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비 소리뉴스] 기후위기시대 ㊻ 2022년 9.24 기후정의행진

2022년 9월 24일 오후 서울 중구 시청역과 숭례문 인근에서 ‘9.24 기후정의행진’이 열렸습니다. 주최 측 추산 3만 5천여 명이 ‘긴박한 기후위기 대응’을 한목소리로 외쳤습니다. 이날 집회에는 녹색연합, 청소년기후행동,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등 400여 단체가 참여했고 충북, 제주, 부산 등 지역단위 참가자도 많았습니다. 기후정의행진은 2019년 처음 열린 후 코로나19로 중단됐다가 3년 만에 재개됐는데, 주최 측은 이번 행진이 국내 기후행동 가운데 최대 규모라고 밝혔습니다. 2019년 행진에는 주최 측 추산 7000여 명이 참가했습니다.

3년 만에 재개된 기후행진, 참가자 5배

조경자 가톨릭기후행동 대표는 행진 시작 직전 ‘924 기후정의선언문: 기후재난, 이대로 살 수 없다. 기후정의를 위해 함께 행진하자’를 낭독했습니다.

“전국 각지의 대형 산불로 수많은 생명이 소실되었습니다. 유례없는 폭우는 ‘반지하’라는 사회적 불평등의 상징과도 같은 공간에서 우리 동료 시민의 목숨을 앗아갔습니다. 대형 태풍을 맞아 사망한 11명의 시민들, 쓰러진 나무들과 쓸려나간 비인간 동물들까지 모두가 이 기후재난의 피해자들입니다.”

조 대표는 이어서 이렇게 낭독했습니다.

“지구 생태계의 한계용량까지 온실가스를 배출하고 자원을 추출해 온 종래의 체제는 그 종점에 이르렀습니다. 기후위기를 초래한 선진국과 대기업들이 시민들을 기만하는 행위를 더 이상 용납할 수 없으며, 최일선 당사자들이 기후정의의 주체가 되어야 합니다.”

이날 집회는 오후 3시 무렵 시청역 7번 출구에서 숭례문 앞까지 700미터(m)가 넘는 공간이 꽉 찬 가운데 시작됐습니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소속 조합원 7000여 명이 ‘일자리가 녹고 있다’ 등이 적힌 손팻말을 들고 합류해 행사 분위기를 고조시켰습니다. 청소년 등 ‘기후위기 최전선 당사자들’이 먼저 발언에 나섰습니다. 김보림 청소년기후행동 활동가가 말했습니다.

“국가와 탄소중독 기업의 구조적 책임이 지워지지 않도록 기후위기의 책임자를 분명히 드러냅시다.”

박용준 한살림생산자연합회 회장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농업은 식량안보를 책임지는 공공적 가치이자 자산인데 기후위기로 치명적인 피해를 보고 있어요. 기후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우리 모두 당장 실천에 나서야 합니다.”

경북 경주시 월성원전 인접 지역 이주대책위원회의 황분희 부위원장은 핵발전을 비판했습니다.

“지금 제 몸속에 방사능이 있습니다. 기후위기의 대안으로 거론되는 핵발전은 위험할 뿐 아니라 정의롭지도 않고 무책임한 것입니다.”

9.24 기후정의행진 공동집행위원장을 맡은 황인철 녹색연합 기후에너지팀장은 <단비뉴스>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3년 전과 비교해서 사회적으로도 많은 변화가 있었고 시민사회 안에서도 기후위기의 심각성에 관한 인식이 굉장히 확대됐습니다. 화석연료 사용으로 기후위기가 발생한다는 걸 알면서도 계속 에너지와 자원을 소비할 수밖에 없는 자본주의 시스템을 근본적으로 바꾸는 것이 해결책이죠.”

