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비 소리뉴스] 기후위기시대 ⑰ ‘줍깅’하는 사람들

평소에는 눈에 띄지도 않던 쓰레기였습니다. 막상 주워 담아야 한다고 생각하며 달리니 사방에 쓰레기가 보였습니다. 한 번에 열 걸음을 가기가 힘들었습니다. 쉴 새 없이 무릎을 굽혀가며 쓰레기를 주워 비닐봉지에 넣었습니다. 따가운 볕을 등지고 앉았다 일어났다를 반복하니 땀이 비 오듯 쏟아졌습니다. 평소였다면 오르막길이라는 걸 감안하더라도 3킬로미터(km) 거리는 15분이면 달릴 수 있습니다. 하지만 2021년 8월 29일, 오전 11시부터 충북 제천시 신월동 세명공원에서 쓰레기를 줍고 분리배출까지 하다 보니 정오가 넘어서야 3km 달리기가 끝났습니다.

달리다가 줍고...15분 거리 1시간 걸린 체험

달리면서 쓰레기 줍기, 즉 ‘줍깅’을 하며 달린 거리는 짧았지만, 운동 효과는 컸습니다. 앉았다 일어났다를 반복하니 허벅지 근육이 뻐근했습니다. 쓰레기로 꽉 찬 20리터(L) 봉투 두 개를 양손에 나눠 들고 달리는 것도 쉽지 않았습니다. 조금이라도 빨리 봉투를 비우기 위해 근처 세명대 한의대 분리수거장을 잰걸음으로 오갔습니다.

검은색 반코팅 장갑을 낀 손에서는 담배 절은 냄새가 났습니다. 전날 내린 비 때문에 퉁퉁 불어있는 꽁초들이 많았습니다. 공원 안에 배치된 의자 주변에서는 맥주 캔, 소주병, 막걸리 병, 과자봉지, 마스크 등이 수거됐습니다. 가장 치우기 힘들었던 쓰레기는 부패한 음료가 남아있는 플라스틱 컵이었습니다. 썩은 내용물이 넘실거려 쏟아질 것 같았습니다. 공원 안에 화장실이 있었다면 변기에 내용물을 내려보내고 빈 컵을 씻어서 내놓고 싶었지만, 화장실을 찾을 수 없어 아쉬웠습니다. 내용물을 근처 하수도에 흘려보내고 빈 컵은 플라스틱 수거함에 넣었습니다. 이렇게 내용물이 들어있는 플라스틱 음료 잔을 1시간 동안 5개 치웠습니다.

2016년 스웨덴서 시작된 ‘플로깅’이 원조

줍깅의 원조는 2016년 스웨덴에서 시작돼 전 세계로 퍼진 플로깅(plogging)입니다. 스웨덴어 줍다(Ploka-upp)와 영어 달리기(Jogging)를 합친 말입니다. 한국에선 ‘쓰담달리기’로도 불립니다. 줍깅은 하나의 놀이로 자리 잡았습니다. 인스타그램이나 카카오톡 단체방에 인증사진을 올리는 것이 이미 문화가 되었습니다. 인스타그램에 해시태그(#) plogging을 검색하면 30만 건이 넘는 전 세계인의 게시물이 나옵니다. 한글로 ‘플로깅’이라고 태그된 게시물을 검색해도 16만 건 정도가 나옵니다.

사람들이 줍깅을 하는 장소도 다양합니다. 산과 바다, 도심 공원, 동네 골목까지, 달릴 수 있는 곳이라면 어디서든 줍깅을 하고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인증사진을 올립니다. 20L 봉투 하나를 들고 큰 쓰레기만 주우며 달리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해변에서 100L 크기 마대 5~6개를 채우는 사람도 있습니다. 모든 쓰레기를 보이는 족족 담는 사람도 있고 담배꽁초만 주워 500밀리리터(ml) 페트병 하나를 꽉 채운 사람도 있습니다.

줍깅을 아이와 함께하는 놀이로 시작해 9년째 이어가고 있는 사람도 있습니다. <나는 아름다워질 때까지 걷기로 했다>의 저자이자 4남매의 어머니인 이자경 씨입니다. 단비뉴스 인터뷰에서 이 씨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첫째 아이가 걷기 시작할 무렵, 길에 버려진 쓰레기를 집어 들어 쓰레기통에 던져서 넣는 놀이를 시작했어요. 그 후부터는 아이와 나갈 때 항상 그런 놀이를 했어요.”

아이들은 길에 버려진 쓰레기를 찾고 버리는 게 ‘보물찾기’ 같다며 즐거워했다고 합니다. 매일 같은 동네를 돌며 줍깅을 하는데도 주울 쓰레기는 늘 있었습니다. 이 씨는 새로 버려진 것도 있지만, 과거에 버려진 쓰레기들이 빗물이나 바람을 타고 내려오기도 했다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바닷가에서 줍깅을 할 때는 중국에서 떠밀려 온 쓰레기도 주워본 적이 있어요.”

줍깅을 하며 쓰레기 문제의 심각성을 깨달은 이 씨는 자신의 생활양식도 바꿨습니다. 이 씨는 남들과 마찬가지로 자신도 많은 쓰레기를 만들어 내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버려진 물건의 흔적이 저의 삶을 대변하고 있어요. 휴지 대신 손수건을 사용하거나, 수세미를 키워서 설거지에 사용하는 등 일상에서 쓰레기를 줄이는 노력을 하고 있어요. 쓰레기를 줍는 매 순간이 스스로 환경문제를 이해하는 과정이에요. 기후위기에 맞서 개인이 할 수 있는 가장 최소한의 움직임이에요.”

