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비 소리뉴스] ⑨ 기후위기시대 대한민국 헌법 1조 개정안 제안 기자회견

대한민국 헌법 1조에 ‘기후 및 생물다양성 위기 극복 의무’를 명시해 ‘환경국가’로 도약하자는 제안이 나왔습니다.

2021년 7월 6일 오전 10시 서울 세종대로 한국프레스센터 19층에서 열린 ‘대한민국 헌법 1조 개정안 제안’ 기자회견에서 성낙인 전 서울대 총장 등 각계 인사 29명이 이런 제안을 했습니다. ‘대한민국은 기후 및 생물다양성 위기를 극복하고 지속 가능한 환경을 후손에게 물려줄 의무를 지닌다’는 내용의 3항을 헌법 1조에 추가하자는 것입니다. 현행 헌법 1조는 1항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2항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로 돼 있습니다. 이들은 2022년 3월 대통령 선거 때, 이 같은 내용의 헌법 개정안을 함께 국민투표에 부치자고 요구했습니다.

각계 인사 29인 ‘헌법 1조 3항’ 신설 제안

환경재단 주관으로 열린 기자회견에서 참가자들은 서울대 환경대학원 석사과정 하지훈 씨와 성균관대 문헌정보학과 신민희 씨가 청년대표로 낭독한 제안서를 통해 “코로나 팬데믹과 기후재난은 지구자원을 소진해 풍요를 누린 대가”라며 국가적 경각심을 촉구했습니다.

이들은 제안서에서 이렇게 주장했습니다.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바이러스와 폭염, 폭우, 가뭄, 산불 등 전대미문의 기상이변은 지구가 임계선 상에서 보내는 마지막 신호입니다. 국가와 정부, 기업의 운영원리는 물론 우리 삶의 양식을 전면적으로 변화시킬 수 있도록 헌법 1조부터 개정해야 합니다.”

제정임 세명대 저널리즘대학원장이 진행한 이날 기자회견에는 최열 환경재단 이사장, 최재천 이화여대 석좌교수, 승효상 건축가, 엄홍길 산악인 등 21명의 제안자가 현장 참석했고, 안성기 배우, 정재승 카이스트 교수, 윤호중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 등도 제안서에 이름을 올렸습니다. 김기현 국민의힘 당시 원내대표도 긍정적 의사를 밝혔으나 ‘당내 논의가 더 필요하다’며 불참했다고 최열 이사장이 밝혔습니다.

성낙인 전 총장은 개정안의 의미를 설명하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프랑스는 기후위기에 대응해야 한다는 헌법 제1조 개헌안이 이미 하원을 통과했습니다. 환경국가임을 선포하는 첫 번째 국가가 될 기회를 프랑스에 빼앗기면 안 됩니다.”

프랑스 하원은 2021년 3월 16일 ‘공화국은 생물다양성과 환경보전을 보장하고 기후위기와 투쟁한다’는 새 헌법조항 제안을 찬성 391명 반대 47명으로 통과시켰습니다.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은 개헌안이 상원까지 통과하면 국민투표를 하겠다고 발표했습니다. 그러나 상원에서 해당 개정안의 핵심 조항이 삭제되면서 국민투표는 무산됐습니다. 프랑스에서 법안 개정에 관한 국민투표는 상원과 하원이 동일한 문구로 승인한 경우에만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김세연 사단법인 아젠다2050 대표는 기자회견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헌법 제1조 3항이 환경헌법으로 규정되면 국가공동체 최고규범의 정신이 바뀌기 때문에 기후위기에 더 적극적으로 대처할 수 있을 것이고, 기후위기 대응 모범국이 된다면 국제사회에서 한국의 목소리가 커질 것입니다.”

청년은 기후위기로 ‘개죽음’을 맞고 싶지 않다

김지윤 기후변화청년단체 긱(GEYK) 공동대표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기후위기 때문에 발생한 폭염, 산불, 장마는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인류를 위협하고 있지만, 경제성장과 개발이 최우선 순위인 한국은 눈앞의 기후위기를 애써 부정하고 있습니다. 성장중심주의 관성을 끊어낼 수 있는 헌법 개정이 중요합니다.”

그는 국가의 적극적인 대응을 촉구하며 이렇게 덧붙였습니다.

“청년들은 기후위기 때문에 개죽음을 맞고 싶지 않습니다.”

고3으로 제안자 중 가장 나이가 어린 최민웅 씨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나라엔 환경과 관련된 공교육이 거의 존재하지 않습니다. 청소년들이 환경교육을 받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환경오염의 심각성이나 환경오염을 막기 위해 어떤 행동을 해야 하는지 잘 모르고 있습니다.”

그는 대통령 선거에 관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대선에서 후보들이 환경교육에 관한 정책 제안을 많이 받아들여 준다면 청소년이 미래세대의 주체로서 다양한 활동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현지현 법무법인 덕수 변호사는 헌법에 명시된 환경권에 관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현행 헌법 제35조 1항에 ‘모든 국민은 건강하고 쾌적한 환경에서 생활할 권리를 가지며, 국가와 국민은 환경보전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규정돼 있습니다. 그러나 제2항에서 ‘환경권의 내용과 행사에 관하여는 법률로 정한다’고 규정해 실제로 제1항의 환경권 조항은 힘이 크지 않습니다. 현재 헌법상 환경권은 주거환경의 평온, 소음이나 일조권 등을 해치지 말라는 소극적인 의미로만 활용되고 있습니다. 이런 소극적인 내용으로는 기후위기에 제대로 대응할 수 없습니다.”

그는 변호사로서 현행 헌법의 한계를 느끼고 있다며 이렇게 덧붙였습니다.

“헌법 개정을 통해 국가와 국민에게 확실한 목표와 의무를 부여해야만 진짜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을 것입니다."

기후위기 대응에 좌우 없어야

최재천 이화여대 에코과학부 석좌교수는 정치권이 진영을 떠나 기후위기에 적극 대응할 것을 촉구하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지난 4.7 재보궐선거에서 구체적인 기후위기 전략을 내놓은 후보가 한 명도 없었습니다. 우리나라 정치인들은 다른 세상에 사는 사람 같아요.”

그는 2022년 대선에서는 각 후보가 헌법 개정 제안을 받아줄 것을 기대한다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환경의 ‘ㅎ’만 꺼내도 좌파 취급을 받는데, 기후위기 대응에는 좌우가 없어야 합니다.”

한국헌법학회장을 지낸 고문현 숭실대 교수는 개정안과 관련한 향후 일정을 설명하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다양한 의견수렴과 국회 논의를 거쳐 2022년 3월 9일 대선과 동시에 원포인트 헌법 개정안 찬반투표가 진행될 수 있도록 추진하겠습니다. 개헌을 위해서는 국회 재적의원 3분의 2 동의가 필요하기 때문에, 여야 협력이 꼭 필요합니다.”

최열 이사장은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 외에 다른 정당에도 개헌 논의 동참을 제안할 예정이라고 밝혔습니다.

그러나 이 원포인트 헌법 개정안 찬반투표는 2022년 대선에서 추진되지 못했고, 기후위기 극복 의무를 헌법에 명시하려는 시도는 일단 좌절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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