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비 소리뉴스] 기후위기시대 59. ‘누가 왜 기후변화를 부정하는가’의 고발
‘기후변화 부정론자’라는 비판을 받아 온 데이비드 맬패스 세계은행(WB) 총재가 2023년 2월 15일(현지시각) 사임 의사를 밝혔습니다. 투자은행 베어스턴스의 수석 이코노미스트와 미국 재무부 차관을 거친 뒤 2019년 도널드 트럼프 당시 대통령의 총재 지명을 받은 그는 줄곧 환경단체의 사임 압력을 받아왔습니다. 세계은행 총재로서 기후위기 대응에 소극적이었던 데다 과거 발언도 문제가 됐습니다.
2007년 그는 이렇게 말한 전력이 있습니다.
“탄소 배출과 지구온난화의 연관성을 믿지 않습니다.”
2022년 9월 한 행사에서 ‘화석연료가 기후변화의 원인이라는 과학계의 합의를 믿느냐’는 질문에는 이렇게 말하며 답을 피했습니다.
“나는 과학자가 아닙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집권 1기 시절 노골적으로 기후변화를 부정하면서 국제적 기후위기 대응 합의인 파리기후협약을 탈퇴했습니다. 그리고 2기 집권 시작과 함께 조 바이든 전임 대통령이 복귀했던 파리기후협약에서 다시 탈퇴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했습니다. 탈퇴의 효력은 탈퇴서가 유엔기후변화협약에 접수된 날부터 1년 후 발생합니다.
2025년 1월 대통령 취임 연설에서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중국은 여전히 오염물질을 배출하며 그 영향이 미국까지 미치고 있습니다. 모두가 함께하지 않으면 의미가 없습니다. 파리기후협약은 불공정하고 일방적인 갈취(ripoff)입니다.”
이에 앞서 맬패스 체제의 세계은행은 화석연료에 금융 지원을 계속하고 개발도상국을 위한 기후펀드 조성에 소극적이라는 비판을 받았습니다. 기후운동가들은 맬패스와 트럼프 두 사람을 지구적 기후위기 대응의 발목을 잡은 대표적 인물 명단에 넣었습니다.
대기업, 청부 과학자, 정치인, 언론의 합작
세계적 기후과학자인 마이클 만 미국 펜실베이니아주립대 교수가 시사만평가 톰 톨스와 함께 낸 '누가 왜 기후변화를 부정하는가'는 이들과 같은 기후변화 부정론자들이 어떤 배경에서, 어떤 방식으로 기후위기 대응을 방해해 왔는지 조목조목 밝히고 있습니다. ‘하키스틱 곡선’으로 유명한 만 교수는 최근 1000년 동안의 지구 연평균 기온을 추정해 분석한 그래프를 통해 산업혁명 이후 150년 동안 지구 평균 기온이 급격히 올랐음을 보여주었습니다.
만 교수는 기후변화 부정론자들이 ‘지구에 열을 가두는 이산화탄소가 증가하고 있다는 사실’과 ‘이산화탄소 증가는 화석연료 등 인간 활동의 영향이라는 사실’을 단계별로 부인해 왔다고 설명했습니다. 첫 단계는 이산화탄소가 증가한다는 사실, 기후변화가 일어나고 있다는 근거 자체를 받아들이지 않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기후변화를 인정하긴 하지만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주장하는 것입니다. 세 번째는 자연의 메커니즘으로 기후변화가 저절로 해결될 것이라고 우기는 것입니다. 네 번째 단계에서는 기후변화의 결과가 많은 과학자가 말하는 것만큼 나쁘지는 않을 것이며 오히려 이롭다고 주장합니다. 다섯 번째 단계에서는 기후변화를 막기엔 이미 늦었고 행동에 나서려면 돈이 많이 들기 때문에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는 것이 가장 저렴한 대책이라고 주장합니다. 그리고 마지막 단계에 와서는 기술낙관주의를 신봉하며 원래의 문제보다 더 위험한 기술적 해법을 내놓습니다.
이렇게나 질기게 기후변화 부정론을 고수하는 집단의 정체는 뭘까요. 만 교수에 따르면 코크인더스트리, 엑손모빌 등 화석연료로 돈을 버는 대기업과 이들의 후원을 받는 사설 기관, 단체, 과학자, 정치인 등입니다. 석유기업 등은 싱크탱크(정책연구소)나 이익단체들에 대규모 후원금을 주고 ‘청부’ 과학자들을 이용해 기후과학자들을 공격했습니다. 그리고 기업 편에 기운 보수 정치인들은 이들 청부 과학자의 주장을 확산시키는 역할을 했습니다.
