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접공 출신으로 유명한 고 노회찬 의원이 아직 무직이던 청년 시절, 한 달 내내 하루 세끼 라면만 먹은 적이 있다고 한다. 생전에 방송 녹화에서 한 얘기다. 라면이라도 맛있게 끓이려면 대파를 넣어야 하는데, 냉장고도 없었으니 파 한 단을 사서 보관할 곳이 마땅치 않았다. 그래서 꾀를 낸 것이 세숫대야에 물을 붓고, 파뿌리를 담가 두는 것이었다. 그러면 파가 계속 자라기 때문에, 꽤 오래 잘라먹을 수 있었다고 한다.지난 총선 과정에서 윤석열 대통령의 ‘대파 875원 발언’이 대중의 감정선을 건드린 것은, 노회찬에게 그랬던 것처럼 많은
바람이 불고, 물결이 일고 있다. 4·10 국회의원 총선거를 향한 기후정치의 바람과 물결이다. 녹색전환연구소와 더가능연구소, 로컬에너지랩이 결성한 기후정치바람은 전국의 만 18살 이상 1만 7천 명 대상 설문조사를 근거로 지난 1월 “기후유권자가 전체 유권자의 3분의 1”이라고 발표했다. 기후유권자는 기후 의제를 잘 알고, 이를 고려해 투표하려는 시민이다. 선거 당락을 좌우할 만큼 기후유권자가 두텁게 존재하니, 후보들이 기후 공약을 제대로 내놓으라는 주문이었다.지난 14일에는 각계 전문가가 모인 기후정치시민물결이 ‘기후정치 원년 시
선거를 앞두고 어김없이 폴리널리스트 논란이 벌어졌다. 제법 알려진 언론인 여럿이 총선을 앞두고 정치권으로 진출했기 때문이다. 이미 익숙한 풍경이기 때문인지, 그렇게 큰 화제가 되지도 못하는 것 같다. 그런데 정말 이렇게 덤덤하게 넘어가도 되는 걸까?공직선거법은 정식으로 등록된 언론사에서 편집, 제작, 취재, 보도 업무를 하던 언론인의 출마를 공직자와 같이 규제한다. 지역구 후보가 되려면 선거일 90일 전까지, 비례대표 후보가 되려면 30일 전까지 현직에서 물러나야 한다.이 규제는 원래 공무원과 공공기관 고위직이 대상이다. 그런데 대
1997년 8월 31일 영국 왕세자비였던 다이애나의 사망 직후, 스티브 코즈는 미국 CNN의 뉴스 토크쇼에 출연했다. 코즈는 미국의 대표적 타블로이드 신문 <내셔널 인콰이어러>의 선임 편집자였다. 진행자가 코즈에게 물었다. 당신들 같은 타블로이드 때문에 파파라치가 설치고, 그런 파파라치에게 쫓기다 다이애나가 죽은 게 아닌가요.찰스 왕세자와 이혼한 다이애나는 새 연인과 함께 프랑스 파리의 식당에서 저녁을 먹고 귀가하던 길이었다. 쫓아오는 파파라치를 피하려던 운전사가 교통사고를 냈고, 다이애나는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숨졌다. 그 책임을
좋은 기사를 평가하는 독자의 기준에 관한 연구를 진행하면서, ‘다양성’ 또는 ‘다성성’의 가치를 새로 알게 됐다. 독자는 한 사람만 취재한 기사를 싫어했다. 하나의 출처에 기대어 ‘엄청난 일을 독점 보도한다’는 식의 기사를 전혀 좋아하지 않았다. 찬반양론을 소개하는 것도 부족하다고 여겼다. 형식적 균형이나 기계적 중립은 성에 차지 않는다는 투였다.대신, 여러 사람이 등장하는 기사를 좋아했다. 여러 곳, 여러 문서, 여러 자료를 담은 기사도 좋아했다. 그러니, 지난 글에 이어 독자의 잣대를 종합하면 이렇다. 독자는 정보 원천을 직접
