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비 소리뉴스] 기후위기시대 ㊶ 이상기후 농작물 피해와 대안
2022년 7월 14일 경기도 연천군 군남면 남계리의 한 저온 저장고. 무와 배추, 양상추 등을 친환경 농법으로 재배하는 윤광진 씨가 잎이 누렇게 변한 배추를 들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배추가 꿀통이 찬 거예요. 속썩음병이라고 그러는데, 이게 있으면 팔아먹질 못해요. 이게 기후가 갑자기 더워져서, 날이 가물다가 갑자기 비 오고 이런 상태에서 썩은 거예요. 배추를 잘라봤는데, 이런 거는 전량 폐기처분돼요. 저기 상자에 담아놓은 배추가 다 처리될 것 같아요.”
폭염과 폭우 등 이상기온이 지속돼 정상적으로 영글지 못하고 속이 썩어버린 배추였습니다. 윤 씨는 농사지은 배추를 전량 경기도 친환경 급식으로 납품해 왔습니다. 하지만 2022년 출하한 2톤(t)가량의 배추는 모두 반환당했습니다. 겉보기엔 멀쩡하지만 갈라 보면 알 수 있는 ‘속썩음병’에 걸렸기 때문입니다.
학교 급식 납품 배추 2톤 고스란히 ‘퇴짜’
1997년부터 연천에서 농사를 지어온 윤 씨는 최근 들어 급격해진 기후변화를 체감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최근에 거의 엄청 더워진 것 같고. 날씨가 추운 지방이거든요, 연천이 원래. 그 추위가 많이 없어졌어요. 겨울에도 덜 춥고 봄이 짧아지고. 확실하게 여긴 느끼죠. 계절적 영향이 굉장히 많아요.”
무에 비하면 배추는 상황이 나은 편이라고 합니다. 폭염과 가뭄으로 농사를 망친 무는 수확도 하지 못한 채 전량 폐기됐습니다. 윤 씨는 이렇게 하소연했습니다.
“수확을 약 두 팩, 1.5t 정도 했는데 소비자에게 클레임 걸려서 팔지 못하고 폐기가 됐습니다. 인건비가 안 나오니까 밭에 방치된 상황이에요.”
1000평에 달하는 무밭에는 뜨거운 기온을 견디지 못하고 녹아버리거나 잎이 타버린 무가 여기저기 널려있었습니다. 윤 씨는 올해 무와 배추 농사에서 각각 1000만 원, 1500만 원가량의 수입을 잃었다고 했습니다. 인근의 다른 채소 재배 농가들도 가뭄 피해를 많이 봤다고 덧붙였습니다.
기상청에 따르면 한국의 평균기온은 10년마다 약 0.3도씩 상승하고 있습니다. 농가 피해도 이에 따라 증가하는 추세입니다. 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장마, 태풍, 이상저온 등으로 재해를 입은 농작지 면적은 2016년 3만 7667헥타르(ha)에서 2020년 20만 3576ha로 5배 이상 늘었습니다. 이는 전체 경지면적 158만 1000ha의 약 13%에 달합니다.
농작물은 널뛰는 날씨에 직접 영향을 받습니다. 농림부에 따르면 2022년 1월부터 5월까지 전국 누적 강수량은 160.7밀리미터(mm)로 평년의 52% 수준에 그쳤습니다. 이 때문에 채소 작황이 큰 타격을 받았습니다. 통계청이 2022년 7월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2022년 양파 생산량은 119만 5563t으로 전년 대비 38만 1189t, 약 24% 감소했습니다. 마늘은 27만 2759t으로 3만 5773t(11.6%) 감소했습니다. 통계청은 마늘 재배면적이 전년보다 1.6% 증가했지만 알이 굵어지는 시기에 강수량이 부족했고, 과다한 일조량 등 기상 여건이 나빠져 생산이 부진했다고 분석했습니다.
