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시대] ㉞ 연탄의 정의로운 전환 (상)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에너지전환이 시대적 과제가 된 가운데 화석연료산업의 노동자, 지역주민, 소비자 등이 부당한 피해를 보지 않게 배려하는 ‘정의로운 전환’(Just Transition)도 중대한 숙제로 떠올랐다. 국내에서 가장 값싼 연료인 연탄은 전국의 8만여 빈곤 가구가 ‘생존 연료’로 쓰고, 26곳의 공장에서 고령의 저임금노동자가 생산하며, 그 원료인 석탄은 광업소 4곳에서 ‘골격계나 진폐 환자가 되어가는’ 탄광노동자가 캐고 있다. <단비뉴스>는 정부의 탈석탄 정책이 이들 연탄 소비자, 노동자, 지역주민 등에게도 정의로운 전환이 되는 방향으로 진행되고 있는지 점검하고 필요한 대안을 모색한다. (편집자) 

지난 3월 26일 오후 2시 서울시 노원구 상계3·4동 수락산 자락 별빛마을에 사회복지재단 밥상공동체 연탄은행의 자원봉사자 100여 명이 모였다. 초등학생을 동반한 50대 부부와 대학생, 직장인 등 다양한 연령대의 봉사자들은 초록색, 자주색 등의 조끼를 입고 3.6킬로그램(kg)짜리 연탄 대여섯 장씩을 지게에 진 채 언덕길을 올랐다. 이들은 파란색 슬레이트 지붕 곳곳에 녹이 슬고 벽에는 낡은 판자가 덧대어 있는 집들을 돌며 연탄을 배달했다. 1965년 서울 청계천 철거민들이 산림청에서 가구당 10여 평 임야를 대여받아 정착한 별빛마을에는 무허가주택이 대다수고, 150여 가구 중 44가구가 아직 연탄을 땐다.  

화장실도 없는 집, 온기 지켜주는 연탄난로

서울 청계천 등의 재개발에 떠밀린 도시 빈민들이 무허가주택을 짓고 정착한 별빛마을의 전경과 연탄배달을 하는 자원봉사자들의 모습. 이 마을의 150여 가구 중 44가구가 아직 연탄을 땐다. ⓒ 안재훈
서울 청계천 등의 재개발에 떠밀린 도시 빈민들이 무허가주택을 짓고 정착한 별빛마을의 전경과 연탄배달을 하는 자원봉사자들의 모습. 이 마을의 150여 가구 중 44가구가 아직 연탄을 땐다. ⓒ 안재훈

"연탄이 없다면 전기세가 얼마나 많이 나오겠어요. 없는 사람에게는 반드시 연탄이 있어야지."

박정심(77) 씨는 50여 년 전 이곳에 정착했다. 봉제공장 미싱사 보조였던 박 씨는 일용직 노동자였던 남편과 서울 돈암동에서 살다 재개발로 쫓겨나 수락산 자락에 무허가로 집을 지었다. 여기서 낳아 기른 외동딸은 미국에 이민 간 후 연락이 끊겼고, 남편은 10여 년 전 세상을 떴다. 방 두 칸짜리 집에는 화장실이 없어 박 씨는 마을 공용화장실을 쓴다. 그에게 대문 밖에 얼기설기 만든 연탄창고는 보물창고처럼 소중하다. 그는 거실을 겸한 마당에 연탄난로를 두고 낮시간을 보내다 밤에는 전기장판을 켜고 잔다고 말했다. 국민연금과 기초연금 등 60만 원이 월수입의 전부인 그는 정부에서 지원하는 연간 47만 원의 연탄쿠폰과 봉사자들의 기부로 연탄값 걱정 없이 겨울을 난다고 고마워했다.