영국 킹스칼리지런던대 데이비드 호프와 줄리언 림버그 교수는 2022년 1월 ‘소시오이코노믹 리뷰’에 ‘주요 부자 감세의 경제적 결과’라는 논문을 발표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속한 18개 나라가 50년(1965~2015) 동안 부유층의 세금을 줄여준 결과를 분석한 내용이다.결론은 이렇다. 미국의 로널드 레이건 등 보수파 정부가 줄기차게 외친 ‘낙수효과’(trickle down effects)는 나타나지 않았다. 대기업과 고소득층의 세금을 줄여줘도 그 혜택이 ‘아래로 흘러내리는 현상’은 없었다. 경제 성장과 일자리 증가가 발
신문사에 입사한 1997년 겨울, 많은 일이 일어났다. 가수 이현우가 ‘헤어진 다음날’을 발표했다. 가는 곳마다 그 노래만 흘러나왔다. 누구나 비발디 사계의 겨울을 흥얼거렸다. 첫 출근 3주 뒤에 구제금융(IMF)이 시작됐다. 나라가 망했다는데 무슨 말인지 이해할 수 없었다. ‘노숙자’라는 단어도 처음 등장했다. 서울역 지하도에 종이를 깔고 자는 사람들이 등장했다. 선배의 지시를 받아, 2박 3일을 그들과 함께 보냈다. 포장마차에서 국수를 사줬더니, 노숙자는 국수 대신 소주만 마셨다. 얼마 뒤 대선에서 김대중 후보가 당선됐다. 선배
엘리스 새뮤얼스는 사진과 동영상 같은 온라인 시각 자료를 분석해 탐사보도물을 만드는 피디다. 미국 <워싱턴포스트>에서 비주얼포렌식팀 선임 프로듀서로 일한다. 그의 업무 중 하나는 텔레그램, 틱톡 등 소셜미디어에서 화제가 된 영상이 인공지능(AI) 등으로 조작된 것은 아닌지 검증하는 일이다. 위성사진 등을 활용해 특정 장소에서 실제로 일어난 일인지 확인하는 ‘지오로케이션’, 여러 영상을 모아 해당 장면을 재구성하는 ‘동기화’ 등의 기법을 쓴다고 한다. 그는 지난해 11월 9일 한국언론진흥재단이 주최한 ‘2023 KPF 저널리즘 콘퍼런
얼마 전, <뉴스 탁월성 지수 개발을 위한 탐색적 연구>라는 제목의 연구보고서를 탈고했다. 최근 한국언론진흥재단에서 발간되어 두루 공개됐다. 박재영 고려대 교수, 김창숙 카이스트 문술미래전략대학원 연구원과 함께 조사하고 집필했다. 더 보완하여 일련의 연구논문으로 발표할 무렵에 상세 내용을 적기로 하고, 오늘은 그 일부만 소개한다.연구팀의 관심사 가운데 하나는 ‘좋은 기사를 평가하는 독자의 기준’이었다. 그 기준을 ‘규범의 필터 버블’ 바깥에서 찾고 싶었다. 기사의 공정성을 평가해달라고 독자에게 주문하고, 독자가 이를 낮게 평가하면
어느 시인의 문장 그대로, 소리 없는 아우성처럼, 깃발처럼 그것은 펄럭였다. 출입처와 신문사를 오가는 우물 안에서 왜 이러고 사는지 헷갈렸던 기자는 어쩌다 살펴본 미국 퓰리처상 홈페이지에서 깃발을 보았다. 맑고 곧은 저널리즘의 푯대 끝에 백로처럼 날개 펼친 깃발들이 손짓했다. 이리 와, 이 깃발을 따라 기사 써, 아우성쳤다.예컨대 ‘공공 봉사’(public service)의 깃발은 오직 공익을 높이는 게 기자의 최고 지향이라며 높은 곳에서 펄럭였다. ‘수사 보도’(investigative report)의 깃발은 검·경의 발표를 받아
‘아이폰’으로 유명한 애플은 미국 캘리포니아주 쿠퍼티노시에 우주선 모양의 새 사옥 ‘애플 파크’를 지어 2017년 입주했다. 하늘에서 내려다보면 동그란 반지처럼 생긴 이 사옥에는 1만 2천여 명이 일하는데, 지붕 전체가 파란 태양광 패널로 덮여 있다. 건물 전기수요의 75% 이상을 태양광으로 충당하고 나머지는 바이오연료 등을 활용해, 녹색에너지 비중이 100%에 가깝다고 한다. 채광과 통풍 설계도 잘돼 있어, 1년 중 아홉 달은 건물 냉난방이 필요 없다고 애플은 자랑한다. ‘사용 전력 100% 재생에너지로 충당’(RE100) 운동에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와 교전 중인 이스라엘에서는 요즘 ‘로켓 얼러트’라고 불리는 스마트폰 앱 사용자가 급증하고 있다고 한다. <와이어드> 등 외신에 따르면 지난달 7일 하마스의 기습공격 뒤 이스라엘 사람들은 ‘미사일이 어디로 날아오는지’ 알려주는 앱을 앞다퉈 깔고 있다. 정부 공식 앱만 해도 사용자가 60만 명에서 200만 명으로 늘었고, 민간 앱도 사용자가 수십만 명에 이른다고 한다. 이스라엘 인구는 약 900만 명이다. 공공 사이렌보다 한발 앞서 앱에 경보가 뜨면, 해당 지역 주민은 분초를 다투며 지하 방공호 등으로 대피한
