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비 소리뉴스] 기후위기시대 ㉟ 연탄의 정의로운 전환 (하)

강원도 태백시 장성광업소와 삼척시 도계광업소 등 국내에서 가동 중인 3개 탄광의 채탄 위치는 평균 지하 650미터(m)입니다. 장성광업소는 최대 1000m까지 내려갑니다. 탄광 노동자들이 과거 ‘막장’이라 부르던 채탄 작업장까지 내려가는 데만 도보, 엘리베이터 등을 포함해 40분에서 1시간이 걸립니다. 37년 동안 장성광업소에서 석탄을 캐고 7년 전 정년퇴직한 추교열 씨는 지하 채탄장의 온도와 습도를 생생하게 기억합니다.

“작업장에 도착하기도 전에 땀이 온몸에서 흐르죠. 장화에 땀이 가득 차 질척이기 시작하고요.”

고온·탄가루 속 지하 수백 미터의 노동

38℃가 넘는 작업장에 들어서면 챙겨간 얼음물도 금방 녹아버립니다. 추 씨는 땀으로 흠뻑 젖은 옷을 몇 번이고 짜내는 일을 거듭한다고 말했습니다. 같은 자세로 평생 석탄을 캔 추 씨는 팔 골격근에 문제가 생겨 퇴직 뒤 집중 치료를 받고 있습니다. 30년 동안 장성광업소 갱내에서 탄을 날랐던 한영섭 씨는 석탄 가루 때문에 만성 폐쇄성 폐질환(COPD) 중증장애 3급을 판정받았습니다. 한 씨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호흡곤란이 자주 와서 밤에 잠을 이루지 못하는 경우가 있어요.”

석탄광업소에서 오래 일한 노동자들은 대부분 근골격계 질환, 소음성 난청과 진폐 등 호흡기 질환을 앓습니다. 종합법률사무소 법진과 의료·산재·진폐협회에서 고문을 맡고 있는 박용일 씨는 광업소 노동자 대부분이 산재 신청을 하러 온다고 말했습니다. 현재 진폐협회 4곳에 등록된 환자만 1만 1000여 명입니다. 박 고문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탄광근로자의 38%가 진폐 장해를 판정받아요.”

이는 의증(의심상태)이 포함되지 않은 수치입니다. 이렇게 건강을 희생하면서도 노동자들은 광업소가 문을 닫는 것을 두려워합니다. 탄광 일 말고는 다른 기술이 없고 나이가 많아, 일용직으로 일하는 것 외에 일자리를 찾기가 어렵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노동자들이 걱정하는 ‘광업소의 마지막’이 성큼성큼 다가오고 있습니다. 2021년 말 발표된 제6차 석탄산업 장기계획(2021~2025)에 따라 문재인 정부는 2022년 이후 대한석탄공사 산하 3개 광업소의 생산량 한도를 107만 톤(t)으로 제한했습니다. 그리고 노사합의를 거쳐 2023년 말 전남 화순광업소, 2024년 말 태백 장성광업소, 2025년 말 삼척 도계광업소를 폐광하기로 결정했습니다. 대한석탄공사 노조는 생산량 한도 철폐, 폐광대책비 현실화, 고용보장 대책 등을 요구하며 한 달 넘게 파업했으나 2022년 3월 2일 열린 노사정협의체에서 폐광 계획 등에 잠정 합의했습니다. 폐광대책비 외에 특별위로금을 받는 조건이었습니다.

세 광업소가 문을 닫으면 민영탄광인 삼척시 도계읍의 경동상덕광업소 한 곳만 남게 됩니다. 그만큼 연탄 원료인 석탄 생산이 줄 것이고, 상덕광업소까지 문을 닫으면 수입 석탄을 쓰지 않는 한 연탄 생산도 중단될 것입니다. 수입 석탄은 연소 후 형태 유지가 불가능하고 지속시간이 짧아 단독으로는 연탄 제조가 어렵습니다. 현재 국내 생산 석탄의 절반가량이 연탄 제조에 쓰이고 있습니다. 이에 앞서 1988년 전국에 347개이던 광업소는 석탄산업합리화 정책에 따라 2024년 현재 3개로 줄었습니다. 1988년에 6만 2000여 명에 이르던 탄광 노동자 수도 2022년 기준 2300여 명으로 줄었습니다.

