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비 소리뉴스] 기후위기시대 ⑤ 청소년기후행동 시위와 녹색당 단식

2021년 5월 27일 오전 서울 을지로7가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 앞 광장. 추적추적 내리는 빗속에 검은색 우비를 입은 남녀 청소년 5명이 서 있었습니다. 청소년기후행동 소속 활동가인 이들은 30여 명의 취재진을 앞에 두고 기자회견을 시작했습니다. 기자회견의 주제는 ‘청소년들이 DDP 앞에 썩은 당근 217kg을 쏟아부은 이유는?’이었습니다. 이들의 뒤편엔 문재인 당시 대통령, 김부겸 국무총리, 한정애 환경부 장관 등의 사진이 들어간 종이 조형물이 있었습니다. ‘기후위기는 최악인데 왜 입만 움직여?’ 등이 적힌 팻말도 놓여있었습니다.

시위를 공동 기획한 윤현정 활동가가 말문을 열었습니다.

“정부는 이번 30일과 31일 ‘P4G 정상회의’를 열어 기후 리더를 자처하려 합니다. 그것의 부당함을 알리기 위해 이번 기자회견과 퍼포먼스를 기획했습니다. 현재 정부가 정한 온실가스 감축 목표는 기만행위입니다. 정부는 지금 당장 신규 석탄발전소 중단과 국가 온실가스 감축목표(NDC) 상향 계획을 발표해야 합니다.”

한국 ‘P4G 정상회의’ 개최 자격 있나

‘P4G’는 ‘녹색성장 및 글로벌 목표 2030을 위한 연대’(Partnering for Green Growth and the Global Goals 2030)라는 국제협의체입니다. 2021년 P4G 정상회의는 DDP에서 화상으로 열렸고 45개 국가, 21개 국제기구에서 정상급 인사 68명이 참여했습니다. 윤 활동가가 말한 우리나라의 기존 온실가스 감축목표(NDC)는 ‘오는 2030년까지 2017년 탄소배출량의 24.4%를 줄이겠다’는 내용으로, 국제사회에서 매우 미흡하다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김유진 활동가는 이어 이렇게 말했습니다.

“과연 우리나라가 P4G 같은 국제 파트너십을 개최할 자격이 있습니까? 한국은 베트남과 인도네시아에 신규 석탄화력발전소 건설 사업을 강행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앞으로 석탄발전 신규투자를 포기하겠다는 선언을 굉장한 결심인 양 말하고 있습니다.”

활동가들을 지원하러 나온 정주원 활동가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한국의 ‘녹색성장’이나 ‘기후 리더십’은 그저 만들어진 표현일 뿐입니다. 석탄화력발전을 하면서 다른 나라 온실가스 줄이는 것을 돕겠다고 이야기하는 한국은 ‘리더’가 아니라 ‘꼰대’입니다.”

당근 217킬로 쏟으며 ‘탄소배출 2억 1700만 톤 이하로’

기자회견 후 이들은 정부의 기후행동을 촉구하며 문 대통령 등의 사진이 들어간 조형물에 주황색 물감을 뿌렸습니다. 이어 손 수레에 담긴 217킬로그램(kg)의 썩은 당근을 바닥에 쏟으며 시위를 마무리했습니다. 청소년들은 인터넷에서 ‘위험한 상황에 있으면 조용히 당근을 흔들어 달라’는 말을 유행어처럼 쓰고 있습니다. 활동가들은 기후위기의 심각성과 위험성을 지적하기 위해 썩은 당근을 싣고 왔다고 설명했습니다. 217kg은 2030년까지 온실가스 배출량을 2억 1700만 톤(t) 이하로 배출해야 한다는 뜻을 담았다고 합니다.

윤현정 활동가는 <단비뉴스>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정부가 온실가스 목표를 다시 발표하겠다고 했는데, 새 목표가 청소년의 생존을 보장해 줄 수 있는 수준인 ‘2030년도까지 2017년의 70% 감축’으로 상향될 때까지 계속 행동할 것입니다. 개인행동만으로 바뀌는 것은 많지 않습니다. 함께 행동해야 효과적이니, 당사자인 청소년이 연대해 세상을 바꾸자고 얘기하고 싶습니다.”