기상재해로 인한 작황 부진은 밥상 물가를 불안하게 만듭니다. 통계청이 발표한 2022년 7월 소비자물가동향을 보면 신선식품지수가 2022년 6월 대비 6.9%, 2021년 7월 대비 13% 상승했습니다. 특히 신선채소는 2022년 6월 대비 17.3% 뛰었습니다. 품목별로는 2021년 7월 대비 상승률이 배추 72.7%, 상추 63.1%, 시금치 70.6%, 오이 73%, 파 48.5% 등으로 대부분 채소류 값이 훌쩍 올랐습니다.
이상기후로 작황 부진, 전 세계 물가 상승 압박
이상기온으로 인한 농작물 피해는 한국만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2022년 7월 미국 <워싱턴포스트>는 가뭄으로 캘리포니아주 토마토 농사가 큰 피해를 보고 있다고 보도했습니다. 캘리포니아는 미국 캔 토마토의 90% 이상, 전 세계 캔 토마토의 삼분의 일을 생산하는 주요 재배지입니다. 하지만 2022년은 지속된 가뭄으로 물 공급에 어려움을 겪자 많은 농부가 토마토 등 한해살이 작물을 포기하고 영구 재배가 가능한 포도나 나무 재배 등에 물 공급을 집중했습니다. 전문가들은 토마토 생산 차질에 따라 외식 물가도 연쇄적으로 오를 것이라고 전망했습니다.
2022년 8월 3일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2022년 인도의 서벵골주와 우타르 프라데시주의 벼 재배면적이 가뭄으로 13% 줄었습니다. 인도는 방글라데시, 중국, 네팔 등과 함께 가장 쌀을 많이 공급하는 나라인데, 쌀 수확량 감소가 수출 규제를 촉발하는 경우 쌀을 주식으로 하는 수십억 명의 소비자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이 통신은 전망했습니다. 폭염에 시달리고 있는 인도는 이미 2022년 5월 작황이 좋지 않은 밀에 대해 수출 금지령을 내렸습니다.
이상기후에 따른 농작물 작황 부진은 전 세계에 인플레이션 압력을 높이고 있습니다. 2022년 6월 미국의 소비자물가지수는 전년 동월 대비 9.1% 올라 1981년 11월 이후 가장 높은 상승 폭을 기록했습니다. 유럽연합 통계기구인 유로스타트(Eurostat)에 따르면 유로존(유로화 사용 19개국)의 2022년 6월 소비자물가도 2021년 동월 대비 8.6% 상승해 1997년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습니다.
유엔(UN) 산하 기후변화에관한정부간협의체(IPCC)가 2019년 발간한 ‘기후변화와 토지에 관한 특별 보고서’는 기후변화가 식량안보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경고했습니다. 보고서에 따르면 기후변화는 작물 재배량 자체를 변화시킬 뿐만 아니라 물의 양과 질 감소, 병해충 등의 간접적 영향을 통해서도 식량 생산에 타격을 줍니다. 보고서는 기후변화가 1981~2010년 전 세계의 옥수수와 밀, 콩의 평균 산출량을 각각 4.1%, 1.8%, 4.5% 감소시켰다고 분석했습니다. 보고서는 앞으로 지구의 온도가 4도 상승하면 20도 이상의 기온에서 자라는 채소의 수확량이 31.5% 감소할 것으로 전망했습니다.
농작물 손실 보상 위한 안전장치 필요
농민들에게 예기치 못한 자연재해는 곧 한해 소득의 손실을 의미합니다. 농사에 실패해 수확이 줄면 그 빚은 농민 개인이 고스란히 떠안게 됩니다. 농가의 손실을 최소화하고 안정적인 농업 활동을 지원하는 제도적 도움이 없다면 회생이 어려울 수 있습니다. IPCC의 ‘기후변화와 토지에 관한 특별보고서’ 또한 농가의 기후변화 적응과 위험 관리를 돕기 위한 방안으로 재해보험, 재해대비기금 등이 필요하다고 권고했습니다.
현재 우리나라는 자연재해로 인한 농작물 피해를 보상하고 농업인의 경영 안정을 돕기 위해 농작물재해보험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농작물재해보험은 태풍, 우박, 지진과 야생동물 피해인 조수해 등에 따른 농작물 피해를 보상해 주는 정책 보험입니다. 보험료의 50% 내외를 국비로 지원하며 지방자치단체가 30~50%를 지원합니다. 2001년 사과와 배 두 가지 품목으로 시작한 농작물재해보험은 현재 가입 대상 품목이 67가지로 늘었고, 2001년 8055호이던 가입 농가 수도 2021년 49만 7884호로 늘었습니다.
