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비 소리뉴스] 기후위기시대 69. 박람회에서 본 기후산업 현주소

2023년 5월 25일부터 27일까지 부산 해운대구 에이펙(APEC)로 벡스코에서 ‘제1회 부산 기후산업 국제박람회’가 열렸습니다. 이 행사는 기후위기 대응을 기술혁신과 성장의 기회로 활용하겠다는 기업들의 의지가 집약된 행사였습니다. 산업통상자원부, 외교부 등 중앙부처와 부산광역시, 대한상공회의소 등이 공동 주최한 이 행사에는 카카오, 현대자동차 등 500여 개 기업이 참여해 탄소중립에 이바지할 기술개발의 현주소를 보여주었습니다.

기후위기 대응을 기술혁신과 성장의 기회로

벡스코의 1·2전시장 중 청정에너지관·에너지효율관·탄소중립관·미래모빌리티관이 마련된 1전시장에서 먼저 눈에 띈 곳은 한국전력공사(KEPCO)의 전시 공간이었습니다. 한전은 4개의 스크린을 통해 개발 중인 그린수소 등 친환경 에너지 기술을 소개했습니다. 수소(H)는 자동차와 선박의 연료로 사용되고, 태양광·풍력 등 재생에너지를 저장하는 수단으로도 쓰입니다. 이 중 그린수소는 재생에너지 전력으로 물을 전기분해 해서 만들기 때문에 탄소 배출이 없는데, 화석연료를 활용하는 그레이수소, 탄소포집기술을 활용하는 블루수소에 비해 아직 생산량이 극히 적습니다. 현재 세계적으로 사용되고 있는 수소의 96%는 그레이수소입니다. 그레이수소는 천연가스의 주성분인 메탄(CH₄)을 고온, 고압의 수증기와 반응시키는 ‘수증기 메탄 개질’ 방식이나, 석유화학·철강 공정 등에서 부산물로 발생하는 수소를 정제해 생산하는 ‘부생수소’ 방식으로 만들어집니다.

한전은 미국·독일 등과 협력해 그린수소 생산을 위한 원천기술 확보에 나서겠다고 밝혔습니다. 그린수소가 대량 생산되면 반도체·전자·철강 등의 생산과 자동차·버스 등의 운송 연료로 쓰일 수 있습니다. 한국딜로이트그룹에 따르면 글로벌 수소경제 규모는 2050년까지 전 세계 에너지 소비량의 10% 이상으로, 연간 12조 달러(약 1경 5906억 원) 이상이 될 것으로 추산됩니다.

한국전력은 수소·암모니아 발전 기술도 소개했습니다. 수소·암모니아 발전은 화력발전기에 석탄, 석유 대신 수소(H)와 암모니아(NH3)를 태워 전력을 생산하는 방식입니다. 수소와 암모니아는 분자 구성에 탄소(C)가 없어 분해해도 이산화탄소(CO₂)가 발생하지 않습니다. 두 종류 이상의 연료를 혼합해 발전하는 것, 즉 ‘혼소’의 양에 비례해 석탄과 액화천연가스(LNG)를 덜 태우므로 탄소 배출을 줄일 수 있습니다. 한전은 2022년부터 석탄에 암모니아를 20%가량 섞어 전력을 생산하는 기술개발에 들어갔으며, 2027년까지 상용화할 계획이라고 밝혔습니다.

부산대 청정화력발전에너지연구소도 석탄 대신 암모니아를 발전 연료로 활용하는 연구를 진행한다고 밝혔습니다. 이 연구소의 김경민 박사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암모니아는 연소하더라도 물과 질소만 나올 뿐 이산화탄소가 발생하지 않습니다. 현재는 암모니아와 석탄을 함께 사용하고 있지만, 향후 목표는 모든 화석연료를 암모니아로 대체하는 겁니다.”

지붕 태양광에 주차장 에너지저장장치 갖춘 집

엘지(LG)전자는 450제곱미터(㎡) 규모의 전시 공간을 ‘넷제로 하우스’로 꾸몄습니다. 넷제로는 탄소중립과 같은 말로, 탄소 배출량에서 흡수량을 뺀 수치를 영(0)으로 만드는 것입니다. 넷 제로 하우스에는 인공지능(AI) 엔진으로 온도·습도를 조절해 탄소 배출량을 줄이는 에어컨, 냉난방 에너지를 각각 60%, 74% 회수하는 고효율 전열교환기 등이 설치됐습니다. 가스 대신 집안 공기 중의 열을 이용해 급탕하는 친환경 시스템보일러, 온수 배관과 바닥난방 배관을 연결해 목욕물의 폐열을 회수하는 시스템도 장착됐습니다. 공기 열을 이용해 냉난방과 온수를 공급하는 히트펌프 시스템보일러, 지붕 태양광에서 생산한 전력을 주차장의 에너지저장장치(ESS)에 모아두고 전기차 충전기로 활용하는 기능도 갖췄습니다.

