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비 소리뉴스] 기후위기시대 ① 지지부진한 석탄 퇴출 현주소

디지털 시대의 멀티미디어 실험에 앞장서는 <단비뉴스>가 ‘소리뉴스’ 2탄을 시작합니다. 2021년 4월 시작된 ‘기후위기시대’ 연재 기사를 단비뉴스 환경부 기자들이 목소리와 영상으로 전합니다. 이 연재 기사는 갈수록 심각해지는 기후위기의 현황과 대안, 그리고 기후정의를 위해 행동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소리뉴스 1탄 ‘마지막 비상구’와 마찬가지로, 시각장애인을 포함한 우리 사회 구성원 모두가 엄중한 기후위기 현실을 깨닫고 함께 대응하는 데 도움이 되기를 기대합니다. 소리뉴스는 단비뉴스 홈페이지와 유튜브 채널에 실립니다. (편집자)

 

2021년 3월 12일 오전 7시쯤, 서울 대치동 포스코센터 정문 앞 보도가 피처럼 붉은 물감으로 뒤덮였습니다. 흰색 방호복을 입고 등짐펌프를 멘 기후위기비상행동 활동가 다섯 명이 순식간에 뿌린 것입니다. 활동가들은 ‘기후악당, 노동악당, 인권악당 포스코 삼진아웃’이라고 적힌 현수막을 들고 구호를 외쳤습니다. 건물에 들어가지 못하도록 포스코 직원들이 막아선 가운데, 이들은 약 2시간 동안 시위를 이어갔습니다.

활동가들은 철강을 만드는 포스코 사업장에서 엄청난 온실가스가 발생하는 데다, 자회사 삼척블루파워가 강원도 삼척에 석탄발전소까지 짓고 있기 때문에 포스코는 ‘기후악당’이라고 성토했습니다. 또 2018년부터 이 회사에서 산업재해로 노동자 21명이 숨졌기 때문에 ‘노동악당’이며, 시민을 학살하는 미얀마 군부와 포스코가 사업상 결탁하고 있기 때문에 ‘인권악당’이라고 덧붙였습니다.

포스코센터 앞에 붉은 물감을 뿌린 까닭은

“포스코가 국내 온실가스 배출량의 11%를 차지하고 있어요. 특히 삼척블루파워가 온실가스 배출 주범인 석탄화력발전소를 짓고 있어 기후악당으로 지목했습니다.”

이날 시위에 참여한 박이현 기후위기비상행동 액션팀장은 2021년 3월 23일 <단비뉴스> 전화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는 당시 약 35%인 삼척석탄화력의 공정률이 올라가 매몰 비용이 더 커지기 전에 건설을 중단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기후변화센터 자료에 따르면 2018년 포스코의 온실가스 배출량은 7300만 톤(t)으로 국내 기업 중 1위이며, 국가 전체 배출량의 약 10분의 1 규모입니다.

2018년 8월 착공돼 2024년 10월 가동을 목표로 공사가 진행되고 있는 삼척석탄화력 1, 2호기는 2017년 환경영향평가에서 가동 기간에 연 1280만t의 온실가스를 배출할 것으로 전망됐습니다. 이는 그해 한국 전체 온실가스 배출량 7억 970만t 중 1.8%에 해당합니다.

2021년 기준 국내에서 가동 중인 석탄발전소 58기와 건설 중인 7기 등 65기의 발전소는 모두 해안지대에 있습니다. 서해에는 인천광역시 옹진군, 충남 당진시·태안군·보령시·서천군에 총 35기가 있습니다. 남해에는 전남 여수시, 경남 하동군·고성군에 20기가 있습니다. 동해에는 강원도 삼척·동해·강릉시에 10기가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삼면이 온실가스와 미세먼지를 내뿜는 석탄발전소로 둘러싸여 있는 셈입니다.

탄소배출·미세먼지 원흉, 한반도 3면을 둘러싸다

우리나라 전체 발전량 가운데 석탄발전 비중은 2022년 기준 32.5%입니다. 2021년의 34.3%와 비교해 1.8%포인트(p) 떨어졌지만, 여전히 전체 발전량 중 1위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석탄발전은 이산화탄소 배출의 주범입니다. 국제에너지기구(IEA)에 따르면 2018년 한국에서 이산화탄소는 총 6억t이 발생했는데, 그중 3.13억t이 석탄에서 나왔습니다. 국내 탄소배출의 52%가 석탄발전소 등 석탄을 이용하는 사업장 책임인 셈입니다. 탄소배출량을 추적하는 국제 과학자 연구플랫폼인 글로벌카본아틀라스(Global Carbon Atlas) 통계에 따르면 2021년 한국의 이산화탄소 배출량은 세계 10위입니다. IEA 통계에서는 한국이 일본(5위)과 독일(6위)에 이어 세계 7위입니다. 두 통계 모두 1위는 중국, 2위는 미국, 3위는 인도가 차지했습니다.

