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비현장] 제21회 서울국제환경영화제 개막식
“환경영화제를 시작하고 20년이 지난 지금, 기후 문제에 있어서 인식의 단계를 뛰어넘어 행동으로 가지 않으면 우리와 우리의 다음 세대는 살아남을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지난 5일 서울 서대문구 대현동 이화여대 대강당에서 제21회 서울국제환경영화제 개막을 선언하며 최열 조직위원장이 이렇게 말했다. 세계 환경의 날을 맞아 환경재단 주최로 열린 이번 영화제 개막식에는 제작자와 관객 등 2000여 명이 참석했다. 2004년 시작된 이 영화제는 미국의 수도환경영화제(Environmental Film Festival in the Nation’s Capital), 캐나다의 국제비건영화제(International Vegan Film Festival)와 함께 세계 3대 환경영화제로 꼽힌다. 올해는 128개국에서 2871편이 출품됐고, 27개국 80편이 상영작으로 선정됐다.
정부와 기업의 기후 대응 압박할 ‘각성한 시민’ 필요
개막식 환영사에서 이미경 공동집행위원장은 “정부는 정책을 잘 만들어야 하고, 기업은 ESG(환경·사회·투명경영) 경영으로 혁신해야 하고, 자본은 기후테크(탄소중립 관련 기술)에 투자해야 하는데 그 모든 것들에 가속도를 붙일 수 있는 건 기후 문제에 각성한 시민”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앞으로 맞이할 영화제의 20년은 기후 문제를 해결하는 플랫폼이 되도록 하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청중은 이 위원장의 제안으로 기후 대응 행동을 강조하는 ‘액션’ 구호를 세 번 힘차게 외쳤다.
이번 영화제의 구호는 ‘준비, 기후, 행동 2024!’ (Ready, Climate, Action 2024!)다. 가속하는 기후위기 상황에서 행동이 절실하다는 의미를 담았다. 환경영화제 박진희 선임 피디(PD)는 <단비뉴스> 인터뷰에서 “앞으로 10년은 이 구호로 계속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개막식에 이어 개막작 ‘와일딩’(Wilding)이 상영됐다. 미국 방송계 최고 권위의 에미상을 다섯 번이나 받은 데이비드 앨런 감독의 작품으로, 이사벨라 트리의 베스트셀러 ‘야생 쪽으로’를 원작으로 한 다큐멘터리다. 공장식 농·축산업을 중단하고 ‘야생 생태’로 전환하려는 한 영국인 부부의 서사를 그렸다. 기후위기 대응에서 중요한 화두의 하나인 '재자연화' 실험을 통해 자연의 회복력을 발견하고 생물다양성 보전에 관한 희망을 제시하는 내용이다. 재자연화는 개발 등 인간 활동으로 쫓겨났던 동물들을 불러 자연으로 되돌리는 과정을 의미한다. 장영자 환경영화제 프로그래머는 “희망을 이야기하고 있다는 점에서 개막작으로 선정하게 됐다”고 말했다.
오는 30일까지 온라인에서도 편리하게 관람 가능
영화제는 오는 30일까지 기후행동, 지구를 구하는 거인들, ESG: 자본주의 대전환, 지구 비상, 야생의 세계, 슬기로운 음식생활, 쓰레기통(通), 에코패밀리 등 9개 주제로 분류된 작품들과 심사에 오른 국내외 영화들을 홈페이지를 통해 온라인 상영한다. 메가박스 성수에서는 오는 9일까지 오프라인(대면) 상영도 한다. 온라인 관람료는 2000원, 오프라인은 5000원이다. 에스비에스(SBS) 등 방송 채널에서도 방영된다. 환경재단의 ‘에코프렌즈’로 활동하는 유준상 배우가 연출한 ‘평온은 고요에 있지 않다’ 등 2편, 지난해 환경재단이 육성한 ‘에코크리에이터’의 작품 8편도 특별 상영된다.
장 프로그래머는 영화잡지 <시네21>의 환경영화제 특집에서 ‘헤제이투’(페드로 데 필리피스), ‘방가랑’(줄리오 마스트로마우로), ‘늑대의 나라에서’(랄프 뷔헬러), ‘해초를 구해줘’(블레이크 맥윌리엄), ‘그린 워리어: 포에버 케미컬’(마르탱 부도, 마농 드 쿠에) 등 5편의 작품을 추천작으로 선정했다고 밝혔다. 각각 브라질 미나스제라이스주의 광산댐, 이탈리아 타란토의 제철소로 인한 대기오염, 서유럽으로 돌아온 늑대와 인간의 공존 논쟁, 해초로 지구를 구하는 방법, 종이컵과 프라이팬의 화학물질 문제 등을 다뤘다. 장 프로그래머는 “함께 살아가는 지구 공간 안에서 서로 기억하고 주목해야 할 지구 곳곳의 환경문제를 묵직한 시선으로 다룬 작품들”이라고 밝혔다.
영화제에서는 어린이와 청소년 관람객을 위한 ‘시네마그린틴’ 프로그램도 운영된다. 어린이와 청소년 맞춤 환경영화를 온오프라인으로 상영하고, 레고 업사이클링(새사용) 실물 키트를 제공하는 체험 워크숍도 연다. 또 전국 17개 시도 교육청과 협업해서 40만 명 이상의 학생들이 영화를 시청하도록 할 예정이다.
종이 제작물 등 최소화한 친환경 영화제
주최 측에 따르면 이번 영화제에서는 에너지, 제작물, 폐기물 등에 관한 친환경 가이드라인도 마련됐다. 장비와 조명 등을 최소한으로 사용하고, 사전 안내 문자로 참여자의 대중교통 이용을 독려했다. 제작물을 전자문서화하고, 종이 제작물은 최소 수량만 제작했다. 지속 가능한 조림(造林)활동으로 제작된 국제산림관리협의회(FSC)의 친환경 재생지를 썼고, 인쇄는 콩기름으로 했다. 기념품(굿즈)은 따로 제작하지 않았고, 현수막 등 옥외홍보물은 모두 수거해 업사이클링 제품으로 만들기로 했다.
개막식 진행을 맡은 벨기에 출신 방송인 줄리안 퀸타르트 씨는 “관람료를 포함한 후원금은 열대나 아열대 해안 지역에서 서식하는 맹그로브 나무를 심는 데 쓰인다”고 소개했다. 맹그로브 나무는 탄소 흡수량이 일반 나무보다 3배 많으며, 단단하게 뿌리를 내려 쓰나미(지진해일) 등 자연재해에서 지역사회를 보호해 주는 역할을 한다고 그는 설명했다. 박 선임 PD는 단비뉴스 인터뷰에서 “후원금으로 방글라데시 순다르반에 맹그로브 나무가 심어질 예정”이라고 밝혔다.
영화제 시상식은 오는 9일 메가박스 성수에서 열린다. 국제(대상, 심사위원특별상, 관객상)와 국내(대상, 우수상, 관객심사단상) 경쟁부문으로 나눠 수상작을 뽑는다. 국제경쟁부문과 국내경쟁부문의 대상 수상자는 각각 1000만 원과 500만 원의 상금을 받는다. 한편 서울국제환경영화제는 반려동물 동반 야외 상영회, 세계청소년기후포럼, 나눔 바자회 등 다양한 부대행사도 마련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