카카오 모빌리티는 전기 배터리로 사람과 화물을 운송하는 도시교통체계(Urban Air Mobility)를 소개했습니다. UAM은 도심 내에서 항공기를 통해 사람이나 화물을 운송하는 시스템입니다. 카카오 모빌리티 장성욱 미래이동연구소 부사장은 보도자료를 통해 “UAM과 자체 기술로 제작한 자율주행 전기차를 연계해 지상과 상공을 포괄하는 이동 서비스를 제공할 예정”이라며 “여행 계획과 출발·도착 시간 예측, 지상 교통수단 호출 및 연계 등 고도화된 플랫폼 기술을 활용해 실현 가능하다”고 설명했습니다. 이 회사는 이를 위해 전남 고흥에서 실증 연구를 진행했으며, 2025년 정부가 주도하는 시범 사업에 참여할 계획이라고 밝혔습니다.

현대차그룹은 수소전기트럭 살수차와 수소연료전지 멀티콥터(3개 이상의 회전 날개를 가진 비행체) 드론을 선보였습니다. 도로 청소 등에 쓰이는 살수차는 한 번 충전해서 최대 400킬로미터(km)를 주행할 수 있습니다. 탄소 배출이 없고, 소음 공해도 대폭 줄일 수 있습니다. 멀티콥터 드론은 지름 6미터(m), 최대 이륙중량 700킬로그램(kg)에 달하는데, 사람과 화물을 수송하는 용도로 개발되고 있습니다.

부산에 사는 취업준비생 남현재 씨는 박람회에 참가한 소감을 이렇게 말했습니다.

“현대자동차 취업을 준비하고 있다 보니 수소연료 운송 수단에 흥미가 갔어요. 2022년 서울에서 열린 ‘2022 탄소중립 엑스포(EXPO)’는 중소기업 위주였다면, 이번 박람회는 대기업이 많이 참여한 것이 가장 다른 점이라고 생각해요.”

연구기관도 앞다퉈 탈황석고 등 기술개발

제2전시장에는 친환경 기술을 개발하는 연구기관들이 많이 참가했습니다. 울산과학기술원(UNIST)은 바이오매스(동식물의 부산물로)로 전력을 생산하는 기술을 소개했습니다. 이인희 연구원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리그닌(lignin)은 쉽게 썩지 않고 식물을 단단하게 지탱하는 성분으로, 목재 폐기물의 20~30%를 차지하는데 그간 마땅한 사용처를 찾지 못해 폐기했어요. 그래서 연간 500만 톤(t) 가까이 나오는 리그닌으로 화합물을 만들고, 이 과정에서 얻은 전자로 ‘태양광 수소’를 생산하는 기술을 개발했어요.”

태양광 수소는 태양에너지를 이용해 생산된 수소를 말합니다. 이어 이 연구원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태양광으로 만든 전기에너지만으로 수소 생산 효율을 크게 높일 수 있어 그린수소 상용화에 한 발짝 다가선 것 같아요.”

한국지질자원연구원은 탈황석고와 암모니아를 이용해 이산화탄소를 제거하는 기술을 소개했습니다. 탈황석고는 화력발전에서 나오는 매연의 탈황 과정(황을 제거하는 과정)에서 석회와 섞이면서 생기는 부산물에서 만들어지는 성분입니다. 조동환 연구원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탈황석고를 이산화탄소가 포함된 배기가스와 직접 반응시키면 탄산칼슘으로 광물화되죠. 탄산칼슘은 탈황 공정 원료로 재사용할 수 있고 석회석으로 사용될 수 있습니다. 이 과정에서 생기는 황산암모늄은 비료로 활용할 수 있습니다.”