일자리 전환이 어려운 탄광 노동자들

공공기관 경영정보공개시스템인 알리오에 따르면 2021년 말 기준 대한석탄공사 산하 광업소 세 곳과 강원도 원주시 본사의 정규직 직원은 총 735명입니다. 그중 20대가 2명(0.3%), 30대 54명(7.3%), 40대 182명(24.8%), 50대 497명(67.6%)으로 50대가 3분의 2 이상입니다. 파견·용역·사내하도급 등 비정규직 859명도 50~60대가 주를 이룹니다. 폐광되면 이들은 모두 일자리를 잃는데, 50~60대 탄광 노동자가 새 직장을 찾기는 쉽지 않습니다.

폐광은 단순히 한 기업이 문을 닫는 것 이상의 그늘을 드리웁니다. 태백상공회의소에 따르면 장성광업소는 태백시 경제의 약 25%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2024년 6월 말 장성광업소가 예정대로 폐광한다면 탄광 노동자와 협력업체 노동자가 일자리를 잃고, 이들을 주 고객으로 했던 지역 상권도 타격을 입을 것입니다. 태백상의는 2021년 12월 기준 4만 844명인 태백시 인구가 4만 명 아래로 떨어질 것이라고 내다봤습니다.

지역주민들은 폐광 후 대체 산업이 들어오기까지 공백 때문에 커질 경제적 어려움을 걱정했습니다. 장성광업소 앞에서 20년 이상 웨딩홀을 운영한 이무영 씨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석탄공사가 문을 닫으면 인구 4만밖에 안 되는 태백시의 존립 기반이 위태로워져요.”

부근에서 미용실을 운영하는 이 모 씨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당장 광업소가 없어진다는데 (대체 산업이) 구성돼 있지 않고, 온다고 해도 몇 년이 걸릴 테니 불안하죠.”

20여 년간 추진된 폐광 대책, 실효성은 물음표

사실 강원도에서 광업소 폐업에 따른 지역사회 불안은 새로운 현상이 아닙니다. 1995년 폐광지역 개발 지원에 관한 특별법(이하 폐특법)이 제정된 이후 강원도 폐광지역 4개 시군에는 25년간 2조 원 넘는 투자가 이뤄졌습니다. 대표적인 사업이 폐광지역 경제 활성화를 위해 강원랜드를 설립한 것입니다.

산업통상자원부는 2016년 9월 ‘제5차 석탄산업 장기계획’(2016~2020)을 발표하면서 지금까지 진행된 폐광 대책의 집행 실적이 부진하고, 지역경제 체감 효과가 미약하다고 분석했습니다. 예를 들어 2012년 추진된 ‘폐광지역 경제자립형 개발사업’ 12건 중 실제 추진된 것은 6건에 불과했습니다. 나머지는 민간자본 유치 실패, 재정 투∙융자심사 부적격 판정 등의 이유로 취소됐습니다. 폐특법에 의거해 설치된 폐광지역개발기금 집행률도 저조합니다. 2018년부터 3년간의 평균 집행률은 약 45%에 불과했습니다.

폐광지역 재생을 위한 대체산업 육성 계획은 지금도 진행되고 있습니다. 태백시는 친환경 열병합 발전이 가능한 ‘에코 잡 시티’(Eco job city)를 2024년까지 장성동 폐광지역에 건설하기로 하고 2019년 착공했습니다. 태백시 도시재생지원센터 김민수 센터장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열병합 발전 외에도 스마트팜, 목재 수거센터 등 단위사업으로 총 130여 명의 항시 고용 인력이 발생합니다.”

