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비 소리뉴스] 기후위기시대 66. 일러스트레이터 윤정열의 기후행동
그린워싱(위장환경주의), 산림 훼손, 공장식 축산, 원자력 폐기물, 그린뉴딜.... 윤정열 작가의 만화에 자주 등장하는 단어들입니다. 사포(SAPO)라는 작가명으로 활동하고 있는 그는 기후위기와 환경을 주제로 그림을 그리는 일러스트레이터(삽화가)입니다. 심각한 주제를 다루지만, 풍자와 해학이 가득한 그의 그림은 기후행동파 시민들 사이에서 화제가 되고 있습니다. <단비뉴스>는 2023년 4월 20일 서울 마포구 망원동의 한 카페에서 윤 작가를 만났습니다.
영상으로 기후위기 심각성 깨닫고 작업 시작
윤 작가는 어린 시절 전문 산악인이었던 아버지를 따라 자주 산에 오르면서 자연을 좋아하게 됐지만, 환경에 관한 감수성은 부족했다고 합니다. 그가 기후위기의 심각성을 알게 된 것은 2020년 우연히 기독교방송(CBS)의 뉴미디어 채널 <씨리얼>의 영상을 보게 되면서였습니다. 기후변화가 얼마나 엄중하고 시급한 문제인지 보여주는 영상이었습니다. 대학에서 만화 애니메이션을 전공한 그는 기후위기를 주제로 작업하게 된 계기에 관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씨리얼 영상을 보고 ‘기후위기가 이렇게 심각해?’하는 생각을 했고, 이를 주제로 작업해 보겠다는 결심을 하게 됐습니다.”
마침 문화운동단체인 문화연대에서 일하던 지인이 합류할 것을 권했습니다. 윤 작가는 그렇게 문화연대에 들어가 기후대응팀 ‘스틸어라이브’(Still Alive)에서 콘텐츠 만드는 일을 맡았습니다. 이를 계기로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연재를 시작한 만화가 ‘멸종예방접종’ 시리즈입니다. 멸종예방접종은 인류가 기후위기로 멸종하는 것을 막자는 취지로 화석연료 남용 등 문제의 원인을 지적하고, 기후대응에 미온적인 사회 기득권세력을 비판하는 내용 등을 담았습니다. 기후위기라는 거대한 문제 앞에 개인이 느끼는 무력감과 회의감도 드러냈습니다.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환경 이야기를 하면서 흔히들 말하는 ‘텀블러를 사용하자’ 같은 이야기는 하기 싫었습니다. 더 구조적인 문제가 해결돼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기후위기의 주요한 책임은 선진국, 대기업, 부유층 등에 있지만 피해는 개발도상국, 노동자, 빈곤층 등이 떠안는 ‘기후불평등’의 문제도 주목했습니다. 그래서 ‘기후정의’를 주요한 소재로 선택했습니다. 작가 자신도 막연하게 알고 있던 내용을 관련 기사와 자료를 조사하고 공부하면서 한 편씩 풀어나갔습니다. 2020년 8월부터 1년 남짓 동안 멸종예방접종 32회를 연재했습니다.
케이블카·원전·산불 등 동물의 관점에서 고발
2022년에는 환경단체 녹색연합이 발간하는 온라인 월간지 녹색희망에 ‘생키호테’ 시리즈를 세 차례 연재했습니다. 방랑기사 생키호테는 실험용 쥐로, 인간이 환경을 파괴한 현장을 찾아다닙니다. 치킨집에서 탈출한 암탉 ‘계르반테스’와 함께 산지 케이블카, 원자력발전, 산불 등의 위험성을 고발합니다. 산양들은 서식지에 설치된 케이블카로 고통받고, 원전은 처리 방안이 없는 방사성 폐기물을 남기며, 기후위기로 더 자주 일어나는 산불은 인간뿐 아니라 동물들에게 큰 고통을 안깁니다. 윤 작가의 그림을 좋아하는 독자들은 생키호테 연재가 끝나자 ‘인간으로 인한 자연 파괴를 동물들의 시선에서 재치 있게 그려낸 작품’이라며 윤 작가 인스타그램에 아쉽다는 댓글을 달기도 했습니다.
윤 작가가 2021년 12월 인스타그램 연재를 시작한 ‘맥문동 우는 주먹’ 시리즈도 기후위기와 관련한 콘텐츠입니다. 맥문동 우는 주먹은 얼떨결에 생태 감수성을 얻게 된 취업 장수생 맥문동이 일상의 곳곳에 있는 환경 파괴적 요소들을 감각하고 기후위기 문제에 눈을 뜨면서 벌어지는 일을 그렸습니다. 맥문동이라는 이름은 길가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생명력 질긴 식물에서 빌려 왔습니다.
