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비 소리뉴스] 기후위기시대 ⑯ 부산 현대미술관 등 ‘지속 가능 전시’

기후위기를 막기 위해 사회가 총체적으로 변화해야 하는 시기, 미술관들은 ‘지속 가능한 전시’를 위해 움직이고 있습니다. 그동안 미술관들은 ‘자본 집약적 전시’로 행사 한 번마다 석고벽, 현수막 등 5톤(t) 트럭 4대가량의 폐기물을 만드는 게 일반적이었는데, ‘제로웨이스트(쓰레기 배출 최소화)’와 ‘탄소배출 감축’을 위해 해상운송, 전시 물품 재활용, 홍보물 디지털화 등을 시도하는 미술관이 등장했습니다. 

해외 작품 운송 대신 실시간 중계

부산시 사하구 하단동에 있는 부산 현대미술관은 2021년 5월 4일부터 22일까지 <지속 가능한 미술관 : 미술과 환경> 전시하면서 작품 운송과 설치 등 전 과정에서 탄소배출을 최소화하고 쓰레기를 줄이는 작업에 도전했습니다. 우선 하룬 미르자의 ‘웨인을 위한 가로지르는 물결’, 코시마 폰 보닌의 ‘만약 짖는다면 4’ 등 작품 6점을 미국 뉴욕에서 해상운송으로 실어 왔습니다. 비행기와 트럭을 이용했을 때에 비해 탄소배출량이 40분의 1로 줄었습니다. 시간상으로는 비행기가 15일, 배는 60일 정도 걸리지만, 환경을 위해 속도를 양보했습니다. 전시를 기획한 최상호 학예연구사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환경을 주제로 한 작품을 일회용 포장재로 칭칭 감아 비행기로 옮겨 놓는 상황이 역설적으로 느껴졌습니다.”

해상운송으로 전시회가 가능했던 것은 직접 실어 오는 작품 수를 최소화했기 때문입니다. 항공운송이 필요한 작품들은 현지에서 제작 설명서를 전송받아 부산에서 다시 제작하거나, 온라인 생중계를 통해 방송하는 방법을 택했습니다. 캐나다 출신 화가 줄리엔 세칼디의 ‘쇼핑의 사마귀’는 스캔한 작품 이미지를 전송받은 뒤 그리드(격자)로 나눠 종이에 인쇄하고 이어 붙였습니다. 인쇄할 때도 콩기름 잉크와 친환경 종이를 썼습니다. 대만에 있는 첸치린과 차이푸칭 작가의 ‘거래소: 동시대‧세대‧미학‧기법‧기관’ 작품은 타이베이 현대미술관과 협업해 현지 전시 모습을 생중계했습니다. 화면에는 타이베이 미술관을 방문한 관람객들이 등장하기도 했습니다.

환경 파괴적이었던 전시 관행 솔직히 고백 

<지속 가능한 미술관> 전시는 환경 파괴적이었던 그간의 미술관 관행을 고백하기도 했습니다. 전시장 한쪽 구석에 이전 전시의 폐기물을 그대로 진열해, 관객이 ‘깨끗한 석고벽 뒤의 진실’을 발견하도록 했습니다. 2021년 6월 24일 전시를 관람한 김모 씨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기존 전시에서 일시적으로 쓰고 버려진 자원이 어마어마하다는 걸 깨닫고 가슴이 아팠습니다.”

<지속 가능한 미술관>은 나무 벽을 사용했고, 다음 전시에 재활용할 수 있도록 페인트나 시트지를 입히지 않았습니다. 일반적인 미술전시에 쓰는 석고벽은 각재(角材)로 된 뼈대에 합판 1~2장을 붙인 후 그 위에 석고보드를 덧대어 페인트로 마감하는데, 접착제가 사용되기 때문에 재활용이 어렵다는 문제가 있습니다.

