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비 소리뉴스] 기후위기시대 ⑭ 확대해야 할 채식 선택권

2014년에 개봉한 넷플릭스 영화 <카우스피라시>(Cowspiracy)는 축산업이 기후변화 원인의 51%, 아마존 열대우림 파괴 원인의 91%를 차지한다고 주장합니다. 대학생 김혜림 씨는 이 영화를 보고 육류 소비가 기후위기를 초래한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이후 김 씨는 덩어리 고기를 덜 먹는 정도로 육식을 줄였지만, 완전채식을 하진 않았습니다. 그러다 2020년 8월 경기도 동두천시의 한 도계장에 가본 후 육식을 뚝 끊게 됐다고 합니다. 김 씨는 이렇게 회고했습니다.

“닭을 실어 나르는 트럭에 작은 케이지(닭장)가 여러 층 쌓여있는데, 그 안에 갇힌 닭들은 몸을 제대로 펴지도 못했어요. 닭들의 몸에는 털이 거의 없고 피부 염증이 심각했죠. 온몸에 분비물이 덕지덕지 묻어 있기도 했어요. 그때 공포와 슬픔을 느꼈어요.”

2021년 <단비뉴스> 인터뷰에서 김 씨는 그 후로 음식을 비건, 즉 완전채식으로 먹고 동물실험을 거쳤거나 동물성 성분이 들어간 화장품을 쓰지 않게 됐다고 말했습니다.

지구온난화의 강력한 용의자, 공장식 축산과 육식

기후위기전북비상행동에서 활동하고 있는 남지숙 씨는 2021년 단비뉴스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저는 12년 전 채식을 시작했습니다. 환경운동을 하면서 ‘기후위기를 늦추기 위해 개인이 쉽게 실천할 수 있는 방법이 채식’이라는 신념을 갖게 됐어요.”

그는 건강, 동물복지, 지구환경을 위해 채식문화를 만들어 갈 수 있도록 채식요리 강좌를 열고 있으며 성인과 학생을 대상으로 기후변화와 관련된 교육도 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광주광역시에 살고 있는 유휘경 씨는 단비뉴스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저는 2019년 채식을 시작했습니다. 채식을 하되 가끔 육식도 먹는 ‘플렉시테리언’으로 시작해 붉은 살코기만 안 먹고 닭고기는 먹는 ‘폴로’ 등 여러 단계를 거쳐 현재는 비건이 됐어요. 광주 청년들의 비건 식당 발굴 모임인 ‘비건 탐식단’도 운영했죠. 이른바 ‘비건 불모지’인 광주에서 마음 편히 채식을 하고 싶은 청년들이 비건 식당, 혹은 비건 메뉴를 먹을 수 있는 식당을 찾는 모임입니다. 처음에는 동물권에 관한 관심으로 비건을 시작했지만, 비건을 공부하면서 기후위기에도 관심을 두게 됐어요.”

그는 채식 외에도 대중교통과 계단 이용하기, 안 쓰는 플러그 뽑기, 플로깅, 즉 조깅을 하면서 쓰레기를 줍는 운동 등 개인 차원에서 할 수 있는 탄소감축 운동을 열심히 실천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기후위기를 막기 위해 채식을 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습니다. 민간단체인 한국채식연합에 따르면 2022년 기준 국내 채식 인구는 약 200만 명으로 추정됩니다. 2008년 15만 명에 비해 13배가량으로 늘어난 수치입니다. 고기를 생산하는 과정에서 온실가스가 대량 방출된다는 사실이 널리 알려지면서 이런 추세는 가속화하고 있습니다. 소, 돼지, 양 등 가축의 배설물 등에서 메탄이 발생하고, 가축을 키우기 위해 숲을 태우고 농경지에 비료를 뿌리면서 아산화질소와 블랙카본이 발생합니다. 메탄, 아산화질소, 블랙카본은 이산화탄소와 함께 지구의 온도를 높이는 온실가스입니다. 영국 옥스퍼드대학 연구에 따르면 육류는 100그램(g)당 7.16킬로그램(kg)의 온실가스를 배출하고, 완전채식은 2.89kg만 배출합니다. 기후관련 비영리단체 카본브리프에 따르면 소고기 1kg이 배출하는 온실가스는 59.6kg으로 닭(6.1kg)의 약 10배, 두부(3kg)의 약 20배에 달합니다.

채식 인구 늘면서 다양한 식단과 식당 등장

채식 인구가 늘어나면서 식단과 식당도 다양해지고 있습니다. 김혜림 씨는 2021년 서울 용산구 이촌동 노들섬의 한 식당에서 고기를 넣지 않은 ‘제로비건 감자탕’을 맛보고 만족했다고 말했습니다.

“식물성 대체육인 언리미트로 토르티야 피자를 만들고, 우유 대신 두유를 넣고 마라크림 떡볶이를 만들어 먹는 등 다양한 식단에 도전하고 있어요. 채식도 ‘논 비건’(완전채식이 아닌) 음식과 다르지 않고 더 맛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더 공들여 요리할 때도 있어요.”