만 교수는 대기업들이 미국입법교류협회(ALEC)를 통해 자신들에게 도움이 되는 법안을 마련하고 통과를 돕는 호의적인 정치인들을 확보했다고 지적했습니다. 여기서 내놓는 법안들은 환경 규제를 약하게 만들고, 기후변화가 실제로 위협이 된다는 사실을 부정하며, 재생에너지 장려정책을 폐기하는 데 초점을 맞추는 경우가 많았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언론은 기후변화 부정론자들의 주장을 비중 있게 다뤄줌으로써 여론에 영향을 미쳤습니다. 이런 수법은 담배업체들이 담배의 유해성을 부인하기 위해 과학자와 정치인, 언론을 동원했던 것과 같은 방식입니다. 청부 과학자 중에는 담배의 유해성을 부인하는 활동과 기후변화를 부인하는 활동에 모두 나선 사람도 있다고 만 교수는 밝혔습니다.
루퍼트 머독 미디어 등의 기후변화 부정론 보도
만 교수에 따르면 기후변화 부정론의 확산에는 언론의 책임도 무겁습니다. <폭스뉴스> 등 언론재벌 루퍼드 머독의 미디어 계열사들은 기후변화를 부정하는 허위정보를 줄기차게 유포했습니다. 또 <워싱턴타임스> 등 미국의 우파 신문, 러시 림보와 글렌 벡 같은 우파 라디오 진행자도 기후변화 부정론을 확산시키는 데 앞장섰습니다. <뉴욕타임스> 등 진보적 매체도 ‘균형 보도’라는 강박에 사로잡혀 ‘회의적 환경주의자’를 자처하는 비외른 롬보르의 칼럼을 비중 있게 실어주는 등 잘못된 선택을 했다는 것이 만 교수의 비판입니다. 비외른 롬보르는 언론과 환경단체가 근거 없이 ‘환경 위기론’을 펼쳐 효율적인 자원 배분이 이뤄지지 않았다며, 오히려 환경은 나날이 좋아지고 있다고 주장해 왔습니다. 만 교수는 미국국립과학원(NAS)을 포함한 주요 선진국의 권위 있는 과학기관과 단체들, 각국 기후과학자들이 대거 참여하는 유엔 기후변화에관한정부간협의체(IPCC) 등이 모두 기후변화가 과학적 사실이라고 인정했음을 강조했습니다. 기후 관련 과학논문의 97% 이상이 기후변화를 인정한다고 합니다. 그는 배경이 의심스러운 일부 과학자들이 동료 평가를 받지 못한 논문 혹은 블로그 글로 기후변화를 부인할 때, 언론이 비중 있게 다뤄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습니다.
만 교수와 톨스 시사만평가는 설득력 있는 글과 데이터, 재치 있는 그림을 통해 기후위기가 인류의 생존과 경제적 지속 가능성을 위협하는 거대한 위협이며, 우리에게 이를 막을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동시에 경제적, 정치적 이해관계 때문에 과학을 왜곡하고 부정하며 기후위기 대응전선을 교란하는 세력이 여전히 활개 치고 있음을 고발합니다. '누가 왜 기후변화를 부정하는가'는 오래전부터 많은 과학자가 규명하고 경고해 온 기후위기를 왜 인류가 제대로 막지 못하고 있는지, 궁금해하는 사람에게 답을 주는 책입니다.
