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비 소리뉴스] 기후위기시대 67. 조형작가 전창환의 기후행동

충북 제천시 강저로9안길. 지도 앱에서는 위치가 검색되지 않아, 도로명 표지판을 보고 어렵사리 찾아간 들판 한가운데 소형 트럭 크기의 달팽이 모양 조형물이 눈에 띄었습니다. 그 뒤로 철제 셔터가 달린 차고형 건물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꽃팽이’라는 이름의 조형물이 수문장처럼 지키는 건물이 ‘전창환 조형연구소’였습니다. 폐스티로폼으로 만든 조형 작품으로 기후위기를 경고하는 전창환 작가를 2023년 4월 4일 이곳에서 만났습니다.

제천 의림지 역사박물관에서 작품 전시회

작업실 내부에는 2023년 4월 11일부터 6월 25일까지 제천시 모산동 의림지 역사박물관에서 ‘1.5℃의 눈물’이라는 제목으로 연 그의 작품 전시회 포스터가 붙어있었습니다. ‘1.5℃의 눈물’은 2008년 <MBC>에서 제작한 다큐멘터리 ‘북극의 눈물’에서 빌려 온 이름으로, 산업화 이전보다 지구 평균온도가 1.5도 이상 오르면 파국을 맞을 수 있다는 경고가 담겼습니다. 전시회에서는 빈번한 산불로 타버린 사슴을 표현한 '뿔난 사슴 불이 된다', 멸종위기 동물 코뿔소를 그려낸 ‘뿔났소’, 지구온난화로 부서지는 생태계를 표현한 ‘부서지고 무너지고 꽃이 진다’ 등 수십 점의 작품이 관람객을 만났습니다.

서른 평 남짓한 작업실에서 그가 움직일 수 있는 공간은 열 평이 채 되지 않았습니다. 각각 사람 한 명 크기 이상인 작품 수십 점이 자리를 차지해서입니다. 또 건축 자재와 스티로폼 등 작업 재료와 날카로운 톱, 공사용 본드(접착제) 등이 곳곳에 놓여 있어 미술 작업실보다는 공사장 같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는 전시가 끝난 뒤에도 작품을 버리거나 처분하지 않는다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제 거의 포화상태죠. 불편하진 않은데 현실적으로 계속 다른 작품들을 못 만드는 게 문제네요. 얘들을 어디 두겠어요, 그냥 같이 지내야죠.”

30여 년 전 미대생 시절 환경문제에 주목

홍익대학교 조소과 88학번인 그는 4학년 때 설치미술 수업을 듣다가 환경문제에 주목하게 됐다고 합니다. 당시 수업의 주제가 환경이었는데, 환경을 주제로 설치미술 작품을 만드는 것이 과제였습니다. 그는 ‘치부를 드러내야만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작품에서 환경과 관련한 치부를 드러내야 인식이 분명해지고, 그래야 개선이 가능해진다고 믿었습니다. 그때 생각한 주제가 프레온가스였습니다.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당시에 가장 이슈가 됐던 게 오존층 파괴였어요. 그 주범이 프레온가스였죠. (냉장고 등의) 냉매로 쓰이는 거요. 그때부터 고물상 냉장고를 눈여겨보기 시작했어요. 그리고 어떤 식으로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을까 계속 고민했죠.”

프레온가스는 1997년 몬트리올 의정서, 즉 오존층 보존을 위한 국제협약에서 지구 오존층 파괴 원인의 하나로 지목됐습니다. 이후 전 세계적인 규제 조처가 도입됐습니다. 그는 고물상에서 1만 원에 구한 냉장고의 문짝을 뜯고, 안에 형광등 하나를 달았습니다. 겉에는 유리판을 붙여 이슬이 맺히는 모습이 잘 보이게 만들었습니다. 냉장고 내·외부의 온도 차를 시각화하려는 의도였습니다. 동시에 냉기를 만들기 위해 뜨거워지는 냉장고 뒤 방열판을 함께 보여줬습니다. 단순해 보였지만 분명한 기후 메시지를 담고 있었습니다. 그의 첫 환경작품의 제목은 ‘따뜻한 방’이었습니다.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여름에 시원해지려고 에어컨을 계속 틀잖아요. 그걸 위해서 전기를 생산하는 석탄을 계속 쓰고, 지구는 더 뜨거워지고. 좁은 방안은 시원해지는데 바깥은 자꾸만 더워져요. 저는 일찍부터 지구온난화가 결코 가벼운 문제가 아니라는 생각을 했어요.”

버려진 스티로폼을 이어 붙인 작품들

‘따뜻한 방’으로 환경에 관한 문제의식을 표현했지만, 그가 본격적인 작품활동을 시작한 것은 8~9년 전입니다. 대학을 졸업한 뒤 생계를 위해 홍익대 앞에서 입시 미술을 가르치고, 예술고등학교에서 강사로 일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다 미뤄두었던 작가의 꿈을 좇기 위해 서울 생활을 정리하고 제천에 정착했습니다. 충북 단양에서 태어난 그는 제천에서 고등학교 시절을 보냈습니다. 제천은 작업실을 구하고 운영하는 경비가 서울과 비교할 수 없이 적다는 게 중요한 이유 중 하나였습니다. 본격적으로 작품활동에 집중하면서, 2021년 대한민국환경생태미술대전에서 대상(환경부장관상)을 받았고, 이듬해에는 홍익조각동문회가 주는 창작지원작가상에 선정되기도 했습니다.