녹색당 이은호 기후정의위원장은 현장에서 단식

청소년 활동가들이 당근 퍼포먼스를 한 곳에서 100미터(m) 정도 떨어진 ‘너와 나의 서울’ 조형물 앞에는 성인 2명이 겨우 들어갈 수 있는 크기의 녹색 천막이 있었습니다. ‘당신을 죽이지 않는 석탄은 없다, 신규 석탄발전소 아웃(OUT)’ ‘신규석탄발전·공항건설 중단하라’ 등의 구호가 내걸린 천막 안으로 들어가자, 이날로 11일째 단식 중인 이은호 녹색당 기후정의위원장이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이 위원장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저희가 할 수 있는 게 논평, 기자회견, 아니면 집회인데, 집회도 이제 코로나 때문에 몇 명 이상 안 되고.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더라고요. 그래서 절박한 마음에 단식을 시작하게 됐습니다.”

그는 11일간 물, 소금, 효소 외에 아무것도 먹지 않았지만, 아직 몸 상태는 괜찮다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가 지금처럼 탄소배출을 계속한다면 지구가 스스로 기온을 회복할 수 있는 기능을 잃어버리는 (산업화 이전 대비) 1.5도 상승까지 6년 7개월밖에 안 남았습니다.”

이 위원장은 온도상승을 막기 위해 1년, 2년이 중요한 상황이라고 안타까워했습니다. 또 2021년 기준으로 온실가스 배출의 주범인 석탄발전소를 국내에서 7기, 해외에서 3기를 추가로 짓고 있는 것과 석탄발전소 56기를 국내에서 가동하고 있는 현실을 바꿔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는 특히 한국전력과 삼성물산이 베트남에 짓고 있는 붕앙2 석탄화력발전소가 본격 가동되면 온실가스 배출량이 연간 660만t인데, 한국 정부가 2025년까지 그린뉴딜을 통해 감축하려고 하는 온실가스 총량이 1229만t이라고 지적했습니다. 5년간 줄이는 온실가스의 양이 붕앙2 발전소가 2년 동안 가동되면 모두 상쇄된다는 얘기입니다. 이 위원장은 문재인 당시 정부가 당장 국내외에 건설 중인 신규 석탄발전소 10기 공사를 중단하고, 가동 중인 56기의 석탄발전소 폐쇄 계획을 앞당겨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는 특히 새로 짓는 석탄발전소도 경제성을 빠르게 잃게 될 것이라며, 지금이라도 정부가 석탄발전업자에게 적절한 보상을 제공하고 건설 계획을 백지화하자고 말했습니다.

기후위기, 개인적 실천 넘어 ‘국난급 대응’ 필요

“지금 북극곰의 문제가 아니고, 어디 섬나라의 문제가 아니고, 당장 국민들이 죽고 동물들이 죽고, 나아가서는 경제·복지·의료·안보·일자리 문제 다 연결이 돼 있는 겁니다. 국난급이란 말이에요. 이게 진짜 국난이 되기 전에 미리 함께 힘 모아서 이걸 극복하자고 해야죠. 그냥 일상의 자잘한 불편, 뭐 우리의 지구니까 전기를 잠깐 꺼요, 뭐 텀블러를 써요, 이러면 우리 함께 지구를 살리고 기후위기 막을 수 있어요... 이건 거짓말이라는 거죠.”

이 위원장은 2021년 5월 27일 청와대 공식 유튜브 채널에 올라온 <문재인, 박진희, 타일러! 지구를 위한 특별한 토크> 영상에서 문재인 당시 대통령이 개인의 실천을 강조한 것에 관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는 이어서 설명했습니다.

“지금은 그런 메시지보다 기후위기의 심각성과 진실을 국민에게 솔직하게 얘기하고, 힘을 모아서 기후위기에 대응할 때입니다. 한국의 기후위기 정책은 포장지 좋게, 예쁘게, 하는 척이 너무 심하다고 생각합니다. 국민이 작은 실천을 해 봤자 정부가 온실가스를 줄이기 위한 실질적 행동에 나서지 않으면 기후위기를 막을 수 없습니다.”

그는 2021년 5월 24일에 열린 P4G 지방정부 특별세션에서 전국 17개 광역지자체와 226개 기초자치단체가 ‘2050 탄소중립’을 선언한 것에 관해서도 이렇게 말했습니다.

“선언에 따른 후속 조처가 반드시 뒤따라야 선언의 의미가 있을 것입니다. 특히, 공무원들이 기후위기에 관해 의무 교육을 받아야 합니다. 사회적 안전망을 잘 갖춤과 동시에 기후위기를 적극적으로 막을 수 있는 정책이 나와야 합니다.”

이 위원장은 마지막으로 이렇게 덧붙였습니다.

“정부가 개인의 실천이나 대기업의 기술개발에만 의존하지 말고, 더 적극적으로 탄소 감축 방법을 찾아야 합니다. 시민들도 기후위기를 모두의 문제로 인식하고, 정부가 제대로 기후위기 대응을 하고 있는지 감시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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