그러나 농작물재해보험 제도의 실효성은 아직 부족하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보험 가입률이 49.4%에 불과해 절반 이상의 농가가 보험 사각지대에 방치돼 있으며 가입 품목과 지역의 확대 또한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김태후 한국농촌경제연구원 부연구위원은 <단비뉴스> 전화 인터뷰에서 보험 가입의 기준이 되는 작물 수확량에 대한 데이터 보강과 품질 손실에 대한 보장 방안 마련 등 개선 과제가 많다고 지적했습니다.
‘대구 사과’는 옛말, 해발 800m로 올라간 과수원
변화하는 기후는 농산물 경작 지도를 바꾸고 있습니다. 해발 800m에 자리한 강원도 태백시의 사과 농장이 그중 한 곳입니다. 2022년 8월 14일 찾은 태백시 문곡동의 한 사과 농장에는 알이 굵은 사과들이 붉게 익어가고 있었습니다. 5000평가량 펼쳐진 사과밭 뒤편으로는 강원 지역의 주 재배 작물인 고랭지 배추밭이 보였습니다.
이 지역에서 2009년 태백시 최초의 사과 농사를 시작한 염동일 씨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지난 십여 년간 태백의 기후가 변화하며 농사의 양상도 달라졌습니다.”
그는 이렇게 덧붙였습니다.
“처음 사과 농사를 시작했을 때는 애를 먹었어요. 태백의 해발이 높다 보니까 눈도 많이 오고, 얼음이 얼어 작황이 안 좋았죠. 그런데 약 5, 6년 전부터 기후가 온난화돼서 이제는 사과 농사짓기 아주 적절해졌습니다.”
염 씨에 따르면 강설량이 많아 눈꽃 축제가 열리기도 하던 ‘설국 태백’은 이제 옛말이 됐습니다. 5~6년 전만 해도 한 번 눈이 오면 허리까지 쌓였지만, 요즘은 금방 녹아버릴 정도만 내린다고 합니다.
실제 태백의 평균기온은 1991~2000년 8.6도, 2001~2010년 9도, 2011~2020년 9.3도로 꾸준히 따뜻해지고 있습니다.
염 씨의 아버지는 1970년대 대구에서 사과 농사를 지었습니다. 대구와 경북 지역은 1990년대까지만 해도 사과 주산지였지만 요즘은 사과 농가가 별로 없습니다. 대신 태백에 500평, 1000평씩 작게 사과 농사를 짓는 농가들이 꽤 많다고 그는 설명했습니다.
농작물 재배지도 변화에 맞춰 농업기술 지원 추진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주요 농작물의 주산지가 남부 지방에서 충북, 강원 지역 등으로 많이 북상했습니다. 인삼은 충남 금산에서 경기·강원 지역으로, 포도는 경북 김천에서 충북·강원 등으로 이동했습니다.
월평균기온 10도 이상이 8개월 이상 지속되면 아열대 기후라고 하는데, 현재 국내 경지면적의 10.1%가 아열대 기후권에 속합니다. 전문가들은 2080년이 되면 아열대 경지면적이 62.3%로 늘어날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현재 추세대로 온실가스가 계속 배출된다고 가정하는 ‘대표농도경로(RCP) 8.5 시나리오’에 따르면 21세기 후반에는 강원도 산간을 제외한 남한 대부분의 지역이 아열대 기후로 변합니다.
이런 국내 작물 생산지 변화에 대처하기 위해 농업계도 방안을 마련하고 있습니다. 농촌진흥청은 기후변화에 대응해 ‘신농업기후변화대응체계구축사업’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사업단 내부에 기후영향예측평가연구단, 기후적응기술연구단, 기상재해대응기술연구단, 저탄소농업기술연구단 등 4개 부서를 두고 관련 연구를 진행 중입니다. 예를 들어 농업환경과 농업생태계 다양성이 기후변화에 따라 어떻게 취약해지는지 평가하고, 이에 대응하는 작물을 육성합니다. 또 가뭄에 대처하기 위해 최적의 관개 기술을 개발하는 연구도 추진 중입니다.