그의 작품은 ‘재활용’과 ‘탄소중립’을 철저히 지향합니다. 환경보호, 탄소중립을 말하는 전시를 하면서 쓰레기를 많이 만들어 낼 수 없다는 게 그의 철학입니다. 실제 국내 국공립 미술관에서 작품을 전시하면 1회당 평균 20톤(t) 분량의 폐기물이 나온다고 합니다. 전시장의 가벽으로 쓴 석고보드나 합판, 전시 설명란을 만들 때 쓰는 플라스틱 등이 버려지기 때문입니다.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전공이 이쪽이다 보니 주변에 조각이나 조형을 하는 사람들을 많이 봐왔어요. 전시 같은 걸 하고 나면 쓰레기가 정말 많이 나옵니다. 나는 기본적으로 그런 것들을 경계하는 건데, 오히려 쓰레기를 만들어내는 전시를 하고 싶지는 않아요.”

전 작가의 작품에는 모두 갈색, 초록색의 선들이 보입니다. 서로 다른 크기의 스티로폼을 이어 붙인 본드 자국입니다. 그가 쓰는 스티로폼은 모두 버려졌던 것이라 크기와 재질도 다르고 부서지고 깨진 것들이어서, 본드로 일일이 이어 붙여 하나의 작품을 완성하게 됩니다.

인테리어 공사 현장에서 발견한 작품 재료

전 작가의 작업실 벽면에는 해맑게 웃고 있는 어린아이들 사진이 걸려있었습니다. 당시 대학생과 고등학생이 된 그의 세 아이입니다. 교육 때문에 가족은 서울에 남고, 제천에 혼자 와 있다는 그는 아이를 키우는 아빠의 마음으로 아이들의 미래를 위해 환경작품을 만든다고 말했습니다.

전 작가는 낮에 일용직 노동자로 일합니다. 작품활동을 위해서는 우선 먹고 사는 문제를 해결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인력 사무소도 나가고 공장에서 짧게 일하기도 합니다. 가장 많이 일한 곳은 인테리어 공사 현장인데, 작품 재료로서 폐스티로폼의 가능성을 발견한 것도 그런 현장이었다고 합니다.

2023년 4월 22일 전 작가를 역사박물관 전시 현장에서 다시 만났을 때, 그는 요즘 산에서 묘지를 이장하거나 묘소를 만들어 주는 일을 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이날도 낮에는 묘지 관련 일을 하고, 오후에 전시장에 나온 것이었습니다. 그는 60대 중후반 단체 관람객을 대상으로 작품 하나하나에 관해 의미를 설명하고 작업 과정도 소개했습니다. 전 작가가 탄소중립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구체적인 실천 방안도 설명하자 관람객들은 호기심 어린 표정으로 경청했습니다. 그는 관람객들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평범한 우리도 기후 문제에 관심을 가져야 해요. 어머님들, 우리 아이들이 계속 살아가야 하잖아요. 우리는 모두 기후환경에서 자유로울 수 없어요. 더 늦기 전에 탄소중립 실천해야 합니다. 기후환경을 개선하기 위해 꼭 필요합니다. 작품들이 이해가 잘 안돼도, 이런 얘기들은 꼭 기억하고 돌아가 주세요.”