또 장성광업소가 문을 닫으면 폐광부지에 데이터센터(컴퓨터 저장장치 등이 밀집된 시설)를 유치하는 방안이 논의되었습니다. 여기서 신규 일자리 3만 개가 창출될 것이라는 전망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태백시지역현안대책위원회 박대근 사무처장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장성광업소에 들어오는 데이터센터의 경우 (업무가) 전산화되어 나이 든 분들이 일하기 쉽지 않습니다. 에코 잡 시티도 발전사업이 모두 기계화와 전동화가 이루어져 탄광 노동자들에 적합하지 않습니다.”

2023년 6월 태백시는 에스에이치(SH)에너지솔루션과 데이터센터 구축 업무협약을 맺었습니다. 업무협약으로 SH에너지솔루션 폐광부지에 10메가와트(MW) 규모의 데이터센터를 건립합니다. SH에너지솔루션 측은 데이터센터 구축으로 직접 고용 인력 80명, 연계 고용 인력 100명 등의 경제적 파급효과가 생길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정의로운 전환 위한 거버넌스와 기금조성 필요

국제노동기구(ILO)는 각국의 기후위기 대응과 관련해 2008년부터 ‘정의로운 전환’(Just Transition)을 다루는 프로그램을 개발해 왔습니다. 2015년에는 ‘모두를 위해 환경적으로 지속 가능한 경제와 사회를 향한 정의로운 전환 지침’(Guidelines for a Just Transition towards Environmentally Sustainable Economies and Societies for All)에서 일곱 가지 이행 원칙을 채택했습니다. 이 가운데 핵심은 ‘에너지 전환 과정에서 지역주민과 노동자가 소외되지 않도록 정부가 보호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보다 일찍 정의로운 전환 논의가 시작된 해외 국가들은 다양한 제도를 통해 피해 노동자의 일자리 전환과 지역사회 활성화를 추진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는 2028년까지 갈탄 광산을 폐쇄하기로 2018년 결정하고, 온실가스 배출권 거래 수익의 6%(2018년 기준 약 422억 원)를 갈탄 지역에 지원하기로 했습니다. 미국 바이든 정부는 2021년 ‘석탄 광산 및 석탄발전 지역공동체와 경제 재활성화를 위한 워킹그룹’을 구성했습니다. 이후 미국의 기반시설법(Infrastructure Bill)에는 약 26조 원을 투자해 폐광지역을 정화하는 사업이 포함됐습니다. 병충해와 오염에 노출된 폐광지역을 매립하고, 양질의 일자리를 창출하는 것이 핵심입니다. 대표적인 사례가 미국 서부에 있는 웨스트버지니아주인데, 1930년 미국 석탄 생산량의 80%를 차지하던 애팔래치아산맥에서 폐광 매립 사업을 통해 수천 개의 새 일자리를 만드는 계획을 추진했습니다. 주 의회는 2021년 1월 광산 매립을 위해 연방 자금을 요청하는 결의안을 통과시켰습니다.

1998년부터 석탄과 갈탄 산업을 축소해 온 독일은 2018년 흑탄(유연탄) 광산 중 마지막 광산을 폐쇄할 때까지 8만여 명의 노동자를 대상으로 조기은퇴(49세 이상) 혹은 이직 프로그램(49세 미만)을 시행해 퇴직자 절반 정도가 재취업에 성공했습니다. 독일은 이어 2038년까지 완전한 탈석탄을 하겠다는 목표로 2020년 관련법을 제정했습니다. 법안에 따르면 4만 명에 이르는 광산· 발전소 노동자들은 최장 5년까지 고용조정지원금을 받습니다. 약 48억 유로(한화 약 6조 9천억 원)로 책정된 고용조정지원금을 4만 명에게 지급할 경우 1인당 12만 유로, 우리 돈으로 약 1억 6천만 원을 받게 됩니다.