풍물공연, 체험 코너 등 축제처럼 즐긴 집회

이에 앞서 오후 1시에 시작된 사전행사는 경기도 의정부시 사회적협동조합 살판의 풍물패 거리 공연 등으로 축제 분위기를 냈습니다. 다양한 체험 코너도 마련됐습니다. 불교기후행동은 참가자들이 푸른 연등에 초록 땅을 그려 넣는 ‘지구연등 만들기’ 코너를 운영했습니다. 정의당은 오후 2시부터 ‘기후 불평등 해소와 정의 실현을 위한 연설회’를 열었습니다. 심상정, 장혜영, 류호정, 배진교 전 국회의원이 발언했습니다.

배 전 의원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울진·삼척의 산불, 50년 만에 최악의 가뭄과 더위, 115년 만의 폭우가 찾아왔습니다. 경제성장을 목표가 아닌 수단으로 삼는 탈성장 시대로의 과감한 전환이 필요합니다.”

거리 행진은 오후 4시 15분쯤 시작됐습니다. 주최 측이 가수 레드벨벳의 ‘빨간 맛’, 소녀시대의 ‘다시 만난 세계’ 등을 틀자 참가자들이 따라 부르며 행진했습니다. 풍물패의 소규모 공연도 있었습니다.

교사인 김태정 씨는 전북 남원에서 가족 다섯 명이 함께 왔습니다.

“세 아이의 아빠인데, 막내가 살아갈 사회가 더 깨끗하고 안전한 사회가 됐으면 하는 마음에 참가했습니다.”

친구와 함께 온 송미린 씨는 “환경을 생각해서 폐지로 피켓을 만들었다”며 ‘10년 뒤에도 살아남자’고 쓴 손팻말을 흔들며 행진했습니다.

오후 5시 15분에는 ‘다이-인’(Die-in) 시위가 시작됐습니다. 다이-인은 참가자들이 행진 중 죽은 듯 땅에 누워 기후재난과 기후불평등에 항의하는 퍼포먼스입니다. 참가자들은 광화문 광장 이순신 동상 부근에서 사이렌 소리에 맞춰 일제히 뒤로 드러누웠습니다. 이들은 약 10분 동안 무언의 시위를 이어갔습니다.

장애인·노동자 등 ‘불평등 체제 바꾸자’ 목소리

이날 집회에서는 다양한 참가자들이 기후위기와 관련한 여러 의제를 제기했습니다. 발달장애인인 차한선 활동가가 말했습니다.

“기후정의행진은 단순히 현재 기후위기를 벗어나자는 게 아니라 장애인 소외 등 불평등한 체제를 바꿔야 한다는 의미가 깊다고 생각합니다.”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박혜리 조합원은 왜 노조가 기후정의에 관심을 갖는지를 설명했습니다.

“기후가 바뀌면 노동자들이 바로 영향을 받아요. 공공운수노조에는 특히 외부에서 작업하는 노동자들이 많거든요. 통신노동자들은 여름 홍수 때도 야외에서 수리 업무를 하라고 회사에서 무리하게 요구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오후 6시 30분쯤 행진을 끝내고 시청역과 숭례문 인근에 다시 모인 참가자들은 마지막 순서인 문화제를 이어갔습니다. 밴드 허클베리핀이 기후위기를 노래한 ‘금성’을 부르며 무대를 채웠고 시민들이 자유롭게 발언하는 시간이 이어졌습니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소속의 한 교사가 말했습니다.

“2022년 개정교육과정에 ‘생태전환교육’이 적용돼야 합니다.”

집회는 오후 8시쯤에 모두 끝났습니다. 경찰은 시청~숭례문 왕복 8차선 도로를 통제하며 집회 공간 확보와 안전한 행진을 도왔습니다.

