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비 소리뉴스] 기후위기시대 ㊿ 친환경 카페 이공
2022년 10월 22일 광주광역시 광산구 송정5일시장 부근의 카페 이공. 테이블 7개가 놓인 아담한 공간에서 손님 대여섯 명이 각자 텀블러에 든 음료를 마시며 얘기를 나누고 있었습니다. 개방형 주방에서 직원 2명이 음료 준비 등에 열중하는 동안, 바로 옆 세미나실에서는 안유진 이사가 다음 날 열릴 ‘지구농장터’ 행사에 쓸 현수막을 만들고 있었습니다. 카페 운영을 맡고 있는 안 이사가 말했습니다.
“이공은 기후위기시대에 대안적인 공간입니다.”
이공은 마을 청년들의 협동조합이자 기후위기에 대응하는 카페입니다. 한 달에 4~5번 시민·학생을 대상으로 기후위기 주제의 강좌를 열고, 하루 30명가량 찾아오는 고객들에게 제로웨이스트, 즉 쓰레기를 만들지 않는 판매 서비스를 제공합니다. 단순히 음료를 파는 곳을 넘어 ‘기후정의’라는 가치를 지향하는 공간이라고 카페 운영진은 자부합니다.
기후위기 교육하고 제로웨이스트 판매도
이공 사람들은 이곳을 ‘기후위기 실험실’이라고 생각합니다. 친환경 카페를 지향하는 이공은 우선 모든 메뉴를 비건식, 즉 완전채식으로 제공합니다. 우유 대신 두유를 사용하고, 동물성 재료를 피하려 크림을 안 씁니다. 음료에 들어가는 시럽과 청도 식물성 재료를 써서 직접 만듭니다. 지금은 일손 부족으로 잠시 중단하고 있지만, 2022년 4월까지는 비건을 위한 식사도 제공했습니다.
이공에는 일회용품이 없습니다. 플라스틱 컵은 물론이고 종이 냅킨도 쓰지 않습니다. 음료 포장을 원하는데 개인 용기를 갖고 오지 않은 손님에게는 ‘보틀클럽 도서관’ 프로그램을 이용하라고 안내합니다. 가게 텀블러를 빌려주는 겁니다. 카페 한쪽에 마련된 텀블러 장에서 마음에 드는 용기를 골라 대여 카드를 쓰고 음료를 담아가면 됩니다.
텀블러 보증금은 받지 않으며, 대여와 반납을 10번 하면 아메리카노 커피 1잔을 무료로 줍니다. 텀블러는 기부받아 충당합니다. 2022년 9월에는 손님 33명이 총 59개의 텀블러를 대여한 것으로 집계됐습니다. 안 이사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일회용품 없는 카페라는 걸 모르고 오는 손님이 더 많지만, 이공이 지향하는 가치를 설명해 드리면 흔쾌히 텀블러 대여 시스템을 이용합니다.”
텀블러 장 아래에선 ‘리필스테이션’이 운영되고 있습니다. 고객이 개인 용기를 가져오면 세제·화장품·먹거리 등의 내용물을 판매합니다. 플라스틱 용기 사용을 줄이려는 목적입니다. 주방세제, 샴푸, 베이킹소다, 츄러스, 크래커, 찻잎 등 다양한 품목이 있습니다.
카페 바깥 화단에는 텃밭을 만들어 직접 작물을 키우는 ‘1인분의 텃밭’도 운영되고 있습니다. 흙을 밟을 일 없는 도시에서 작은 텃밭을 직접 운영해 보자는 생각으로 시작했습니다. 나무 상자를 모아 만든 화단에서 고사리나 토마토 등의 작물을 키웁니다. 이렇게 기른 작물은 카페에서 식음료의 재료로 쓰이기도 합니다.
지구를 살리는 농부들의 장터에서 실속 거래
2022년 10월 23일 카페 이공은 장터가 됐습니다. 지구를 구하는 농부들의 장터라는 뜻으로 ‘지구농장터’가 열린 겁니다. 광주와 전남 지역 소농들이 직접 재배한 농작물을 가져와 판매하는 ‘로컬푸드 마켓’입니다. 지구농장터는 송정마을오일장이 서는 날이 일요일일 때 함께 열리는데, 한 달에 1~2회꼴입니다. 한 번에 보통 4~5개 농가가 참여합니다.
