’

⑯ 기후 미술관, ‘제로 웨이스트’로 가다

⑰ 쓰레기 줍다 보니 삶이 바뀌더라

⑱ “한국 공적금융이 에너지 전환 걸림돌”

⑲ ‘ESG 경영’ 뒤로 ‘기후행동 봉쇄 소송’

⑳ ‘국민이 처한 위험’ 알리려 당근 쏟았다

㉑ 나는 오늘 옷을 샀다, 기후위기를 샀다

㉒ 시민이 일어나 정부·기업을 움직이자

㉓ 탄소 줄이는 갯벌 메워 공항을 짓다니

㉔ 공장식 축산 줄이고 채식 늘려야 생존

㉕ 경작과 에너지 생산을 ‘하이브리드’로

㉖ 이재명 ‘재생에너지’, 윤석열 ‘원전’ 강조

㉗ 이재명·윤석열도 ‘기후대선’ 동참해야

㉘ ‘할머니가 지킬게, 초록지구’ 119 출동

㉙ 기후변화만큼 핵발전도 위험하다

㉚ ‘주차장 태양광’ 시급한데 조례로 막아

㉛ 채식 급식 확대, 환경교육과 병행 필요

㉜ 지구는 우리가 지킨다, 연구의 힘으로

㉝ 낡은 단독주택이 제로에너지 건물로 깜짝 변신

㉞ 개발에 밀린 무허가 정착민의 ‘생존 연료’

㉟ 난청·진폐 앓아도 떠날 곳 없는 노동자들

㊱ 실종된 ‘기후정치’를 찾습니다

㊲ ‘막장’에서 땀 흘린 이들의 희망은 어디에

㊳ 물 부족은 아프리카에서 끝나지 않는다

㊴ 돌고 돌아 사람 몸속에 쌓이는 플라스틱

㊵ 바이오연료, 전기차로 가는 징검다리 될까

㊶ 왕우렁이가 돕는 쌀농사, 도시농부도 보람

㊷ 취약층 ‘쪄 죽는 사회’ 막으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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