한국전자통신연구원은 현실의 공간과 물체를 가상세계에 구현하는 ‘디지털 트윈’ 기술로 축사전력을 관리하는 법을 소개했습니다. 연구원에 따르면 디지털 트윈 기술이 축산업에 적용된 것은 세계 최초입니다. 박대헌 연구원은 디지털 트윈 기술에 관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선 대한민국에서 표준화된 축사의 모양을 몇 개 정도 정의하고, 24시간 동안 돼지의 행동 패턴과 외부 기상 정도에 따라 공급되는 에너지와 사용되는 에너지의 양을 측정합니다. 이를 통해 대략 10%에서 최대 20% 정도 에너지 생산성을 높일 수 있을 것으로 예측됩니다.”

시민도 체험을 통해 배우고 즐긴 박람회

박람회장 곳곳에는 어린이 등 관람객이 직접 체험하며 배우고 즐길 수 있는 공간도 마련됐습니다. 한전은 ‘전기는 바람을 타고’라는 이름의 가상현실(VR) 시뮬레이터(재현 장치)를 설치했습니다. 참가자가 VR 안경을 쓰고 탈 것에 앉으면 3분가량 영상을 통해 ‘한라산에서 부는 바람이 풍력발전 과정을 거쳐 가정에 전기로 공급되는 과정’을 생생하게 체험할 수 있습니다. 한전 변형석 차장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풍력발전이 어떻게 이루어지며 그 전기가 우리 가정에 어떻게 도달하는지 보여주기 위한 프로그램입니다.”

경남 김해에서 온 심하율 어린이는 가상현실 체험을 마친 뒤 이렇게 말했습니다.

“바람이 전기가 되는 것이 신기했어요. VR 기술을 통해 자동차를 타보니 재미있고 또 타고 싶어요.”

중소기업 아트플라이는 어린이용 VR 프로그램인 ‘그린플레이’를 소개했습니다. 북극이나 산불 현장 등에서 기후위기를 체감하고, 일상생활 속에서 할 수 있는 탄소 저감 활동을 알아보는 내용입니다. 아이들이 VR 고글을 착용하면 귀여운 캐릭터가 등장해 기후위기의 심각성을 알려줍니다. 빙하가 녹는 상황에서 북극곰을 구하고, 산불 현장에서 코알라를 구출합니다. 전기를 절약하는 방법도 소개했습니다. 아트플라이의 이란 팀장은 그린플레이를 만든 이유에 관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학교에서 미술 교육을 하다가, 점차 기후위기가 심각해지고 환경 교육이 필요함을 느껴 VR을 활용한 프로그램을 만들었습니다.”

경남 김해 영운고등학교에 다니는 김윤아 학생은 이번 박람회에 참가한 소감을 이렇게 말했습니다.

“학교에서 답사 차원으로 방문했어요. 기술이 발전했다는 것을 알고는 있었는데, 기후박람회에서 눈으로 보니 더 생생하게 와닿았어요.”

디지털 시대의 멀티미디어 실험에 앞장서는 <단비뉴스>가 ‘소리뉴스’ 2탄을 시작합니다. 2021년 4월 시작된 ‘기후위기시대’ 연재 기사를 단비뉴스 환경부 기자들이 목소리와 영상으로 전합니다. 이 연재 기사는 갈수록 심각해지는 기후위기의 현황과 대안, 그리고 기후정의를 위해 행동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소리뉴스 1탄 ‘마지막 비상구’와 마찬가지로, 시각장애인을 포함한 우리 사회 구성원 모두가 엄중한 기후위기 현실을 깨닫고 함께 대응하는 데 도움이 되기를 기대합니다. 소리뉴스는 단비뉴스 홈페이지와 유튜브, 팟빵 채널에 실립니다. (편집자주)

 