무거운 주제도 색다른 방식으로 풀어내는 예술
윤 작가는 문화연대에 합류한 뒤 환경단체인 청년기후긴급행동에도 가입해 활동했습니다. 주로 행사 등에서 활용할 그림이나 그래픽 등 시각 자료 제작을 맡았습니다. 2022년 9월에는 서울 시청역 인근에서 열린 ‘924 기후정의행진’에 참가해 긴급한 대응을 함께 촉구했습니다.
윤 작가는 기후위기라는 무거운 주제도 예술을 통해 재미있게, 색다른 방식으로 풀어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 경험을 다른 사람들과도 공유하고 싶어 기후위기를 주제로 함께 그림을 그리는 워크숍도 열었습니다. 대학 시절부터 미술학원에서 일했던 경험을 살려 소규모 그림 수업을 이끌었습니다. 2022년 7월에는 예술대학생네트워크와 ‘기후 만화 워크숍’을 열어 기후위기에 관한 참가자들의 경험과 느낌을 만화로 표현해 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2022년 8월에는 8명의 청년기후긴급행동 회원과 기후위기 시대를 자신만의 시선으로 관찰해 빠르게 묘사하는 ‘크로키 워크숍’을 열었습니다. 워크숍을 열게 된 계기에 대해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언어가 아닌 만화와 그래픽 디자인이라는 방식으로 기후위기를 다뤄 보는 기회를 만들어 보고 싶었습니다.”
워크숍에 참여한 회원들은 ‘무언가를 관습적으로 보는 시선에서 벗어나 있는 그대로 대상을 바라보고 직접 표현해 보려고 애쓰면서, 어렵지만 즐거웠다’ 등의 후기를 나눴습니다. 여기서 그린 회원들의 작품은 ‘924 행진’에 사용되기도 했습니다.
자전거 타고 채식하는 생활 속 실천도
윤 작가는 자동차 대신 자전거를 타고, 채식을 하는 등 생활 속의 실천도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는 6년 넘게 스포츠용 비엠엑스(BMX) 자전거를 타는데, 야외에서 타기 때문에 기후가 변하는 것을 실감한다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함께 자전거를 타던 태국 친구는 갑작스럽게, 짧게 내리는 비가 잦아지고 날씨가 후텁지근해지는 것이 태국 기후와 점점 비슷해지는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2022년엔 갑작스러운 폭우로 평소 BMX를 타던 길이 물에 잠기기도 해, 일상을 침해하는 기후위기의 영향을 체감했습니다.”
채식은 2년여 동안 비건(완전채식)으로 했다가 사람들과 모일 때 어려움이 있어 지금은 집에서만 채식합니다. 평소 분리수거를 철저히 하고 텀블러를 사용하는 것은 기본입니다. 자신의 채식 경험담을 들려주던 윤 작가는 이렇게 말하며 웃었습니다.
“언젠가는 ‘비건 BMX 모임’이 생기는 날이 오지 않겠어요?”
디지털 시대의 멀티미디어 실험에 앞장서는 <단비뉴스>가 ‘소리뉴스’ 2탄을 시작합니다. 2021년 4월 시작된 ‘기후위기시대’ 연재 기사를 단비뉴스 환경부 기자들이 목소리와 영상으로 전합니다. 이 연재 기사는 갈수록 심각해지는 기후위기의 현황과 대안, 그리고 기후정의를 위해 행동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소리뉴스 1탄 ‘마지막 비상구’와 마찬가지로, 시각장애인을 포함한 우리 사회 구성원 모두가 엄중한 기후위기 현실을 깨닫고 함께 대응하는 데 도움이 되기를 기대합니다. 소리뉴스는 단비뉴스 홈페이지와 유튜브, 팟빵 채널에 실립니다. (편집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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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위기시대 소리뉴스]
