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비 소리뉴스] 기후위기시대 68. 다크써클즈 컨템포러리 댄스

미세하게 찰랑거리는 물 위에 검은 옷을 입은 여성이 아슬아슬하게 얼굴만 내놓고 떠 있습니다. 장면이 바뀌자, 하얀 옷을 입은 5명의 무용수가 푸르스름하고 투명한 비닐 아래에서 절규하듯 온몸을 움직입니다. 이어 한 여성 무용수가 바닥을 향해 구부린 다른 무용수들의 등을 밟고 올라섭니다. 구원을 바라듯 하늘을 향해 손을 뻗는 그의 표정엔 두려움과 간절함이 가득합니다. 위태롭게 서서 손을 뻗던 그는 결국 뒤로 넘어집니다. 물에 떠 있던 여성은 점점 가라앉더니 이제 완전히 사라졌습니다. 화면이 전환되자 흰옷을 입은 무용수도 죽은 듯 바닥에 쓰러져 있습니다.

사막화, 빙하 감소, 쓰레기 투기를 몸으로 고발

다크써클즈는 2010년 4월 설립된 발레 기반의 현대무용 단체로, 20~30대 단원 9명이 활동합니다. 춤을 출 때 흐르듯 끊기지 않는 움직임과 그 에너지를 의미하는 ‘써클즈’(Circles)와 다양한 색깔이 뒤섞인 검은색을 뜻하는 ‘다크’(Dark)를 합쳐 무용단 이름을 만들었습니다. 토양 사막화, 녹아내리는 빙하, 쓰레기 투기를 다룬 무용 3부작 ‘1.5도’는 다크써클즈가 환경 문제를 주제로 작업한 첫 작품입니다. 이 중 하나인 ‘블루’는 지구온난화로 녹아내리는 빙하를 형상화했습니다.

다크써클즈는 창단 후 각자 본연의 얼굴을 감추고 살아가는 모습 등 현대인의 삶과 고민을 주제로 작업해 왔습니다. 그러다 최근 환경과 관련된 주제들을 적극적으로 다루면서 새롭게 주목받고 있습니다. <단비뉴스>는 2023년 4월 12일과 24일 두 차례 조현상 다크써클즈 예술감독 겸 무용가를 만났습니다.

대학에서 현대무용을 전공한 조 감독은 졸업 후 현대무용단인 유빈(UBIN)댄스에서 3년 동안 활동하다 마음이 맞는 무용가들과 다크써클즈를 만들었습니다. 여기서 활동하며 대학원 무용창작과에 진학해 석사학위도 받았습니다. 기후위기에 관심을 두게 된 것은 우연한 경험이 겹쳐서였습니다. 조 감독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예전의 저는 환경에 대해서 중요하게 생각하고 실천하는 사람은 아니었어요. 그런데 코로나19로 대면 공연을 못 하게 된 시기에 집에서 텔레비전을 보다가 우연히 스웨덴 자동차 볼보(Volvo)의 광고를 보게 됐어요. 그 광고가 제가 환경 문제에 눈을 돌리게 된 계기가 됐죠.”

무용가의 눈을 사로잡은 기후위기의 실상

광고 영상에는 극한의 환경에서 자동차의 안전성을 시험하기 위해 북극에서 자동차를 크레인에 매달아 떨어트리려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런데 차를 막 떨어트리려던 순간, 건너편에 있던 빙하가 와르르 무너집니다. 이어 ‘기후변화는 (지구에 관한) 극한의 안전 시험’이라는 문구가 화면에 등장합니다. 이것이 볼보가 지금부터 전기자동차 회사로 전환하는 이유라는 설명도 이어졌습니다. 조 감독은 그 광고를 보고 자동차 회사들이 지구온난화에 대응하기 위해 전기차 중심으로 사업을 전환하고 있음을 알게 됐습니다.

그는 볼보 광고를 보면서 2018년에 떠난 아이슬란드 여행을 떠올렸습니다. 당시 빙하 밑 동굴 내부를 구경하는 관광프로그램에 참여하려다 현장 사정으로 서너 번 실패한 일이 있었습니다. 현지 가이드는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몇 년 전부터 빙하가 단단히 얼지 않아 내부에 물이 차 위험해요. 갈수록 투어를 진행하지 못하는 날들이 많아지고 있습니다.”