[기후위기시대] 기사 더보기

[기후위기시대 소리뉴스]
① '석탄 퇴장' 급한데 신규발전소 더 짓는 한국
② '나만 지구 지켜?’ 불안과 실망을 넘어서
③ 정부·기업의 기후 대응, 시민이 압박해야
④ 석탄발전소 ‘질서 있는 퇴장’을 서둘러야
⑤ 썩은 당근 쏟으며 ‘위험’ 호소한 청소년들
⑥ 탄소중립 외치며 석탄발전·공항 짓는 위선
⑦ 기후과학자가 소형원자로 개발에 반대하는 이유
⑧ 개발도 안 된 핵융합 대신 자연 태양광 투자를
⑨ 기후와 생물다양성 위기 극복을 국가의 의무로
⑩ 떠오르는 '소형모듈원전' 조목조목 따져보니
⑪ 안전하지도 경제적이지도 않은 파이로프로세싱
⑫ 더 큰 재난 막으려면 원전 아닌 자연에너지로
⑬ ‘탄소감축 과정에서 피해 떠안는 노동자 없도록
⑭ 소고기가 배출하는 온실가스, 두부의 20배
⑮ '각자도생' 대신 서로 돌봐야 재난 이긴다
⑯ 쓰레기 여러 트럭 나오는 전시회는 '이제 그만' 
⑰ 지구가 깨끗해질 때까지 달리기로 했다
⑱ 화석연료에 여전히 돈 쏟아붓는 공적금융
 소송으로 입 막는 기업, 굴하지 않는 기후행동
⑳ '기후재난 당사자가 애타게 전하는 위험 신호
㉑ 유행 따라 사고 버리니 지구가 열받았네
㉒ ‘온난화 주범’ 대기업에 ‘기후정의’를 압박하다
㉓ ‘신공항’ 대신 ‘정의로운 전환’에 집중 투자를
㉔ 먹거리 전환이 에너지 전환만큼 중요하다
㉕ 주민협동조합 이익공유로 ‘무석탄·무원전’ 확대

㉖ 주요 정당 지도자들, 탄소중립 로드맵 제각각
㉗ 청년의 미래를 빼앗은 것에 용서를 구합니다
㉘ 원전으로 탄소중립이 가능하다는 착각
㉙ ‘태양광 괴담’ 가고 나니 ‘이격거리’가 남았다
㉚ 위기 해결의 열쇠 함께 찾는 인문·과학 연구자들

㉛ 지구 살리는 채식, 학교가 가르치고 선택권 줘야

㉜ 에너지 자급자족 건물, 이제 선택에서 의무로
㉝ 전국 8만여 가구가 아직은 버릴 수 없는 연료
㉞ 소음과 분진에도 생계형 노동 못 떠나는 노인들
㉟ 예정된 폐광, 대안 없는 노동자와 지역주민
㊱ 강이 위험에 처하면 인류 문명도 위험하다
㊲ "바다에 물고기보다 플라스틱이 많아질 수도"
㊳ 미국곡물협회가 부산 모터쇼를 찾은 까닭은
㊴ 무농약으로 ‘땅심’ 키우는 공유농업의 현장
㊵ 건설·택배 노동자 목숨 위협하는 폭염이 온다
㊶ 아열대로 가는 한국, 농민도 작물도 적응 난조
㊷ 바다숲과 갯벌은 기후위기 막는 천군만마
㊸ ‘기후 한계점’ 코앞인데 환경 수업은 ‘자습 시간’
㊹ 기후위기 대응 첫걸음은 '석탄발전소 안 짓기'
㊺ 퇴출 산업 노동자와 지역주민은 누가 챙기나
㊻ "탄소중독 기업과 국가, 기후위기 책임져야"
㊼ 페라리·벤틀리 가죽 시트도 가방으로 재탄생
㊽ 약초 대신 매미나방이 그득한 산에서 상심
㊾ 벌금 물더라도 판결문에 ‘기후위기 공감’ 기대
50. ‘나와 지구에 이로운 공간’에서 뭉치는 청년들
51. 기후 시민은 요구한다, "공항 말고 갯벌"
52. 아이들에게 기후 부담을 떠넘기지 않는 사회로
53. 법원도 ‘기후불복종’ 명분에 공감, 벌금 줄여줘
54. ‘우리 공동의 집, 지구’를 위해 거리에 선 신앙인
55. 미국 핵물리학자 “도쿄전력 처리 신뢰 어렵다”
56. 고속도로 위, 방음벽에도 태양광 패널을 깔자
57. 자연 훼손, 농지 손실 없이 태양광 전기 만들죠
58. 딸 위한 채식에서 기후·환경을 위한 식당까지
59. 트럼프의 ‘기후 음모론’을 언론이 방치한다면
60. 수익 적어도 동지와 함께 가는 ‘제로웨이스트’
61. "IT 강국 한국, 재생에너지 전환에 유리"
62. "‘성장 집착’ 버리고 ‘생태 한계 속 균형’ 찾아야"
63. ESG로 기업 가치 높이기, 공시기준 등 정비 중
64. 연 1000억 톤 자원 소비, 재투입은 고작 7%
65. 실험실에서 키운 고기, 식탁에서 환영받을까
66. 그린워싱과 공장식 축산을 만화로 고발하다
67. 아빠의 마음으로 경고하는 ‘1.5도의 눈물’

저작권자 © 단비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