이 전시회는 또 작품 설명을 아크릴 등에 인쇄하는 대신 이면지에 손글씨로 쓰거나 모니터에 글을 띄웠습니다. 인쇄할 때 배출되는 탄소를 줄이기 위해서였습니다. 전시 홍보도 대부분 온라인으로 했습니다. 불가피하게 만든 홍보물은 한 가지 색 잉크만 사용했고 포스터, 초청장, 가방 등은 제작하지 않았습니다. 온라인 홍보도 데이터 전송에 쓰이는 전기를 줄이기 위해 디지털 파일의 크기와 개수를 최소화했습니다. 이 전시의 폐기물은 나사와 못, 철사 등의 부속과 작품마다 붙는 제목 및 설명판이 전부였습니다. 최 학예연구사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모든 홍보를 온라인으로 진행했어도 다른 전시 관람 인원과 큰 차이가 없습니다. 현수막이나 포스터 등을 통한 홍보가 효과적인지 의문을 갖게 됐습니다.”

‘지구, 우리의 집’을 위한 문화예술인의 도전 

2021년 8월 8일 전시를 마친 서울시립미술관의 <기후미술관: 우리 집의 생애>도 탄소감축과 쓰레기 최소화에 집중했습니다. 지구 생태계, 인간의 주택, 곤충의 생태계를 모두 ‘집’으로 보고 ‘기후변화로 위기에 놓인 집’을 보여준 이 전시는 작품 사진과 설명을 책자로 만드는 대신 모두 웹사이트에 올렸습니다. 전시장은 이전 전시에서 사용한 가벽을 재활용했고 버려진 책상과 액자를 주워 와 활용하기도 했습니다. 전시 그래픽디자인도 잉크 사용량을 3분의 1로 줄이는 서체인 ‘라이먼 에코’(Ryman Eco)를 활용했습니다. 서울시립미술관 김혜진 학예연구사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전시를 구현하는 모든 방식에 있어 기존의 전통적인 방식이 아닌 다른 방법을 찾아야 했습니다.”

해외 예술계에서도 기후위기에 대응하기 위한 시도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영국 런던의 서펜타인 갤러리 등 30개 문화기관은 영국 예술위원회의 새로운 환경프로그램 ‘스포트라이트’(Spotlight)에 따라 2023년까지 탄소배출량의 10~20%를 줄이기로 공약했습니다. 스위스 바젤에서 매년 6월 열리는 세계 최대 미술품시장 아트 바젤에서는 페이스 갤러리 등 전시업체들이 1회용 컵 대신 텀블러 사용, 인쇄물 대신 아이패드 이용, 대중교통 이용 등을 직원들에게 권장했습니다. 

물론 이 정도 노력으로 기후위기 대응 효과를 기대하기는 어렵다고 관계자들은 인정했습니다. 부산 현대미술관 최상호 학예연구사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전시에서 제시한 시도들은 제안적인 의미가 큽니다.” 

전시의 품질 유지 위한 고민 더 필요 

해상운송은 작품의 안전이나 보험 측면에서 항공운송보다 지속 가능하지 않을 수 있고, 물품 재활용이나 특정 서체 활용은 전시의 품질을 떨어뜨릴 수도 있습니다. <지속 가능한 미술관> 전시에 참여한 김실비 작가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작품을 보여주는 데 최적화된 공간이 아니었습니다.” 

작품을 돋보이게 하는 깔끔한 벽이 없었고, 최소한의 조명을 사용해 어두웠으며, 소리의 간섭도 있었기 때문이라는 겁니다. 

서울시립미술관과 부산 현대미술관은 각각의 전시에서 의미 있었던 실천 방안과 시도해 볼 만한 방안들을 정리한 성과 자료를 배포하기로 했습니다. 김혜진 학예연구사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미술 작품을 생산하고 전시를 구현하는 방식에 있어 생태적 실천을 하는 건 세계적인 추세입니다. 공립미술관으로서 환경적인 개념과 철학이 지속 가능하도록, 차츰 고민하고 적용해 나갈 계획입니다” 

미술관들의 이런 노력은 계속되고 있습니다. 2022년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에서 열린 <대지의 시간> 전시회는 가벽 대신 재사용 가능한 구형(공 모양)의 반사체를 11개 놓았습니다. 이 구형은 미술관 측에서 재사용할 수 있도록 개발한 에어볼인데, 전시의 폐기물을 줄이는 데 기여하는 것으로 평가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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