이 행사를 기획한 농부 김영대 씨가 취지를 설명했습니다.
“우리 같은 소농들은 생산량이 지속적이거나 일정하지 못해 식당이나 백화점에 유통하기 어려워요. 농작물을 팔 수 있는 작은 장터가 필요했습니다.”
김 씨는 이날 직접 기른 홍로 사과와 대봉감, 햇볕에 말린 대추를 팔았습니다. 장터에서 파는 농산물은 갓 수확해 신선하고, 중간 유통을 거치지 않아 일반 상점보다 저렴합니다.
이날 장터에는 총 11개의 부스(천막)가 설치됐습니다. 농작물뿐 아니라 음식, 친환경 도구 등 다양한 상품을 기획한 판매자들이 참여했습니다. 프리랜서 김진아 씨가 팝업 레스토랑, 즉 일일식당 ‘내 식탁 위의 얼굴들’을 차려, 직접 수확했거나 농부로부터 직접 구매한 농산물로 만든 음식을 판매했습니다. 재료의 원산지와 작물을 기른 농부의 이름을 사전에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알렸기 때문에, 손님은 생산자와 유통 과정을 알고 구매할 수 있습니다. 이날 메뉴는 모두 비건식으로, ‘얼굴있는밥상’과 ‘얼굴있는간식’이 제공됐습니다.
전남의 초중고에서 국악예술 강사로 일하는 엄애란 씨는 부스 ‘달팽이텃밭’에서 수제 조청과 식혜를 판매했습니다. 엄 씨는 비료와 농약을 쓰지 않는 자연농을 합니다.
“(땅을) 1천 평 정도 임대해 농사를 시작한 지 2년 정도 됐습니다. 농사를 본업으로 바꿔보려 생각하고 있어요. 지구에 탄소를 줄여야 하는 상황이라 (자연농으로) 동참하고 있는 겁니다. 자연농은 탄소 배출을 줄이고 자연 본연의 맛을 살릴 수 있지만, 기계를 쓰지 않아 손이 많이 가죠.”
지구농장터의 기획자 김영대 씨는 광주 무등산 중턱에서 산지형 다랑논(계단식 논밭)을 경작합니다. 이 논은 퇴비와 농약을 사용하지 않는 생태적 방식으로 경작합니다. 비료를 쓰지 않고 땅을 재생시켜 토양의 탄소 포집력을 키우는 것이라고 김 씨는 설명했습니다.
“소농들이 탄소 중립을 실천하면서 농사를 짓기 위해선 경제적 자급도 중요합니다. 아직은 수익성이 부족하지만, 기후위기에 새로운 전환을 꿈꾸는 사람들이 (장터에서) 서로 만나는 의미도 큽니다.”
전남 나주시에서 구매를 위해 온 회사원 유경미 씨는 지구농장터 상품을 믿을 수 있어서 좋다고 말했습니다.
“어디서 생산됐는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무슨 마음으로 만들었는지를 알 수 있어서 좋아요. 직접 기르거나 만든 분들이 판매도 하니까 굉장히 믿음이 가는 거죠. 지역 주민은 아니지만, 지인 덕분에 (지구농장터를) 알게 됐어요. 환경과 관련한 활동은 지속하기가 힘든데, 지역에 비슷한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있으면 서로 정보도 얻고 힘을 줄 수도 있을 것 같아요.”
협동조합 이공(異空)에서 카페 이공(利空)까지
카페 이공의 이세형 대표는 2022년 10월 <단비뉴스> 전자우편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공은 한 명의 시민이 기후위기 시대에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는지 도움을 주는 곳입니다.”
광주 출신인 그는 타지 생활을 하다 12년 만인 2013년 고향에 돌아왔고, 2014년 광산구 공익활동지원센터에서 마을공동체팀장으로 일했습니다. 그러다 2016년 청년주거독립을 추진하는 협동조합 이공을 설립했고, 셰어하우스도 2호점까지 운영했습니다. 그는 대학 졸업 후 서울의 한 출판사에서 일하며 외로움을 많이 느꼈는데, 29살 무렵 법륜스님이 이끄는 수행공동체 정토회에서 5년 동안 지내며 공동체 생활의 즐거움을 알게 됐다고 합니다. 그래서 광주로 돌아왔을 때 청년과 마을에 도움이 될 수 있는 협동조합을 만들었습니다.
