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시대] 87. 농식품 테크 스타트업 박람회가 보여 준 가능성

“여기는 탄소중립을 어떻게 하고 있나요?”

지난 27일 오전 10시쯤 서울 강남구 삼성동 코엑스(COEX) 에이(A)홀의 제1회 농식품 테크 스타트업 박람회 행사장. 전체 공간의 중간쯤에 있는 ‘도시농사꾼’의 전시관을 둘러보던 흰색 티셔츠 차림의 20대 남성이 직원에게 물었다. 스마트팜(정보기술을 이용한 농업)의 하나인 ‘큐브팜’을 조성한 공간에서 안내하던 30대 여성 직원은 잠시 머뭇거리다 웃으며 “탄소중립은 앞으로의 목표”라고 답했다. 그는 “지금은 버섯을 재배할 때 배지(배양토)로 친환경적인 참나무를 써서 생분해가 될 수 있도록 한다”고 설명했다. 탄소중립이란 생산과정 등에서 화석연료 사용을 최소화해 탄소가 거의 배출되지 않도록 하고, 배출된 탄소는 나무 심기 등으로 모두 흡수하는 것을 말한다. 한국은 2050년 탄소중립을 달성하는 것을 국가적 목표로 삼고 있다.

애그테크, 푸드테크 등 250개 기업 참여

스마트팜의 일종인 ‘큐브팜’에서 버섯 등을 생산하는 도시농사꾼의 전시관 모습. 대표적 제품인 표고버섯 은화고가 생산되는 과정을 재현했다. 김지영 기자
스마트팜의 일종인 ‘큐브팜’에서 버섯 등을 생산하는 도시농사꾼의 전시관 모습. 대표적 제품인 표고버섯 은화고가 생산되는 과정을 재현했다. 김지영 기자

지난 26일부터 3일 동안 열린 이 박람회에서 참가 기업과 관람객의 대표적인 관심사는 ‘친환경’과 ‘탄소중립’이었다. 많은 기업이 홍보 전단 등에 ‘지속가능성’ ‘이에스지(ESG)’ ‘친환경’ 등의 문구를 내세웠고, 관람객도 각 회사의 탄소중립 추진 전략에 관심을 보였다. 또 행사장 안에서 커피 등 음식을 판매하는 카페테리아 맞은 편에는 다회용기를 수거하고 쓰레기를 분리배출 할 수 있는 공간이 눈에 띄게 마련되어 있었다.

농식품 테크 스타트업 창업 박람회장의 카페테리아 맞은편에 마련된 다회용기 반납과 쓰레기 분리배출 공간. 김지영 기자
농식품 테크 스타트업 창업 박람회장의 카페테리아 맞은편에 마련된 다회용기 반납과 쓰레기 분리배출 공간. 김지영 기자

농림축산식품부가 주최하고 한국농업기술진흥원, 엔에이치(NH)농협, 코엑스, 한국푸드테크협의회가 공동으로 주관한 이 행사에는 애그테크, 푸드테크, 그린바이오 분야의 스타트업(창업초기기업)과 공공기관, 대기업, 투자사 등 250개 회사가 참여했다. 또 농식품업계 종사자와 관련 전공 학생 등이 매일 수백 명씩 관람했다고 주최 측은 밝혔다. 애그테크는 빅데이터 기술 등을 활용해 노동력 부족이나 이상 기후로 인한 작황 피해 등의 문제를 해결하는 사업을 말한다. 푸드테크는 식품의 생산·유통·소비에서 맛, 건강, 환경 등 부가가치를 부여하는 첨단 기술을, 그린바이오는 미생물을 활용한 비료 제조 등 생명공학으로 농업에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기술을 말한다. ESG 경영은 기업이 매출, 이익 등 재무적 가치뿐만 아니라 환경과 사회, 지배구조 개선 등 비재무적 가치도 중시하는 것을 의미한다.

