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비 소리뉴스] ③ 탄소세 부과로 ‘신호’ 줘야 기업 바뀐다

“지구는 하나밖에 없습니다. 따라서 우리에게 ‘플랜 비(B)’는 없습니다.”

2021년 5월 12일 오전 9시 서울 마포구 상암동 문화비축기지에서 열린 ‘2021 한국포럼’에서 반기문 전 유엔(UN)사무총장이 말했습니다. 그는 “신은 항상 용서하고, 자연은 절대 용서하지 않는다”는 프란치스코 교황의 말을 인용하며 기후위기의 심각성을 강조했습니다. 이날 포럼은 ‘지구의 미래, 한국의 미래’를 주제로 <한국일보>와 <코리아타임스>가 주최했습니다. 코로나19 방역을 위해 현장 참석 인원을 100명으로 제한한 가운데 유튜브로 생중계됐습니다.

“코로나19는 지구환경 남용한 인류에 자연이 내린 벌”

반 전 총장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코로나19로 전 세계가 고통을 겪고 있는 이 상황은 기후위기와 무관하지 않습니다. 인류가 기후협정을 잘 이행하지 않고 지구환경을 남용한 탓에 자연이 내린 벌이라고 생각해야 합니다. 5000만 명이 사망한 1918년 스페인 독감부터 2019년 코로나19까지, 인류를 위협하는 질병의 발생 주기가 점점 짧아지고 있습니다. 이렇게 짧아지고 있는 질병의 발생 주기는 빨라지고 있는 기후변화의 속도와 관련이 있습니다.”

반 전 총장의 기조연설에 이어 방송인 타일러 라쉬 씨와 한정애 당시 환경부장관의 대담 ‘탄소제로, 라쉬가 묻고 한 장관이 답하다’가 진행됐습니다. 라쉬 씨가 ‘2050 탄소중립 목표를 조기에 달성할 수는 없는지’ 묻자, 한 장관은 이렇게 답했습니다.

“중화학공업 중심의 한국경제는 탄소중립을 달성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반드시 탄소중립을 달성해야 한다는 공감대는 형성되어 있기 때문에 정부, 산업계, 시민사회를 비롯한 모든 주체가 참여한다면 조기 달성도 가능할 수 있습니다.”

동아시아 재생에너지 전력망 구축 바람직

이어 ‘삭스 교수에게 듣는다, 지속가능한 지구’를 주제로 제프리 삭스 컬럼비아대 교수와 홍종호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의 대담이 진행됐습니다. 삭스 교수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기후위기의 ‘완화’(mitigation)가 ‘적응’(adaptation)보다 중요합니다. 기온이 지금까지와 같은 추세로 상승하면 적응정책은 꺼내 들 수도 없을 것입니다.”

지구온도 상승을 막기 위해 탄소배출을 억제하는데 집중하지 않으면 인간이 적응할 수 없는 수준으로 지구환경이 급변할 것이라는 뜻입니다.

삭스 교수는 또 이렇게 말했습니다.

“한국 정부는 탄소배출권거래제보다 탄소세 도입을 추진해야 합니다. 배출권거래제는 복잡하고 명확한 기준이 없는 데다가, 5~15년 이후에 대한 명확한 신호가 없습니다. 반면 탄소세는 분명한 방향성을 갖고 있습니다. 화석연료를 쓰는 기업들이 앞으로 세금이 점점 높아질 것이라는 점을 인식한다면, 탈탄소화가 빠르게 이뤄질 것입니다. 그러니 한국 정부도 지금부터 예측 가능한 수준으로 세금을 올려 기업에 명확하고 일관된 신호를 보내야 할 것입니다.”

탄소세란 이산화탄소 등 온실가스 배출 억제를 위해 화석연료를 사용하는 제품에 물리는 세금입니다.

삭스 교수는 이어 한국이 현재 6%에 불과한 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을 늘리려면 중국, 일본 등 다른 아시아 국가들과 상호 연계된 전력망을 구축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풍력발전에 유리한 지역과 그렇지 않은 지역이 있고, 일조량이 풍부한 지역과 그렇지 않은 지역이 있기 때문에 이웃끼리 협력해 발전망을 구축하면 재생에너지의 잠재력을 더욱 활용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어진 특별 강연에서는 신원섭 충북대 산림학과 교수가 ‘숲이 지구를 살린다’를 주제로 발표했습니다. 그는 “산림의 탄소 흡수 능력을 활용해 온실가스 배출을 줄여야 한다”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산업 규모를 감축하고 기술 혁신에 큰 비용을 들여야 하는 다른 배출규제에 비하면 산림을 재정비해 탄소흡수원을 확충하는 방식은 매우 비용이 적게 들고 효율적입니다.”

신 교수는 수령 50년 이상 된 나무는 온실가스 흡수량이 급격히 감소한다고 지적했습니다. 우리나라는 산림의 대부분이 1970년에서 80년대에 인공적으로 조림됐기 때문에, 2050년이 되면 온실가스 흡수량이 현재의 30%까지 감소한다는 것이죠. 그래서 그는 “50살 이상 나무를 베고 새로운 묘목을 심자”고 제안했습니다.