석탄발전은 미세먼지 등 대기오염 물질의 주 배출원으로도 지목되고 있습니다. 2019년 대통령 직속 자문기구인 ‘미세먼지 문제 해결을 위한 국가기후환경회의’에서 발간한 <국가기후환경회의 국민정책제안>에 따르면 2016년 기준 우리나라 전체 미세먼지 가운데 발전부문 배출이 12%인데, 발전부문 중 석탄발전소에서 나온 것이 93.3%였습니다.

‘석탄발전 중단’ 국민 90% 찬성하지만

석탄발전소가 온실가스와 미세먼지 배출의 주범이라는 사실은 폭넓게 인식되고 있습니다. 환경단체인 녹색연합이 한국갤럽에 의뢰해 2020년 8월 20일부터 25일까지 진행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가 2030년까지 석탄발전을 중단하고 재생에너지로 전환해야 한다’에 응답자 1500명 중 90.7%가 동의했습니다.

그러나 정부의 ‘탈석탄’ 행보는 지나치게 굼뜬 상태입니다. 문재인 대통령은 2020년 10월 국회 예산안 시정연설에서 ‘2050 탄소중립’을 선언하면서 신규 석탄발전소 설립 인허가를 금지해 화석연료 의존도를 줄이고 재생에너지 비중을 늘리겠다고 발표했습니다. 그러나 산업통상자원부가 2020년 12월에 발표한 ‘제9차 전력수급기본계획’은 석탄발전량 비중을 2020년 36%에서 2030년 29.9~34.2%로 낮추는, 매우 소극적인 수준에 그쳤습니다. 문재인 정부는 2021년 10월 ‘2030 국가온실가스감축목표(NDC) 상향계획’에서 석탄발전량 비중을 2030년까지 21.8%로 줄이겠다고 수정 발표했습니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는 삼척석탄화력을 포함, 건설 중인 7기의 석탄화력발전소 공사를 중단하고 ‘탈석탄’ 일정을 앞당기라는 환경단체의 요구를 일축했습니다.

한편 윤석열 정부는 2023년 1월 발표한 ‘제10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서 석탄발전량 비중을 19.7%로 문재인 정부 최종안보다 2.1%p 낮췄습니다. 대신 원전 발전 비중을 23.9%에서 32.4%로 8.5%p 늘렸고, 신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을 30.2%에서 21.6%로 8.6%p 줄였습니다. 원전과 석탄화력을 합친 비중을 종전보다 높인 대신 신재생에너지 비중을 낮춘 윤석열 정부의 계획에 관해 환경단체들은 ‘재생에너지 확대 필요성에 역행하는 것’이라고 강하게 비판하고 있습니다.

환경단체들은 정부가 2020년 ‘그린뉴딜’과 탄소중립 계획을 밝히고도 온실가스 감축을 현실적으로 추진하지 않았다고 비판합니다. 문재인 정부는 2015년 타결된 파리기후변화협약에 따라 자발적인 탄소감축목표(NDC)를 제출하면서 ‘2030년의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BAU(전망치) 대비 37% 줄이겠다’고 밝혔습니다. 이는 별다른 노력이 없는 경우 2030년에 배출할 것으로 예상되는 탄소량보다 37%를 줄이겠다는 것으로, 유럽연합(EU) 등 선진국들이 ‘1990년 대비’ ‘2010년 대비’ 등 절대량을 기준으로 감축안을 제시한 것에 비해 너무 소극적이란 평가를 받았습니다. 정부는 국제사회의 눈총을 의식하고 2020년에는 ‘2017년 탄소배출량 대비 24.4%를 줄이겠다’고 수정목표를 제시했으나, 표현 방식만 달라진 것일 뿐 2030년 탄소배출량 목표치는 5억 3600만t으로 동일했습니다.