그는 2017년 마을 청년들이 주축이 된 청년 플랫폼으로 카페 이공을 만들었습니다. 초기엔 전시를 하거나 광주 지역 독립영화를 상영하는 등 주로 문화와 교육에 관한 행사를 기획했습니다. 그러다 2019년 제로웨이스트 개념을 접한 후, 본격적으로 기후위기에 대응하는 활동에 초점을 맞추게 됐습니다. 2020년 제로웨이스트 팝업스토어, 즉 임시매장을 2달 동안 진행했고, 이듬해인 2021년 1월에는 정식으로 제로웨이스트샵을 열었습니다. 이 대표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2016년 이공(異空)은 ‘이상한 공간’의 줄임말로 서로 다른 꿈들을 공유하는 공간이라는 의미였어요. 청년들의 일터와 삶터, 놀이터와 배움터를 만들고 그들의 꿈을 지지하고 응원하는 공동체를 지향했어요. 2021년에는 이공의 시즌 2인 지구와 나에게 이로운 공간, 이공(利空) 시대를 열었습니다. 이공은 기후위기 시대에 ‘뭐라도 하고자 하는’ 분들에게 안내자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기후위기에 대응하는 공동체 늘어나는 추세
카페 이공처럼 기후위기에 대응하는 지역공동체들이 속속 늘어나고 있습니다. 서울 은평구에서는 2014년 여러 시민단체와 환경모임들이 ‘전환마을은평’ 프로젝트를 시작했습니다. 전환마을은평은 퍼머컬처, 즉 지속 가능한 농업을 적용한 농법으로 직접 농산물을 생산합니다. 또 로컬푸드 식당인 밥풀꽃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가지와 참외, 토마토 등 직접 기른 작물은 마을 안에서 생산과 소비가 이뤄져, 탄소배출 감축과 지역 경제 활성화에 기여하고 있습니다.
에너지전환으로 초점을 돌리면 기후위기에 대응하는 지역공동체는 훨씬 더 많습니다. 기후위기대응을 목표로 2014년 출범한 전국시민발전협동조합연합회는 시민참여 에너지협동조합의 모임입니다. 2012년 안산시민햇빛발전협동조합의 1호 발전소 설립을 시작으로 생겨난 77개의 협동조합은 시민참여형 재생에너지 발전소를 계속 늘려가고 있습니다. 또 탈석탄·탈원전의 필요성을 알리는 등 재생에너지 확대를 위한 정책 제안과 교육홍보 활동도 함께하고 있습니다.
한서대 동양고전연구소 이나미 연구위원의 2015년 논문 ‘기후변화로 인한 사회적 위기와 공동체의 대응’에 따르면 지역공동체는 기후위기 대응에 중요한 단위가 될 수 있습니다. 논문에 따르면 위기를 맞이한 사회에는 개인화와 무력감 증가, 불평등 심화, 갈등 증대가 나타날 수 있다고 합니다. 이런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국가의 노력도 필요하지만, 사람들 사이 신뢰 및 공동체 회복과 민주주의가 중요합니다. 공동체 형성이 기후위기에 맞설 효과적 방법의 하나라는 의미입니다.
이공은 다양한 시도로 지역공동체의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지만, 수익성을 확보하는 데는 아직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매출은 꾸준하지만 다양한 프로그램을 시도하면서 직원 4명의 인건비 등 고정비가 늘어나는 상황입니다. 광산구 소유의 건물을 임대해 사용하기 때문에 연간 1천만 원에 이르는 임대료를 내는 것도 부담스럽다고 합니다.
그래도 이 대표는 지역의 ‘기후시민’을 양성해 작은 변화를 만들어가는 목표를 계속 추구하겠다고 말했습니다.
“기후시민은 기후위기 문제의 심각성을 잘 알고 생활에서 실천하는 사람을 일컫는데, 카페 이공은 지역의 공동체로서 기후시민에게 꾸준히 방향을 제시해 주는 곳입니다.”
이 대표는 앞으로 기후시민을 위한 프로그램을 더 다양하게 기획할 예정이라고 밝혔습니다.