조 감독은 빙하를 녹이는 지구온난화의 심각성을 깨닫고, 이 문제에 관해 더 알아보기 시작했습니다. 기후위기로 지구가 점점 더워지고 있으며, 산업화 이전 대비 평균기온 상승폭이 1.5도를 넘어가면 인류가 살아가기 어려운 상태가 된다는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기후위기가 외면할 수 없는 문제임을 깨달았습니다. 다크써클즈에서 연출을 맡고 있던 그는 이를 주제로 무용 작품을 만들기로 결심했습니다. 그렇게 1.5도가 세상에 나왔습니다.

1.5도 중 ‘블랙’은 북태평양의 쓰레기 섬 ‘지피지피’(GPGP·Great Pacific Garbage Patch)에서 영감을 얻었습니다. 이 섬은 바다에 떠다니는 쓰레기가 모여 만들어진 것으로, 약 1조 8000억 개의 플라스틱 폐기물로 이뤄졌습니다. 남한 면적의 15배나 되는 크기입니다. 블랙의 영상은 바다에 쓰레기들이 떠다니는 장면으로 시작해 어망에 갇힌 사람의 이미지와 네다섯 명의 무용수가 춤추는 장면이 계속 교차합니다. 무용수들은 춤을 추다 하나둘씩 바닥에 쓰러집니다.

관객이 기부한 헌옷더미를 공연 소품으로

다크써클즈는 대중이 쉽게 공감할 수 있도록 일상과 가까운 환경 문제를 다루려 애씁니다. ‘네이키드’(Naked)도 그중 하나입니다. 의류 폐기물이 환경에 미치는 악영향을 표현했습니다. 특히 의류 폐기물이 산처럼 쌓이는 형상을 실제 관객들이 기부한 헌 옷을 사용해 안무로 표현했습니다. 조 감독은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네이키드는 의류 폐기물 문제를 다룬 <KBS>의 ‘환경스페셜’이라는 다큐멘터리를 보고 기획하게 됐어요. 우리나라가 전 세계에서 다섯 번째로 헌 옷을 많이 수출하는 국가이고, 수출된 헌 옷들은 극히 일부만 재사용될 뿐 나머지는 개발도상국에 매립되거나 소각된다는 사실을 알게 됐죠. 우리가 평소에 무의식적으로 하는 소비가 환경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점을 꼬집고 싶었어요.”

다크써클즈는 2023년 3월 경기도 수원시의 복합문화공간 ‘일일일씨엠’(111CM)에서 네이키드를 공연했습니다. 관람객들이 각자 입지 않는 옷을 가져와 전시 공간에 배치하면, 전시 마지막 날 무용가들이 그 옷들을 이용해 공연하는 방식이었습니다. 유행이 지나서, 사이즈가 맞지 않아서 등 여러 이유로 옷장 속에 잠자던 헌 옷들이 공연 소품이 됐습니다. 공연 뒤에 이어진 질의응답에서 관객들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의류 폐기물이 이렇게 큰 환경 문제인지 몰랐는데, 공연을 보고 심각성을 알게 됐습니다.”

“앞으로는 새 옷을 살 때 한 번 더 고민해야겠어요.”

2022년 10월 제작한 ‘포기(Foggy)하지마’는 사막화를 다룬 1.5도 ‘옐로우’의 연장선에서 지구의 대기가 극심하게 오염된 미래의 모습을 상상한 작품입니다. 화석연료를 사용할 때 배출되는 탄소와 각종 산업 장비에서 나오는 매연, 공사장의 분진 등으로 인해 대기 오염이 심각해진 근미래가 배경입니다. 마실 수 있는 공기가 부족한 상황에서 사람들이 급박하게 깨끗한 공기를 찾아가는 모습을 춤으로 표현했습니다. 포기하지마는 2023년 6월 열린 서울국제환경영화제에서도 상영됐습니다.

대중의 공감 쉽도록 직관적이고 명료하게 표현

기후위기를 주제로 작품을 제작할 때 조 감독이 중요하게 여기는 것 중 하나는 관객 수용성입니다. 관객들이 작품의 취지에 쉽게 공감할 수 없다면 의미가 퇴색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조 감독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환경 문제에 대해서는 우리가 어릴 때부터 형식적으로 교육을 받기 때문에 오히려 익숙해지고, 무뎌진 것 같아요. 정말 나의 문제로 받아들이지 않으면 공감하기 어려운 거죠. 그래서 저희는 작업을 할 때 직관적이고 명료하게 표현하려고 노력해요. 다크써클즈의 환경 관련 무용 영상들은 대부분 마지막에 무용수들이 죽거나 쓰러지는 방식으로 끝나는 작품들이 많아요. 사실 이러한 표현 방식은 예술적으로 1차원적이고 가벼운 것인데, 어렵게 표현해서 그 의미를 전달하지 못할 바에는 1차원적이더라도 잘 와닿는 작품을 만들려고 해요.”

