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비 소리뉴스] 기후위기시대 ㉑ 온실가스 대량 배출 패스트패션

2021년 10월 25일 서울 마포구 동교동의 한 ‘패스트패션’ 의류매장. 생산과 유통, 소비의 수명이 짧고 유행에 민감한 의류를 취급하는 이곳은 가을·겨울용 옷을 사려는 사람들로 붐볐습니다. 20대 여성 두 명은 5만 9900원짜리 체크무늬 셔츠의 치수를 고르고 있었습니다. 니트(뜨개옷), 플리스(양털 재킷), 경량 패딩(얇은 누비옷) 등 신상품이 매대에 가득했습니다. ‘가격 인하’ 문구가 붙은 제품들은 대부분 가격이 10만 원 이내였습니다.

이곳에서 청바지를 산 직장인 추모 씨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옷을 고를 때는 디자인을 가장 많이 고려하죠. 패스트패션이 환경에 안 좋다는 얘기를 듣긴 했어요. 그래도 시즌별로 옷이 다양하고 싸서 계속 사게 돼요.”

이렇게 대중의 선택을 받는 패스트패션은 탄소발자국을 늘려 기후위기를 가속하는 ‘기후악당’으로 꼽힙니다.

값싸게 사고 쉽게 버리는 의류

국내에서 매출 규모가 큰 대표적 패스트패션 브랜드로는 유니클로, 탑텐, 스파오, 에이치앤앰(H&M), 자라(ZARA) 등이 있습니다. 이들 5개 업체의 오프라인 매장은 628개, 2020년 기준 연간 매출은 1조 9620억 원으로 집계됐습니다. 이들 업체는 고급의류 브랜드와 협업하는 등 판촉 활동에도 적극적입니다. 유니클로는 2021년 10월 15일 일본 고급 야외활동복 ‘화이트 마운티니어링’과 협업해 300만 원대의 겨울 패딩을 10만 원대 상품으로 내놓았습니다. 이 상품은 출시 2시간 만에 온라인 몰에서 품절이 될 정도로 반응이 뜨거웠습니다.

쉽게 옷장으로 들어온 옷들은 버려지는 속도도 빠릅니다. 미국 방송 시비에스(CBS)의 취재에 따르면 지난 30년 동안 미국인이 구매하는 의류량은 5배 증가했지만, 제품별로 착용 횟수는 평균 7번에 불과했습니다. 입지 않는 옷은 버려지고, 버려진 옷은 지구에 부담을 주는 쓰레기가 되는 것입니다.

2021년 9월 25일 경기도 고양시 일산동구 식사동의 헌 옷 수출업체 기석무역. 217제곱미터(㎡) 크기 컨테이너 창고에 9미터(m) 높이 천장까지 닿을 정도로 헌 옷들이 산을 이루고 있었습니다. 폴로(Polo) 로고가 박힌 빨간색 패딩, 몇 번 안 입은 듯 말짱한 유아용 원피스, 다양한 종류의 청바지까지 사계절 의류가 모여 있었습니다. 가격표를 제거하지 않은 새 옷도 눈에 띄었습니다. 이곳에 쌓여 있는 것은 ‘쓸만한 옷’으로 분류된 것인데, 포크레인이 계속 운반해도 끝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기석무역 조찬행 전무는 2021년 9월 29일 <단비뉴스> 전화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전국에서 들어오는 헌 옷이 하루에만 80톤(t)가량입니다.”

이는 일반적인 포장이사에 쓰이는 5t 트럭으로 16대 분량입니다. 환경부 자료에 따르면 전국의 의류 폐기물은 2016년 하루 165.8t에서 2018년 193.3t으로 늘어났습니다. 연간 7만 554t가량, 5t 이삿짐 트럭으로 1만 4000여 대가량의 의류 폐기물이 나오는 셈입니다.