지난 26일부터 3일 동안 제1회 농식품 테크 스타트업 창업 박람회가 열린 코엑스 전시장 입구 모습. 김지영 기자
지난 26일부터 3일 동안 제1회 농식품 테크 스타트업 창업 박람회가 열린 코엑스 전시장 입구 모습. 김지영 기자

버려지는 식품과 부산물의 쓰임새 새로 발견

80개의 전시장이 마련된 푸드테크 구역에서는 ‘푸드 업사이클’ 스타트업의 전시가 눈길을 끌었다. 푸드 업사이클이란 버려지는 식품이나 농업 부산물을 활용해 새로운 상품을 만드는 것을 말한다. 제주시 한림읍에 본사가 있는 주식회사 비유는 감귤 껍질을 활용해 바크(농업용토)를 만든다. 바크는 나무껍질과 비슷한 재질로, 작물이 자라는 토양의 온도와 습도를 유지하고 잡초를 방지한다. 이 회사의 김정은 공동 대표는 “감귤 껍질이 음식물 쓰레기로 분류되어 매립될 경우 메탄가스를 발생시키지만, 이것을 ‘탄소 덩어리’인 바크로 만들면 생분해되어 탄소를 토양으로 돌려보낼 수 있다”고 말했다.

2020년 설립된 이 회사는 감귤 껍질로 바크를 만드는 기술이 정부 국책 연구과제로 선정돼 지원받았다. 회사 홈페이지 설명에 따르면 국내에서 한 해 생산된 감귤의 25% 정도가 상품 가치 부족으로 유통되지 못하거나, 유통과정 중에 손상돼 폐기된다. 제주시는 감귤 생산량이 많은 만큼 버려지는 감귤 껍질로 단미사료, 친환경 포장재 등을 만드는 방안을 모색해 왔다.

이번 박람회에서는 과잉 생산되는 설탕을 활용해 식용 점토를 만드는 크리에이터스랩, 선인장·고구마 등 농업 부산물을 활용해 식물성 가죽 원단을 만드는 그린컨티뉴도 관심을 모았다. 또 맥주 부산물의 단백질 영양분과, 주스를 만들고 남은 사과 찌꺼기로 친환경 어메니티(편의용품)를 제조하는 서스테이너블랩도 참여했다. 스윗앤스위츠는 막걸리를 만들고 남은 부산물인 지게미를 넣은 ‘막지 마들렌’과 ‘막지 아이스크림’ 시식회를 열기도 했다.

농업부산물을 활용해 식물성 가죽 원단을 만드는 그린컨티뉴의 전시장과 제품 모습. 그린컨티뉴 제공.
농업부산물을 활용해 식물성 가죽 원단을 만드는 그린컨티뉴의 전시장과 제품 모습. 그린컨티뉴 제공.

음식물 새롭게 활용하는 ‘푸드 업사이클링’ 뜬다

27일 오후 1시부터 2시 40분까지 행사장에서 열린 ESG 주제 컨퍼런스에서는 푸드 업사이클링, 즉 음식의 ‘새활용’에 관한 발표와 토론이 이어졌다. ‘리하베스트’의 최동욱 최고운영책임자(COO)는 ‘국내외 푸드 업사이클링 현황’ 발표에서 맥주를 양조하고 남은 곡물을 과자의 원료로 사용하는 ‘리그레인드’와 못난이 유기농 바나나를 가공해 과자를 만드는 ‘버나나’ 등 미국 회사 사례를 소개했다. 그는 이어 리하베스트가 맥주와 식혜를 제조하고 남은 부산물인 맥주박, 식혜박으로 대체 밀가루인 ‘리너지 가루’를 개발한 과정을 설명했다. 리너지 가루는 과자, 빵, 국수류를 만드는 데 활용하며, 밀가루와 비교해 단백질이 두 배 많고 식이섬유는 20배 많다고 한다. 그는 국내에서 연간 발생하는 맥주, 식혜 부산물을 음식물 쓰레기로 매립할 때 발생하는 탄소량은 110만 톤(t)으로, 승용차 24만 대가 1년 동안 배출하는 탄소량과 같다고 덧붙였다.