조 감독은 작품 준비를 위해 공부하는 과정에서 스트레스도 많이 받는다고 털어놓았습니다.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공부하면 할수록 나 자신도 모르게 일상적으로 환경을 오염시키고 있었다는 걸 알게 되니 죄책감과 불편함이 느껴져요. 그래도 다크써클즈의 작업물을 보고 더 많은 사람이 인식과 행동의 변화를 만들어낼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습니다.”

조 감독은 작품을 준비하며 관련 기사 등으로 공부한 내용을 단원들과 매번 공유합니다. 해당 주제를 다뤄야 하는 이유에 관해 이야기하고 문제를 해결할 방법도 함께 고민한다고 합니다.

단원들은 대학에서 현대무용이나 발레를 전공한 전업 무용수들인데, 각자 일상에서 환경보호를 실천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조 감독은 말했습니다. 개인 텀블러 사용하기, 사용하지 않는 전기 플러그 빼놓기, 이메일 보관함 자주 정리하기, 의류나 물건을 구매할 때 꼭 필요한지 재고하기 등이 그 목록 중 일부입니다. 분리수거도 그중 하나입니다. 조 감독은 이렇게 말하며 웃었습니다.

“단원 중에 분리수거를 거의 병적으로 하는 친구도 있어요.”

‘지구촌 인구 3.5%’라도 마음이 움직인다면

조 감독은 기후위기 문제를 대중에게 알리고, 각자 자신의 문제로 인식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이 시대 예술가의 역할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는 앞으로 접근이 제한된 무대 공연보다 누구나 인터넷으로 찾아볼 수 있는 영상 작업을 통해 환경 문제를 더 알리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이전에 환경 관련 포럼에 가서 들은 이야기가 있어요. ‘전 세계 인구의 3.5%만 인식과 생활 방식을 바꾸면 환경 문제가 분명히 긍정적인 방향으로 개선될 것’이라는 이야기였어요. 전 세계 인구의 3.5%는 많은 수지만 96.5%보다는 훨씬 적은 숫자잖아요. 저희 작품이 3.5%의 사람들에게라도 닿아서 인식 변화를 끌어낼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그게 기후위기 시대 예술가가 해야 하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조 감독은 향후 계획에 관해 이렇게 밝혔습니다.

“한 해에 환경 관련 작품을 하나씩은 꼭 만들려고 해요. 앞으로 영상 작업은 무조건 환경에 관한 이야기를 담기로 했어요.”

디지털 시대의 멀티미디어 실험에 앞장서는 <단비뉴스>가 ‘소리뉴스’ 2탄을 시작합니다. 2021년 4월 시작된 ‘기후위기시대’ 연재 기사를 단비뉴스 환경부 기자들이 목소리와 영상으로 전합니다. 이 연재 기사는 갈수록 심각해지는 기후위기의 현황과 대안, 그리고 기후정의를 위해 행동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소리뉴스 1탄 ‘마지막 비상구’와 마찬가지로, 시각장애인을 포함한 우리 사회 구성원 모두가 엄중한 기후위기 현실을 깨닫고 함께 대응하는 데 도움이 되기를 기대합니다. 소리뉴스는 단비뉴스 홈페이지와 유튜브, 팟빵 채널에 실립니다. (편집자주)

 