별빛마을 주민 박정심 씨가 대문 밖에 있는 연탄창고를 들여다보고 있다. 박 씨는 연탄난로가 설치된 마당 겸 거실에서 하루 시간 대부분을 보낸다고 말했다. ⓒ 안재훈
별빛마을 주민 박정심 씨가 대문 밖에 있는 연탄창고를 들여다보고 있다. 박 씨는 연탄난로가 설치된 마당 겸 거실에서 하루 시간 대부분을 보낸다고 말했다. ⓒ 안재훈

취재팀이 별빛마을에서 연탄을 쓰는 44가구 중 34가구의 연령 및 소득 수준을 조사한 결과 대부분이 고령의 저소득층이었다. 가구주가 70대인 경우가 15가구, 60대가 8가구, 80대가 5가구, 50대가 4가구 순이었다. 또 82%의 가구가 기초수급, 장애인, 독거, 상대적 빈곤가구 등으로 생계에 어려움이 있었다. 

취재팀 조사 결과 별빛마을의 연탄사용가구 대부분은 고령의 저소득층으로 나타났다. ⓒ 이현이
취재팀 조사 결과 별빛마을의 연탄사용가구 대부분은 고령의 저소득층으로 나타났다. ⓒ 이현이

연탄은행이 발표한 2021년 전국 연탄사용가구 조사 결과에 따르면 한국에서 연탄을 사용하는 집은 총 8만 1721가구다. 이 가운데 기초수급이 2만 4810가구, 차상위 8040가구, 소외가구가 3만 5966가구로 약 84%가 생계곤란계층이다. 소외가구는 연탄은행 분류 기준으로 부양의무 기피나 열악한 생활환경 탓에 연탄 지원이 필요한 가구를 말한다. 

지역적으로도 고령인구가 많고 가난한 곳에 연탄사용자가 많다. 연탄은행에 따르면 2021년 기준 연탄사용 가구수는 경상북도(2만 7894), 강원도(1만 9124), 충청북도(5893) 순으로 많았다. 2017년 기준 저소득층 가구수가 많은 7개 시도에 충청북도(1위), 강원도(4위), 경상북도(7위)가 들어있다. 장승옥 계명대 교수(사회복지학)는 “경북지역의 개인 소득이 낮고 고령화비율이 높아 연탄사용이 지속된다”고 말했다. 

전국에서 연탄을 사용하는 가구는 경북, 강원, 충북 순으로 많았다. 높은 노령화 지수, 저소득층 비율과 관계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 이현이
전국에서 연탄을 사용하는 가구는 경북, 강원, 충북 순으로 많았다. 높은 노령화 지수, 저소득층 비율과 관계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 이현이

건강을 해치지만 바꿀 수 없는 연료 

경북 안동시 용천마을의 박동실(83) 씨는 기초연금 30만 원과 폐지 수집에 기대 혼자 산다. 10여 년 전 남편과 사별했고, 경제 사정이 안 좋은 아들 둘과는 왕래가 끊겼다. 폐질환이 있는 그는 연탄을 갈 때마다 고통을 느끼지만 다른 연료는 꿈도 꾸지 못한다. 지난달 1일 취재진을 만난 김 씨는 숨을 가쁘게 쉬며 “요즘 따라 연탄 갈고 나면 기침이 잘 안 멈춘다”고 말했다.

경북 안동에서 혼자 사는 김동실 씨. 마당 한 편에 폐지와 연탄이 쌓여있다. ⓒ 양수호
경북 안동에서 혼자 사는 김동실 씨. 마당 한 편에 폐지와 연탄이 쌓여있다. ⓒ 양수호

일산화탄소를 배출하는 연탄은 폐에 나쁜 영향을 준다. 1980년대까지 우리나라 가구의 80% 이상이 연탄을 땠던 시절에는 겨울철 연탄가스 중독사가 자주 뉴스가 됐다. 1986년 서울 아시안게임과 1988년 올림픽을 계기로 정부가 대기질 개선에 신경을 쓰고, 아파트 건설 붐과 함께 석유·가스 등이 가정용 연료를 대체하면서 연탄 사용은 급격히 줄었다.  