디지털 시대의 멀티미디어 실험에 앞장서는 <단비뉴스>가 ‘소리뉴스’ 2탄을 시작합니다. 2021년 4월 시작된 ‘기후위기시대’ 연재 기사를 단비뉴스 환경부 기자들이 목소리와 영상으로 전합니다. 이 연재 기사는 갈수록 심각해지는 기후위기의 현황과 대안, 그리고 기후정의를 위해 행동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소리뉴스 1탄 ‘마지막 비상구’와 마찬가지로, 시각장애인을 포함한 우리 사회 구성원 모두가 엄중한 기후위기 현실을 깨닫고 함께 대응하는 데 도움이 되기를 기대합니다. 소리뉴스는 단비뉴스 홈페이지와 유튜브, 팟빵 채널에 실립니다. (편집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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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위기시대 소리뉴스]
① '석탄 퇴장' 급한데 신규발전소 더 짓는 한국
② '나만 지구 지켜?’ 불안과 실망을 넘어서
③ 정부·기업의 기후 대응, 시민이 압박해야
④ 석탄발전소 ‘질서 있는 퇴장’을 서둘러야
⑤ 썩은 당근 쏟으며 ‘위험’ 호소한 청소년들
⑥ 탄소중립 외치며 석탄발전·공항 짓는 위선
⑦ 기후과학자가 소형원자로 개발에 반대하는 이유
⑧ 개발도 안 된 핵융합 대신 자연 태양광 투자를
⑨ 기후와 생물다양성 위기 극복을 국가의 의무로
⑩ 떠오르는 '소형모듈원전' 조목조목 따져보니
⑪ 안전하지도 경제적이지도 않은 파이로프로세싱
⑫ 더 큰 재난 막으려면 원전 아닌 자연에너지로
⑬ ‘탄소감축 과정에서 피해 떠안는 노동자 없도록
⑭ 소고기가 배출하는 온실가스, 두부의 20배
⑮ '각자도생' 대신 서로 돌봐야 재난 이긴다
⑯ 쓰레기 여러 트럭 나오는 전시회는 '이제 그만'
⑰ 지구가 깨끗해질 때까지 달리기로 했다
⑱ 화석연료에 여전히 돈 쏟아붓는 공적금융
⑲ 소송으로 입 막는 기업, 굴하지 않는 기후행동
⑳ '기후재난 당사자가 애타게 전하는 위험 신호
㉑ 유행 따라 사고 버리니 지구가 열받았네
㉒ ‘온난화 주범’ 대기업에 ‘기후정의’를 압박하다
㉓ ‘신공항’ 대신 ‘정의로운 전환’에 집중 투자를
㉔ 먹거리 전환이 에너지 전환만큼 중요하다
㉕ 주민협동조합 이익공유로 ‘무석탄·무원전’ 확대
㉖ 주요 정당 지도자들, 탄소중립 로드맵 제각각
㉗ 청년의 미래를 빼앗은 것에 용서를 구합니다
㉘ 원전으로 탄소중립이 가능하다는 착각
㉙ ‘태양광 괴담’ 가고 나니 ‘이격거리’가 남았다
㉚ 위기 해결의 열쇠 함께 찾는 인문·과학 연구자들
㉛ 지구 살리는 채식, 학교가 가르치고 선택권 줘야
㉜ 에너지 자급자족 건물, 이제 선택에서 의무로
㉝ 전국 8만여 가구가 아직은 버릴 수 없는 연료
㉞ 소음과 분진에도 생계형 노동 못 떠나는 노인들
㉟ 예정된 폐광, 대안 없는 노동자와 지역주민
㊱ 강이 위험에 처하면 인류 문명도 위험하다
㊲ "바다에 물고기보다 플라스틱이 많아질 수도"
㊳ 미국곡물협회가 부산 모터쇼를 찾은 까닭은
㊴ 무농약으로 ‘땅심’ 키우는 공유농업의 현장
㊵ 건설·택배 노동자 목숨 위협하는 폭염이 온다
㊶ 아열대로 가는 한국, 농민도 작물도 적응 난조
㊷ 바다숲과 갯벌은 기후위기 막는 천군만마
㊸ ‘기후 한계점’ 코앞인데 환경 수업은 ‘자습 시간’
㊹ 기후위기 대응 첫걸음은 '석탄발전소 안 짓기'
㊺ 퇴출 산업 노동자와 지역주민은 누가 챙기나
㊻ "탄소중독 기업과 국가, 기후위기 책임져야"
㊼ 페라리·벤틀리 가죽 시트도 가방으로 재탄생
㊽ 약초 대신 매미나방이 그득한 산에서 상심
㊾ 벌금 물더라도 판결문에 ‘기후위기 공감’ 기대
50. ‘나와 지구에 이로운 공간’에서 뭉치는 청년들
51. 기후 시민은 요구한다, "공항 말고 갯벌"
52. 아이들에게 기후 부담을 떠넘기지 않는 사회로
53. 법원도 ‘기후불복종’ 명분에 공감, 벌금 줄여줘
54. ‘우리 공동의 집, 지구’를 위해 거리에 선 신앙인
55. 미국 핵물리학자 “도쿄전력 처리 신뢰 어렵다”
56. 고속도로 위, 방음벽에도 태양광 패널을 깔자
57. 자연 훼손, 농지 손실 없이 태양광 전기 만들죠
58. 딸 위한 채식에서 기후·환경을 위한 식당까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