리하베스트 최동욱 COO가 맥주, 식혜 부산물로 만든 ‘리너지 밀’의 탄소 저감 효과를 설명하고 있다. 김지영 기자.
리하베스트 최동욱 COO가 맥주, 식혜 부산물로 만든 ‘리너지 밀’의 탄소 저감 효과를 설명하고 있다. 김지영 기자.

대체육 전문 스타트업인 ‘지구인컴퍼니’의 민금채 대표는 콩기름을 짜고 남은 콩 찌꺼기를 활용해 식물성 고기를 만드는 사업 현황에 관해 설명했다. 그는 “식물성 대체육은 소고기 생산과 비교해 약 20배 이상 낮은 수준의 탄소가 발생한다”고 밝혔다.

유엔개발계획(UNEP)이 발표한 ‘2021 음식물 쓰레기 지수 보고서’에 따르면 2019년 전 세계에서 생산된 음식물 가운데 17%가 폐기됐다. 농업계, 식품업계 등이 이 문제에 주목함에 따라 폐기될 음식물과 식품 부산물을 활용한 푸드 업사이클링 산업은 지속 성장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에 따르면 전 세계 업사이클링 푸드 산업의 규모는 2022년 기준 530억 달러(약 70조 원)이며, 2032년에는 833억 달러(약 110조 원) 규모로 될 것으로 추정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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⑥ ‘그린워싱 대신 행동을’ 거센 녹색 함성

⑦ "SMR 등 원전은 기후위기 대안 못 돼"

⑧ “상용화 먼 핵융합, 탄소중립 도움 안 돼”

⑨ “기후위기 극복 의무를 헌법에 넣자”

⑩ 소형모듈원전(SMR) 상용화 가망 없다

⑪ “파이로프로세싱은 과학 아닌 소설”

⑫ 기후재난으로 원전 위험성 더 커진다

⑬ ‘기후 일자리’ ‘탄소국민배당’ 추진을

⑭ 고기 즐기는 너, 기후변화 공범 아니니

⑮ 청소년은 ‘미래’ 아닌 기후재난 ‘당사자’

⑯ 기후 미술관, ‘제로 웨이스트’로 가다

⑰ 쓰레기 줍다 보니 삶이 바뀌더라

⑱ “한국 공적금융이 에너지 전환 걸림돌”

⑲ ‘ESG 경영’ 뒤로 ‘기후행동 봉쇄 소송’

⑳ ‘국민이 처한 위험’ 알리려 당근 쏟았다

㉑ 나는 오늘 옷을 샀다, 기후위기를 샀다

㉒ 시민이 일어나 정부·기업을 움직이자

㉓ 탄소 줄이는 갯벌 메워 공항을 짓다니

㉔ 공장식 축산 줄이고 채식 늘려야 생존

㉕ 경작과 에너지 생산을 ‘하이브리드’로

㉖ 이재명 ‘재생에너지’, 윤석열 ‘원전’ 강조

㉗ 이재명·윤석열도 ‘기후대선’ 동참해야

㉘ ‘할머니가 지킬게, 초록지구’ 119 출동

㉙ 기후변화만큼 핵발전도 위험하다

㉚ ‘주차장 태양광’ 시급한데 조례로 막아

㉛ 채식 급식 확대, 환경교육과 병행 필요

㉜ 지구는 우리가 지킨다, 연구의 힘으로

㉝ 낡은 단독주택이 제로에너지 건물로 깜짝 변신

㉞ 개발에 밀린 무허가 정착민의 ‘생존 연료’