건강을 위협하는 연탄은 또한 탄소배출이 많은 연료여서 기후위기시대에 특별히 눈총을 받고 있다. 연탄의 원료인 석탄은 석유, 천연가스 등 화석연료 중에서도 이산화탄소 등 온실가스 배출이 가장 많다. 유엔 기후변화정부간협의체(IPCC)가 발표한 탄소배출계수를 보면 무연탄(석탄)은 1.100탄소환산톤(TOE)으로, 휘발유(0.783), LPG(0.713), LNG(0.637) 등 다른 화석연료보다 배출량이 많다. 그래서 ‘2050년 탄소중립’을 목표로 하는 정부는 ‘탈석탄’ 기조 아래 석탄산업 구조조정을 진행 중이며, 제 6차 석탄산업장기계획에 따라 국내 석탄광업소의 단계적 폐광을 진행하고 있다. 따라서 연탄생산도 머지않아 중단될 전망이다. 그러나 정부의 계획에는 연탄에 의존하는 8만여 가구를 위한 정의로운 전환 계획, 즉 이들의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한 구체적 대안이 부족하다. '2022년 중 연탄소비자의 주거실태조사 및 친환경 연료로의 소비전환방안에 대한 연구용역을 실시한다' 등의 일정이 제시됐을 뿐이다.  

“연탄 없는 세상은 생각도 안 해봤는데 어떡해요.”

별빛마을 박정심 씨는 취재팀이 정부의 탈석탄 계획을 설명하자 당장 이렇게 걱정했다. 연탄은 다른 연료에 비해 값이 싼 데다 정부지원과 각계의 기부도 있어 안심하고 쓰지만, 석유·가스·전기 등 다른 에너지는 비용을 감당할 수가 없다는 얘기다. 에너지경제연구원에 따르면 2019년 기준 에너지원별 명목가격이 연탄은 메타칼로리(Mcal) 당 50.33원인 반면 전기는 122.09원, 액화천연가스(LNG)는 155.29원 등이다. 

연탄은 열량 단위당 가격이 가장 싼 데다 정부지원 등이 있어 빈곤층이 포기하기 어려운 연료다. ⓒ 이현이
연탄은 열량 단위당 가격이 가장 싼 데다 정부지원 등이 있어 빈곤층이 포기하기 어려운 연료다. ⓒ 이현이

에너지빈곤층 ‘정의로운 전환’ 고민 없는 정부

충북 제천시 고명동 백양마을에 사는 한계순(66) 씨도 연탄생산이 장차 중단될 수 있다는 얘기에 “돈 많이 들어가는 거는 못하는데...”라며 걱정했다. 기초생계수급자인 그는 2006년 주인 없이 방치된 집을 수리해 남편과 둘이 살고 있다. 지난 50여 년간 이처럼 빈집이나 월세를 찾아 사느라 제천 안에서만 13번을 이사했다는 그는 돈을 들여 가스보일러 등을 시공하는 것은 생각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기후위기 대응을 위해 탈석탄을 가속화하되 연탄을 쓰는 빈곤층도 배려하는 정의로운 전환의 길은 무엇일까. 시민단체 '세상을바꾸는사회복지사'의 김혜미 전 간사는 근본적인 주거대책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무허가주택, 빈집, 월세 등으로 불안정한 공간에 사는 빈곤층이 목돈을 들여 난방이나 단열 설비를 바꾸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므로, 주거복지 차원에서 매우 저렴한 장기공공임대주택을 이들에게 우선 제공해야 한다는 것이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우리나라 장기공공임대주택은 2020년 기준 약 170만 호로, 전체 주택의 8% 정도다. 이 중 27만 호는 5~10년 공공임대로 엄격한 의미의 ‘장기공공임대’ 비중은 이보다 더 낮은 셈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은 10% 내외이고, 주거복지가 잘 된 네덜란드는 40% 수준에 이른다. 김 간사는 “프랑스에서는 협동조합이나 공공성을 가진 법인들이 사회주택을 운영하면서 소득 유형에 따라 임대료를 달리 산정해 공급한다”며 프랑스식 사회주택을 신속히 확충해 저소득층 복지와 에너지전환을 동시에 실현할 것을 제안했다. 