얼마 전, 어느 언론학 교수님과 밥을 먹었다. 공부에 집중하라고 충고해주셨다. 연구 성과를 학계에 남기는 게 중요하다는 말씀이었다. 몇 순배 술이 돌자, 다른 말씀을 하셨다. 칼럼에 주저의 자취가 많다고 하셨다. 분명하게 적어도 좋겠다고 하셨다. 두 충고가 상반된 것은 아니라고 혼자 생각했다. 무도한 이들이 무참한 일을 곳곳에서 벌이는 시절일수록 중심 잡고 정진하되 세태를 논할 때는 제대로 임하라고 일러주신 것이다.이제 큰일이 났다. 집중한들 좋은 연구 내놓을 능력이 없고, 깊이 공부하지 않고는 날카로운 문장을 적을 도리가 없는데,
2004년 3월12일 아침, 전화기에 대고 “그렇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MBC 라디오 <손석희의 시선 집중>에 전화 연결된 날이었다. 한나라당을 출입하던 나에게 진행자는 대본에 없는 질문을 계속 던졌다. 정치부 막내 기자는 더듬거렸다. 명성 높은 진행자가 물었다. 오늘 한나라당이 대통령 탄핵안을 상정할 것으로 보는가. 무리수를 두지 않을 것이라고 나는 말했다. 명민한 진행자는 다시 물었다. 탄핵 가능성이 정말 없다고 보는가. 다시 답했다. “그럴 리 없다.”몇 시간 뒤, 의사당에서 대통령 탄핵안이 날치기로 통과됐다. 생방송으로
‘김만배 녹취록’ 보도의 여진이 계속되고 있다. 검찰의 대대적인 수사와 <뉴스타파>를 인용 보도했던 방송사들에 대한 무더기 중징계까지, 당국의 대응은 무척 거칠다. 등록 취소 운운하는 정부와 여권 인사들의 언사도 마찬가지다. 보도에 문제가 있으면 책임을 물어야겠지만 지금 보고 있는 것들은 상궤를 한참 벗어난다.
마음 있는 데에 돈이 간다. 사랑에 빠진 사람은 곧잘 ‘네가 필요하다면 뭐든 다 해주고 싶어’ 하는 마음이 된다. 부모는 구멍 난 양말을 신으면서도, 아이의 장래를 위해서는 목돈을 쏟아붓기도 한다.나라 살림도 마찬가지다. 중요하고 시급한 과제라고 판단하면 그 사업에 돈을 몰아준다. 그래서 국회에 제출된 예산안을 살펴보면 정부가 무엇을 중히 여기며, 어떤 나라를 만들려는지 알 수 있다. 기후위기 대응, 불평등 완화, 저출생 개선, 지역소멸 대응, 기술혁신 지원 등 시대적 과제에 윤석열 정부가 얼마나 진심인지는 2024년 예산안을 보면
세명대 저널리즘대학원 학생들과 (정규 수업 외에) 이런저런 공부 동아리 활동을 한다. 그 가운데 하나가 ‘저책이책’이다. ‘저널리즘 책을 읽는 이들의 책방’을 줄인 말이다. 국내외 기자가 쓴 책을 학생들이 골라 오면, 게으른 나도 책을 읽는다. 최근엔 미국 기자 폴 로버츠(Paul Roberts)가 2008년 펴낸 <식량의 종말>을 읽었다. 언론 관련 도서가 병풍을 이룬, 학교의 책방 ‘단비 서재’에서 작은 토론이 열렸다. 어느 학생이 말했다. “기자라서 쓸 수 있는 책인 것 같아요.”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이 책의 한글 번역본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