디지털 시대의 멀티미디어 실험에 앞장서는 <단비뉴스>가 ‘소리뉴스’ 2탄을 시작합니다. 2021년 4월 시작된 ‘기후위기시대’ 연재 기사를 단비뉴스 환경부 기자들이 목소리와 영상으로 전합니다. 이 연재 기사는 갈수록 심각해지는 기후위기의 현황과 대안, 그리고 기후정의를 위해 행동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소리뉴스 1탄 ‘마지막 비상구’와 마찬가지로, 시각장애인을 포함한 우리 사회 구성원 모두가 엄중한 기후위기 현실을 깨닫고 함께 대응하는 데 도움이 되기를 기대합니다. 소리뉴스는 단비뉴스 홈페이지와 유튜브, 팟빵 채널에 실립니다. (편집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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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위기시대 소리뉴스]
① '석탄 퇴장' 급한데 신규발전소 더 짓는 한국
② '나만 지구 지켜?’ 불안과 실망을 넘어서
③ 정부·기업의 기후 대응, 시민이 압박해야
④ 석탄발전소 ‘질서 있는 퇴장’을 서둘러야
⑤ 썩은 당근 쏟으며 ‘위험’ 호소한 청소년들
⑥ 탄소중립 외치며 석탄발전·공항 짓는 위선
⑦ 기후과학자가 소형원자로 개발에 반대하는 이유
⑧ 개발도 안 된 핵융합 대신 자연 태양광 투자를
⑨ 기후와 생물다양성 위기 극복을 국가의 의무로
⑩ 떠오르는 '소형모듈원전' 조목조목 따져보니
⑪ 안전하지도 경제적이지도 않은 파이로프로세싱
⑫ 더 큰 재난 막으려면 원전 아닌 자연에너지로
⑬ ‘탄소감축 과정에서 피해 떠안는 노동자 없도록
⑭ 소고기가 배출하는 온실가스, 두부의 20배
⑮ '각자도생' 대신 서로 돌봐야 재난 이긴다
⑯ 쓰레기 여러 트럭 나오는 전시회는 '이제 그만'
⑰ 지구가 깨끗해질 때까지 달리기로 했다
⑱ 화석연료에 여전히 돈 쏟아붓는 공적금융
⑲ 소송으로 입 막는 기업, 굴하지 않는 기후행동
⑳ 기후재난 당사자가 애타게 전하는 위험 신호
㉑ 유행 따라 사고 버리니 지구가 열받았네
㉒ ‘온난화 주범’ 대기업에 ‘기후정의’를 압박하다
㉓ ‘신공항’ 대신 ‘정의로운 전환’에 집중 투자를
㉔ 먹거리 전환이 에너지 전환만큼 중요하다
㉕ 주민협동조합 이익공유로 ‘무석탄·무원전’ 확대
㉖ 주요 정당 지도자들, 탄소중립 로드맵 제각각
㉗ 청년의 미래를 빼앗은 것에 용서를 구합니다
㉘ 원전으로 탄소중립이 가능하다는 착각
㉙ ‘태양광 괴담’ 가고 나니 ‘이격거리’가 남았다
㉚ 위기 해결의 열쇠 함께 찾는 인문·과학 연구자들
㉛ 지구 살리는 채식, 학교가 가르치고 선택권 줘야
㉜ 에너지 자급자족 건물, 이제 선택에서 의무로
㉝ 전국 8만여 가구가 아직은 버릴 수 없는 연료
㉞ 소음과 분진에도 생계형 노동 못 떠나는 노인들
㉟ 예정된 폐광, 대안 없는 노동자와 지역주민
㊱ 강이 위험에 처하면 인류 문명도 위험하다
㊲ "바다에 물고기보다 플라스틱이 많아질 수도"
㊳ 미국곡물협회가 부산 모터쇼를 찾은 까닭은
㊴ 무농약으로 ‘땅심’ 키우는 공유농업의 현장
㊵ 건설·택배 노동자 목숨 위협하는 폭염이 온다