[기후위기시대] 기사 더보기

[기후위기시대 소리뉴스]
① '석탄 퇴장' 급한데 신규발전소 더 짓는 한국
② '나만 지구 지켜?’ 불안과 실망을 넘어서
③ 정부·기업의 기후 대응, 시민이 압박해야
④ 석탄발전소 ‘질서 있는 퇴장’을 서둘러야
⑤ 썩은 당근 쏟으며 ‘위험’ 호소한 청소년들
⑥ 탄소중립 외치며 석탄발전·공항 짓는 위선
⑦ 기후과학자가 소형원자로 개발에 반대하는 이유
⑧ 개발도 안 된 핵융합 대신 자연 태양광 투자를
⑨ 기후와 생물다양성 위기 극복을 국가의 의무로
⑩ 떠오르는 '소형모듈원전' 조목조목 따져보니
⑪ 안전하지도 경제적이지도 않은 파이로프로세싱
⑫ 더 큰 재난 막으려면 원전 아닌 자연에너지로
⑬ ‘탄소감축 과정에서 피해 떠안는 노동자 없도록
⑭ 소고기가 배출하는 온실가스, 두부의 20배
⑮ '각자도생' 대신 서로 돌봐야 재난 이긴다
⑯ 쓰레기 여러 트럭 나오는 전시회는 '이제 그만' 
⑰ 지구가 깨끗해질 때까지 달리기로 했다
⑱ 화석연료에 여전히 돈 쏟아붓는 공적금융
 소송으로 입 막는 기업, 굴하지 않는 기후행동
⑳ '기후재난 당사자가 애타게 전하는 위험 신호
㉑ 유행 따라 사고 버리니 지구가 열받았네
㉒ ‘온난화 주범’ 대기업에 ‘기후정의’를 압박하다
㉓ ‘신공항’ 대신 ‘정의로운 전환’에 집중 투자를
㉔ 먹거리 전환이 에너지 전환만큼 중요하다
㉕ 주민협동조합 이익공유로 ‘무석탄·무원전’ 확대

㉖ 주요 정당 지도자들, 탄소중립 로드맵 제각각
㉗ 청년의 미래를 빼앗은 것에 용서를 구합니다
㉘ 원전으로 탄소중립이 가능하다는 착각
㉙ ‘태양광 괴담’ 가고 나니 ‘이격거리’가 남았다
㉚ 위기 해결의 열쇠 함께 찾는 인문·과학 연구자들

㉛ 지구 살리는 채식, 학교가 가르치고 선택권 줘야

㉜ 에너지 자급자족 건물, 이제 선택에서 의무로
㉝ 전국 8만여 가구가 아직은 버릴 수 없는 연료
㉞ 소음과 분진에도 생계형 노동 못 떠나는 노인들
㉟ 예정된 폐광, 대안 없는 노동자와 지역주민
㊱ 강이 위험에 처하면 인류 문명도 위험하다
㊲ "바다에 물고기보다 플라스틱이 많아질 수도"
㊳ 미국곡물협회가 부산 모터쇼를 찾은 까닭은
㊴ 무농약으로 ‘땅심’ 키우는 공유농업의 현장
㊵ 건설·택배 노동자 목숨 위협하는 폭염이 온다
㊶ 아열대로 가는 한국, 농민도 작물도 적응 난조
㊷ 바다숲과 갯벌은 기후위기 막는 천군만마
㊸ ‘기후 한계점’ 코앞인데 환경 수업은 ‘자습 시간’
㊹ 기후위기 대응 첫걸음은 '석탄발전소 안 짓기'
㊺ 퇴출 산업 노동자와 지역주민은 누가 챙기나
㊻ "탄소중독 기업과 국가, 기후위기 책임져야"
㊼ 페라리·벤틀리 가죽 시트도 가방으로 재탄생
㊽ 약초 대신 매미나방이 그득한 산에서 상심
㊾ 벌금 물더라도 판결문에 ‘기후위기 공감’ 기대
50. ‘나와 지구에 이로운 공간’에서 뭉치는 청년들
51. 기후 시민은 요구한다, "공항 말고 갯벌"
52. 아이들에게 기후 부담을 떠넘기지 않는 사회로
53. 법원도 ‘기후불복종’ 명분에 공감, 벌금 줄여줘
54. ‘우리 공동의 집, 지구’를 위해 거리에 선 신앙인
55. 미국 핵물리학자 “도쿄전력 처리 신뢰 어렵다”
56. 고속도로 위, 방음벽에도 태양광 패널을 깔자
57. 자연 훼손, 농지 손실 없이 태양광 전기 만들죠
58. 딸 위한 채식에서 기후·환경을 위한 식당까지
59. 트럼프의 ‘기후 음모론’을 언론이 방치한다면
60. 수익 적어도 동지와 함께 가는 ‘제로웨이스트’
61. "IT 강국 한국, 재생에너지 전환에 유리"
62. "‘성장 집착’ 버리고 ‘생태 한계 속 균형’ 찾아야"
63. ESG로 기업 가치 높이기, 공시기준 등 정비 중
64. 연 1000억 톤 자원 소비, 재투입은 고작 7%
65. 실험실에서 키운 고기, 식탁에서 환영받을까
66. 그린워싱과 공장식 축산을 만화로 고발하다
67. 아빠의 마음으로 경고하는 ‘1.5도의 눈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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