저개발국에 수출된 의류가 만드는 ‘쓰레기 산’

이 의류 폐기물 가운데 80%가량은 방글라데시, 인도네시아 등 저개발국으로 수출되고, 15%가량은 소각 등 영구 폐기되며, 3% 정도는 국내 중고의류(구제)매장으로 옮겨집니다. 전문가들은 통계에 잡히지 않는 의류 폐기물도 많다고 지적합니다. 아파트단지 등의 수거함에서 헌 옷을 가져가는 곳 중 통계에 잡히지 않는 무허가 업체가 많다는 것입니다. 미국 방송 에이비시(ABC)는 2021년 8월에 ‘죽은 백인의 옷’(Dead white man’s clothes)이라는 기획보도에서 가나의 수도 아크라의 바닷가에 20m 높이로 쌓인 ‘옷 무덤’을 조명했습니다. 세계 각지에서 수출된 뒤 아무도 사 가지 않아 최종적으로 버려진 헌 옷들이 이곳에 쌓여 있는데, 소들이 옷을 풀처럼 뜯어 먹고 있는 모습을 담았습니다.

잠깐 소비된 후 버려지는 옷들은 ‘총체적 기후악당’입니다. 섬유 제조부터 의류 생산, 구매를 거쳐 폐기에 이르기까지, 지구온난화를 일으키는 탄소를 계속 발생시키기 때문입니다. 2018년 7월 유엔(UN)이 발표한 '지속 가능한 패션과 지속 가능 개발목표(SDGs) 파트너십'에 따르면 패션산업은 전 세계 탄소 배출량의 약 10%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전체 의류 원단의 70% 이상을 차지하는 폴리에스터는 단독으로도 사용하지만, 면과 합성해 원단의 내구성을 높이는 데 쓰는 필수 섬유입니다. 폴리에스터 등 합성섬유는 원재료를 석유에서 추출하는데, 이때 많은 양의 전기와 열을 사용합니다.

서브라마니안 무뚜의 책 '재활용된 폴리에스터의 환경발자국'(Environmental Footprints of Recycled Polyester)에 따르면 폴리에스터 섬유를 만드는 데 미국에서만 연간 7천만 배럴, 하루에 3060만 리터(L)의 석유가 쓰입니다. 폴리에스터로 만든 셔츠는 면으로 만든 셔츠에 비해 탄소발자국(온실가스 발생량)이 두 배 더 많습니다. 영국 의회 환경감사위원회는 2019년 면셔츠가 2.1킬로그램(kg)의 이산화탄소를 배출할 때 폴리에스터셔츠는 5.5kg이나 발생시킨다고 발표했습니다.

청바지 한 벌 가공에 한 사람이 10년 마실 물 사용

한양대 의류학과 배지현 교수는 2021년 10월 6일 단비뉴스 전화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의류의 라이프사이클 전체에서 탄소배출이 이뤄집니다.”

예를 들어 원단을 염색하는 과정에서 전기와 화석연료가 쓰이고, 폐수가 나옵니다. 물도 엄청나게 많이 쓰이는데, 청바지 한 벌 제작하는데 사용되는 물이 7000L나 됩니다. 한사람이 10년 이상 마시는 물의 양과 같습니다. 가공 전 뻣뻣한 재질의 생지가 부드러운 청바지로 변하기까지 여러 차례 세탁과 탈색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사용할 물을 길어오는 데서 1차로 에너지가 발생하고, 워싱 가공 후 폐수를 정화하는 데서 2차로 많은 에너지가 쓰입니다.

의류 유통과정에서는 생산지에서 판매지 등으로 배송할 때 휘발유 등 화석연료가 쓰입니다. 2018년 기준 한국의 연간 탄소배출량은 7억 2700만t 가량입니다. 전 세계 의류산업이 해마다 배출하는 이산화탄소가 세계 전체 배출량의 10%를 차지하는 것을 감안할 때 국내 의류 부문 탄소배출량은 7270만t으로 추정할 수 있습니다.

옷을 얼마나 자주 사는지, 산 옷을 자주 입는지, 얼마나 중고를 구매하는지, 세탁은 몇 번 하는지, 세탁 습관이 어떤지와 같은 모든 요소가 탄소발자국과 관련되는데, 패스트패션의 인기와 함께 탄소배출은 늘어나고 있습니다. 미국의 중고의류 거래 기업인 ‘스레드업’(THREDUP)은 ‘패션 탄소발자국 계산기’를 만들어 소비자가 간단한 테스트를 통해 각자의 의생활 습관을 돌아보게 해줍니다.