전 작가는 작품을 사고 싶다는 사람이 있어도 스티로폼으로 만든 조형물의 관리가 어렵기 때문에 판매는 하지 않고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대신 한 명이라도 더 관람할 수 있도록 공공건물이나 카페 등에 대여할 생각은 있다고 덧붙였습니다. 그는 제천시가 ‘환경예술의 메카’가 되면 좋겠다는 바람도 밝혔습니다. 기후위기를 주제로 작품을 만드는 예술가가 많지 않은 만큼, 자신이 환경 작가의 정체성을 잘 구축해서 지역에도 좋은 영향을 주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디지털 시대의 멀티미디어 실험에 앞장서는 <단비뉴스>가 ‘소리뉴스’ 2탄을 시작합니다. 2021년 4월 시작된 ‘기후위기시대’ 연재 기사를 단비뉴스 환경부 기자들이 목소리와 영상으로 전합니다. 이 연재 기사는 갈수록 심각해지는 기후위기의 현황과 대안, 그리고 기후정의를 위해 행동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소리뉴스 1탄 ‘마지막 비상구’와 마찬가지로, 시각장애인을 포함한 우리 사회 구성원 모두가 엄중한 기후위기 현실을 깨닫고 함께 대응하는 데 도움이 되기를 기대합니다. 소리뉴스는 단비뉴스 홈페이지와 유튜브, 팟빵 채널에 실립니다. (편집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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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위기시대 소리뉴스]
① '석탄 퇴장' 급한데 신규발전소 더 짓는 한국
② '나만 지구 지켜?’ 불안과 실망을 넘어서
③ 정부·기업의 기후 대응, 시민이 압박해야
④ 석탄발전소 ‘질서 있는 퇴장’을 서둘러야
⑤ 썩은 당근 쏟으며 ‘위험’ 호소한 청소년들
⑥ 탄소중립 외치며 석탄발전·공항 짓는 위선
⑦ 기후과학자가 소형원자로 개발에 반대하는 이유
⑧ 개발도 안 된 핵융합 대신 자연 태양광 투자를
⑨ 기후와 생물다양성 위기 극복을 국가의 의무로
⑩ 떠오르는 '소형모듈원전' 조목조목 따져보니
⑪ 안전하지도 경제적이지도 않은 파이로프로세싱
⑫ 더 큰 재난 막으려면 원전 아닌 자연에너지로
⑬ ‘탄소감축 과정에서 피해 떠안는 노동자 없도록
⑭ 소고기가 배출하는 온실가스, 두부의 20배
⑮ '각자도생' 대신 서로 돌봐야 재난 이긴다
⑯ 쓰레기 여러 트럭 나오는 전시회는 '이제 그만' 
⑰ 지구가 깨끗해질 때까지 달리기로 했다
⑱ 화석연료에 여전히 돈 쏟아붓는 공적금융
 소송으로 입 막는 기업, 굴하지 않는 기후행동
⑳ '기후재난 당사자가 애타게 전하는 위험 신호
㉑ 유행 따라 사고 버리니 지구가 열받았네
㉒ ‘온난화 주범’ 대기업에 ‘기후정의’를 압박하다
㉓ ‘신공항’ 대신 ‘정의로운 전환’에 집중 투자를
㉔ 먹거리 전환이 에너지 전환만큼 중요하다
㉕ 주민협동조합 이익공유로 ‘무석탄·무원전’ 확대

㉖ 주요 정당 지도자들, 탄소중립 로드맵 제각각
㉗ 청년의 미래를 빼앗은 것에 용서를 구합니다
㉘ 원전으로 탄소중립이 가능하다는 착각
㉙ ‘태양광 괴담’ 가고 나니 ‘이격거리’가 남았다
㉚ 위기 해결의 열쇠 함께 찾는 인문·과학 연구자들

㉛ 지구 살리는 채식, 학교가 가르치고 선택권 줘야

㉜ 에너지 자급자족 건물, 이제 선택에서 의무로
㉝ 전국 8만여 가구가 아직은 버릴 수 없는 연료
㉞ 소음과 분진에도 생계형 노동 못 떠나는 노인들
㉟ 예정된 폐광, 대안 없는 노동자와 지역주민
㊱ 강이 위험에 처하면 인류 문명도 위험하다
㊲ "바다에 물고기보다 플라스틱이 많아질 수도"
㊳ 미국곡물협회가 부산 모터쇼를 찾은 까닭은
㊴ 무농약으로 ‘땅심’ 키우는 공유농업의 현장
㊵ 건설·택배 노동자 목숨 위협하는 폭염이 온다
㊶ 아열대로 가는 한국, 농민도 작물도 적응 난조
㊷ 바다숲과 갯벌은 기후위기 막는 천군만마
㊸ ‘기후 한계점’ 코앞인데 환경 수업은 ‘자습 시간’
㊹ 기후위기 대응 첫걸음은 '석탄발전소 안 짓기'
㊺ 퇴출 산업 노동자와 지역주민은 누가 챙기나
㊻ "탄소중독 기업과 국가, 기후위기 책임져야"
㊼ 페라리·벤틀리 가죽 시트도 가방으로 재탄생
㊽ 약초 대신 매미나방이 그득한 산에서 상심
㊾ 벌금 물더라도 판결문에 ‘기후위기 공감’ 기대
50. ‘나와 지구에 이로운 공간’에서 뭉치는 청년들
51. 기후 시민은 요구한다, "공항 말고 갯벌"
52. 아이들에게 기후 부담을 떠넘기지 않는 사회로
53. 법원도 ‘기후불복종’ 명분에 공감, 벌금 줄여줘
54. ‘우리 공동의 집, 지구’를 위해 거리에 선 신앙인
55. 미국 핵물리학자 “도쿄전력 처리 신뢰 어렵다”
56. 고속도로 위, 방음벽에도 태양광 패널을 깔자
57. 자연 훼손, 농지 손실 없이 태양광 전기 만들죠
58. 딸 위한 채식에서 기후·환경을 위한 식당까지
59. 트럼프의 ‘기후 음모론’을 언론이 방치한다면
60. 수익 적어도 동지와 함께 가는 ‘제로웨이스트’
61. "IT 강국 한국, 재생에너지 전환에 유리"
62. "‘성장 집착’ 버리고 ‘생태 한계 속 균형’ 찾아야"
63. ESG로 기업 가치 높이기, 공시기준 등 정비 중
64. 연 1000억 톤 자원 소비, 재투입은 고작 7%
65. 실험실에서 키운 고기, 식탁에서 환영받을까
66. 그린워싱과 공장식 축산을 만화로 고발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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