인스타그램에서 #채식식단 #비건요리 등 관련 해시태그를 검색하면 대체육을 올린 비빔면, 콩으로 만든 돈가스, 버섯탕수육, 비건 어묵으로 만든 떡볶이 등 다양한 채식 식단과 레시피(조리법)를 구경할 수 있습니다.

서울에는 채식 식당도 꽤 생겼습니다. 2021년 서울시는 서울에서 채식을 취급하는 1555개의 식당 중 정보제공에 동의한 948곳을 발굴해 홈페이지에 공개했습니다. 하지만 서울을 제외한 대부분의 지역은 ‘채식 불모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채식 전문 식당이나 채식 메뉴를 구비한 일반 식당을 찾기 어렵습니다. 2021년 당시 1인 가구, 청년층 등이 자주 이용하는 편의점에서 채식 식품은 찾기가 어려웠습니다. 한 프랜차이즈 편의점에서 찾아본 비건 식품은 베지(채소)가 든 떡볶이, 채식주의 도시락, 채식주의 버거, 콩고기 삼각김밥 등 종류가 한정돼 있었습니다.

매년 채식에 관한 관심이 늘어나자 편의점들도 점차 채식 관련 제품을 확대했습니다. 업계에서 처음으로 ‘채식주의’ 브랜드를 만들고 채식 간편식을 출시해 온 씨유(CU) 편의점의 경우, 2023년까지 출시한 채식 관련 제품은 총 40여 개로 550만 개 이상 팔렸다고 합니다. 지에스(GS)25 편의점은 지난해 대체육 간편식을 출시하는 등 채식 먹거리를 신성장 카테고리로 선정하고 관련 상품을 확대하고 있습니다.

유휘경 씨는 2021년 인터뷰에서 채식 식당에 갈 수 없을 때 일반 식당 측에 별도의 요청을 한다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콩나물 국밥을 주문할 때 육수 대신 맹물로 조리하고 수란을 빼달라고 부탁하는 식이에요. 된장찌개나 순두부찌개를 주문할 때는 고기나 해산물을 빼고 야채와 두부만 넣어달라고 하고요. 비빔밥을 주문할 때는 고기와 계란을 빼달라고 요청하고 무생채에 액젓이 들어갔는지 확인해요. 기본 반찬은 액젓과 젓갈이 들어가지 않은 나물류만 받고요.”

유 씨는 “처음이 어렵지 두 번은 쉽다”며 “동물성 재료를 제외해 달라고 요청했을 때 수락해 주는 곳을 찾아 놓으면 언제든지 찾아가 식사를 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아직은 채식 학생에게 ‘고난과 좌절’ 안기는 급식

채식을 하는 사람들에게 주변의 시선은 곱지 않습니다. 2021년 인터뷰에서 유휘경 씨는 처음에 주변 사람들에게 ‘이상한 종교에 빠진 것이 아니냐’ ‘사람이 고기를 먹어야 힘이 나지 어떻게 채소만 먹고 사느냐’는 질타를 들었다고 말했습니다. 남지숙 씨도 주변에서 ‘까다로운 사람’이라며 눈치를 줘 힘들었다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직장이나 친구들 간의 회식에서도 어려움이 많아요. 가끔 채식주의자를 배려해 식당을 정하기도 하지만 대개는 다수의 의견에 따르기 때문에 어떤 경우는 흰밥만 먹고 오는 경우도 있었죠.”

남지숙 씨는 “남편도 채식을 하는데 아침마다 출근하는 남편 도시락을 준비하는 게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며 “직장과 식당에서 채식 선택권이 보장되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학교도 마찬가지입니다. 2021년 당시 거의 모든 학교에서 육류나 육가공품 위주의 식단을 제공하고 있었습니다. 채식하는 학생들은 먹지 않는 것 외에 방법이 없었습니다.

2021년 6월 채식급식시민연대는 서울 중구 국가인권위원회 앞에서 채식 선택권 보장을 위한 기자회견을 열었습니다. 채식 학생의 어머니인 황윤 씨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채식 선택권이 없다는 것은 초중고 12년 동안 학교급식에서 완전히 배제하는 것과 다름없습니다.”

기자회견에서 한 남학생은 이렇게 말하기도 했습니다.

“모두가 급식시간을 손꼽아 기다리지만 비건 청소년들에게는 급식시간이 고난과 좌절이며 굶주림과 소외를 경험하는 시간이에요.”

2022년 3월 서울시교육청 학교보건진흥원은 ‘먹거리 생태전환교육 중기발전계획(2022~2024)’을 발표했습니다. 당시까지 월 2회 채식을 권장하던 ‘그린 급식의 날’을 2023년 월 3~4회로 확대하는 계획이 담겼습니다. ‘그린 급식의 날’은 육식 섭취를 줄이는 급식 문화 조성을 위해 2021년 서울 시내 학교에 처음 도입됐습니다. ‘그린바’를 설치해 매일 채식 식단을 따로 선택할 수 있게 하는 ‘채식 선택제’ 시범학교도 2022년 20곳에서 매년 10곳씩 늘려 2024년에는 40곳까지 확대한다는 계획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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