디지털 시대의 멀티미디어 실험에 앞장서는 <단비뉴스>가 ‘소리뉴스’ 2탄을 시작합니다. 2021년 4월 시작된 ‘기후위기시대’ 연재 기사를 단비뉴스 환경부 기자들이 목소리와 영상으로 전합니다. 이 연재 기사는 갈수록 심각해지는 기후위기의 현황과 대안, 그리고 기후정의를 위해 행동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소리뉴스 1탄 ‘마지막 비상구’와 마찬가지로, 시각장애인을 포함한 우리 사회 구성원 모두가 엄중한 기후위기 현실을 깨닫고 함께 대응하는 데 도움이 되기를 기대합니다. 소리뉴스는 단비뉴스 홈페이지와 유튜브, 팟빵 채널에 실립니다. (편집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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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위기시대 소리뉴스]
① '석탄 퇴장' 급한데 신규발전소 더 짓는 한국
② '나만 지구 지켜?’ 불안과 실망을 넘어서
③ 정부·기업의 기후 대응, 시민이 압박해야
④ 석탄발전소 ‘질서 있는 퇴장’을 서둘러야
⑤ 썩은 당근 쏟으며 ‘위험’ 호소한 청소년들
⑥ 탄소중립 외치며 석탄발전·공항 짓는 위선
⑦ 기후과학자가 소형원자로 개발에 반대하는 이유
⑧ 개발도 안 된 핵융합 대신 자연 태양광 투자를
⑨ 기후와 생물다양성 위기 극복을 국가의 의무로
⑩ 떠오르는 '소형모듈원전' 조목조목 따져보니
⑪ 안전하지도 경제적이지도 않은 파이로프로세싱
⑫ 더 큰 재난 막으려면 원전 아닌 자연에너지로
⑬ ‘탄소감축 과정에서 피해 떠안는 노동자 없도록
⑭ 소고기가 배출하는 온실가스, 두부의 20배
⑮ '각자도생' 대신 서로 돌봐야 재난 이긴다
⑯ 쓰레기 여러 트럭 나오는 전시회는 '이제 그만'
⑰ 지구가 깨끗해질 때까지 달리기로 했다
⑱ 화석연료에 여전히 돈 쏟아붓는 공적금융
⑲ 소송으로 입 막는 기업, 굴하지 않는 기후행동
⑳ '기후재난 당사자가 애타게 전하는 위험 신호
㉑ 유행 따라 사고 버리니 지구가 열받았네
㉒ ‘온난화 주범’ 대기업에 ‘기후정의’를 압박하다
㉓ ‘신공항’ 대신 ‘정의로운 전환’에 집중 투자를
㉔ 먹거리 전환이 에너지 전환만큼 중요하다
㉕ 주민협동조합 이익공유로 ‘무석탄·무원전’ 확대
㉖ 주요 정당 지도자들, 탄소중립 로드맵 제각각
㉗ 청년의 미래를 빼앗은 것에 용서를 구합니다
㉘ 원전으로 탄소중립이 가능하다는 착각
㉙ ‘태양광 괴담’ 가고 나니 ‘이격거리’가 남았다
㉚ 위기 해결의 열쇠 함께 찾는 인문·과학 연구자들
㉛ 지구 살리는 채식, 학교가 가르치고 선택권 줘야
㉜ 에너지 자급자족 건물, 이제 선택에서 의무로
㉝ 전국 8만여 가구가 아직은 버릴 수 없는 연료
㉞ 소음과 분진에도 생계형 노동 못 떠나는 노인들
㉟ 예정된 폐광, 대안 없는 노동자와 지역주민
㊱ 강이 위험에 처하면 인류 문명도 위험하다
㊲ "바다에 물고기보다 플라스틱이 많아질 수도"
㊳ 미국곡물협회가 부산 모터쇼를 찾은 까닭은
㊴ 무농약으로 ‘땅심’ 키우는 공유농업의 현장
㊵ 건설·택배 노동자 목숨 위협하는 폭염이 온다
㊶ 아열대로 가는 한국, 농민도 작물도 적응 난조
㊷ 바다숲과 갯벌은 기후위기 막는 천군만마
㊸ ‘기후 한계점’ 코앞인데 환경 수업은 ‘자습 시간’
㊹ 기후위기 대응 첫걸음은 '석탄발전소 안 짓기
㊺ 퇴출 산업 노동자와 지역주민은 누가 챙기나
㊻ "탄소중독 기업과 국가, 기후위기 책임져야"
㊼ 페라리·벤틀리 가죽 시트도 가방으로 재탄생
㊽ 약초 대신 매미나방이 그득한 산에서 상심
㊾ 벌금 물더라도 판결문에 ‘기후위기 공감’ 기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