전문가들은 탄광 지역의 정의로운 전환을 위해서는 우리나라도 지역민과 노동자가 실질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협의체를 구성해 체계적으로 정책을 추진해야 한다고 지적했습니다. 비영리단체인 기후솔루션의 이석영 연구원은 2022년 4월 8일 <단비뉴스>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전환을 위한 기금과 거버넌스(의사결정구조)입니다. 독일이 성공적으로 탈석탄 전환을 이룰 수 있었던 것은 연방정부에서 오는 지원금 때문이었습니다. 반면 우리나라는 중앙정부 차원에서 정의로운 전환 기금 조성이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습니다.”

광역지방자치단체 차원에서도 정의로운 전환을 위한 기금을 조성한 곳은 현재 충청남도가 유일합니다. 이 연구원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정의로운 전환의 대상자들이 직접 의견을 내고 참여하는 과정이 있어야 하고, 그게 실제로 정책에 반영돼야 하는데 그런 과정이 부재합니다.”

충남연구원의 여형범 연구위원은 2022년 4월 7일 단비뉴스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노동자와 지역사회를 포함한 이해당사자들이 실질적으로 참여하는 프로그램을 어떻게 설계하고 개선할 것인지 논의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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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석탄 퇴장' 급한데 신규발전소 더 짓는 한국
② '나만 지구 지켜?’ 불안과 실망을 넘어서
③ 정부·기업의 기후 대응, 시민이 압박해야
④ 석탄발전소 ‘질서 있는 퇴장’을 서둘러야
⑤ 썩은 당근 쏟으며 ‘위험’ 호소한 청소년들
⑥ 탄소중립 외치며 석탄발전·공항 짓는 위선
⑦ 기후과학자가 소형원자로 개발에 반대하는 이유
⑧ 개발도 안 된 핵융합 대신 자연 태양광 투자를
⑨ 기후와 생물다양성 위기 극복을 국가의 의무로
⑩ 떠오르는 '소형모듈원전' 조목조목 따져보니
⑪ 안전하지도 경제적이지도 않은 파이로프로세싱
⑫ 더 큰 재난 막으려면 원전 아닌 자연에너지로
⑬ ‘탄소감축 과정에서 피해 떠안는 노동자 없도록
⑭ 소고기가 배출하는 온실가스, 두부의 20배
⑮ '각자도생' 대신 서로 돌봐야 재난 이긴다
⑯ 쓰레기 여러 트럭 나오는 전시회는 '이제 그만' 
⑰ 지구가 깨끗해질 때까지 달리기로 했다
⑱ 화석연료에 여전히 돈 쏟아붓는 공적금융
 소송으로 입 막는 기업, 굴하지 않는 기후행동
⑳'기후재난 당사자가 애타게 전하는 위험 신호
㉑유행 따라 사고 버리니 지구가 열받았네
㉒‘온난화 주범’ 대기업에 ‘기후정의’를 압박하다
㉓‘신공항’ 대신 ‘정의로운 전환’에 집중 투자를
㉔먹거리 전환이 에너지 전환만큼 중요하다
㉕주민협동조합 이익공유로 ‘무석탄·무원전’ 확대

주요 정당 지도자들, 탄소중립 로드맵 제각각
㉗청년의 미래를 빼앗은 것에 용서를 구합니다
㉘20대 대선, 기후정의, 탈핵’ 포럼
㉙‘태양광 괴담’ 가고 나니 ‘이격거리’가 남았다
㉚위기 해결의 열쇠 함께 찾는 인문·과학 연구자들

㉛지구 살리는 채식, 학교가 가르치고 선택권 줘야

㉜에너지 자급자족 건물, 이제 선택에서 의무로
㉝전국 8만여 가구가 아직은 버릴 수 없는 연료
㉞소음과 분진에도 생계형 노동 못 떠나는 노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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