① '석탄 퇴장' 급한데 신규발전소 더 짓는 한국
② '나만 지구 지켜?’ 불안과 실망을 넘어서
③ 정부·기업의 기후 대응, 시민이 압박해야
④ 석탄발전소 ‘질서 있는 퇴장’을 서둘러야
⑤ 썩은 당근 쏟으며 ‘위험’ 호소한 청소년들
⑥ 탄소중립 외치며 석탄발전·공항 짓는 위선
⑦ 기후과학자가 소형원자로 개발에 반대하는 이유
⑧ 개발도 안 된 핵융합 대신 자연 태양광 투자를
⑨ 기후와 생물다양성 위기 극복을 국가의 의무로
⑩ 떠오르는 '소형모듈원전' 조목조목 따져보니
⑪ 안전하지도 경제적이지도 않은 파이로프로세싱
⑫ 더 큰 재난 막으려면 원전 아닌 자연에너지로
⑬ ‘탄소감축 과정에서 피해 떠안는 노동자 없도록
⑭ 소고기가 배출하는 온실가스, 두부의 20배
⑮ '각자도생' 대신 서로 돌봐야 재난 이긴다
⑯ 쓰레기 여러 트럭 나오는 전시회는 '이제 그만'
⑰ 지구가 깨끗해질 때까지 달리기로 했다
⑱ 화석연료에 여전히 돈 쏟아붓는 공적금융
⑲ 소송으로 입 막는 기업, 굴하지 않는 기후행동
⑳ '기후재난 당사자가 애타게 전하는 위험 신호
㉑ 유행 따라 사고 버리니 지구가 열받았네
㉒ ‘온난화 주범’ 대기업에 ‘기후정의’를 압박하다
㉓ ‘신공항’ 대신 ‘정의로운 전환’에 집중 투자를
㉔ 먹거리 전환이 에너지 전환만큼 중요하다
㉕ 주민협동조합 이익공유로 ‘무석탄·무원전’ 확대
㉖ 주요 정당 지도자들, 탄소중립 로드맵 제각각
㉗ 청년의 미래를 빼앗은 것에 용서를 구합니다
㉘ 원전으로 탄소중립이 가능하다는 착각
㉙ ‘태양광 괴담’ 가고 나니 ‘이격거리’가 남았다
㉚ 위기 해결의 열쇠 함께 찾는 인문·과학 연구자들
㉛ 지구 살리는 채식, 학교가 가르치고 선택권 줘야
㉜ 에너지 자급자족 건물, 이제 선택에서 의무로
㉝ 전국 8만여 가구가 아직은 버릴 수 없는 연료
㉞ 소음과 분진에도 생계형 노동 못 떠나는 노인들
㉟ 예정된 폐광, 대안 없는 노동자와 지역주민
㊱ 강이 위험에 처하면 인류 문명도 위험하다
㊲ "바다에 물고기보다 플라스틱이 많아질 수도"
㊳ 미국곡물협회가 부산 모터쇼를 찾은 까닭은
㊴ 무농약으로 ‘땅심’ 키우는 공유농업의 현장
㊵ 건설·택배 노동자 목숨 위협하는 폭염이 온다
㊶ 아열대로 가는 한국, 농민도 작물도 적응 난조
㊷ 바다숲과 갯벌은 기후위기 막는 천군만마
㊸ ‘기후 한계점’ 코앞인데 환경 수업은 ‘자습 시간’
㊹ 기후위기 대응 첫걸음은 '석탄발전소 안 짓기'
㊺ 퇴출 산업 노동자와 지역주민은 누가 챙기나
㊻ "탄소중독 기업과 국가, 기후위기 책임져야"
㊼ 페라리·벤틀리 가죽 시트도 가방으로 재탄생
㊽ 약초 대신 매미나방이 그득한 산에서 상심
㊾ 벌금 물더라도 판결문에 ‘기후위기 공감’ 기대
50. ‘나와 지구에 이로운 공간’에서 뭉치는 청년들
51. 기후 시민은 요구한다, "공항 말고 갯벌"
52. 아이들에게 기후 부담을 떠넘기지 않는 사회로
53. 법원도 ‘기후불복종’ 명분에 공감, 벌금 줄여줘
54. ‘우리 공동의 집, 지구’를 위해 거리에 선 신앙인
55. 미국 핵물리학자 “도쿄전력 처리 신뢰 어렵다”
56. 고속도로 위, 방음벽에도 태양광 패널을 깔자
57. 자연 훼손, 농지 손실 없이 태양광 전기 만들죠
58. 딸 위한 채식에서 기후·환경을 위한 식당까지
59. 트럼프의 ‘기후 음모론’을 언론이 방치한다면
60. 수익 적어도 동지와 함께 가는 ‘제로웨이스트’
61. "IT 강국 한국, 재생에너지 전환에 유리"
62. "‘성장 집착’ 버리고 ‘생태 한계 속 균형’ 찾아야"
63. ESG로 기업 가치 높이기, 공시기준 등 정비 중
64. 연 1000억 톤 자원 소비, 재투입은 고작 7%
65. 실험실에서 키운 고기, 식탁에서 환영받을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