의류로 인한 탄소배출에 문제의식을 갖고 대안을 모색하는 움직임도 나타나고 있습니다. 섬유기업인 효성티앤씨는 2008년 국내 최초로 버려진 페트(PET)병을 재활용해 폴리에스터 섬유 ‘리젠’을 만드는 업사이클링(폐기물로 새로운 상품 제조)을 시작했습니다. 2020년 의류브랜드 ‘플리츠마마’와 협업해 ‘리젠 제주’를 선보였고, 다음 해 3월 ‘리젠 서울’, 4월 ‘리젠 오션’을 연이어 출시하며 좋은 반응을 얻었습니다. 페트병이 폐기되는 과정에서 이산화탄소가 발생하는 것을 막고 합성섬유 제조 과정에서 석유가 쓰이는 것도 줄일 수 있는 방안입니다.

옷 소비 자체를 줄이자는 움직임도 나타났습니다. ‘새 옷보다 중고 옷 생활’ 캠페인을 주도한 비영리단체 ‘다시입다연구소’는 2021년 6월 이후 11차례 ‘21% 파티’를 주최했습니다. 21%는 사람들이 사놓고 입지 않는 옷의 평균적인 비율인데, 파티는 참가자들이 각자 입지 않는 옷을 가지고 와서 바꿔 가는 의류 교환입니다. 2021년 10월 기준 총 655명이 참가해 의류 1147개를 교환했는데, 대다수 참가자가 20대 여성이라고 합니다. 다시입다연구소 정주연 대표는 2021년 10월 7일 단비뉴스와 한 줌(Zoom) 화상회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옷은 제작부터 폐기까지 전 과정이 환경오염의 주범인데, 너무 일회용품이 돼 버린 것 같아요. 소비중심 사회에서 의류교환이라는 새로운 문화를 만들고자 합니다. 옛날에 중고의류를 창피하다고 여겼다면 이제는 오히려 환경적 관점에서 멋진 행동이 될 수 있어요”

중고의류는 온라인으로도 활발하게 공유되고 있습니다. 회원 10만 명을 확보한 ‘클로젯셰어’는 안 입는 옷이나 가방을 회원끼리 공유하는 플랫폼입니다. 안 입는 옷을 클로젯셰어에 맡기면, 필요한 회원이 빌리고 맡긴 사람은 수익을 얻는 ‘셰어링’과 월정액이나 일회성으로 옷을 빌려 입는 ‘렌털’ 서비스를 제공합니다. 취업 면접 등을 위해 정장이 필요한 청년들의 비용 부담을 줄여주기 위해 결성된 비영리단체 ‘열린옷장’은 기증받은 정장을 공유 옷장을 통해 저렴하게 대여해 주고 있습니다.

‘더 이상 새 옷 안 사겠다’ 실천하는 사람들

미국 드라마 '뉴스룸'과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그레이스 앤 프랭키'에 출연한 노장 배우 제인 폰다는 2019년 “기후위기를 막기 위해 개인적으로 새 옷을 사지 않겠다”고 선언했습니다. 실제로 2020년 미국 아카데미상 시상식에서 작품상을 호명할 때 6년 전 입었던 드레스를 다시 입고 나와 화제가 되기도 했습니다.

국내에서도 ‘새 옷 안 사기’ 운동을 펼치는 젊은이들이 늘고 있습니다. 차은샘 씨는 2021년 10월 26일 단비뉴스 전화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미세먼지가 심했던 2016년에 대기오염의 심각성을 깨닫고 환경 문제로 관심사를 넓혔어요. 그리고 전 세계 패스트패션의 과잉생산에 관한 글을 읽고 ‘옷을 사지 않아야겠다’고 마음먹었죠.”

그는 몇 년 전만 해도 계절이 바뀔 때마다 옷을 3~4벌씩 사던 쇼핑 습관을 버렸습니다. 대신 ‘어렵게 사고 어렵게 버리기’를 구호로, ‘산 후에 10년은 쓸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드는 옷이나 신발, 가방 등만 구입한다고 합니다.

그는 또 이렇게 말했습니다.

“새 옷을 사는 대신 기증품을 판매하는 ‘굿윌 스토어’같은 매장에서 중고의류를 삽니다. 중고의류 매장에서 예상치 못한 옷을 ‘득템’하는 정신적 쾌감도 얻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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