㉟ 난청·진폐 앓아도 떠날 곳 없는 노동자들

㊱ 실종된 ‘기후정치’를 찾습니다

㊲ ‘막장’에서 땀 흘린 이들의 희망은 어디에

㊳ 물 부족은 아프리카에서 끝나지 않는다

㊴ 돌고 돌아 사람 몸속에 쌓이는 플라스틱

㊵ 바이오연료, 전기차로 가는 징검다리 될까

㊶ 왕우렁이가 돕는 쌀농사, 도시농부도 보람

㊷ 취약층 ‘쪄 죽는 사회’ 막으려면

㊸ 속 썩은 배추에 농부 마음도 썩어들어가고

㊹ 탄소흡수 ‘바다숲’ 228곳 조성 후 관리 미흡

㊺ 중·고교 5600여 곳에 환경담당 교사는 41명

㊻ ‘탈석탄법’으로 신규발전소 건설 중단 길 터야

㊼ 강력한 탈탄소 정책과 기후정의 함께 가야

㊽ ‘기후재난, 이대로 살 수 없다’ 역대 최대 인파

㊾ BTS RM의 그 가방, 폐시트와 빗물로 제작a

㊿ 채취량 반으로 줄고 낙석에 생명의 위협도

51. ‘그린워싱’ 고발하다 법정에 선 활동가들

52. 보틀클럽과 리필스테이션이 있는 마을 실험실

53. ‘블루카본’ 갯벌을 신공항으로 덮으려는 정치

54. 애타는 기후 시민, 정부를 법정에 세웠다

55. 기후행동 ‘목적의 정당성’ 인정한 판결에 환호

56. ‘단 한 명이라도…’ 매주 간절하게 올리는 기도

57. 과학자들, '엉터리 근거로 오염수 투기 강행' 비판

58. 농지에서는 농사를, 유휴부지에는 태양광을

59. 호수 위에 뜬 그 꽃잎이 태양광발전소라니

60. 우리 땅 농산물과 천연재료를 고집하는 가게

61. 과학을 부인한 그들, 세계를 위험에 빠트리다

62. 아이들이 안전하게 살아갈 ‘봄’을 만드는 마음

63. 환경을 살리는 선택이 일자리도 만드는 시대

64. 소비 중독 벗고 ‘순환 경제’로 가야 살아남는다  

65. 기업 ‘친환경 경영’ 속도 높일 단일법 추진

66. 오염수 방류 임박, 후쿠시마 참사는 ‘진행 중’

67. 쓰레기 안 만드는 생산·유통·소비에 도전하다

68. ‘소·돼지·닭의 복지’도 인간에게 중요하다

69. 늘어나는 대형 산불 '불막이 숲' 등 대책 시급

70. "온실가스 감축 부담을 미래세대에 전가 말라"

71. 한국 온난화 속도는 지구 평균의 2~3배

72. ‘자본 아닌 인간 편에서 탄소중립을’ 거센 함성

73. 커피 찌꺼기도 ‘기후테크’로 저탄소 자원 변신

74. "원전 진흥 기구 IAEA, 결론 정해놓고 조사"

75. 소비자는 ‘불편’ 점주는 ‘고객 이탈’ 불만

76. 공장식 축산 줄이고 동물권도 지키는 대안 

77. '생키호테'와 '계르반테스'는 무엇을 보았나

78. 폐스티로폼으로 지구의 위기를 말하다

79. '녹아내리는 빙하' 춤으로 알리는 사람들

80. ‘그린수소’ ‘멀티콥터 드론’ 아직은 기술개발 중

81. 수산물 타격에 주민 떠나 ‘유령마을’ 될까 걱정

82. 세계녹색당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 반대’ 결의

83. 지구 지키는 농사꾼, 친환경 소비자를 만나다

84. “핵 오염수 해양 투기 말고 육상 저장” 한목소리

85. '입을 옷이 없다'는 그대여

86. ‘보기도 좋은 태양광 건물’ 한국은 아직 걸음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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