유엔기후변화협약(UNFCCC)은 한국 등 감축목표가 저조한 나라들에 2021년 11월 영국 글래스고에서 열리는 제26차 유엔기후변화협약당사국총회(COP26)에서 감축목표를 상향 제시할 것을 요구했습니다. 환경운동연합은 이와 관련해 2021년 3월 23일 논평을 내고 “정부가 그린뉴딜로 감축하고자 하는 양보다 많은 온실가스를 배출하게 될 신규 석탄발전소 7기를 중단하지 않고서는 ‘탄소중립’ 달성도 불가능하다”고 강조했습니다. 한편 2022년 3월 문재인 정부는 2030년의 온실가스 감축목표를 ‘2018년 총배출량에 비해 40% 줄이는 것’으로 확정해 발표했습니다.

과감한 ‘탈석탄’ 실행계획 추진해야

문재인 정부는 2030년까지 노후 석탄발전소 24기를 퇴출하고 신규 석탄발전소는 더 이상 허가하지 않겠다고 밝혔지만, 수명 30년의 신규발전소 7기를 계속 짓는 한 ‘탈석탄’이 요원하고 파리기후변화협약에 맞는 탄소감축도 불가능하다는 게 환경단체들의 지적이었습니다. 2023년 3월 기준, 짓고 있던 7기의 석탄발전소 중 5기가 이미 완공됐고, 2기의 석탄발전소 공사가 진행되고 있습니다. 영국의 기후에너지 연구기관인 엠버(Ember)가 2021년 3월 발표한 <2021 글로벌 전력생산 보고서>에 따르면 2020년 한국의 석탄발전량은 2015년과 비교해 10% 떨어지는 데 그쳐, 같은 기간 영국의 감축량(93%)과 EU 27개국 감축량(48%)에 크게 못 미칩니다.

이 연구에 참여한 엠버의 선임 전력정책 전문가 아디트야 롤라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한국은 2050 순배출제로라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전력믹스(에너지 수급 정책)의 신속한 변화가 필요합니다. 풍력과 태양광 발전을 늘리지 않으면 한국은 이산화탄소 순배출제로 목표를 달성할 수 있을 만큼 발전 부문에서 탈탄소화를 조속하게 실행하기 어려울 겁니다.”

독일의 기후변화 전문연구기관인 클라이밋애널리틱스(Climate Analytics)는 2020년 2월 발표한 <탈석탄 사회로의 전환: 파리협정에 따른 한국의 과학 기반 탈석탄 경로>에서 한국이 석탄발전소를 30년 가동한 후 폐쇄하는 정책을 유지했을 때 발생하는 탄소배출량을 예측했습니다. 연구진은 현재 가동되고 있는 58개 석탄발전소만 계산했을 때 석탄발전은 2047년에 종료되며, 파리협약을 준수할 수 있는 온실가스 배출량의 2.4배에 해당하는 양을 배출할 것으로 예측했습니다. 공사 중인 7기의 석탄발전소까지 정상 가동하는 경우 한국에서 탈석탄은 2055년에 가능해집니다. 이때 온실가스 배출량은 파리협약 기준의 3.1배가 된다고 연구진은 지적했습니다.

연구진은 한국이 탈석탄을 가속하기 위한 구체적인 정책과 대안이 없다는 점도 주목했습니다. 특히 재생에너지 생산 계획이 미흡하다고 지적하며, 한국이 파리협약을 준수하기 위해서는 석탄을 대체할 만한 구체적인 에너지 믹스 계획이 있어야 한다고 조언했습니다.

사단법인 기후솔루션 박지혜 변호사는 2021년 3월 13일 <단비뉴스> 전화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기후변화정부간협의체(IPCC)에서 제시한 ‘2010년 대비 45%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한국 전력 믹스 계획의 극적인 변화가 필요합니다. 영국 같은 경우 2012년도에 발전량의 40%를 석탄에 의존했지만, 지금은 5%로 떨어졌어요. 8년 만에 변한 영국의 속도를 우리가 맞추는 게 불가능하지 않습니다. 네덜란드는 2015년에 완공된 발전소가 있어도 사회적 합의 과정을 거쳐 2019년에 탈석탄법을 통과시켰고, 2030년까지 퇴출 합의를 봤습니다. 국내 석탄발전소도 조기 퇴출을 추진해야 합니다.”

출처: 기후위기시대 (단비뉴스)

목소리 출연: 김신영 박정은 이다희 이혜민 조한주 기자

영상편집: 이혜민 박정은 기자

관련기사

저작권자 © 단비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