‘어스앤런 플로깅’등 단체 행사도 활발

줍깅을 단체 행사로 하는 사례도 늘고 있습니다. 국제환경단체 그린피스 서울사무소는 2021년 6월 1일부터 30일까지 ‘어스앤런 플로깅’(Earth & Run Plogging) 행사를 ‘런데이’ 등 달리기 애플리케이션을 통해 인증하는 비대면 방식으로 열었습니다.

그린피스 시민참여 캠페이너인 김진솔 씨는 2021년 8월 11일 <단비뉴스> 인터뷰에서 한 달간 열린 이 행사에 1만 4000여 시민들이 참여했고 인스타그램 해시태그를 통해 2000건 이상 관련 게시물이 올라왔다고 말했습니다.

지난 행사에서 특히 플라스틱 문제를 강조하고 싶었다는 김 캠페이너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99% 이상 석유를 비롯한 화석연료로 만들어지는 플라스틱은 생산, 소각, 재활용에 이르는 모든 단계에서 막대한 양의 탄소를 배출합니다.”

실제 줍깅에서 수거하는 쓰레기의 상당량이 페트병, 커피 용기, 과자봉지 등 플라스틱 제품입니다.

미국 국제환경법연구센터가 2019년 5월 발표한 <플라스틱과 기후 : 플라스틱 행성의 감춰진 비용> (Plastic & Climate: The Hidden Costs of a Plastic Planet) 보고서는 플라스틱 생산에서 재활용에 이르는 수명 주기의 모든 단계에서 2050년까지 560억 톤(t)이 넘는 온실가스가 배출될 것으로 예측했습니다. 이렇게 발생한 560억t의 온실가스는 남은 탄소 예산의 10~13%에 해당합니다. 여기서 탄소 예산이란, 지구 평균기온 상승을 1.5도로 억제하는 데까지 남은 탄소 배출량을 의미합니다. 또 플라스틱 생산이 현재 상태로 진행된다면 플라스틱 생산과 소각 때문에 한 해 동안 발생하는 온실가스는 2019년 기준 8억 5000만t에서 2030년에는 13억 4000만t으로 증가할 것으로 예측합니다.

김 캠페이너는 “줍깅이 기후위기에 관한 관심과 변화의 시발점이 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이렇게 덧붙였습니다.

“줍깅을 통해 바쁘게 돌아가는 사회에서 내 주변과 환경을 돌아보고 관심을 가질 수 있어요. 개인의 작은 실천에서 비롯된 말과 행동이 정부와 기업의 변화를 끌어낼 수 있습니다.”

줍깅이 ‘그린워싱’의 도구가 되는 것은 곤란

기후위기에 관한 사회적 관심이 증가하고 줍깅이 유행처럼 번지자 산림청, 볼보자동차 등 공공기관과 기업도 줍깅을 활용한 마케팅에 나섰습니다. 대부분 온라인으로 참가 신청을 받고, 참여한 사람들은 줍깅 인증사진을 SNS에 올려 상품을 받는 방식이었습니다. 소정의 참가비용을 주최 측에 내면 티셔츠, 쓰레기봉투, 장갑 등을 미리 주고, 정해진 기간 안에 줍깅 인증사진을 올리도록 하는 방식도 있습니다.

줍깅이 기업이나 공공기관의 마케팅에 활용되는 걸 우려하는 시선도 있습니다. 참가자에게 상품이나 장갑, 쓰레기봉투 등의 키트(꾸러미)를 주는 게 오히려 쓰레기를 늘릴 수 있다는 지적입니다.

이자경 씨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단체에서 제공하는 키트 같은 게 과연 친환경인지 생각해 봐야 할 필요가 있어요. 분해가 쉬운 비닐이라고 말하지만, 결국 행사를 위해 비닐이 만들어지며 쓰레기가 더 늘어나는 셈입니다. 집에서 다시 사용할 수 있는 봉투나 장갑 등을 활용해 또 다른 쓰레기를 만들어 내지 않고도 줍깅을 충분히 할 수 있습니다.”

탄소나 쓰레기를 많이 배출하는 기업이 줍깅 행사를 통해 ‘그린워싱’(친환경을 가장하는 것)을 하고 있다는 비판도 있습니다. 2021년 8월 31일 케이티엔지(KT&G) 복지재단은 ‘슬기로운 플로깅생활’ 행사 알림을 인스타그램에 올렸습니다. 그러자 줍깅 동호회 ‘와이퍼스’ 회원들이 KT&G가 담배꽁초 처리에 대안을 내놓지 않고 플로깅으로 그린워싱을 하고 있다며 항의 댓글을 달았습니다.

와이퍼스 회원 정세영 씨는 2021년 9월 15일 <단비뉴스>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거의 매일 아이와 함께 줍깅을 하고 있는데 가장 많이 나오는 쓰레기가 담배꽁초입니다. 정작 KT&G는 담배꽁초 쓰레기에 관한 관심이나 대책은 없는데 그런 기업이 플로깅을 한다니 씁쓸합니다.”

그러면서 이렇게 덧붙였습니다.

“KT&G가 책임지고 흡연자들에게 꽁초를 버리지 않도록 교육을 하거나, 흡연 장소 및 꽁초 전용 쓰레기통을 설치해야 합니다.”

와이퍼스 회원 황다정 씨도 이렇게 말했습니다.

“회사 측이 담배꽁초를 회수하거나 담배꽁초에 포함된 미세 플라스틱 소재를 썩기 쉬운 생분해 소재로 대체하는 등 근본적인 대안을 마련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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