서울 전력 소비 80%가 건물...제로에너지 건축 시급  

이명주 명지대 건축대학 교수는 ‘기후위기에서 생존할 수 있는 적자생존도시는 무엇인가’ 주제의 발표에서 ‘에너지 절약 건축물로 구성된 제로에너지 도시’를 제안했습니다. 그는 서울시 전체 전력 사용량의 83%가 건물에서 발생할 정도로 건축물의 에너지 사용량이 막대하다는 점을 지적했습니다.

2020년 한국이 UN에 제출한 온실가스 감축목표는 2030년까지 2017년 배출량의 24.4%를 줄이는 것이었습니다.

이에 관해 이 교수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24.4% 감축을 100으로 봤을 때 이 중 46%를 건축물 부문에서 줄여야 합니다. 건축물이 사용하는 에너지를 재생에너지원으로 전환하지 않으면 이 목표를 달성할 수 없습니다.”

그는 “우리나라에도 건축물 분야 제로에너지 로드맵이 있지만, 신규 인허가를 받은 건축물에만 해당하는 로드맵”이라고 꼬집었습니다. 국토교통부가 ‘녹색건축물 조성지원법’에 규정한 제로에너지 빌딩은 에너지 사용을 ‘최소화’하는 것을 목적으로 합니다. 이 교수는 “신재생에너지를 통한 에너지자립률에서 (가장 낮은) 5등급을 받아도 제로에너지 건축물로 인정이 된다”며 ‘준’ 제로에너지에 그치는 느슨한 기준점을 지적했습니다. 이 교수가 제안한 제로에너지 도시는 건물 간의, 혹은 건물과 재생에너지 생산자 간의 거래를 통해 화석연료 사용량을 제로(0)로 만드는 도시입니다. ‘노원 에너지 제로 주택단지’는 그가 참여해 2017년 완공한 국내 최초 제로에너지 주택입니다. 열에너지 손실을 최소화하는 ‘패시브 설계 요소기술’로 난방에너지 사용량을 75% 이상 줄였고, 태양광 발전 등으로 91.2%의 에너지 자립률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젊은 세대가 선출직 공직자 압박해야

래퍼 겸 환경운동가인 시우테즈칼 마르티네즈는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청년의 연대를 주장했습니다. 그는 미국 콜로라도 지역에서 환경운동가로 활동하며 중앙정부에 관한 기대감을 내려놓게 됐다고 말했습니다. 선출직 공직자들이 정치자금을 대주는 석유가스 기업의 입김에 휘둘리고, 사업확장 계획을 수락하는 것을 목격했기 때문입니다. 그는 이렇게 강조했습니다.

“젊은 세대가 이런 문제와 관련해 선출직 공직자를 압박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마지막 순서로는 ‘탈탄소 시대, 우리의 선택은’이라는 주제로 종합 토론이 이뤄졌습니다. 이형희 에스케이(SK)수펙스추구협의회 위원장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지금은 이에스지(ESG), 즉 환경·사회·투명경영을 하느냐 마느냐 선택할 단계가 아니라 무조건 빠르게 ESG로 전환해 경쟁력을 높여야 하는 시기입니다. 글로벌 금융계나 글로벌 정부의 정책이 우리에게 그걸 요구하고 있기 때문에, 우리에겐 선택권이 없습니다.”

ESG 경영이란 기업 활동에서 매출, 이익 등 재무적 가치뿐만 아니라 환경과 사회, 지배구조 개선 등 비재무적 가치도 중시하는 경영을 말합니다.

윤창현 국민의힘 의원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금융권도 석탄발전소 건설을 위한 자금지원을 아예 중단해 버리거나 수천억 규모의 ESG 채권을 발행하는 등 엄청난 속도로 변화에 동참하고 있습니다. ESG를 외면하는 기업들은 점차 투자를 받기 어려워질 것입니다.”

김성환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2050년까지 탄소중립을 이룩하려면 30년 동안 탈탄소 정책을 일관적으로 밀어붙여야 한다”며 초당적 협력의 중요성을 강조했습니다.

조홍식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2021년 4월 독일 최고법원인 연방헌법재판소가 ‘독일의 기후변화대응법이 미래세대의 기본권을 보호하기에 충분하지 않다’는 이유로 헌법불합치 판결을 내린 사실이 정말 충격적이고 의미심장합니다. 역사상 최악의 기후위기 사태에 직면한 만큼, 법처럼 보수적인 영역도 변화하고 있다는 점이 주목할 만합니다.”

디지털 시대의 멀티미디어 실험에 앞장서는 <단비뉴스>가 ‘소리뉴스’ 2탄을 시작합니다. 2021년 4월 시작된 ‘기후위기시대’ 연재 기사를 단비뉴스 환경부 기자들이 목소리와 영상으로 전합니다. 이 연재 기사는 갈수록 심각해지는 기후위기의 현황과 대안, 그리고 기후정의를 위해 행동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소리뉴스 1탄 ‘마지막 비상구’와 마찬가지로, 시각장애인을 포함한 우리 사회 구성원 모두가 엄중한 기후위기 현실을 깨닫고 함께 대응하는 데 도움이 되기를 기대합니다. 소리뉴스는 단비뉴스 홈페이지와 유튜브 채널에 실립니다.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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