이종원 한국건설기술연구원 건축에너지연구소 수석연구원은 “저소득층 거주 환경의 에너지 효율성을 높이는 친환경 리모델링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우리나라에는 낡은 주택의 벽면, 창호, 보일러 배관을 공사해 에너지효율을 개선하거나, 저효율 냉난방기기를 고효율기기로 교체해주는 저소득층에너지효율개선사업이 있지만 필요한 가구에 비해 지원이 매우 부족하다. 한국에너지재단에 따르면 2019년 3만 53가구가 저소득층에너지효율개선사업 지원을 받았는데, 이는 소득1분위(하위 10%) 가구의 1% 남짓에 불과하다. 태양광, 태양열, 연료전지, 소형풍력 등의 친환경 에너지 설치비를 지원해주는 에너지전환 사업도 있지만 지원대상을 주택 소유주로 한정해, 자기 집이 없는 에너지 빈곤층에겐 해당되지 않는다.  

이 연구원은 “기업에서 보여주기식으로 친환경 리모델링 사업을 시작해놓고 그치는 경우가 있는데, 모니터링을 통해 지속 가능한 운영이 필요하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대전시는 2018년 한국토지주택공사(LH), 엘지(LG)전자, 대전환경연합과 함께 취약계층에 태양광패널을 보급했는데, 2~3년이 지나자 설치 가구의 절반 정도가 이를 떼어냈다. 조용준 대전환경연합(40) 국장은 지난 13일 <단비뉴스> 인터뷰에서 “설치 당시 주택 발코니 규격을 고려하지 않아 주민들이 불편함을 호소했고, 유지 관리를 위한 교육이 부족했다”고 말했다. 

[기후위기시대]

① 온실가스 주범 석탄발전소 ‘더 짓는 중’

② '기후우울' 떨치고 '어벤져스'로 나서다

③ 탄소세 부과로 ‘신호’ 줘야 기업 바뀐다

④ 노동·지역경제 배려 ‘정의로운 전환’을

⑤ "석탄발전소 짓는 한국, 리더 아닌 꼰대"

⑥ ‘그린워싱 대신 행동을’ 거센 녹색 함성

⑦ "SMR 등 원전은 기후위기 대안 못 돼"

⑧ “상용화 먼 핵융합, 탄소중립 도움 안 돼”

⑨ “기후위기 극복 의무를 헌법에 넣자”

⑩ 소형모듈원전(SMR) 상용화 가망 없다

⑪ “파이로프로세싱은 과학 아닌 소설”

⑫ 기후재난으로 원전 위험성 더 커진다

⑬ ‘기후 일자리’ ‘탄소국민배당’ 추진을

⑭ 고기 즐기는 너, 기후변화 공범 아니니

⑮ 청소년은 ‘미래’ 아닌 기후재난 ‘당사자’

⑯ 기후 미술관, ‘제로 웨이스트’로 가다

⑰ 쓰레기 줍다 보니 삶이 바뀌더라

⑱ “한국 공적금융이 에너지 전환 걸림돌”

⑲ ‘ESG 경영’ 뒤로 ‘기후행동 봉쇄 소송’

⑳ ‘국민이 처한 위험’ 알리려 당근 쏟았다

㉑ 나는 오늘 옷을 샀다, 기후위기를 샀다

㉒ 시민이 일어나 정부·기업을 움직이자

㉓ 탄소 줄이는 갯벌 메워 공항을 짓다니

㉔ 공장식 축산 줄이고 채식 늘려야 생존

㉕ 경작과 에너지 생산을 ‘하이브리드’로

㉖ 이재명 ‘재생에너지’, 윤석열 ‘원전’ 강조

㉗ 이재명·윤석열도 ‘기후대선’ 동참해야

㉘ ‘할머니가 지킬게, 초록지구’ 119 출동

㉙ 기후변화만큼 핵발전도 위험하다

㉚ ‘주차장 태양광’ 시급한데 조례로 막아

㉛ 채식 급식 확대, 환경교육과 병행 필요

㉜ 지구는 우리가 지킨다, 연구의 힘으로

㉝ 낡은 단독주택이 제로에너지 건물로 깜짝 변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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