디지털 시대의 멀티미디어 실험에 앞장서는 <단비뉴스>가 ‘소리뉴스’ 2탄을 시작합니다. 2021년 4월 시작된 ‘기후위기시대’ 연재 기사를 단비뉴스 환경부 기자들이 목소리와 영상으로 전합니다. 이 연재 기사는 갈수록 심각해지는 기후위기의 현황과 대안, 그리고 기후정의를 위해 행동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소리뉴스 1탄 ‘마지막 비상구’와 마찬가지로, 시각장애인을 포함한 우리 사회 구성원 모두가 엄중한 기후위기 현실을 깨닫고 함께 대응하는 데 도움이 되기를 기대합니다. 소리뉴스는 단비뉴스 홈페이지와 유튜브, 팟빵 채널에 실립니다. (편집자주)

 

[기후위기시대] 기사 더보기

[기후위기시대 소리뉴스]
① '석탄 퇴장' 급한데 신규발전소 더 짓는 한국
② '나만 지구 지켜?’ 불안과 실망을 넘어서
③ 정부·기업의 기후 대응, 시민이 압박해야
④ 석탄발전소 ‘질서 있는 퇴장’을 서둘러야
⑤ 썩은 당근 쏟으며 ‘위험’ 호소한 청소년들
⑥ 탄소중립 외치며 석탄발전·공항 짓는 위선
⑦ 기후과학자가 소형원자로 개발에 반대하는 이유
⑧ 개발도 안 된 핵융합 대신 자연 태양광 투자를
⑨ 기후와 생물다양성 위기 극복을 국가의 의무로
⑩ 떠오르는 '소형모듈원전' 조목조목 따져보니
⑪ 안전하지도 경제적이지도 않은 파이로프로세싱
⑫ 더 큰 재난 막으려면 원전 아닌 자연에너지로
⑬ ‘탄소감축 과정에서 피해 떠안는 노동자 없도록
⑭ 소고기가 배출하는 온실가스, 두부의 20배
⑮ '각자도생' 대신 서로 돌봐야 재난 이긴다
⑯ 쓰레기 여러 트럭 나오는 전시회는 '이제 그만' 
⑰ 지구가 깨끗해질 때까지 달리기로 했다
⑱ 화석연료에 여전히 돈 쏟아붓는 공적금융
 소송으로 입 막는 기업, 굴하지 않는 기후행동
⑳ 기후재난 당사자가 애타게 전하는 위험 신호
㉑ 유행 따라 사고 버리니 지구가 열받았네
㉒ ‘온난화 주범’ 대기업에 ‘기후정의’를 압박하다
㉓ ‘신공항’ 대신 ‘정의로운 전환’에 집중 투자를
㉔ 먹거리 전환이 에너지 전환만큼 중요하다
㉕ 주민협동조합 이익공유로 ‘무석탄·무원전’ 확대

㉖ 주요 정당 지도자들, 탄소중립 로드맵 제각각
㉗ 청년의 미래를 빼앗은 것에 용서를 구합니다
㉘ 원전으로 탄소중립이 가능하다는 착각
㉙ ‘태양광 괴담’ 가고 나니 ‘이격거리’가 남았다
㉚ 위기 해결의 열쇠 함께 찾는 인문·과학 연구자들

㉛ 지구 살리는 채식, 학교가 가르치고 선택권 줘야

㉜ 에너지 자급자족 건물, 이제 선택에서 의무로
㉝ 전국 8만여 가구가 아직은 버릴 수 없는 연료
㉞ 소음과 분진에도 생계형 노동 못 떠나는 노인들
㉟ 예정된 폐광, 대안 없는 노동자와 지역주민
㊱ 강이 위험에 처하면 인류 문명도 위험하다
㊲ "바다에 물고기보다 플라스틱이 많아질 수도"
㊳ 미국곡물협회가 부산 모터쇼를 찾은 까닭은
㊴ 무농약으로 ‘땅심’ 키우는 공유농업의 현장
㊵ 건설·택배 노동자 목숨 위협하는 폭염이 온다
㊶ 아열대로 가는 한국, 농민도 작물도 적응 난조
㊷ 바다숲과 갯벌은 기후위기 막는 천군만마
㊸ ‘기후 한계점’ 코앞인데 환경 수업은 ‘자습 시간’
㊹ 기후위기 대응 첫걸음은 '석탄발전소 안 짓기'
㊺ 퇴출 산업 노동자와 지역주민은 누가 챙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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